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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종교인의 역할 1(2003.4.11)-이승만 목사

올린 게시글COLON 2017-05-17, (수) 3:08 am
글쓴이: lomerica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종교인의 역할
특별 기조연설(이승만 목사: 전 미국 장로교총회장, 교회협의회 회장)

지금 우리는 전쟁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라크 전쟁은 유엔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전쟁을 억제하고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현실역사 속에서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20세기는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제1차, 2차 세계대전과 냉전으로 인한 국지전, 민족간의 분쟁에 이르기 까지 끊임없는 전쟁의 연속이었으며 그 와중에 전쟁으로 인해 적접적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만 거의 1억 1천만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지금 새로운 21세기 뉴밀레니엄이 시작되었지만 9.11 테러사건과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전으로 이어지는 전쟁과 전쟁의 릴레이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제 이러한 전쟁의 기운이 중동과 동유럽에서 그치지 않고 한반도에 까지 미치고 있기에 우리의 고뇌가 큰 것입니다. 북미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조국의 운명은 우리의 운명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습니다. 조국이 분단 된지 반세기가 넘어가고 동족간의 전쟁으로 인한 분노와 상처가 아직도 남아있는데, 최근 또다시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전쟁 가능성이 예고되고 있어서 우리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고 있습니다.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마음과 뜻과 힘을 모으는 일은 이제 고국과 해외를 막론하고 모든 한민족 동포들의 공동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만일 다시 한번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우리 민족의 장래는 더 이상 기약할 수 없는 비참한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서로의 종교가 다를지라도 우리는 한 민족이며 한 운명 공동체입니다. 조국이 평화로워야 우리가 평화롭고 조국이 번영해야 우리도 번영할 수 있습니다. 조국이 나뉘어 전쟁위험이 끊임없이 계속되는 한 우리도 결코 평안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서로 믿는 신앙이 다를지라도 세상을 평화롭게 만드는 일에 있어서는 같은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고 평화가 뿌리내리도록 하는 일은 이 시대에 바로 우리 종교인들의 가장 중요한 사명인 것입니다.

1996년 8월 시카고 세계종교평화회의 참가, NCC회장 이승만 목사와 도안스님

지금은 다행히 어느 때보다 조국의 화해와 통일을 향한 대화와 교류가 활발합니다마는 대립과 긴장의 시절에 이미 그 선구자적인 길을 닦아온 이들은 바로 종교인들이었습니다. 인도적인 지원을 통해 서로간의 문호를 열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온 곳은 정부가 아닌 종교단체였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진 바입니다. 서로간의 불신을 해소하고 대화 상대자로서의 가능성을 인식시키는 이런 노력들이 모이지 않았더라면 2000년 6월 15일에 있었던 역사적인 정상회담이 일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이념과 체제가 넘지 못하는 벽을 종교의 화해를 위한 신앙의 행동으로 인하여 넘을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 예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에 대한 깊은 신뢰와 사랑이야 말로 종교가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가치이며 모든 차이와 장벽을 뛰어넘는 강력한 힘이기도 한 것입니다.

냉전시대 이후의 미국은 2억 3천만명이라는 거대한 내수시장과 효율적인 사회체제, 월등한 기술 정보력으로 유일한 초강대국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미 세계화된 국제환경 속에서 금융자본과 무역협정(WTO)이라는 양 날개를 이용하여 경제투자와 무역제재 등 전쟁이라는 수단을 통하지 않고도 이미 충분히 세계 최고의 부국이 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 세계질서를 주도해 가는 미국이 해야 할 일은 전쟁이 아니라 세계인의 마음을 얻어 진정한 지도력을 획득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미국은 전쟁만이 해답이라고 믿는 사람들에 의해 끌려가고 있지만 모두가 다 그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세계 속에서 미국의 진정한 역할은 세계평화를 정착시키는 일이라고 믿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력에 의한 문제 해결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가를 깨닫게 되는 순간 이 나라는 다시금 평화적 방법을 추구하는 사람들에 의해 주도될 것입니다.

40여년 전에 있었던 월남전은 전쟁이 결코 분쟁의 해결방법이 아님을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 이라크 다음엔 북한과 이란 그리고 시리아, 나중엔 러시아까지 손봐주겠다는 생각은 대단히 위험하고 무모한 생각일 뿐입니다. 자기의 이념과 다르면 모두 적으로 간주하려는 이분법적인 잣대는 인간의 영혼과 역사를 황폐케 만드는 대단히 위험한 발상인 것입니다. 전쟁은 오늘의 친구를 적으로 만들고 테러와 비인간화를 양산합니다. 이것은 평화로워야할 세상을 증오와 고통으로 만드는 일이기에 바로 그 자체가 악인 것입니다.

작금에 부시정부는 94년 북한과 맺은 협정을 깨고, 중수로를 경수로로 바꾸는 과정에서 북한에 공급하던 중유에너지를 일방적으로 중단함으로써, 북한 정부가 다시 핵개발이라는 위험한 현실로 되돌아가도록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것을 이유로 전쟁의 가능성까지 운운하고 위협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생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비폭력 무저항의 길을 통해 인도를 영국으로부터 독립시킨 마하트마 간디의 정신을 믿습니다. 또한 평화적인 방법으로 흑백차별의 환경을 깨뜨리고 인간의 존엄을 획득한 마틴루터 킹의 꿈을 믿고 있습니다. 또 그러한 인간의 가능성을 믿습니다. 분단된 우리 조국도 무력이 아닌 대화와 합의를 통한 평화적 방법을 통해 통일을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력에 의해 억지로 봉합해놓은 통일은 결코 진정한 통일이 아닙니다. 한 편의 승리와 다른 편의 패배로 이루어지는 통일은 결코 온전한 통일이 될 수 없습니다. 승자의 자만과 패자의 분노로 이루어 놓은 통일은 언젠가는 더 큰 불행을 기르는 무모한 수고일 뿐입니다. 아직도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는 세계 각지의 분쟁들은 상대와의 합의를 무시한 채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어리석은 시도들 때문에 일어나고 있는 비극들인 것입니다.

구소련의 해체와 함께 80여년을 지배하던 볼셰비즘이 지구상에서 사라진 지금 단지 체제가 다르다는 이유로 대화와 합의의 가능성을 모두 거부한 채 무력에 의한 해결만을 도모한다면 이것은 역사를 거꾸로 돌려놓는 것과 마찬가지의 결과를 낳게 될 것입니다. 종교인은 신앙생활을 통해 삶의 참된 가치를 발견케 하고 인간의 내적 삶을 풍요롭게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내적 삶이 외적 삶과 유리될 수 없고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현실 속에서 구현돼야 하기에, 미움과 이기심으로 시작되어 전쟁과 보복이라는 거대한 인명살상으로 번져 인간의 존엄이 멸시되는 현실에 대해 침묵하고 외면하는 것은 진정한 구도자의 자세가 아닙니다.

적극적인 평화운동과 전쟁억제 운동이 곧 우리의 생명존중의 표현이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쟁과 국가이익이란 본래 종교인의 영역이 아니므로 관여할 수도 또 관여할 일도 아니라는 현실 외면의 자세로는 더 이상 생명존중의 종교인의 사명을 감당해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우리 조국의 현실이 이제 그 실험대가 되어가고 있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종교인들의 이름으로 조국의 평화정착을 위한 구체적인 참여와 역할을 수행해 가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종교인들이 어떻게 조국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이루는데 기여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을 몇 가지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는 우리 종교인들이 종교본연의 가르침인 인간사랑과 생명사랑이라는 평화의 가르침을 보다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인지하고 가르치고 실천해 나가는 것입니다. 과거에 종교가 특정그룹의 전쟁논리를 지지하거나 용인해 온 예도 많습니다. 악을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혹은 국익을 위해서, 아니면 더 큰 악을 막기 위한 필요악으로서 전쟁을 지지하거나 용인하기도 했습니다. 전쟁이 아닌 타협을 통해 해결될 수 없는 인간 간의 관계란 본래 없습니다. 국가 간의 문제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종교는 인간의 존엄과 생명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어떠한 전쟁논리도 정당화해주지 않겠다는 의지와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즉 각 종교마다 평화와 화해를 위한 교리적 신학적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신적 토대를 세우는 일은 중요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언제나 사상은 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정책은 결정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평화를 기반으로 세워진 사상적 노력은 분명 이 땅에 평화가능성을 높이는데 기여할 것입니다.

둘째는 각 종교간의 관심과 사업들을 하나로 묶어 한 뜻과 한 목소리를 내는, 일치된 행동을 실현하기 위한 연합체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난 수년간 해외 종교단체들이 행해온 인도적인 지원활동과 내용에 대해서는 이미 다 아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그 사업과 노력들이 각 종교단체별로 각개 약진을 해온 실정이라서 그 규모를 파악하기도 어렵고 또 산발적이라서 노력에 비해 그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치고 있습니다. 또 지속적인 사업이 되지 못하고 시류에 따라 일회성으로 그치는 자기 만족식의 행사로 그치는 경우도 상당히 많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뜨거운 인도주의적 사랑과 그 수고가 좀 더 효과적인 사업이 되도록 서로 협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종교인들의 연합체가 조국의 평화통일에 크게 기여함과 동시에 이와 같은 해외의 종교협의체가 남과 북의 종교단체들과 협력하여 종교 활동의 활성화에 크게 공헌 할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예를 들어 평양에는 10여년 전 개신교 교회, 천주교 성당, 불교 사찰이 각각 세워지고 성직자를 양성하는 교육기관도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더 이상의 발전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여전히 현상유지에 머물고 있는 형편입니다. 종교는 사회주의 사회나 자본주의 사회를 막론하고 인간 삶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해오고 있습니다. 종교는 인간이 자기존재에 대한 물음을 가지고 있는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디든지 있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와도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종교는 특정체제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입장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종교는 인간의 정신세계를 풍요롭게 하며 삶의 본질적 질문에 답을 주는 것이므로 특정체제 안에 갇혀있을 수 없습니다. 중국은 같은 사회주의 체제이지만 포교와 성직자 양성의 자유를 허용하고 있으며 종교인구가 이미 전체인구의 10%인 1억 인구를 넘어가고 있습니다. 동시에 종교 활동의 자유로움은 사회의 경직성을 해소 시키고 도덕성을 향상 시키며 개인의 창의성을 극대화 하여 기술개발과 자본축적의 속도에 있어서 현재 세계 최고를 달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종교가 체제의 차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이 존재할 수 있다는 실증적인 예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지난날 우리 종교인들이 조국의 번영과 평화를 위해 힘써온 역사가 있기에 종교에 대한 관심 역시 우리의 관심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각 종교 지도자들이 이와 같은 사항에 대해서 함께 논의하고 토의할 수 있는 기구나 채널이 있다면 효율적이고 지속적인 사업을 보장하고 이를 토대로 서로간의 평화적인 통일작업들이 진행되는데 크게 공헌할 수 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지난 3.1절 때 북조선 종교대표자들이 서울을 방문하여 종교지도자들로서 조국의 평화통일과 화해협력방안을 함께 토의하고 추진하기로 결정한 일은 매우 역사적이고 의미있는 일입니다.

셋째는 우리 종교인들이 조국의 정부와 미국정부 나아가 이웃 국가들을 설득하고 대화하는 일에 나서는 것입니다. 현실 정치무대에 넘나드는 일은 본시 종교인들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있을 수 있지만 정치도 결국 인간이 하는 일이며 그 결과가 우리 민족의 현실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종교인의 메시지나 노력이, 전쟁을 지지하기도 하는 현실 속에서, 평화와 합의를 요구하고 지지할 수 있는 힘이 또한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북미지역에 삶의 근거를 두고 있는 우리 미주지역 종교인들의 역할은 우리의 정부인 미행정부에 실제적이고 법적인 요청과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위치에 서있는 것입니다. 동시에 남한 정부와 북한 정부에도 매우 균형있는 제안을 할 수 있는 위치라는 점에서 우리의 책임과 영향력이 자못 크다고 하겠습니다.

현 미국 부시행정부에 대해서는 무력에 의한 한반도문제의 해결자세를 속히 포기하고 1994년 북미간 제네바협정의 정신을 존중하여 다시 합의와 대화를 통한 정책으로 선회할 것을 강력히 권고해야 합니다. 현재 행정부의 정책은 북미간 강경파들의 목소리와 영향력만을 강화시켜 정쟁이외의 해결책에 대한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평화를 바라는 미국 내의 양심 있는 이웃들과 호흡을 맞추어 미국의 대북시책이 평화적인 방향으로 바뀌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마틴루터 킹을 만들어 낸 인권의 나라이기에 우리의 뜻을 이해하고 도울 수 있는 이들이 많을 것을 확신합니다. 북폭을 통해 한반도의 전쟁을 유도하여 남한의 미국 의존을 높이고 무력을 통한 북한체제의 전복을 시도하려는 강경파들의 일체의 계획이 포기되도록 다양한 통로를 통해 권고해야 합니다. 그러한 시도는 결코 성공할 수 없고 도리어 중국 등 인접 국가들의 한반도 참전을 불러 우리 민족에게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동족상잔의 비극만 남긴 채, 어렵사리 민족 스스로 이루어온 모든 합의와 통일의 노력들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지울 수 없는 분단의 골을 더욱 깊게 패인 채 영구분단이라는 세계사의 비극의 주인공이 될 것을 심히 염려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조국의 양정부에도 의심과 불신의 자세를 내려놓고 민족의 운명과 미래를 위해 건설적이고 적극적인 합의와 교류의 노력들을 더욱 광범위하게 추진할 것을 요구해야 할 것입니다. 어느 곳에나 평화론자와 전쟁론자가 공존합니다. 따라서 평화는 침묵과 무관심이 아닌 적극적인 참여와 수고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국익과 보복을 명분으로 전쟁을 통해 자기 뜻을 성취하려는 사람들 앞에서 회피와 침묵이 평화를 지키는 자의 답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평화가 전쟁보다 더 큰 이익이 돌아온다는 것을 모두에게 설득하는 것은 생명에 대한 자비를 가르치는 우리 종교인들의 사명인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들의 노력을 계속해 나갈 때 머지않아 우리 조국이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루는 날이 반드시 오리라고 믿습니다.

끝으로, 미주평불협회가 이처럼 중요한 시기에 이와 같이 귀한 종교인학술대회의 자리를 마련하여 조국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값진 의견들이 도출되고 형성될 수 있도록 준비해 주신 것에 대해 특별히 감사를 드립니다.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