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 대한 나의 원조적 관점: <내 인생 속에서의 한국의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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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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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 대한 나의 원조적 관점: <내 인생 속에서의 한국의 영향>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2017-07-08, (토) 3:11 am

불교에 대한 나의 원조적 관점: <내 인생 속에서의 한국의 영향>
크로드 미트럼 웨어 박사

로스앤젤레스 관음사 건립 20주년 기념을 축하하는 공헌의 글월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나는 그들 상가(Sangha)를 방문했고 여러 공헌을 함께 나누었던 여러 개인적 경험을 얻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의 지나가는 방관자처럼 한국불교를 보았다는 변명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는 잠시 머물러 섰고 한국의 전통불교인 대승불교의 위대한 반영과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역학적 깊은 움직임에 잠시이긴 하나 완전히 젖은 적이 있다.
어느 위대한 불교 저술가의 말로해서 나의 사고와 인생을 불교 쪽으로 이끌고 간 것을 기억하고 또 그것을 사랑한다. 그로부터 나는 그 말들을 되씹으며 한국의 불교의 큰 지도자들과 자주 교류하게 되었다.

“대승은 견고한 두 다리 위에 서 있다. 지혜와 자비, 그것은 지혜의 견고한 지반을 습득하는 이상(理想)을, 모든 존재를 사랑으로 감싸면서, 초월하는 것이니라. 그것이 생물이던 무생물이던 간에...” (D.T. Suzuki, 대승불교 개론)

위의 적힌 말의 참뜻과 위대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 저자의 위대함도 모르면서, 14세에 나는 “대승불교”에 관한 글을 읽다가 갑자기 온 전신에 전기가 흐르는 어떤 경건한 느낌을 받았다.
(그때 그 나이에 그 두 마디의 말이 함께 합치는 것 같았고 다른 불교란 있을 수 없는 것 같았다. 허나 살아있는 신의 사랑의 위대함은 먼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이 지구의 자연 속에 있는 것이었다.)
모든 생물에 대한 동정과 지혜에의 사랑이 30년 후의 나의 종교적 실천의 초점이 된 것을 누가 알고 있었을까?

1978년 나는 월남에서 온 높은 스님과 함께 옥스퍼드에 위치한 한국 절에 찾아 들었을 때 계단에 자리 잡은 관음보살의 힘찬 모습을 보고 난 여태 느끼지 못한 무엇을 느꼈다. 그 동상의 아름다움은 나에게 전혀 낯선 것이 아니었다. 내가 젊어서 로만 카토릭 교회에 드나들며 공헌할 당시 그 동상에서 자주 느꼈던 그런 느낌과 같았고 그리고 월남 사찰에서의 동상이나 두루마리와 현판에서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관음보살님이 나는 그 높은 체험을 쌓게 하고 경을 읽으며 가슴이 뭉클한 현실을 알게 했다. 바로 그 관음보살의 아름다움이 대승불교에 생명을 부어넣은 것이다. 내가 “관음보살”이라고 읊었을 때의 내 음성의 떨림이 또한 그러했다.

이런 일이 한번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나는 다른 상가들과 경을 읽을 때도 부처님 도량에 홀로 있을 때도 그런 느낌이 늘 그곳에 감도는 것을 느꼈다. 어찌하여 이 예수교인이 부처와 만나게 되었으며 또 강한 느낌 속에서 그 자신의 부처를 얼싸안았을까, 그런 전환이 있는 것엔 자그마한 배경 이야기가 있다.

1964년 내가 부처의 길에 들어섰을 때 나는 처음으로 캘리포니아의 가디나에 있는 일본 젠도(禪道)의 자그마한 그룹과 함께 좌선을 하고 있었다.
나는 로시가 로스앤젤스에 옮겨온 뒤 몇 년간 상가와 함께 전화를 하고 선을 하고 있었다. 좀 어리석게 말한다면 나는 젠 메디테션의 체험을 시작한 첫날밤부터 그것에 완전히 얽매여 버렸다. 처음엔 그것이 단순한 선에 불과했다. 그 위치, 엄한 규율, 그러다보니 내 생활을 다시 바로 잡아야 했다. 왜냐하면 나는 그것을 원했고 그 “위대한 의문”(계속되는 선에서 체험하는) 의문에 부딪쳐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순수한 수도에의 도전과 또 자신의 진실을 본 감격으로 해서 마침내 나는 스스로의 깨달음이 진실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삼년 동안 나는 한 상가에서 또 다른 상가로 옮겨갔다. 그리고 그저 혼자 앉아(좌선) 있는 것이다. 그때 하나의 위기가 내 생활에 닥쳐왔다. 가족과의 집착을 버리는 일이다. 가장으로서 가족을 보살펴야 하는 내가 그들을 도와야 하는 일에 부딪치자 나는 다른 스승을, 다른 높은 스승을 찾아야 했던 것이다.
그때 그 가장 존경하는 높은 스승 디치 티엔-안(Thic Thien-An) 스님이 오셨다. 그는 부처님 말씀대로 “나는 준비가 되었노라”고 하였다. 베트남 절에서 만났던 그분은 그곳에 높은 큰 스님이었고 따라서 우린 그곳에서 공부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린 다른 전통과 문화를 갖고 있는 절에서 다른 불교의 상가 멤머와 스님과 비구니들을 찾아가 만나고 관찰하곤 했다. 그는 모든 미국제자들에게 불교를 실천하고 공헌하는데 국제적 다양성을 체험하도록 했었다.
당시 나는 조금 전에 말했듯이 레오프르덴(Leo Pruden) 박사와 관음사를 방문했던 것이다. 레오프르덴 박사는 티엔-안 박사가 총장으로 있는 동양학 대학(The University of Oriental Studies)의 부총장이었다. 한번은 프르덴 박사가 몇 명의 신도에게 편지와 서류를 영어로 번역하는 일을 도와주려고 했던 일이다. 이로해서 이 절의 주지인 도안 큰스님을 만나게 되었다. 정신 및 정서 교류로 해서 그 자리에서 즉시 친근감을 느끼게 되었다.
언어가 다르긴 하지만 그렇다고 언어가 우리 사이의 장벽이 될 순 없다. 나는 도안 스님의 요구에 따라 그 후 그곳 봉사와 여러 행사에 참석했다. 한번은 선의 주제인 “네가지 귀한 진실(Four noble truths)"에 관해 그 사찰의 젊은층들에게 이야기 한적이 있다. 도안스님과 그들에게서 받은 영적인 양식으로 해서 얻은 몇간의 이야기를 여기에 포함시키고 싶다.

“젊은 불자들을 가르치고 또 다른 종교와 그 수양프로그램에서 얻은 가장 값지고 훌륭한 경험은 어떻게 선을 하느냐 하는 기술과 그 방식을 어떻게 그들에게 유도해 가는가 하는 일이다. 일상의 선을 통해서 생의 기쁨과 적극적으로 행위 해 가는 것을 보는 것이 참으로 값어치 있는 일이다. 조계종에서 스님을 훈련시키는 방식은 대부분 선과 교에 대한 연구에서 깊이 영향을 받고 있다. 일본과 월남의 전통에서 불교의 승려로부터 얻은 나의 훈련은 한국에서도 공안(kong'an)좌선의 방식을 도입했듯이 중국의 린치(Lin Chi)전통의 한분파의 방식으로 얻어진 것이다.
불교에 대한 믿음과 실천과 정각에 이르는 나의 주장은 기실 한국불교에선 장로승단의 믿음으로 불리는 것을 반영한다고 본다.
이 선 좌선의 실천에서 떼어버릴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부처와 보살도에 귀의한 사람의 “높은 자비”에 대한 믿음이다. “믿음”에 대한 관념은 원천적으로 지혜를 얻는 사람에게서 일어나는 자연스런 기능이다. 그대들은 다 부처이다. 그리고 실천은 믿음(Miao ehiao)의 완성을 얻는 일이다. 이것이 보살의 길인 것이다.
.....젊은 그대들에게 좌선의 기법을 가르침에 있어서 “집중”이란 말을 나는 피하고 싶다. 어떤 이들에겐 그것이 좌선과 같은 동의어(같은 말)로 해석된다. 대신 그것은 사고의 방향의 주제를 상당히 강조한다. 그리고 선을 하는 동안 우리 마음에 흘러들어오는 사고에 대한 자유연상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 작업은 모든 방황하는 사고를 인식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방황하는 사고를 그대로 흘러버려야 한다. 마음의 문에 자물쇠를 잠궈 닫아버린다 해서 그 불필요한 생각이 마음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좌선에 대한 “주제”에 대해 사전에 이야기 했듯이),
여기서 선에 전념하는 것을 배우려면 고타마 부처님이 전개한 방식인 “네가지 고귀한 진실(Four noble truths)"이 주제가 되도록 하라고 충고하고 싶다. 그 진리 속엔 영감에 의한 곧고 바른 실천의 방식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호흡법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처음 숨을 들이킨다. 그리고 그 숨을 힘들지 않게 자유롭게 저절로 흘러나오게 해야 한다. 내쉬는 호흡과 함께 마음을 깨끗이 비우면서 만다라를 말해도 된다.
이것으로 개인의 20분간의 좌선에서 우린 정적 속에 있게 되고, 오늘도 내일도 그같이 앉아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숨을 규칙에 맞도록 쉬는 일이다. (아마 이곳에서 그 말이 적절할지 모른다.) 즉 집중이란 말, 모든 일에 집념하기 위해 우린 (가슴을 가리키며) 이것으로 수도를 해야 한다. 좌선을 하는 동안 육신과 마음을 바로 고치는 일을 정상적인 규격에 맞게 숨을 들이키고 내쉬는 일에 있다.
LA의 사랑스럽고 친절한 한국인들과의 접촉에서 얻은 개인적인 은혜에 대해 나는 진실로 고맙게 여긴다. 특히 관음사에 대해선 더욱 그렇다. 도안 스님은 나에게 때때로 만날 기회를 주었고 상가의 멤머인 다른 스님들과도 만날 장소를 제공해 주었다. 가장 나에게 기억에 남는 값어치 있는 경험은 지난 2년 동안 어느 스님에게 타아치찬(T'ai Chi Ch'uan)을 가르친 일이다.

지난 15년간 에코 파크(Echo Park)에 있는 나의 도량에서 나는 많은 학생을 가르쳤다. 그리고 마음을 쏟고 깊은 인식에서 선을 해온 사람에게 이 무술을 가르친다는 것은 의외로 기쁨을 주는 일이다. 속도와 완벽을 통해 그는 선의 양식에 대한 느린듯하면서 미묘한 움직임을 체득했는데 이것이 타오테칭(Tao Te Ching)에서 얻은 타오이즘(道敎)에서 배운 하나의 구현(具現)이다.
“모든 보는 것에서, 모든 욕망과 육욕에서 한번 자유롭게 되면, 내가 움직인다는 그런 생각도 없이 영감으로 저절로 움직일 수 있느니라.”

로스앤젤레스의 한국불교가 20년의 기쁨을 만난 것을 환영하는 글월을 공헌할 기회를 가진 것을 나는 큰 명예로 생각한다. 또 많은 한국인 친구들과 저명한 큰스님인 도안스님에 대해선 더욱 그렇다. 특히 한국 전라남도에 있는 불교사찰인 보현정사의 주지이며 큰 스님이신 정각스님에게 감사를 드린다.
마지막으로 관음사를 기념하는 글을 부탁한 한재수씨에게도 고마움을 함께 표한다.

1993년 12월 20일
Los Angeles에서
크로드 미트럼 웨어 박사
철학박사 교수
(은혜스님)
미트라-달마, 선 도량 주지
----한재수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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