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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6월>

불교의 무아설과 융의 자기실현 비교고찰6

자기실현은 개성화이며 자아의 성숙을 의미한다. "자아성숙의 궁극적 목표가 페르조나가 아니라는 자각으로 나의 사명과 집단 정신을 구별하되 사회적 의무와 규범의 필요성을 자기의 전개성(全個性)에 합치되는 범위에서 인정하며, 때로는 능동적으로 사회에 참여하며, 때로는 여기서 물러나 안의 세계에 자신을 맞추는 것이다" 고 이부영은 기술한 바 있다. 17)
자아의식이 페르조나에 집착하여 사회적 역할에만 고착되고 무의식의 세계와의 단절이 일어나면 정신적 불균형에서 위기가 도래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개인이 무의식 세계와의 통합을 추구하고 균형있는 정신의 성숙을 위해서는 무의식을 의식화함으로써 가능하다. 그런데 무의식의 내용을 알아 가는 과정에서 능동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자아이다. 자기실현의 성패와 수준은 개체의 자아의 태도에 달려있다. 자아가 무의식에 관심을 두고, 무의식이 꿈 등 상징을 통해서 제시하는 의미를 이해하여 전일성을 회복하도록 하여야 한다.
그러나 자아가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일은 유한한 작업이 아니다. 무의식은 무한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기실현은 무의식을 전부 의식화하여 완전해지는 것이(Vollkommenheit) 아니라 비교적 온전해지는 것이(Vollstandigkeit)라 한다. 18)

Ⅵ. 불교의 무아설과 융의 자기실현
불교의 무아설을 종교적 측면, 역사적 측면, 문화적 측면 등 다양한 방법으로 고찰할 수 있는데 본 논문에서는 무아설을 논리적 측면, 존재론적 측면, 인식론적 측면에서 종합 검토하였다. 이 장에서는 아트만의 실체론적 존재론이 갖는 논리적 모순점을 초월적으로 해결을 시도하는 우파니샤드의 관점을 간략히 살펴봄으로써 다음에 이어지는 불교적 관점들과 대비하였다.
아트만설은 윤회사상의 가장 단순한 해결책이지만 불변적 존재의 논리적 난제를 낳는데 우파니샤드는 이러한 철학적 문제를 종교적 초월로 회피하였다. 반면에 불교는 무아설을 주장함으로써 윤회사상과의 정합적 이론체계 구성이라는 과제를 앉게 된다.
이의 해결을 위한 존재론적, 인식론적 추구가 불교철학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초기불교와 부파불교에서는 아트만 사상에 영향을 받아 인무아(人舞我)사상의 존재론적 논의가 주류를 이루었다. 존재론적 실체의 부정은 연기(緣起) 사상으로 해명하였으며, 존재론적 범주인 오온(五蘊)을 도입하고 각각에 존재론적 실체가 없음을 제시함으로써 무아설을 입증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존재론적 실체의 부정에도 불구하고 경험적 주체의 존재와 윤회는 무아설과 논리적으로 대립이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업(業)에 의한 윤회인 업감연기(業感緣起)설을 발달시켰다. 존재론적 무아설이 윤회문제 해결을 위하여 업감연기설을 제안하였으나 윤회주체가 사멸 재생할 때 업의 연속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관한 문제가 다시 제기되었으며 이에 인식론적 과제로 되었다. 이에 부파불교의 6식에 제7식과 제8식이 추가되어 심층심리의 연구가 유식불교의 주요 업적이 되었다. 제8식인 아라야식은 인식주체뿐만 아니라 일체의 기세간이 마음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임을 주장하였고, 이에 윤회는 아라야식의 깊은 바다에 파도가 생겨났다 다시 사라짐을 반복하는 것으로 비유되었다.
무아설과 윤회의 정합적 이해를 위한 철학적 노력이 결과적으로 심리학적 측면이 강조되는 인식론적 논의로 이어졌다. 이에 유식 불교의 무아설은 현대심리학중 심층심리를 다루는 정신분석학 및 분석심리학과 상호 비교가 요청된다.
유식불교와 분석치료의 심리학적 비교 시론은 최동훈과 이부영이 일찍이 시도한 바 있으며, 이죽내 교수는 불교유식학과 정신 개념의 대비 등 일련의 연구를 했다. 필자는 융의 원형과 아라야식의 종자설을 비교하여 유사점과 상이점을 논한 바 있으며, 본고에서는 불교의 무아설과 융의 자기 실현을 비교 고찰 하고자 한다.
유식불교의 무아설은 5위 100법으로 분류되는 일체의 현상에 영속적이고 불변부동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존재가 없다는 형이상학적 실재의 부정이다. 이 주장은 정신(心法)뿐만 아니라 물질까지(色法) 포함하는 광범위한 점이 분석심리학의 정신세계에 국한된 점과 차이가 있다.
이제 무아설을 정신에 국한하기로 하고 심식(心識)에 한정하면 감각의 5식과 제6의식, 제7말나식, 제8아라야식에 관한 무아설로서, 영원한 불생불멸의 개체인 아트만의 존재를 부정하며, 인식주체로서의 절대적 개체가 없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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