十二緣起<96-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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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二緣起<96-102>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목) 12 17, 2020 5:05 pm

(十二緣起, paṭicca-samuppāda)
마하시 사야도(Mahāsi Sayādaw) 법문
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세존, 아라한, 정등각자께 귀의하옵니다.
<96-102>

96. 아라한과 부처님의 특성

부처님의 특별한 칭호는 아라한이며, 이 아라한이란 말은 다음과 같은 부처님의 특성을 나타냅니다.

(1) 부처님께서는 번뇌에서 벗어나셨습니다. 아라한도 번뇌에서 벗어났지만 정신적인 목표를 달성한 뒤에도 계속해서 지배해온 습관에서 벗어나지는 못합니다. 이것는 「법구경」주석서(DhA.iv.181f)에 나오는 삘린다왓차(Pilindavaccha)장로의 이야기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장로는 천신들이 사랑하고 부처님께서도 칭찬하던 아라한이었습니다. 하지만 장로는 비구 도반이나 신도들을 다소 무례하게 부르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몇몇 비구들이 장로의 무례함을 부처님에게 불평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유쾌하지 못한 버릇은 장로가 바라문 가문에서 여러 전생을 살아온 데서 비롯된 것으로, 아라한으로써 장로의 속마음은 청정하고 선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은 위없는 깨달음[正等覺]을 증득한 뒤부터 전생에서부터 내려온 모든 버릇이나 번뇌의 잔영에서 자유롭게 되셨습니다. 우리가 부처님의 특성을 계속해서 생각할 때에는 부처님의 이러한 특성을 명심해야 합니다. 회전의 완전한 소멸이란 번뇌, 업, 과보의 세 가지 회전에서 자유로워짐을 뜻합니다.

(2) 부처님께서는 모든 번뇌를 정복하셨기 때문에 공양 받아 마땅한 분[應供]인 아라한(arahan)218이라고 불립니다. 사람들은 도둑, 뱀 따위의 외부의 적만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훨씬 더 무서운 내부의 적인 번뇌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사실 사람들은 자신의 정신-물질의 복합체와 번뇌 때문에 괴로움을 겪어야만 합니다.

그 근본 원인은 되풀이 되는 재생과 괴로움을 일으키는 번뇌입니다. 번뇌는 갈애, 성냄, 무명, 자만, 사견, 의심, 해태, 들뜸, 수치심 없음, 양심 없음 등의 모두 열 가지입니다.

(3) 부처님의 완벽한 도덕적 청정, 지혜, 깨달음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존경과 공양을 받을 만합니다. 부처님을 숭배하거나 공양을 올린 사람들은 자신의 소원을 다 이루었습니다.

(4) 부처님께선 번뇌를 완전히 쳐부쉈기 때문에 홀로 계시거나 대중 앞에 계시거나 속마음은 늘 청정합니다. 사람들은 대개 주위에 사람이 있을 때는 착한 척 하지만 아무도 보거나 듣는 사람이 없을 땐 악행을 하는 위선을 부립니다. 사실, 몰래 나쁜 짓을 할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설사 악행을 범한 사람이 사람이나 천신에 의해 목격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양심의 가책까지 들지 않을 순 없습니다. 양심은 자신이 저지른 악행에 대한 가장 의심할 여지없는 목격자이며 미래에 받게 될 괴로운 삶을 가리키는 임종의 표상의 토대가 됩니다.

부처님은 모든 번뇌를 완전히 쳐부쉈기 때문에 항상 마음이 깨끗하며 대중 앞에서나 홀로 계시거나 악행을 하고자 하는 욕망이나 의도가 전혀 없습니다.

(5) 부처님께서는 아라한의 칼로 수레바퀴의 살을 없애셨습니다. 수레의 차축은 근본원인인 무명을 나타냅니다. 수레바퀴의 테두리는 늙음· 죽음[老死]을 나타내며 수레바퀴의 살은 상카라[行]등의 중간 연결고리를 나타냅니다.

바퀴살을 제거하면 바퀴가 굴러 갈수 없는 것처럼, 조건 지어진 현상의 사슬에서 중간 연결고리의 파괴는 윤회의 종식을 뜻합니다.

97. 바까 대범천 이야기

윤회를 끝내기위해 맨 먼저 해야 할 것은 그 근본 원인, 즉 무명(無明)을 없애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무명에 뒤이어 반드시 상카라[行], 식(識)등이 수반되고 늙음과 죽음[名色]이 뒤따르기 때문입니다. 이는 욕계는 물론 색계범천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옛날 바까(Baka)라는 대범천(大梵天)219이 있었습니다. 바까는 수많은 겁(劫)에 걸쳐 살았습니다. 실로 너무나 오래 살아서 결국에는 자신의 전생을 잊어버리고 늙음이나 죽음이 없는 자신의 불멸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그의 전도된 인식을 없애주고자 바까 범천의 거처로 가셨습니다. 범천은 부처님의 방문을 환영하고는 자신의 영원한 삶을 자랑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범천의 무명은 무상, 늙음, 죽음을 부정하는 것이므로 끔찍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은 범천이 오래 살게 한 선업을 밝히셨고 이러한 너무나도 오랜 수명으로 자기 전생을 잊어버리고 자신이 불멸한다는 전도된 인식을 가지게 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자 바까 범천은 자신의 전능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까 범천은 여전히 교만하였고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고 부처님과 다른 범천들 눈앞에서 사라지고자 했지만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부처님의 신통력으로 범천은 여전히 모습을 나타낸 채로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다음의 게송을 읊으셨습니다.
Bhavevāham bhayam disvā bhavan ja vibhavesinam bhavam nābhivadim kiñci nandincana upādiyim
나는 존재에서 두려움을 보노라, 존재하지 않음을 구하는 자들에서 존재를 보노라.
어떤 존재도 나는 환영하지 않고, 즐김을 움켜쥐지도 않는다.(M.i.330)

바까 범천과 다른 범천들은 너무나 오래 살아 자신의 존재와 세계가 영원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건강, 부귀, 명예, 성공 따위의 축복받은 삶을 누리는 사람들은 삶의 괴로움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하지만 욕계, 색계, 무색계라는 삼계(三界)의 모든 삶은 다 괴로움입니다. 색계나 무색계에 있는 선인(仙人), 즉 범천은 여러 겁을 살겠지만 그들도 언젠가는 죽지 않으면 안 됩니다.

98. 정등각자

괴로움의 근본원인인 무명의 파괴를 인도하는 것이 바로 통찰지입니다. 부처님의 경우에 이는 정등각자(samma-sambuddha)의 특성을 뜻합니다. 정등각자는 사성제를 바르게, 철저하게, 독자적으로 아는 분입니다. 여기서 연기의 12가지 각지는 사성제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늙음과 죽음은 모두 첫 번째 괴로움의 진리[苦諦]를 뜻하고 재생은 괴로움의 일어남의 진리[集諦]를 뜻합니다. 이 원인과 결과의 소멸은 소멸의 진리[滅諦]를 뜻하며, 이 소멸을 아는 지혜는 소멸에 이르는 도의 진리[道諦]를 뜻합니다.
재생과 업의 원인, 업의 원인과 집착[取], 집착[取]과 갈애[愛], 갈애[愛]와 느낌[受], 느낌[受]과 감각접촉[觸], 감각접촉[觸]과 여섯 감각장소[六入], 여섯 감각장소[六入]와 정신-물질[名色], 정신-물질[名色]과 식(識), 식(識)과 상카라[行], 상카라[行]과 무명(無明)도 이와 같다고 할수 있을 것입니다. 요컨대 바로 직전에 선행하는 연결고리를 원인, 즉 일어남(samudaya)이라 하고, 그 직후에 바로 따라오는 것을 그 결과, 즉 괴로움의 진리[苦諦]라고 합니다.

우리가 만약 괴로움의 진리[苦諦]를 감각적 욕망의 번뇌[慾漏], 존재의 번뇌[有漏], 사견의 번뇌[見漏], 무명의 번뇌[無明漏]에 대한 집착들인 번뇌(漏 āsava)220의 결과로 본다면, 심지어 윤회의 근원인 무명도 괴로움의 진리[苦諦]와 같은 뜻으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어떤 사람들은 갈애를 괴로움과 동일하게 보는 관점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무상의 법칙에 따르기 때문에 갈애를 포함한 모든 정신-물질[名色]은 괴로움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이러한 관점은 타당합니다. 주석서는 무명을 괴로움이라고 설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무명은 번뇌[漏]에서 흘러나오는 괴로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번뇌(漏 āsava)에는 감각적 욕망의 번뇌[慾漏], 존재의 번뇌[有漏], 사견의 번뇌[見漏], 무명의 번뇌[無明漏]라는 네 가지가 있습니다. 이는 과거의 무명과, 또 현재에 무명을 일으키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번뇌[漏]를 무명의 원인으로 볼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성제를 깨닫고 열반을 증득하시고 나서 스스로의 바른 깨달음을 통하여, 부처님께서는 정등각자(Sammā-sambuddha)라는 비할 바 없고 영광스러운 칭호를 얻으셨습니다.

부처님은 연기법이 포괄하는 모든 현상들은 진정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이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부처님은 무명에서 깨어나셨으며, 집착이 없어졌으며, 모든 족쇄221에서 해탈을 성취하셨습니다. 그래서 「청정도론」에 따르면, 윤회의 모든 바큇살을 완전히 파괴하셨기 때문에 아라한이라고 불리십니다.

99. 부처님의 명성

부처님의 명성은 전 우주에 골고루 미쳤습니다. 부처님의 명성은 부처님의 법문을 들으러 온 어떤 중생계의 존재를 통해서, 또는 부처님이 어떤 중생계에 직접 가셔서 설하신 법문을 통해서, 또는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어떤 상위 중생계에 태어난 부처님의 옛 제자들에 의해 우주 곳곳에 널리 퍼졌습니다.

우리는 부처님의 명성이 두루 퍼지게 된 첫째 방법을 깊이 생각해볼 필요는 없습니다. 다른 두 가지 방법에 대해서는, 보살은 기나긴 윤회의 여정 동안 불환과를 얻은 성자들만 갈수 있는 다섯 정거천(淨居天)222을 제외하고는 모든 중생계에 다 가 보았습니다. 보살은 보통 마지막 생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도의 네 가지 단계를 모두 성취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전에 정거천에 태어난 적이 없었으며223, 어느 때는 신통력으로 정거천을 방문하셨습니다. 부처님이 정거천에 오시자 수많은 범천들이 부처님께 경배를 드리면서, 과거 부처님들에 대한 이야기와 불환과 이상을 얻었기 때문에 과거 부처님들도 정거천에 오셨었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이들 범천가운데는 고타마 부처님의 제자로 수행을 했던 범천도 있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다섯 정거천을 모두 방문하셨습니다. 부처님의 명성이 어떻게 부처님의 제자였던 이들의 거처인 천상계에 퍼지게 되었는지는 알기 쉽습니다. 하지만 부처님의 명성이 어떻게 무색계에까지 퍼지게 되었는지는 의문이 생깁니다.

무색계 범천은 부처님을 찾아오지 못하고 부처님도 그들을 찾아가지 못합니다. 욕계나 색계에서 불법을 수행하고 도의 세 번째 단계인 불환과(不還果)를 얻은 이가 무색계 선의 마음을 가지고 죽을 때 원한다면 무색계 범천에 태어날 수 있습니다.

이들 성자는 부처님의 고귀한 덕성과 사념처 수행을 통해 새로운 통찰지를 얻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정신적 사건을 알아차림으로써 마침내 아라한이 되어 식무변처천(識無邊處天)이나 무소유처천(無所有處天), 혹은 더 높은 비상비비상처천(非想非非想處天)에서 완전한 열반[般涅槃]에 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부처님의 명성은 우주전역에 두루 미치게 되었습니다.

100. 사성제의 개요

우리는 정등각자의 덕성과 비교하여 사성제에 대한 부처님의 지혜를 자세히 다뤄보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사성제를 간략히 되짚어 볼까 합니다. 경전에 따르면, 갈애를 제외한 욕계, 색계, 무색계의 모든 정신-물질[名色]은 괴로움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진리인 고제(苦諦)입니다.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는 두 번째 진리인 집제(集諦)입니다. 괴로움의 소멸인 열반은 세 번째 진리인 멸제(滅諦)이며 소멸에 이르는 길인 성스러운 도는 네 번째 진리인 도제(道諦)입니다.

이들 사성제(四聖諦)는 수행자가 위빠사나 수행을 닦아서 체험으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수행자는 일어나고 사라지는 모든 것은 괴로움이며[고제], 그렇게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에 대한 집착이 원인이고[집제], 괴로움과 그 원인이 모두 소멸하는 것이 바로 열반이며[멸제], 그 열반의 증득이 바로 도를 의미한다는 것[도제]을 체험으로 압니다.

101. 부처님과 정득가자

붓다(Buddha)와 삼마삼붓다(Sammā-sambuddha)224라는 두 빨리어는 전지(全知), 즉 모든 법을 아는 지혜[一切智]를 뜻합니다. 그렇다면 이 두 용어와 관련된 두 특성은 어떻게 구별되는지 의문이 생깁니다.

삼마삼붓다의 특성이란 독립적인 숙고와 노력을 토대로 보살이 정각(正覺)을 얻은 것이고, 아라한도의 통찰지를 통하여 사성제를 깨달았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붓다의 특성이란 일체를 아는 지혜[一切智]등과 같은 오직 부처님만이 지닌 남다른 특성에 기반하여 모든 형성된 법[有爲法]과 형성되지 않은 법[無爲法]225에 대한 완전하고 철저한 앎입니다.

부처님의 이러한 남다른 특성은 제자들에게서는 발견되지 않는 사성제에 대한 지혜, 사무애해의 지혜(四無碍解 paṭismbhidā-ñāṇa)226, 여섯 가지 불공의 지혜(不共智 asādhāraṇa-ñāṇa)227에 있습니다.

부처님의 여섯 가지 불공의 지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중생들의 각기 다른 도덕적, 영적 성숙도를 아는 지혜
(2) 중생들의 욕구, 근기, 잠재성향을 아는 지혜
(3) 쌍신변228의 지혜
(4) 모든 중생들에 대한 무한한 연민의 지혜
(5) 일체를 아는 지혜
(6) 부처님께서 알고자 하는 것과 주의를 하나로 모으는 것은 어떠한 장애나 걸림 없이 아는 지혜

이제 형성된 법[有爲法]과 형성되지 않은 법[無爲法]에 대해 몇 마디 언급하고자 합니다. 형성된 법[有爲法]이란 적절한 요소들의 조화로운 결합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정신-물질[名色]이나 오온(五蘊)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형성된 법[有爲法]이란 유리한 환경들로 조성된 현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막대기나 철봉과 같은 두 개의 단단한 물체 간의 마찰이 있을 때 소리가 생깁니다. 여기서의 소리가 형성된 것(有爲 saṅkhata)입니다. 형성된 것(有爲 saṅkhata)과 반대가 되는 것이 원인과 관련이 없는 형성되지 않은 것(無爲 asaṅkhata)입니다. 형성되지 않은 법[無爲法]의 범주 내에서 유일한 구경법(究竟法 paramattha-dhamma)이 바로 열반입니다. 구경법이 아닌 형성되지 않은 법[無爲法]에는 모습, 모양 등의 이름과 같은 많은 개념이 있습니다.

부처님의 지혜를 일체를 아는 지혜[一切智]라고 불리는 이유는 그것이 형성된 법[有爲法]과 형성되지 않은 법[無爲法]의 모든 범위를 다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일체를 아는 지혜[一切智]는 형성된 법[有爲法], 구체적인 물질(nipphanna), 정신-물질[名色]의 조건 지어진 특성, 열반, 개념과 같은 다섯 가지 함축적인 의미의 법 (neyyatha-dhamma)229으로도 설명됩니다.

중생의 각기 다른 정신적인 성숙도와 근기와 잠재성향을 아는 지혜인 부처님의 처음 두 가지 특성을 일컬어 부처님의 눈(佛眼 buddha-cakkhu)이라고 합니다. 이 모든 것을 보는 눈으로, 부처님께서는 깨달을 근기가 성숙된 중생들을 찾아가서 시의 적절할 때에 근기에 맞는 법을 설하셨습니다.

우리는 독자들로 하여금 세존에 대한 믿음을 고취시키고자 부처님(아라한)의 특성에 대한 언급으로써 연기에 대한 법문을 마무리 합니다. 여러분도 공양 받아 마땅한 분[應供]의 특성을 지닌 아라한에게서도 영감을 얻기를 바랍니다.

아라한은 모든 번뇌에서 완전히 벗어났으며 윤회의 골조를 파괴하였습니다. 아라한은 몰래 악행을 할 비밀스런 곳이 없기 때문에 공양 받아 마땅한 분[應供]입니다. 일반 아라한이 지닌 특성은 부처님께서 지닌 최상위 아라한 특성보다는 낮지만 아무튼 이러한 것이 아라한의 특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언젠가 영광스런 아라한의 칭호를 얻게 될 날을 위해서 감각의 육문(六門)에서 일어나는 정신-물질 과정을 알아차려서 번뇌를 쳐부수고, 삶의 수레바퀴 살을 깨부수고, 항상 마음을 청정하게 유지하려고 힘써야 합니다.

102. 요약

고제(苦諦)와 집제(集諦)에서 언급된 두 가지 근본원인에서 네 가지 층, 세 가지 회전, 세 가지 연결, 십이 각지, 삼세(三世), 스무 가지 현상, 다섯 가지 정신-물질인 오온(五蘊)의 과정이 있습니다. 이 현재의 과보인 과정을 효과적으로 주시하는 사람은 느낌에서 비롯되는 갈애를 가지지 않게 되어 윤회를 완전히 끝낼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수행자는 여섯 감각장소[六入]에서 일어나는 모든 정신-물질 사건을 무상· 고· 무아로 명확하게 주시합니다.

그러한 효과적인 사념처 수행에 의하여, 수행자는 형상[色], 소리[聲]등의 감각대상의 본성을 꿰뚫은 통찰지를 얻어서 반대되는 것에 의해서 그에 대한 집착을 일시적(tadaṇga)으로 극복합니다. 즉 그 뿌리를 잘라내는 지혜로 갈애에 대항해서 그것을 극복합니다.

갈애의 소멸로 집착[取]과 존재[有]와 태어남[生]등의 다른 현상이 일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위빠사나 지혜를 통해서 이렇게 소멸시킨 다음에, 성스러운 도에 대한 통찰지를 얻었을 때 수행자는 근절(samuccheda)을 통해서 잠재성향의 갈애를 완전히 극복합니다. 이 순간에 집착 등의 다른 현상도 완전히 소멸합니다.

느낌이 소멸함에 따라 갈애도 존재하기를 멈춘다고 설하는 그런 가르침은 없습니다. 이는 아라한이라도 여섯 감각기관[六根]과 맞부딪쳐서 일어나는 느낌을 제어하지 못하기 때문에 놀라운 것이 아닙니다.

만약 수행자가 갈애 등의 현재 원인과 미래의 결과를 제거하여 괴로움의 회전을 끝내고자 한다면, 현상을 일어나는 그대로, 즉 무상· 고· 무아로 지켜보고 주시해야 할 어떤 정신-물질 현상이 있습니다. 이 현상을 빨리어 용어와 함께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식(識 viññāṇa): 대상을 아는 마음으로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의식(意識)의 6가지가 있습니다.

(2) 정신(名 nāma) : 식(識)과 함께 일어나는 마음부수(cetasikā)입니다.
물질(色 rūpa): 그러한 식(識)과 함께 일어나는 물질현상입니다.
정신-물질(名色 nāma-rūpa): 말 그대로 정신과 물질로 번역 될 수 있을 것입니다.

(3) 여섯 감각장소(六入 saḷ-āyatana): 마음이 활동하는 여섯 장소, 즉 내부의 여섯 장소[內六處]와 외부의 외부장소[外六處]입니다. 내부의 여섯장소는 눈[眼] 귀[耳] 코[鼻] 혀[舌] 몸[身]의 다섯 가지 물질적 감각기관과 마노[意]로 이루어져 있고, 외부의 여섯장소는 형상[色] 소리[聲] 냄새[香] 맛[味] 감촉[觸] 마노의 대상[法]입니다.

감각접촉(觸 phassa): 봄의 감각접촉[眼觸], 들음의 감각접촉[耳觸], 냄새의 감각접촉[鼻觸], 맛의 감각접촉[舌觸], 몸의 감각접촉[身觸], 마노의 감각접촉[意觸]의 여섯 가지가 있습니다.

느낌(受 vedanā): 즐거운 느낌[樂受], 괴로운 느낌[苦受], 무덤덤한 느낌[不苦不樂受]의 세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봄의 감각접촉[眼觸], 들음의 감각접촉[耳觸], 냄새의 감각접촉[鼻觸], 맛의 감각접촉[舌觸], 몸의 감각접촉[身觸], 마노의 감각접촉 [意觸]과 결부된 6가지 종류의 느낌들로 세분할 수도 있습니다.

(1) 2가지 근본원인: 무명과 갈애.
(2) 2가지 진리: 일어남의 진리[集諦]와 괴로움의 진리[苦諦]
(3) 4가지 층:
① 과거원인의 층: 무명(無明), 업형성력(상카라), 갈애[愛], 집착[取], 존재[有]
② 현재 결과의 층: 식(識), 정신-물질[名色]의 복합체, 정신 활동의 여섯 감각장소[六入], 감각접촉[觸], 느낌[受].
③ 현재 원인의 층: 갈애, 집착, 업, 존재[有], 무명, 업형성력(상카라).
④ 미래의 결과: 태어남[生], 늙음∙죽음[老死], 식(識)등

(4) 3가지 회전:
① 번뇌의 회전: 무명, 갈애, 집착
② 업의 회전: 업형성력(sankhara), 업, 존재[有]
③ 과보의 회전: 식(識), 정신-물질의 복합체[名色], 정신 활동의 여섯 감각장소[六入], 감각접촉[觸], 느낌[受], 태어남[生], 늙음과 죽음[老死].

(5) 3가지 연결
① 과거의 원인인 과거 업형성력(상카라)과 현재의 결과간의 연결.
② 현재의 결과인 느낌[受]과 현재의 원인인 갈애[愛]간의 연결.
③ 현재의 원인인 존재[有]와 미래의 결과인 태어남[生]간의 연결.

(6) 12가지 연결고리
① 무명(無明) ② 업형성력[行] ③ 식(識) ④ 정신-물질[名色] ⑤ 여섯 감각장소[六入] ⑥ 감각접촉[觸] ⑦ 느낌[受] ⑧ 갈애[愛] ⑨ 집착[取] ⑩ 존재[有] ⑪ 태어남[生] ⑫ 늙음· 죽음[老死]

(7) 3가지 시간[三世]
① 무한한 과거: 무명과 업형성력
② 무한한 현재: 식, 마음과 몸의 복합체[名色], 여섯 감각기관[六入], 감각접촉[觸], 느낌[受], 갈애[愛], 집착[取], 업의 과정.
③ 무한한 미래: 재생, 늙음과 죽음[老死].

(8) 20가지 요소:
① 전생의 원인이 되는 과정인 5가지 요소
② 현생의 결과가 되는 과정은 5가지 요소
③ 현생의 원인이 되는 5가지 요소
④ 내생의 결과가 되는 5가지 요소

(본문 끝)
/////////

218. 아라한(arahan)은 ‘대접과 존경을 받을 만한 분’이란 뜻이고 중국에서 그 의미를 살려 응공(應供)이라고 번역했다. 아라한은 열 가지 족쇄를 완전히 제거하여 성스러운 도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신 분이다. 그래서 주석서에서는 아라한을 번뇌들로 이루어진 적(ari)을 부수어 버린(hata)자로 설명한다. 이 아라한은 또한 부처님의 열 가지 이름[如來十號]중 하나이기도 하다.

219. 대범천(大梵天)의 원어는 마하브라흐마(Mahā-brahmā)이다. 초선천(初禪天)의 세 번째 천상을 뜻하기도 하고 여기서처럼 유력한 범천을 뜻하기도 한다. 이러한 유력한 범천으로 경에서는 뚜두(Tudu), 나라다(Nārada), 가띠까라(Ghaṭikāra), 바까(Baka), 사냥꾸마라(Sanaṅkumarā), 사함빠띠(Sahampatī) 등을 언급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서 사함빠띠 범천이 대범천으로 많이 등장한다. 부처님께 법륜을 굴려주시길 간청한 대범천이 바로 사함빠띠이다.

220. 번뇌(漏)로 옮긴 āsava는 ‘흐르는 것’이라는 문자적인 뜻에서 마음속의 해로운 상태나 더러움이 외부로 표출되는 뜻으로 발전되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루(漏), 번뇌(煩惱)로 옮겼고 서구에서는 influxes, 또는 좀더 정확성을 기하고자 할 때는 canker, taint로 옮긴다.「아따살리니」(Asl.48)에 따르면 이것을 흘러나오는 것이란 뜻인 아사와라고 하는 이유는 이것이 존재하는 것으로는 최고로 높은 세계까지 흘러가고 법으로는 종성(種姓 gotrabhu)의 영역에까지 흘러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번뇌(漏)에는 네 가지가 있다.
① 감각적 욕망의 번뇌(慾漏 kāmā-āsava) ② 존재의 번뇌(有漏 bhava-āsava) ③ 사견의 번뇌(見漏 diṭṭhi-āsava) ④ 무명의 번뇌(無明漏 avijjā-āsava)
그리고 이 네 가지 번뇌(漏)는 네 가지 폭류(ogha)와 네 가지 속박(yoga)이란 이름으로도 경전과 주석서에 종종 등장한다. 그리고 육신통(六神通)중의 하나인 누진통(漏盡通 āsavakkhaya-sutta)이 바로 위빠사나를 통한 통찰의 힘으로 이러한 모든 번뇌(漏 āsava)를 부순 지혜를 가리킨다.

221. 족쇄는 빨리어 삼요자나(saṃyojana)의 역어로 범부를 윤회의 바퀴에 붙들어 매놓는 10가지 족쇄를 말한다. ① 유신견(有身見 sakkāya-diṭṭhi) ② 회의적 의심(vicikicchā) ③ 계율과 의식에 대한 집착(戒禁取 sīlabbata-parāmāsa) ➃ 감각적 욕망(kāma-rāgā) ➄ 적의(paṭigha) ➅ 색계에 대한 집착(rūpa-rāga) ➆ 무색계에 대한 집착(arūpa-rāga) ➇ 자만(māna) ➈ 들뜸(uddhacca) ➉ 무명(無明 avijjā). 그리고 ①부터 ➄까지는 다섯 가지 거친 족쇄(orambhāgiya-saṃyojana)인 오하분결(五下分結)이라 하고 ➅부터 ➉까지는 다섯 가지 더 미세한 족쇄(uddhambhagiya-saṃyojana)로 오상분결(五上分結)이라고 한다. 예류자는 ①에서 ③을, 불환자는 ➃와 ➄를, 아라한은 나머지 ➅에서 ➉까지의 족쇄를 완전히 끊어낸다. 족쇄의 영역은 fetter.

222. 정거천(淨居天)이라 번역되는 숫다와사(suddhāvasā)는 불환과를 얻은 성자들만 태어나는 곳으로 여기에 태어나서 다시는 이보다 더 낮은 세상에 태어나지 않고 여기서 열반에 든다고 한다. 정거천의 다섯 하늘은 다음과 같다.
(1) 무번천(無煩天 avihā) (2) 무열천(無熱天 atappā) (3) 선현천(善現天 sudassā) (4) 선견천(善見天 sudassī) (5) 색구경천(色究竟天 akaniṭṭhā)

223.『중부』「긴 사자후경(Mahāsihanāda Sutta)」(M12)에서 언급하듯이 만일 부처님께서 정거천의 신으로 태어나셨더라면 이 세상에 다시 오시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정거천은 다시는 이 세상에 오지 않는 불환과를 이룬 성자들이 머무는 곳이기 때문이다.

224. 삼마삼붓다(sammā-sambuddha)는 ‘바르게 깨달은 분’을 뜻한다. 중국에서는 정변지(正遍知)와 정등각(正等覺)으로 옮겼다. 영어로는 보통 The Fully Enlightend One이라 표현한다.

225. 형성된 법이라 번역한 상카따담마(saṅkhata-dhamma)는 중국에서 유위법(有爲法)이라 번역했는데, 무상· 고· 무아의 삼특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마음[心], 마음부수[心所], 물질[色]등이 해당된다. 그리고 형성되지 않은 법이라 번역한 아상카따담마(asaṅkhata-dhamma)는 중국에서 무위법(無爲法)으로 번역했으며, 열반(涅槃)이 이에 해당된다.

226. 사무애해(四無碍解 paṭismbhidā)는 자유자재하며 거리낌 없는 이해능력 및 언어적 표현능력으로 다음의 네 가지가 있다. 영어로는 analytical knowledge라고 한다. 여기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은 「청정도론」(Vis.ⅪV.21)을 참고할것.
(1) 의무애해(義無碍解 attha-paṭisambhidā): 의미를 통달한 분석지. 세존의 모든 가르침의 의미, 목적, 결과와 기능적 필요성을 이해하는 것.
(2) 법무애해(法無碍解 dhamma-paṭisambhidā): 법에 대한 분석지.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다는 것(인과법, 연기법), 고귀한 팔정도, 설해진 법, 법과 관련된 범위 내에서 있는 모든 지식을 이해하는 것.
(3) 사무애해(詞無碍解 nirutti-paṭisambhidā): 언어에 대한 분석지. 실재를 표현하는 언어에 관한 지식으로서 언어로 표현하는 데 걸림이 없는 것.
(4) 변무애해(辯無碍解 paṭibhāna-paṭisambhidā): 언어 구사력에 대한 분석지. 즉 임기응변에 능한 분석지인데, 법의 의미에 대해 미사여구를 자유자재로 사용하여 누구나 쉽게 알아듣도록 설명하는 능력.

227. 불공의 지혜(不共智 asādhāraṇa-ñāṇa)란 범부는 말할 것도 없고 아라한이나 벽지불 또는 보살과도 공통되지 않는 부처님만이 가지고 있는 뛰어난 공덕과 자질이다.

228. 쌍신변(雙神變)의 원어는 야마까빠따리야(yamaka-pāṭhāriya)로 부처님이 외도(外道)를 조복하기 위해 보이는 신통의 하나이다. 일련의 대우(對偶)신통으로 상체에서 물줄기를 내뿜는 동시에 하체에서는 불꽃을 내뿜고, 또 그 반대도 나타내며 한쪽으로는 불을 다른 쪽으로는 물을 내뿜기도 하고, 전신의 구멍에서 6가지 광채를 발해 위로는 범천(梵天)을, 아래로는 철위산(鐵圍山) 끝까지 비추는 등 부처님만이 보일 수 있는 신통이다.

229. 함축적인 의미의 법(neyyatha-dhamma)이란 그 뜻이 확정된 명확한 의미의 법(nītattha-dhamma)과 대비되어 그 의미가 함축적이어서 숨은 뜻을 알아내어야 하는 법이다. 『증지부』주석서(AA.ii.118)에는 다음과 같이 나온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한 사람, 두 사람, 세 사람, 네 사람이 있다.’라는 가르침은 ‘그 [숨은 뜻을] 알아내어야 하는 가르침(neyyatha suttanta)'이다. 왜냐하면 비록 정등각자께서 '한사람이 있다.’라는 식으로 말씀을 하셨더라도 ‘궁극적인 의미에서는 사람(puggala)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 숨은 뜻을 알아 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는 이런 가르침을 두고 ‘이미 그 뜻이 확정된 가르침(nitattha suttanta)이라고 우긴다. ‘만약 궁극적인 의미에서 사람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세존께서 ‘비구들이여, 한 사람이 있다.’라는 식으로 설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세존께서 그렇게 설하셨기 때문에 궁극적인 의미에서 사람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잘못 이해하면서 숨은 뜻을 알아내어야 할 경에 대해서 이미 그 뜻이 확정된 경이라고 우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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