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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글올린 게시글: 2017-05-08, (월) 4:39 am 

가입일: 2015-05-11, (월) 8:22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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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구축과 전 민족의 화해 협력방안 모색
주최: 한반도통일연구회 주최 제4차 국제학술대회
일자: 1998년 8월 5일 ~ 8월 7일
장소: 오스트리아 비엔나
제1분과: 민족의 화해, 단합과 조국통일
<발표: 김도안 미주평불협 회장>

인류는 평화와 발전이라는 세계적인 물결을 타고 어느덧 21세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우리들이 생활하고 있는 현대사회는 인류사회에서 미증유의 격변의 시기로서 정치의 다원화 경제의 시장화, 사상의 자유화가 그 주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세계적인 조류 속에서 지나온 20세기가 남긴 이념, 체제, 가치관에 의한 대립과 갈등은 해빙기를 맞아 하나하나 풀려가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냉전체제의 최대 유산이며 우리 민족의 숙원인 조국의 통일과 민족의 화해를 위한 협력 방안을 논의한다는 것은 우리의 현실 상황에서 그 의미가 가장 큰 핵심사항이라고 여겨진다.

남북분단이라는 엄연한 현실은 우리들의 냉철한 사고와 현명한 노력을 기다리고 있다. 그 중에서도 통일에 관한 현실적인 제반 문제를 자각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지혜를 모아 실천의 이론적 토대를 구축하는 작업이 시급하다 할 수 있다.
본문에서 필자는 종교차원에서, 특히 불교철학의 시각에서 남과 북, 북과 남이 하나 되는 통일의 구축과 민족의 화해를 위한 소견을 밝히고자 한다.


1. 불교의 융화사상으로 본 민족의 화해 협력 방안

민족 화해를 위해서는 신뢰를 위해 정해진 협약은 지켜야 한다.
(1) 동계화경(同戒和敬) - (같이 계품을 가지고 서로 화동 예경한다)
남북한은 정치회담에서 7.4공동선언을 채택하고 남북한 기본 합의서에 서명하였으며 부속합의서도 일부 합의를 하였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합의를 지키지 못하고 있다.
(2) 동견화경(同見和敬) _ (같이 견해를 가지고 서로 화동 예경한다)
남은 파란 안경, 북은 빨간 안경을 쓰고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고 누가 불경하고 있는가? 남과 북은 동질성 회복을 위한 일에 소극적이며 사물을 보는 시각의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3) 동행화경(同行和敬) _ (같이 행을 닦아 서로 화동 예경한다)
남북 간에 어떤 사업을 추진함에 있어서 서로 이질화의 길을 걸어가고 있으면서 누가 불경하고 있는가?
(4) 경신자화(敬信慈和) - (자비심이 있는 행동으로 서로 화동 예경한다)
남은 북을 원수처럼, 북은 남을 짐승처럼 보고 있지는 않는가?
(5) 구자화동(口慈和同) _ (자비심이 있는 말로 서로 화동 예경한다)
남북한에 좋은 말을 사용하지 않고 상호비방, 중상모략, 허위날조를 통한 흑색선전을 하고 있지 아니한가?
(6) 의자화경(意慈和敬) _ (자비심이 있는 마음으로 서로 화동 예경한다)
식량위기를 맞는 북의 동포를 자비심으로 지원할 생각을 않고, 조건부 지원이나 국제 여론에 의해 성의표시를 하지는 않았는지, 한편 받는 입장에서는 국제사회에 현재 상황을 왜 홍보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인지.
이상의 내용들은 불교 육화경을 통해 본 남북한 화해 협력이 잘되지 않고 있는 점을 조명한 것이다.

2. 원효의 화쟁이론

우리 민족이 낳은 신라시대 대 사상가 원효 스님(7세기경 617~686년)께서는 분쟁을 종식시키는 화쟁론(和諍論)을 제창하였다.
원효가 생활하였던 삼국사기는 불교의 전성기임과 동시에 정치적으로 삼국통일의 역사적 사명을 지닌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불설에 대한 이해에 대한 논의 분쟁도 허다하였고, 정치적 견해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도 심하였다. 그러므로 이 시대는 통일철학을 요구하였고 원효는 백가의 이론을 화해시켜 화쟁이라는 지고한 이론을 정립하기에 이른다. 원효는 수많은 저술을 남겼는데, 그 중에서도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 2권을 남겼다. 이는 그의 대표작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당나라와 일본에 유포되었고, 또한 당나라에 왔던 진나문도(陳那門徒)에 의하여 천축(天竺)에까지 전해졌다고 한다.

서동화상 비문에서는 십문화쟁론을 종합하여 간략히 기술한 바 있다. 십문화쟁론은 부처가 세상에 계실 때에는 원음(圓音)에 의지하였으나 부처가 열반한 후에는 부질없는 공론(空論)이 구름처럼 분분하였다. 혹자는 나는 옳은데 다른 사람은 그르다 하였고, 혹자는 자신의 설은 그럴 듯 하다 하고 타인의 설은 다 그르다 비난하게 되어 각기 다른 이론(異論)이 여러 골짜기에서 내려오는 강물과도 같이 지류를 이루었다. 원효는 이를 융통시켜 서술하여 그 이름을 십문화쟁론이라 하였다. 그 때 이를 칭송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대각국사 의천은 이를 가리켜 백가지 이론의 극단을 중지시키고 가장 일대의 공론을 정립시킨 대 논사라고 크게 치켜세웠다.
아래에 화쟁사상의 전형적인 몇 가지 예를 소개 드리고자 한다. 원효는 보살계본 지범요기(菩薩戒本 持犯要記)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들은 바 좁은 견해만 내세워 그 견해에 동조하면 좋다하고 그 견해에 반대하면 잘못이라고 한다. 이런 사람들은 마치 갈대 구멍으로 하늘을 보는 것과 같아서, 갈대 구멍으로 하늘을 보면 좋다고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하늘을 보지 못한 자라고 말한다.
또한 원효는 세상의 이치는 하나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서로 다르기만 한 것도 아니라고 지적한다. 곧 비일비이(非一非二)인 것이다. 그는 열반경 종요에서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하나가 아니기에 능히 모든 방면이 다 합당하고 다르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방면이 하나로 통한다.
그는 그러한 인식의 근거를 불도의 기본속성에서 찾고 있다. 불도는 깊고 광활하여 걸림이 없고 범주도 없다. 영원히 의지하는 바가 없기에 타당하지 않음이 없다. 그렇기에 일체의 다른 교의가 모두 다 불교의 뜻이요, 백가의 설이 옳지 않음이 없으며, 팔만의 법문이 모두 이치에 들어간다.(보살계본 지범요기 한국불교전서 1권-p.583).
원효는 이러한 논리에 입각하여 백가의 화재에 직접 뛰어든다. 그의 대승기신론소는 화쟁사상을 도입한 대표적 저술이다. 대승기신론은 세우지 않는 것이 없으며 또한 깨뜨리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런데 중관론이나 12분론과 같은 것들은 모두 집착을 두루 깨뜨리며 또한 깨뜨린 것도 깨뜨리되, 깨뜨린 것과 깨뜨림을 당한 것을 다시 인정하지 않으니, 이것을 보내기만 하고 두루 미치지 않는 논(論)이라 할 수 있다. 또 유가론과 섭대승론에서는 깊고 얕은 이론들을 다 세워 법문을 판별하였는데, 스스로 세운 법을 모두 버리지 아니하였음으로 이것을 주기만 하고 빼앗지 않는 논(論)이라 한다.
이제 이 기신론은 지혜롭기도 하고 어질기도 하며 깊기도 하고 넓기도 하여 세우지 않는 바가 없으면서 스스로 버리고 깨뜨리지 않는 바 없으면서 도리어 인정한다. 인정한다는 것은 저 가는 자가 가는 것이 다하여 두루 세움을 나타내며, 스스로 버린다는 것은 저 주는 자가 주는 것을 다하여 빼앗는 것을 밝힌 것이니, 이것을 모든 논의 조종(祖宗)이며 모든 쟁론을 평정시키는 주인이라 하겠다.
원효의 화쟁론 중심 내용을 살펴보면 심성 자체를 허공처럼 맑게 가져 어떠한 시비대상이 자기 앞에 닥치더라도 물들지 말고 무념의 세계로 들어가 융통무애하여 크기는 허공처럼 하고 맑기는 큰 바다와 같이 하라고 가르친다. 허공과 같기에 그 체가 평등하여 차별사이가 없거늘, 맑고 더러운 것이 어찌 따로 있겠으며 큰 바다와 같기에 그 성이 윤활하여 인연을 쫓아 거슬릴 수 없거늘 어찌 움직일 때와 고요할 때가 달리 있다 하겠는가?(한국불교전서 1권 p544 금강삼매경론)
곧 무념을 얻으면 대립된 상대방과 평등하여지며 더불어 초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원효의 이 같은 회통원융(會通圓融)의 입장에서 출발한 상대적인 인식론과 일체를 초월하는 논증방식은 보편적인 가치를 지녀 화쟁철학으로 정립된다. 화쟁철학을 오늘날 흔히 쓰는 표현을 빌린다면 다음과 같이 개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이상과 현실, 목적과 수단이 고도로 통일된 세계관이며 방법론이 된다고 보겠다.

3. 통일의 세계관, 통일의 방법론

오늘날 원효사상의 연구에 있어 원효가 염두에 두었던 화쟁의 대상을 불교 교학의 범주에 한정하지 않고 세상이 모든 대립과 시비 분쟁을 화해하는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일반화되어 있다. 이는 화쟁사상이 현 사회가 안고 있는 제반 갈등, 더욱이 한반도 통일을 위한 화해 사상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시사하고 있다.

(1) 믿음에 대하여
조국의 통일은 우리 민족의 공통된 염원 또한 우리 민족의 현시점에서의 최고의 목표이기도 하다. 통일을 이룩하려면 먼저 통일에 대하여 크고 깊은 믿음을 일으켜야 할 것이다. 화엄경에서는 믿음은 모든 공덕의 어머니라고 하였다. 원효는 그의 대승기신론소에서, 대승기신론은 모든 논의 총체가 되며, 기신론은 그의 능력과 힘이 가장 큰 도리라고 하였다. 통일을 대승에 비유한다면 기신론이야말로 통일을 이룩하는 근본 보장이라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믿음은 어디에서 어떻게 발생하는 것인가?
원효에 따르면 모든 문제는 마음의 문제라는 것이다. 즉 마음속에는 진여가 내재되어 있는가 하면 생멸도 내재되어 있어 갖은 현상이 일어난다. 대승기신론에 따르면 심 진여(心 眞如)란 법계 대총상(法界 大總相)의 체(體)이니, 이른바 심성이 생기지 않고 소멸하지도 않지만, 일체의 모든 법이 오직 망념에 의하여 차별이 있으니, 만약에 망념을 여의면 일체의 경계의 상이 없어질 것이다. 결국은 평등하게 되고 변하거나 달라진 것도 없으며 파괴될 수도 없는 것이어서 오직 일심법이어서 진여라고 이름한다.
우리는 흔히 기존의 이념과 가치관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야말로 현 사회의 모순과 갈등을 초래하는 시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망념을 없애기 위해서는 마음의 도리를 알고 깨쳐 우리들의 통일에 대한 믿음을 깊이하고 넓혀 나가야만 한다. 이때야만이 차별은 사라지고 갈등은 해소되며 대립적 존재를 사랑할 수 있게 되고 더불어 승화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마음이 분열을 초래하기에 마음의 통일이 앞서야만 세계의 통일도 가능함을 시사하고 있다 할 것이다. 이런 이치에서 원효가 제시하는 통일과 화해 협력은 넉넉한 마음(진리에 대한 깨달음)과 따뜻한 마음(민족에 대한 사랑)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마음의 깊이에서 일으키는 믿음이야말로 통일과 민족 화해에 따른 힘의 원천이 될 것이다.

(2) 정치체제의 대립에 대하여
오늘날 유행하고 있는 통일론을 살펴보면 대체로 정치체제의 대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근 48년간 북은 사회주의, 남은 자본주의 체제일 뿐만 아니라 남과 북은 각자의 이념과 가치관을 고집하면서 상호 비난하여 온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들이 한 마음에서 출발한다면, 즉 넉넉한 마음과 따뜻한 마음에서 출발한다면 이념의 대립으로 인한 망념은 쉽게 자취를 감출 것이다.
원효는 그의 화쟁론에서 양극단을 떠나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통일과 화해의 첫 단계는 먼저 변(邊)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변이란 집착을 떠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양변에 대한 긍정이요, 다른 하나는 양변에 대한 부정이다. 양측이 진리에 대한 편면적인 인식에 집착함이 싸움의 근원이라 할 때, 우리는 양측을 모두 부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비록 편면적이기는 하나 진리를 지향하고 통일을 지향한다고 할 때 양변은 긍정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양 긍정과 양 부정의 과정에서 우리들의 인식은 새로운 단계로 승화되며, 이것도 저것도 아닌 가운데에 이른다. 또 이러한 가운데까지 부정하였을 때 우리는 무애의 경지에 이르게 되며, 정치통일은 자연스러이 이루어지는 거이 아닐까?

(3) 경제협력과 문화교류에 대하여
앞에서 우리는 원효의 화쟁논리에 입각하여 통일과 민족화해에 대한 좋은 신념과 정치체제의 대립을 초월할 때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원효의 화쟁논리에는 긍정과 부정의 논리 외에, 대립된 상황을 타개하여 공동 발전하는 방법으로 상호 접촉에 의하여 상대방의 장점을 취하여 자신의 단점을 보완하고 대립된 상대와 더불어 초월하는 논리도 있다. 사실상 이러한 사상은 인류 사유의 보편적인 인식 방식중의 하나로서, 인류 문명의 발전사 역시 상호 교류와 학습을 통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원효의 화쟁사상은 바로 이러한 보편적인 사유 방식에 대한 역사적, 현실적 이론의 총화이며 철학적 승화라 할 수 있다. 오늘날 남북의 현실은 어떠한가? 정치인들이 이념의 대립을 고집하여 모든 교류가 유보 또는 중단되어 있다. 인류 발전사와 기본적인 인도주의 시각에서 볼 때 이는 분명 통일을 저해하는 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세계경제의 흐름은 국경도 초월한지 오래다. 노동자, 금융자본, 경영방식 등 경제 기본요소는 인류 공유의 자산으로 활용되고 있다. 또한 남과 북이 각각 IMF체제와 식량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태에서 더욱이 오늘날 정치인들의 작태의 심각성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문화교류 또한 절실하다. 문화교류야말로 남북한의 민족의 동질성 확인과 회복 및 미족 정체성 구축을 가능케 한다. 경제협력과 문화교류는 통일과 화해협력을 이룩하는 기초 작업으로서 남북한 정신문명과 물질문명의 보완체재를 구축하여 민족문화의 건전한 발전과 더불어 경제입국을 실현하는 보장이 될 것이요, 나아가서 통일입국을 달성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4. 맺는 말

우리의 소원인 통일은 복잡하고도 극히 어려운 종합적인 긍정이다. 어렵기에 우리들의 지성어린 노력과 지혜의 집결이 필요하다. 본문에서 원효의 화쟁철학에 입각하여 남북통일과 화해협력에 관한 문제를 몇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우리들의 통일에 대한 확고부동한 신념은 통일의 원동력이 될 것이요, 화쟁사상은 통일의 세계관과 화해의 방법론이 되어 이념의 장벽을 넘도 경제협력의 길을 열며 문화 동질성 확인과 회복의 커다란 공헌을 할 것이며, 나아가서는 통일조국의 철학이 될 것으로 믿어마지 않는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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