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는 제자들 가운데 상수제자인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만을 대동하고, 아버지 숫도다나와 양모 고따미, 아들 라훌라와 함께 야소다라가 기거하고 있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방문 앞에 이르러 숫도다나 왕이 문을 두드렸다. 방문이 열리자, 붓다의 눈에 야소다라의 마음속에서 일어났던 것들이 그대로 드러났다. 방 한구석에서 울음을 삼키는 어두운 그림자가 보였다. 야소다라였다. 붓다가 들어서자
야소다라가 열린 문 한쪽으로 비켜섰다.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를 문밖에 기다리도록 하고 방안으로 들어선 붓다가 자리에 앉자 야소다라는 여러 해 동안 우울함과 어둠만이 드리웠던 자기 방이 마침내 눈부신 빛으로 가득 차고 있는 것을 느꼈다. 방 구석구석은 물론 모든 가구들과 옛 추억이 담긴 집기들이 활기가 넘쳐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야소다라는 더 이상 자신의 감정을 감출 수 없는 상태로 다가가고 있었다. 싯다르타와 함께 지냈던 몇 년 동안의 추억들이 파노라마처럼 마음속에 펼쳐졌다.
싯다르타와 처음 만났던 음악제, 결혼 허락을 받기 위해 자기의 집에 찾아왔던 싯다르타의 모습, 우여곡절 끝에 성사된 결혼식, 그리고 아기를 가졌을 때 싯다르타가 보여준 자상함과 사랑…. 재회의 감동과 함께 일어나는 갖가지 추억들이 쏟아지는 눈물을 더욱 부추겼다. 그녀는 엎드린 채 두 손으로 붓다의 발을 붙잡고 흐느꼈다. 보고 싶었다는, 왜 이리 늦게 왔느냐는 말은 한 마디도 꺼내지 못한 채 목에 걸린 울음만 신음처럼 토해냈다. 슬픔이 잦아들기를 기다릴 뿐 누구도 이런 야소다라를 말리지 못했다. 그 슬픔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침내 눈물을 멈춘 야소다라가 고개를 들어 붓다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바라보는 옛 남편의 얼굴에 자비와 연민의 정이 넘쳐나고 있었다. 그녀는 문득 감정을 자제하지 못한 자신이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등줄기로 서늘한 땀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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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도다나가 맨 먼저 침묵을 깨뜨렸다.
“스승이시여, 당신이 떠나고 난 다음 몇 년 동안 야소다라는 고행자와 같은 생활을 해왔습니다. 당신이 삭발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며늘아기도 함께 삭발을 했고, 향수와 장신구의 사용을 중단했습니다. 당신이 맨땅에서 잔다는 소식을 듣고는 이불을 모두 치워버렸습니다. 남편이 출가한 후 다른 왕실에서 위로의 뜻으로 패물을 보내왔지만 모두 거절했습니다. 또한 바루에 음식을 얻어 공양을 받는
남편을 따라서 정해진시간에 질그릇에
담긴 음식만 먹었습니다. 모든 감각적인 즐거움을 버리고 궁중에 들어앉아 외출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나의 며느리 야소다라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즐거움은 라훌라를 키우는 일이었습니다. 야소다라의 이런 행동은 일시적인 감정에 따른 것도 아니며 용기가 없어서도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의 말을 들으며 야소다라의 눈물을 말없이 바라보던 붓다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야소다라가 저를 보살피고 변함없는 사랑을 보여주었던 것은 금생만이 아닙니다.” 그리고는 숫도다나 왕을 향해 말을 이었다. “왕이시여, 감각적 즐거움이 주는 만족은 지극히 일시적인 것입니다. 거기에 집착함으로써 불만이 생기게 됩니다. 가정생활을 하면서도
세속적인 것들에 대한 집착을 줄임으로써 만족을 느끼고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이어 붓다가 옛 아내 야소다라에게 연민어린 차분한 목청으로 말했다.
“야소다라, 당신은 내가 출가할 수 있도록 배려했던 큰 용기와 위대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출가하여 수행할 때에 당신의 순수한 마음, 우아한 몸가짐, 헌신적인 자세에 대한 기억은 커다란 격려와 힘이 되었습니다. 야소다라, 그런 용기와 정신력으로 이제 당신은 과거에 마음 아파하거나 오지 않은 미래의 환상에서 벗어나, 당신의 새로운 삶을 만들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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