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파합승가와 불신
과거 비구와 대처가 서로 대립하고 투쟁하였듯이 오늘날 우리 주위에도 승가공동체로서의 화합과 단결보다는 두터운 불신과 파합(破合)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져 있다. 스승과 제자, 선학과 후학, 이판과 사판, 출가와 재가 등이 상호 불신의 골이 깊어져 가고 있다.
총림 본사에는 장로가 주석하지 않고 청안납자 역시 도량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너도 나도, 어른도 아이도 사설사암이요, 토굴이요, 아파트다. 개인주의가 팽배하여 대중생활은 이루어지지 않고 승가공동체의식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큰방생활로 인내하고 화합하며, 산중공의제에 의해 원융살림하던 가풍은 실종되어 버렸다.
종단의 백년대계가 수행과 교화의 연장선상에서 수립되고 실행되어야함에도 불구하고, 문중, 계파, 이권적 정치논리로 실행되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종단의 주요 소임자를 선출함에 금전이 거래되고 계파가 개입되어 있다. 하루살이가 불빛에 모여들어 제 몸을 태우듯 명리에 눈이 어두워 세간에서도 형사범으로 다스리는 범법행위를 출가사문의 이름으로 자행하고 있다.
이러한 비종교적 행위는 대중공의제도가 무너지고 수행자의 양심이 실종된 자리에 명예와 이양에 눈이 먼 일부 명리승(권승)들에 의해 자행되고 있지만,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사실에 침묵하거나 편승하고 있는 승가 전체의 도덕적 해이에 있다. 윤리적 긴장이 해제된 원인은 청정과 화합의 승가적 기반이 무너진 자리에 오직 피해의식과 상호불신 및 도피주의만이 만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종단 구성원들의 현실에 입각하여 종단의 리더는 끼리끼리의 자기들만의 리그가 아닌 전종도들의 대화합의 틀을 시급하게 마련해야 한다.
2) 물신풍조(物神風潮)
소금은 언제나 짜야하고 목탁은 항상 맑은 소리를 내야 한다. 세상이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 현상으로 몸살을 앓는다고 하여 수행자들마저도 빈부의 격차가 심화되어서야 말이 되겠는가. 요람에서 무덤이란 말과 같이 원칙적으로 종단이 책임을 져주어야 하며 종도 개인은 수행과 전법으로 보답하여야 한다.
수행과 깨달음, 자비와 이타가 자리해야 할 곳에 명리에 오염된 물신주의가 만연하고 있다. 출가란 명리를 떠나 일대사에 충실하며 보현행원으로 살기를 맹서함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삶은 가치관의 혼돈으로 몽상전도하여 본분사를 망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의 풍조는 절약이 미덕이 아니고, 부의 축적이 오히려 우월이 되어버렸다. 부승과 빈승이라는 말이 승가에 회자되고 있다. 가진 것이 부끄러움이 아니라 자랑이 되고 숭경의 대상이 되어 버린지 오래다.
밖으로 만연하는 물신의 그림자를 쫒지 말고, 도심에 충만하여 작은 것에 만족하는(小欲之足) 청빈의 가풍으로 돌아가야 한다. 수행자로서 윤리적 긴장이 해이해진 집단이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가.
이와 같은 현실 속에서 종단은 재정을 투명하게 운용하여 전 종도들에게 수계에서 다비까지를 책임져 주는 행정을 시급하게 실행하여야 한다. 아울러 종도들은 돈을 쫒지 말고 도를 위해 향상일로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3) 현실안주(現實安住)
지금 인류문화는 급속도로 발전되어 나가고 있다. 그것이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발전의 속도를 더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이러한 역사진행의 와중에서 우리 조계종의 좌표를 설정하고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이 우리 종도들이 해야 할 역사의식이다.
급변하는 문화사의 격랑속에 좌초되지 않고 능동적으로 대처하여 시대를 계도하고 대중을 정법으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눈 푸른 안목으로 역사와 현실을 직시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 개인의식은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공동좌표는 미망속에 표류하고 있다.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종단의 한 가운데에서 요직에 소임하는 자들에 무종지(無宗旨), 무계율(無戒律), 무원력(無願力)의 직업승들이 있어 오늘 우리의 종(宗)을 오염시키고 있다.
다국적 다종교 시대(글로벌)에 세계는 발전하고 다른 종교 역시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 미몽에서 해매이며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면 미래의 한국불교는 기대할 수 없다. 더군다나 지금은 탈종교화시대를 맞이하고 있지 않는가. 탈종교화시대에 대처하는 비전이 제시되어야 한다.
승려들의 도성출입이 해제된지 겨우 한 세기를 지났다. 그런데도 그 고난과 압박의 오백년 역사를 망각하고 오늘날 출가자들이 오직 대접받고 섬김 받으려는 자세로만 일관 한다면 언제 다시 탄압의 법난이 도래할지 아무도 모른다.
지금 우리 조계종은 먹고 마시고 놀고 여행하고 즐길 때가 아니다. 우리 선조들은 고난속에서 정법안장의 당간을 이어왔는데, 우리 시대에 불법이 훼멸된다면 그 업보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옛조사는 유위를 다함도 없고(不盡有爲) 무위에 머물지도 않는 것(不住無爲)이 보살행이라고 하였다. 지금 우리는 희생과 봉사로 유위의 법을 다하고 있는지, 아울러 무위의 본지풍광을 밝혀 거기에 안주함도 없이 중생회향하고 있는지 깊이 반성해 볼 때이다.
(2) 종단운영의 문제점과 대안
오늘 조계종도들은 먼저 의식전환을 단행해야 한다. 수행과 교화에 목숨 바쳐야 한다. 세상에게 공양 받으려는 고자세에서 세상을 섬기는 저자세로 나아가 중생회향해야 한다. 범종단적 차원에서 각 분야별로 결사를 도모해야 한다.
현재 한국불교의 여러 문제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수행과 교화가 일치되지 못하는 것이다. 소위 이판(理判)은 교화행이 결여된 수행제일주의에 매몰되어 있고, 사판(事判)은 수행이 전제되지 못한 교화편의주의에 경도되어 있다.
출가의 정신과 부처님의 유교(遺敎)는 일치한다. 출가 정신을 회복하고 부처님의 최후 부촉의 가르침을 실천하고자 다짐하는 것이 일대사인연으로서의 의식전환이다. “생사를 해탈하여 불조의 혜명을 이어 중생을 제도”하고자 발심하고 원력을 세움이 의식전환이다. 서산선사는 일찍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팔도도총섭이 되어 전조선의 승려들을 향해 이른바 “이판사판(理判事判)”의 격문을 내렸다. 즉 이판은 가부좌를 풀고 붓을 던지고, 사판은 목탁과 호미를 놓고 국가와 민족과 백성의 고통을 위해 분연히 일어나 요익중생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수행과 교화가 조계종의 지상명제임을 통감하여 이판은 수행과 함께 적극적으로 교화에 동참할 것이며, 교화 소임자들은 철저한 수행에 입각하여 교화 행정에 임해야 할 것이다. 종단 역시 무엇보다도 전 종도들이 수행하고 교화하는데 진력을 다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철저한 교육을 통해 문중과 파벌, 인맥을 타파하고 인재를 균등히 배치하여 수행과 교화에 대한 중장기적 백년대계를 세워 조직과 운용의 묘를 살려 여법하게 실행해야 한다.
안주와 정체는 퇴보의 길이다. 사회의 발전과 타종교의 노력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서 이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 여실한 진리(불법), 오랜 문화 전통, 유리한 환경 조건 등 많은 장점을 적극 활용하여 한국불교, 조계종지를 대중 속에 세계 속에 거듭 꽃피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재정이 투명하고 일원화(一元化)되어야 할 것이다. 재가자는 외호와 전법의 의무를 다하고, 출가자는 무소유 원칙에 입각하여 청빈의 가풍으로 돌아가야 하며, 조계종 전체 재정이 총무원이나 본사 단위로 재편성되어 목적사업으로 재분배되어야 한다. 물론 전 출가자에게는 종단이나 본사에서 수행과 생활 여건을 책임져 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종단과 종도, 승가 개인 간에 신뢰가 구축되고 애교(愛敎), 애종(愛宗), 애사(愛寺)하는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출가자와 재가자가 하나 되어 수행과 교화에 매진함에 먼저 사상과 실천의 측면에서 종단 운영에 대한 아래의 몇 가지를 제언하고자 한다.
첫째, 청정성의 훼손
오늘날 조계종의 일부 권승들이 파당을 만들어 종권을 장악하고, 유력한 사찰의 주지를 차지하는 비승가적 양태를 보이며, 본사와 말사의 주지까지도 자파의 세력으로 채워 승가의 자율성과 역동성을 말살하고 있다. 종단의 요직에 속한 자에 이르기까지 청정비구를 가장한 은처승이라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승가의 타락은 너무나 잘 알고 있듯이 일부 범계승들의 도박, 절도, 간통, 은처, 파계, 파당 등 말폐적 행태가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청정상실의 적폐가 만연하여 한국불교가 총체적 쇠망의 길로 치닫고 있음에도 종단의 수뇌부 그 누구도 책임과 위기를 통감하는 자가 없다. 조계종의 신임도는 최하위로 전락하고 있다.
지금까지 종단에서는 자성과 쇄신결사, 100인 대중공사, 화쟁위원회, 백년대계 결사 등의 미명 아래 청정과 화합의 종단을 구현하려 노력한다지만 실제로는 물밑에서 종권과 이권으로 권력을 강화하고 있을 뿐이다. 또한 종권연장을 위한 담합과 매수에 골몰하며 종단과 불교의 발전은 남의 일 인양 치부하고 있다.
청정승가의 구현은 출가 수행자들의 절체절명의 과제이기 때문에 종단의 구도를 바꾸지 않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종단의 구조를 바꾸는 대작불사의 한 방편이 바로 직선으로 존경받는 지도자를 선출하여 종도들의 화합으로 다시 한 번 도약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둘째, 소임자 선출의 비승가적 행태
지금 우리 종단은 선거문화의 폐해로 몸살을 앓고 있다. 선거폐해는 법과 제도를 제대로 실현하지 않는 부도덕한 집단이 종권을 사유화하고 비법화하는 데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총무원장의 부역자로서의 호계원, 호법부, 선거관리위원회가 아니라, 종헌·종법·선거법 그리고 율장에 의거해 철저히 법을 집행하는 감시자가 되어 공정한 선거가 이루어 졌다면 지금과 같은 난장판은 일어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승가는 대중공의로 운영하는 것을 기본과 원칙으로 한다. 율장에 의거하면, 현전승가에서 백이갈마를 통해 소임자를 선출하고 있음에 비추어 볼 때, 종단 최고의 소임자인 총무원장을 선출함에 있어서 전체 종도의 갈마를 통한 직선선출이 가장 율장정신에 부합할 것이다.
기본과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총무원장, 율·교·선에 여법한 수행자가 종단의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청정승가와 종도화합의 역량을 결집하고자 철저한 검증과 공개토론을 통해 인격과 수행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종사가 후보가 되어야 하며, 공영제에 의한 직선제를 시행하여 종단의 수장이 선출되어야 한다. 종도들의 전폭적인 지지에 의해 선출된 지도자라야 산적한 적폐를 일소하고 청정승가를 구현할 수 있다.
셋째, 재정의 불투명화와 불평등 해소
종단의 재산은 대중의 공의에 의해 균등하게 분배되어야 한다. 지금 조계종단은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어 재정의 혜택에 심각한 불평등을 초래하여 승려복지마저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사회현상과 마찬가지로 빈부격차로 인해 승가화합이 심대하게 파기되고 있다.
종단에서는 투명한 재정의 균등시행으로 전 종도들에게 수계에서 다비까지 책임지는 전면복지가 실시되어야 한다. 종단의 무관심속에서 각자도생의 길을 택한 종도들에게 패배와 도피의 방관자적 자세를 떨치고 조계종 수행자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하여야 한다.
넷째, 미래지향적 비전 제시
한국불교는 우리 민족의 정신적 토대가 되어 민족종교로서의 위상을 견지하며 제일의 교단을 형성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한국불교는 1700년 불교사에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출가자 감소와 재가불자 300만 감소라는 미증유의 법난에 직면하고 있다.
종교에 무관심한 시류에도 영향이 있겠지만, 조계종 집행부가 지난 8년 동안 종권을 독점하며 기득권 세력이 되어 철저히 나눠 먹기식, 종권의 전횡으로 인한 억압과 감찰 등 비정상적 종단운영으로 청정성과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 결과가 주된 원인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탈종교화시대를 맞이하면서 비상한 대책으로 불교의 비전을 제시하고, 미래지향적 포교대안을 마련하고 총력을 기울여 실행하여야 한다.
현재 조계종 총무원의 행정은 수행과 교화의 연장선상에서 종무가 집행되는 것이 아니라, 행정을 위한 행정, 권력을 위한 정치적 모사가 되어버렸다. 수행자 교단의 종무기관인 총무원은 조계종 최고의 수행총림의 도량으로 자리매김 되어서 여법한 수행, 청정한 교화로 종무행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 수좌들은 권력이나 명리에 집착하여 거기에 나아가고자 종단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며, 우리 스스로 아무 책임과 과오가 없어서가 아니라 선수행과 종단사가 둘이 아니라는 절체절명의 심정에서 노파심절한 마음으로 간절한 충언을 드리는 바임을 밝혀 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