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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12월>

       

      무엇이 업(Karma)을 운반하는가?

      붓다고사(Buddhaghosa,佛音)는 이렇게 말한다.

      한 연속체 안에서 결과가 일어날 때, 그 결과는 타인의 것도 아니고 다른()에서 온 것도 아니다. 절대적인 동일성과 절대적인 타자성(他者性)은 배제되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동일성'은 업을 만든 때부터 그 결과를 경험할 때까지 지속되는, 변하지 않는 사람을 의미한다. '절대적인 타자성'은 한 사람이 행동을 하고, 그 삶과 전혀 다르고 관련이 없는 사람이 그 결과를 경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보다는 경험의 연속성, 즉 무상(無常)한 사람의 연속성이 있어서, 계속해서 변하고 있고, 업이 결과를 가져올 수 있게 하면서, 한 생에서 다음 생으로 걸쳐 있다. 이 설명은, 행동을 만드는 사람과 그 결과를 경험하는 사람이 내재적으로 하나인 것도 아니고, 전혀 관련이 없는 것도 아니라는 중관학파의 설명과 일치한다. 사람이라는 것은 온들에 의존해서 명칭이 붙어진 것이고, 따라서 ''라는 것은 단지 이름에 의해서 존재한다.

      <삼매왕경>은 이렇게 말한다.

      윤회의 상태는 꿈과 같다... 이 세상에서 죽어서 다른 세상으로 가거나 이주하는 사람은 없다. 여전히 행해진 행동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도덕적이고 비도덕적인 결과들이 세상에서 무르익는다. 행동들은 영속적이지도 않고 허무로 떨어지지도 않고, 쌓이지도 않고, 지속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당신은 자신이 한 행동들의 결과를 만나지 않을 수가 없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한 행동들의 결과를 당신이 경험할 수도 없다.

      중관학파들은 업의 종자의 저장소를 두 가지로 기술하는데, 하나는 임시적인 것이고, 다른 것은 지속적인 것이다. 우리의 생애 동안에 적용하는 심식(心識)의 연속성은 업의 종자들의 임시적 기반이다. '단지 나', 즉 온들에 의존해서 명칭이 붙은 ''는 지속적인 기반이다. 성자들의 공성삼매, 기은 잠, 죽음 과정 동안에도 존재하고 있는 '단지 나'는 업의 종자들을 운반한다. 그렇더라도 '단지 나'는 명칭에 의해서만 존재한다. 분석을 해봐도 그것을 발견할 수가 없다.

      빠알리 전승과 산스끄리뜨 전승에 따른, 무아(無我)에 대한 이 간단한 논의는 두 전승 사이에 많은 유사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실이 놀랍지 않은 것은 두 전승이 모두 같은 스승인 부처님에게서 유래되었기 때문이다.

      ~달라이 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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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12월>

      (성철스님 백일법문-제2장 원시불교사상)

      십이연기의 재해석

      여래가 세상에 나오거나 세상에 나오지 않거나 법성은 항상 머무르니, 여래는 그것을 스스로 알아 바른 깨달음[等正覺]을 이루어서 나타내 연설하고 분별하여 열어 보이느니라. 이른바 이 일이 있으므로 저 일이 있고, 이 일이 일어나므로 저 일이 일어나느니라. 무명을 연하여 행이 있고 내지 생을 연하여 노 ° 병 ° 사 ° 우 ° 비 ° 뇌 ° 고가 있으니 이것이 괴로움의 쌓임[苦陰]의 모임이니라. 무명이 멸한즉 행이 멸하고 내지 생이 멸한즉 노․병․사․우․비․뇌․고가 멸하니 이것이 괴로움의 쌓임의 멸함이니라.

      如來出世커나 及不出世커나 法性은 常住하니 彼如來自知하여 成等正覺하고 顯現演說하여 分別開示하느니라 所謂是事有故로 是事有하며 是事起故로 是事起하니 緣無明有行하고 乃至緣生有老病死憂悲惱苦하니 如是苦陰集하느니라 無明滅則行滅하고 乃至生滅則老病死憂悲惱苦滅하니 如是苦陰滅하느니라. [那梨迦經, 相應部經典 2권]

      이 경전에서는 연기의 성품을 법성(法性)이라고 하였는데, 법성은 만법의 자성(自性)이라는 말입니다. 이 법성은 항상 법계에 존재하므로 연기, 곧 십이연기는 항상 법계에 존재하는 법성을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이른바 연기법은 세존께서 만든 것입니까, 다른 사람이 만든 것입니까.”

      부처님께서는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연기법이란 내가 만든 것이 아니요, 또한 다른 사람이 만든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여래가 세상에 나오거나 나오지 않거나 법계에 항상 머물러 있느니라. 여래는 이 법을 스스로 깨치고 바른 깨달음을 이루어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분별하여 연설하고 개발하여 나타내 보이느니라. 이른바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므로 저것이 일어나느니라.”

      世尊이시여 謂緣起法은 爲世尊作가 爲餘人作耶오 佛告比丘하사대 緣起法者는 非我所作이며 亦非餘人作이니라 然이니 彼如來出世거나 及未出世거나 法界常住하느니라 彼如來自覺此法하여 成等正覺하고 爲諸衆生하여 分別演說하고 開發顯示하느니라 所謂此有故彼有하며 此起故彼起하느니라. [雜阿含經 第十二卷;大正藏 第二卷 p. 85中]

      이 연기법경(緣起法經)은 앞의 내용과 더불어 연기법의 성품을 뚜렷이 규정짓고 있습니다. 앞의 경전에서는 연기법의 성품은 곧 법성이라고 하였으며, 이 경전에서는 그 연기법은 항상 법계에 머무른다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연기법의 법성, 법계로의 해석은, 연기법이 생멸적이고 시간적인 인과관계를 내포하든 아니든 그 근본은 진실한 법성의 연기, 법계의 연기로 보아야 한다는 뜻을 암시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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