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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8월>

    업보윤회설, 그 오해와 진실2

그 다음의 오해는 아마도 불교의 업설은 윤리적으로 철저한 동기론이라는 고정관념일 것이다. 불교 업설은 행위의 의도를 중시하는 윤리적 동기론의 입장에 서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현대사회와 같이 복잡하고 디지털화된 상황에서 동기론적 윤리사상만으로는 세상을 이끌어 가기에 많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불교 업설에 결과론적 내용은 없는 것인지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 다른 오해는 불교 업설은 개인적 차원에서만 작동하는 원리라는 편견이다. 불교 업설은 대개 개인적 차원에서 설해지지만, 사회적 차원을 배제하지 않는다. 共業의 개념이 바로 그것을 증명한다. 불교 공업설이 우리의 삶에 어떤 방향을 제시하는지, 살펴보는 것은 큰 의미를 가질 것으로 본다.

이러한 오해들을 바로잡는 것은 올바른 불교이해를 위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작업이라고 생각된다. 불교의 업보윤회설은 불교적 세계관과 인생관의 바탕이 되는 근본 교리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 학계에서 ‘업과 윤회’에 대한 연구는 주로 윤회를 변증하고 합리화하는 입장에서 행해져 왔다고 할 수 있다. 또한 無我와 輪廻의 모순을 ‘無我輪廻說’로 봉합하려는 경향이 있어왔다.
그러다 보니 업설과 윤회설에 대한 비판적 연구와 새로운 해석 작업이 부족한 측면이 있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본고에서는 업과 윤회의 내용이나 사상사적 전개 과정보다는 업설과 윤회설의 의의에 대해 초점을 맞춰 고찰하고자 한다. 그리고 조금은 비판적인 관점에서 또 다른 해석을 시도해 보고자 한다. 업설에 대한 심리학적 해석은 그 하나가 될 것이다.

요즈음은 명상의 시대라 할 만큼 명상이 유행인 바, 이것은 결국 행복의 기준이 물질에서 마음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시대적 추세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인과업보를 심리적 차원에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Ⅱ. 업설과 윤회설의 기본 의의
1. 올바른 인생관의 확립

 

불교 업설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苦와 樂, 행복과 불행, 즉 인간의 운명은 인간의 행위(karma)에 의해 규정된다는 것을 선언한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운명은, 신(절대자)의 뜻에 의해 결정되는 것도 아니고, 숙명에 의해 좌우되는 것도 아니고, 단순한 우연의 산물도 아니라고 가르친다. 그것은 오직 인간 스스로의 행위에 의해 규정된다는 것이다. 불교 업설은 한 마디로 인과응보의 교설로서 ‘善因善果 惡因惡果’ 또는 ‘善因樂果 惡因苦果’의 인과법칙을 주장한다. 그것은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우리 속담의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초기 경전은 인과응보의 진리를 다음과 같이 설한다.
(무릇 사람은) 씨앗을 뿌리는 대로 그 열매를 거둔다. 善한 행위에는 선의 열매가, 惡한 행위에는 악의 열매가 맺는다. (그 사람이) 씨앗을 심어 그 사람이 (자신의) 과보를 받는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도 위와 같은 평범하고도 상식적인 진리를 외면한 채, 잘못된 세계관과 인생관에 빠져 어리석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우리 주변에는 인간의 역사나 개인의 운명이 어떤 절대자의 뜻이나 각본에 따라 결정된다고 믿고, 스스로 바르게 행동하고 열심히 함께 노력하기보다는 기도나 종교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휴거 등을 믿는 종말론자가 되어 건강한 삶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전생에 스스로가 지은 숙명의 힘에 의존하는 사람들도 많다.

걸핏하면 철학관을 찾고 점을 치며, 사주나 점괘가 좋지 않을 때에 자꾸 굿에 의지하다가 패가망신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우연에 의지하는 사람들은 정직하고 성실하게 사는 것을 탐탁스럽게 여기지 않고 도박의 노예가 되거나 일확천금을 노리는 한탕주의에 빠지며 향락주의자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잘못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고타마 붓다가 살았던 당시의 인도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지구촌에서도 적잖이 발견된다.

인과응보를 믿는 사람들은(3면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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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탈과 성불
/ 종범스님(해설;법문)

해탈이라는 것은 구하지 않는 것이지 따로이 다른 것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것이 따로 있다면 이것 역시 묶이는 것이다. 일체의 구함이 없는 무구(無垢)의 세계가 바로 해탈이다. 또 구함이 없는 것이라 해서 구함이 없는 것을 구한다면 이것 또한 속박이다.

그런데 이것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이 있다. 해탈 다음엔 무엇이 오는가?

부처님께서 해탈하신 이후 설법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다니시기도 하고 머무르시기도 하시면서, 엄청난 힘이 나왔는데 그 힘이 도대체 무엇이냐 하는 문제로 출발한 것이 바로 대승불교이다. 그러므로 대승불교는 부처님께서 해탈하신 이후의 불교이다. 해탈 후에는 반야(般若)이다.그래서 반야는 무아에서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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