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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활동

인연의 교차로

사회교육

<2020년><10월>

불서 강해 시리즈25

법상과 비법상의 차이점

그렇다면 법상과 비법상을 어떻게 분별하겠는가!

법상은 중생 분별계를 떠났을지라도 오히려 지키던 법, 가졌던 법, 분별계를 떼이므로 얻은 법은 남아있게 마련입니다. 이 일체분별은 없다할지라도 법 하나는 가지고 놓지 못할 것이니, 이것이 바로 법상의 법집입니다.

비유하면 배를 타고 저 언덕까지 갔을지라도 이 배가 나를 이곳까지 오게해준 고마움만 생각하고 차마 배를 떠나 언덕에 오르지 못한다면, 배에 집착하여 언덕을 모르게 됩니다. 이는 법에 집착하여 피안을 모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법상의 집이 있으면 다시 4상에 착하게 될 것입니다. 법에 걸림이 있을 때는 분명히 거기에 걸려있는 놈이 있을텐데, 그놈이 바로 아상이요, 인상이 됩니다. 또한 자기가 처한 바 법을 둘도 없는 정법으로 집착할지니 이미 정법이 있는 바에야 사법(邪法)이 있을지니, 이것이 중생상이요, 이 법은 만고불변의 대진리라 할지니 그것이 수자상입니다.

법상이 아무리 4상을 여윈다하더라도 법집에 불과한 연고가 이것이요, 이것이 법집에 속한 법상입니다.

또 4상을 없애되 중생집을 떼었으므로 일체 중생계에 분별이 없고, 법집을 떼었으므로 일체법에 집착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

4상으로부터 중생집을 떼고, 중생집에서 법집을 떼어서 집착이 없는 법을 얻었다 할지라도 법을 여윔은 진제(實相)로 알지니, 이것이 비법상입니다.

비유하면,

불서 강해 시리즈26

배를 놓고 피안에 올랐다하더라도 피안에 오른 줄 알면 실은 못오른 것입니다.

왜냐하면 피안은 법을 놓고 취함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배는 놓는 것도 태워지는 것이요, 배를 취해도 태워지는 까닭입니다. 왜 그런고 하면, 저 언덕은 오름없이 오르는 것이며, 배는 버림없이 버리기 때문입니다. 배를 버림없이 버릴 줄 모르면 항상 이 배에 실려있음이니, 이 배에만 실려있으면 법상, 비법상 할 것없이 4상에 취함이 되는 것입니다.

비법상에 취하면 법을 돈연히 떼임이 못되고 법상을 상대함이 되는 것이니, 비법상은 아상이요, 법상은 인상입니다. 또 법상과 비법상이 상대되었으니, 사법(邪法)이 멸하지 못함인지라 중생상인 것입니다. 또 법상을 떼임으로해서 피안에 달한 느낌이 있을지니 이것이 수자상입니다.

비법상이 아무리 법상을 여윈다 해도 법집에 불과한 것이니, 진제에는 도달 못한 것입니다. 이것은 법집에 속한 비법상입니다.

이 비법상을 다 떼어 버리면 어디일까?

물론 진제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제를 취함이 있으면 실제로 비법상을 떼임이 아니요, 따라서 이른 곳도 진제가 아닐 것입니다.

진제는 법상을 떼인 것도 아니요, 비법상을 떼인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법상-비법상에 착한 것도 아닙니다.

진제는 법상-비법상을 떼고 붙임에  있는 것도 아니요, 이를 떼지도 말고 붙이지도 말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진제는 법상-비법상을 떼이든 붙이든 간에 함께 착이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비법상을 떼이면 어디로 가느냐 하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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