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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6월>

 

한국 화엄과 조사선 교섭은 의상 스님 법성성기 사상에 근거

둘째, 발보리심을 통한 보살행으로 법성가에 들어갑니다. 법성가인 법계안에서 법계를 장엄하는 것입니다. 나를 발심 수행케 하는 부처님은 나의 당래불로서 자체불이며, 발심한 보리심은 오오척신에 본래 구족되어 있는 여래심입니다.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의 보리심으로, 연을 따르는 보살도는 곧 무연의 선교방편으로서 그대로 불장엄행이며 해인삼매의 여의자재한 이타행입니다. ‘이는 성기가 연기를 포섭함이니 연기의 구극이 성기인 수연행이며, 수연하는 진성이 성기법성과 다르지 아니하니 연기가 곧 성기인 중도행이다.’

의상에게는 한 번 강의에 3000명이나 모여들만큼 제자들이 많았습니다. 뛰어난 제자로서 10대제자·4대의영·등당도오자(登堂覩奧者) 등이 회자되었습니다. 특히 표훈과 진정은 의상의 4구게에 대해 오관석과 삼문석 등을 지어 의상에게서 인가를 받았습니다. 4구게를 관법으로 발달시켜 자기의 몸이 곧 법성임을 알게 하고, 오척법성의 중도자리에서 일승법계인 불국토를 장엄하는 자량의 방편문을 펼쳐갑니다. 범부오척신의 세계를 바로보고 마음 쓰는 도리를 관법으로 접근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표훈·진정·지통·도신·상원 등의 직제자를 거쳐, 상원의 제자인 신림, 그리고 신림의 제자인 법융 등 신라 하대에 이르기까지 의상의 법성성기 사상과 이에 입각한 성기관법이 이어지고 발전되어 갑니다. 의상의 4세법손이 활동한 시기인 9세기 신라말에 이르기까지 전승되어간 의상의 법성성기 사상은, ‘총수록’에 수록된 삼대기와 ‘고기’ 등에 담겨 널리 전해집니다. ‘법융기’ ‘대기’ ‘진수기’ 등의 삼대기는 ‘일승법계도’를 수문석한 것입니다.

삼대기에서는 오척법성의 성기심에 의해 나타난 해인삼매 경계가 망상해인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승법계도’ 제목을 3중의 오중해인으로 거듭 해석하고, 일체법계를 망상해인, 즉 깨달음의 증분세계로 포섭시켜서 ‘일승법계도’ 전체를 상을 여읜 망상해인으로 거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증분법성의 법은 내 몸과 마음이고, 성은 법이 원융한 것입니다. 원융법성이란 미진법성이고 수미산법성이고 일척법성이며 오척법성입니다. 금일 오척법성에 근거하면, 미진법성과 수미산 법성 등이 자신의 지위를 움직이지 않고 오척에 알맞게 이루어집니다. 오직 오척인 까닭입니다. 또 제법부동이란 무주법성이며, 다만 오척법성일 뿐 곁에 다른 물건이 없는 까닭에 본래적입니다. 이러한 법성원융은 언어도단(言語道斷) 심행처멸(心行處滅)이니, 일체가 끊어진 이 일승 경계는 망정을 돌이켜 보는 자리라고 합니다.

이상과 같은 의상의 화엄사상과 수행전통은 부석사를 본찰로 한 화엄십찰을 중심으로 전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그런데 신라말·고려초에 이르면 화엄이 남악과 북악 양파로 갈라지고, 중국에서 조사선을 배워온 선사들에 의해 구산선문이 개산되어 선과 교가 갈등 양상을 보이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균여가 북악의 입장에서 화엄교단을 통합시켰습니다. 균여는 의상의 법계관을 근간으로 주측법계관을 세웠습니다. 균여가 도문(圖文)을 연설한(958년) 것이, 후에 ‘일승법계도원통기’로 유통되었습니다. 균여는 ‘일승법계도’의 중도설에 주목하였습니다. 균여는 의상의 중도설을 법성중도의 7중으로 파악하고, 이를 잘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균여의 ‘일승법계도원통기’와 집자 미상의 ‘총수록’을 통해 의상화엄은 다시 고려시대에 퍼져나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 중기 이후로는 의상의 ‘일승법계도’가 선사들에 의해 선적으로도 이해되고 주석되어 갔습니다. 먼저 구산선문이 개산될 때부터 당시까지 갈등관계였던 선과 교가 서로 다르지 아니함을 확인한 보조지눌이 선교겸수·정혜쌍수·돈오점수의 선풍을 선양함에 ‘일승법계도’의 의상사상을 수용한 것입니다.
지눌의 돈오후 점수인 오후목우행(悟後牧牛行)은 단이무단(斷而無斷) 수이무수(修而無修)의 진수진단(眞修眞斷)이며, 이를 화엄교의 측면에서 돈오후의 원수(圓修)라 합니다.<7면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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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6월>

    불교의 무아설과 융의 자기실현 비교고찰2

궁극적 실재로서의 아트만은 개인의 영속성과 불변성 및 정체성(identity)을 보장해준다. 「카타우파니샤드」의 다음 인용문은 대표적 진술이다. "사물을 인식하는 자아는 결코 태어난 것이 아니며 결코 죽지 않는다. 그는 어떤 것으로부터 생겨난 것이 아니며 어떤 것도 그로부터 생겨나지 않는다. 그는 태어나지 않으며, 영원하며, 변치 않으며, 최초의 것이다 그는 육신이 죽을 때에도 죽지 않는다." 2)
이 진술은 개체로서의 자아에 관한 유아설(有我說) 또는 영혼의 실재성에 관한 주장으로만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우파니샤드의 다음 인용문에서 보듯이 이 자아는 결코 개체에 한정되고 고립된 모나드(monad)가 아니다.
"이 위험하고, 접근하기 어려운 곳(육신)으로 들어간 그 자아를 발견하고 깨달은 모든 사람, 그는 이 우주를 만든 자이다. 왜냐하면 그는 모든 것을 만든 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세계이다. 실로 그는 세계 그 자체이다." 3)
"실로 이 자아는 모든 사물들의 주인이며 모든 존재들의 왕이다. 모든 바퀴 살이 바퀴통과 바퀴 테에 묶여 있는 것처럼, 실로 이 자아에 모여든 존재들, 모든 신들, 모든 세계들, 모든 숨쉬는 생명들, 이 모든 자아들이 묶여있다." 4)
우파니샤드로 대표되는 바라문교적 전통에서는 아트만의 실재는 보편적인 실존으로 불변부동, 불생불멸이며 영속적이라고 보았다. 무상하게 계속 변해가는 현상세계의 속에 아트만이라는 불변부동의 아트만이라는 실체가 있다는 실재(Reality)에 대한 실체론적 관점(Substance view)을 갖고 있다. 계속 변화하며 다양한 피상적 현상의 실재성을 부인하였으며, 아트만을 중심으로 형이상학과 인식론, 윤리학을 실체론적 틀에 맞추었다. 우파니샤드의 사상과 석가모니의 사상의 차이를 라다크리슈난 교수는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지적하고 있다. "만일 우파니샤드와 붓다의 가르침에 차이가 있다면 경험세계(samsara 윤회의 세계)에 대한 그들의 관점에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 실재(nirvana 열반)에 대한 양자의 개념에 차이가 있는 것이다."
"불교와 우파니샤드 간의 근본적 차이점은 불변의 실체가 형이상학적으로 실재하는지 여부에 대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그 불변의 실체란 인간의 진정한 자아인데 .....

 

부단히 흘러가는 삶 속에서 또 세계의 소용돌이 속에서 붓다가 그 중심이 되는 실재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세상에는 그러한 힘의 요동 이외에 그 어떤 것도 실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5) 바라문교의 전통에서 석가모니가 불러일으킨 개혁의 촛점은 궁극적 실재에 대한 관점으로 영원한 실체로서의 아트만의 부정이다. 자기의 실체가 있다는 생각은 오히려 모든 번뇌의 근본인 무명(無明)이라고 보았으며, 아트만을 부정하는 무아 사상이 불교적 형이상학의 중심이다.

Ⅲ. 초기불교 및 부파불교의 존재론적 무아 사상
석가모니 재세 시부터 무아 사상은 3법인(三法印)의 하나로 핵심적 교설이었다. 즉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열반적정(涅槃寂靜)은 부처님 법의 인증과 같다고 본 것이다. 빠알리(Pali) 경전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시구(詩句)는 이를 잘 보여준다. "모든 존재는 어찌나 순간적인지; 성장하고 쇠락함이 그 성품이도다. 생성되고 다시 소멸하니;그것들을 지복(至福)의 경지로 이끌지어다." 6) 아트만 사상에서 실재를 불변부동의 정적이고 공간적인 존재(being)로 파악한데 반하여 불교에서는 역동적이고 시간성에 바탕한 생성되는(becoming) 그리고 사멸하는 과정에서 실재를 파악했다. 부처는 아트만 사상을 부정하는 일에 강한 노력을 기울였다. 밧타차리야(V.Battacharya)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다른 교파들은 영원한 자아, 즉 아트만의 존재를 인정했지만 붓다는 다양한 방법으로 그 존재를 완전히 부정하였는데 그 방법은 일일이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수가 많다. 그래서 모든 욕망의 근원인 바로 그것(아트만)을 끌어 내렸던 것이다."7) 불교 교리의 조직화와 철학 이론화 과정을 이룬 부파불교 시대에 무아론은 불교의 존재(法)에 관한 이론, 윤회와 업에 관한 이론과 결합되어 더욱 심화 발전하였다. 부파불교의 철학의 대표저작인 세친(世親 : Vasubandhu)의 「구사론(俱舍論: Abbidharma-Kosa)」은 아트만론을 철저히 논의 반박하였으며, 불교적 존재론을 제시하였다. 부파불교에서 존재(法)의 분류에 관한 이론이 발전하였는데, 세친의 ‘구사론’에서 5위 75법(五位 七十五法)이론을 제시하기 이전에 5온 12처 18계(五蘊 十二處 十八界)의 3과설(三科說)에 의한 제법의 분류가 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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