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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2015-05-11, (월) 8:22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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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 남북공동선언 성과와 향후 극복하여야 할 과제
주최: 한반도통일연구회 제8차 국제통일학술대회
일자: 2002년 7월 26일~7월29일
장소: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제4분과: 6.15 공동선언과 조국통일
(발표: 김도안 관음사 주지, 한통연 통일분과위원장)

1. 6.15 선언의 의의

분단 55년 만에 남과 북의 최고 통치자(당국자)가 만나 한반도의 평화적인 정치현안을 대화를 통하여 논의했다는 점에서 그 자체만으로도 남과 북의 분단사에 새로운 획을 긋는 역사적인 사건이었다고 할 것이다.
또한 남과 북이 상호 체제인정을 바탕으로 한반도 평화와 통일문제를 대화를 통하여 해결하고자 함으로서 남북 간의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의 계기를 이끌어 내고 동북아시아의 안정과 평화에도 기여하였다고 볼 것이다.
아울러 이산가족을 비롯한 인도적인 문제해결 및 경제,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 걸친 교류와 협력을 활성화함은 물론, 민족의 동질성 회복과 공동번영을 위한 기틀을 마련한 것이 무엇보다 그 의의가 크다고 할 것이다.

2. 6.15 선언의 배경적인 성과

(1) 통일문제의 자주적 해결
통일문제는 우리 민족의 운명과 관련된 것으로 당연히 그 운명의 주인인 우리 겨레가 자주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고 보았다. 그것은 남과 북이 당사자 해결원칙에 따라 반드시 대화를 통하여 평화적으로 해결하여야 하며, 이는 7.4남북공동성명(1972)과 남북기본합의서(1991)에서도 확인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자주란 외세 배격과 같은 닫힌 개념이 아니라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에 바탕 하는 열린 개념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지적되고 있는 한반도 통일문제는 민족이 문제이면서도 또한 전쟁 당사자와 그리고 휴전협정을 조인한 미국과 북한 그리고 주변 4강의 이해관계로 인하여 떼어버릴 수 없는 문제의 이중성이 감안되었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합의는 우리 민족의 장래문제를 남북의 당사자가 스스로 풀어가되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얻기 위하여 노력하겠다는 의지가 표명되었다고 보여 진다.

(2) 통일 방안의 공통성 인정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의 공통성을 인정하고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키로 한 것은 남과 북이 통일 방안이나 통일의 최종목표에 대해 합의한 것이 아니라 상호체제를 인정하고 화해 협력과 평화로서 공존하자는 것이며 이러한 과정을 거쳐 점진적, 단계적으로 통일을 실현해 나갈 것에 합의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동안 북한은 ‘연방제’ 안을 통해 당장 완성된 형태의 통일국가 형성을 주장해 왔으나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언급함으로써 사실상 단계적인 통일방안인 남측의 ‘연합제’ 안에 접근해 왔다고 보여 진다.
곧 2체제 2정부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외교권과 군사권을 갖는 연방(중앙)정부를 구성하는 것이 비현실적임을 인정하고 남과 북이 현재와 같이 외교권과 군사권을 갖고 화해 협력과 평화정착을 위해 협력 기구로 구성하자는 남북연합구상에 접근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면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두 방안 모두 통일의 형태가 아니라 통일 준비과정의 단계를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진다. 즉 통일의 모습이 아니라 통일과 통합을 준비해 나가는 접근방법을 제시한 것으로서 두 방안 모두 2체제 2정부를 유지하면서 2정부 간에 협력 체제를 인정하고 있고 남북 정부가 정치, 군사, 외교권을 각각 갖고 협력기구를 운영해 나간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으면 먼저 교류 협력과 정치, 군사, 경제, 사회 등 각 분야별 대화를 통해 통일의 기반을 넓혀간다는 방안으로 둘 다 기능주의적 접근방식을 채택하고 있다고 하겠다.

(3) 이산가족 상봉 등 인도적 문제 해결
분단과 전쟁과정에서 남과 북으로 갈라진 이산가족들이 서로의 생사조차 알지 못한 채 헤어져 살아온 것은 민족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이산 1세대가 점차 노령화되고 유명을 달리함에 따라 이는 시급히 해결하여야 할 과제로 되어 있어 남북의 양 정상은 이와 같은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해 상호 방문단을 교환하기로 합의함으로써 남북 정상회담 이후 총 4차례 4,500여명의 이사가족 상봉과 1만 여명이 넘는 생존자 확인이 이루어지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는 1985년 남북 각기 40여명의 가족이 상봉한 이래 15년 만에 이루어 낸 대규모의 상봉이라 하겠다.
여기서 남북의 이산가족의 현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945년 분단과 1950년 전쟁으로 인하여 남북 분단이 고착되면서 이산가족이 발생, 1953년 휴전 이후에도 월북, 탈북, 월남 등으로 가족 이산은 계속 증가하여 1천만 이산가족 중 작고한 가족을 제외하고 2000년 말 기준으로 남한 내에 이산 1세대는 123만명이 된다고 하며 그 중 60세 이상은 69만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통일부와 대한적십자사에 남북 이산가족 찾기 신청자는 2000년 말 기준으로 약 11만4천명이 접수되어 있다고 한다.
아직도 해외 동포는 이산가족의 숫자에 추가되고 있지 않으나 수십만이 넘는 이산가족들이 있다고 보여 지며 또한 그들은 생사확인도 모르고 있으며 가족 상봉의 기회가 오기를 고대하고 있다. 이는 남북의 인도적 해결이 이루어지는 날 큰 성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또한 해외에서도 거주국과 한반도 두 정부간에 외교통상 조약이 이루어져 상호방문과 가족상봉도 그 맥락에서 성사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편 남측 정부는 납북자 국군포로 문제의 해결도 북측에 촉구하고 있으며 북측도 비슷한 요구사항을 제시하고 있다고 듣고 있다. 이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기 이전이라도 넓은 의미의 이산가족 상봉사업 추진에 추가 포함시켜 서신교환 등의 기회를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4)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다양한 교류 활성화
남북한 경제 협력은 남측의 자본과 기술 그리고 북측의 노동력을 상호 결합시켜 호혜적인 경제적 이익을 창출함으로써 민족경제의 균형적인 발전을 기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남측이 북한에 대해 철도, 도로, 항만, 통신, 전력 등 사회간접 자본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해 나갈 경우 남측 내부에 머물렀던 경제규모는 한반도 전체 차원에서 확산되는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보여 진다.
이에 따라 남과 북은 경의선 철도 및 도로 연결, 개성공단 개발, 임진각 수해방지 사업, 금강산 관광사업 활성화 등을 협의하게 되었고 경협관련 4개 합의서를 채택한 바 있다.
또한 사회, 문화, 체육 등 제반 분야에서 협력과 교류 활성화는 상호간의 이해와 신뢰감을 증진시킴으로써 민족 동질성을 회복하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미 2000년과 2001년에 걸쳐 학술, 문화, 예술, 체육, 종교, 언론, 출판 등 다양한 분야에서 4,300여명(2,900여건)의 남북 접촉이 성사되는 쾌거를 올렸다.

(5) 당국회담 개최와 김정일 위원장 답방
남북의 정상들은 남북한 합의가 반드시 실천되어야 하며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에 밝힌 바 있다. 따라서 남과 북은 양 정상이 합의한 내용을 조속히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당국간 대화를 개최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에 따라 남북 장관급 회담(6회)을 중심 협의체로 하여 남북 국방장관회담, 경제협력추진위원회, 남북 적십자회담, 금강산 당국회담 등 분야별 회담이 21차례 개최되어 실질적인 협력문제를 협의한 바 있다. 또한 남측 문화부장관 방북회담(2001년 3월), 대통령 특사 방북회담(2002년 4월)이 개최된 바 있다.
한편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겠다고 약속하였으므로 이는 적절한 시기에 실현될 것으로 보여 진다. 그 시기는 남북 쌍방이 협의하여 정하게 될 것이나 최근 남측의 정당간의 정쟁과 북측의 군사적 도발로 인하여 김대중 대통령의 재임시에 실현될 것인가는 불투명하다고 보여 진다.
이와 같이 6.15 공동선언의 그 배경적 성과와 그 의미는 크다고 아니할 수 없고 분단 55년만에 처음으로 남북의 정상간에 직접 합의, 서명함으로써 향후 남북관계를 규율하는 규범력을 갖고 있다고 할 것이다.
또한, 향후 한반도 문제에 대하여 당사자 해결의 원칙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남북의 통일을 미래적 과제로 두고 우선은 평화 공존단계의 필요성에 대해 인식을 같이 하였다고 보여 지며 남측이 추진하고 있는 화해 협력정책의 당면 과제인 이산가족 문제나 남북교류협력의 확대 등에 대한 실천사항도 그 이면에 담겨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북측도 지금까지 일관성 있게 ‘6.15 남북공동선언’의 이행 의지를 표명하고 있어 공동선언은 앞으로도 남북관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중요한 디딤돌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3. 6.15 정상회담 이후 실천에 따른 남북한의 성과와 변화

(1) 긴장 완화와 평화 정착
남북정상회담 이후 휴전선에서 비방, 중상이 중지되고 무장간첩 침투사건이 사라지는 등 과거에 비하여 남북간 긴장이 현저히 완화되었다고 보여 진다.
2000년 9월에는 분단사상 최초로 남북 국방장관 회담이 개최되어 남북한 긴장을 완화하며 한반도에서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를 이룩하여 전쟁위협을 제거하는데 노력하였다고 생각된다.
군사분계선을 통과하는 경의선 철도 및 도로 연결로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과 군사적 신뢰구축의 계기가 마련되었으며 경의선 비무장지대의 공사관련 남북군사실무자회담이 5회에 걸쳐 개최되었고 군사보장 합의서가 타결되기도 하였다.
2002년 들어서 9.11 테러 및 미국의 반 테러전쟁으로 인한 긴박한 국제정세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는 안정과 평온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한편 남북의 군사적 대결구도에 있어서 도발보다는 방어태세(자주국방력), 즉 남측의 경우 한미연합의 전쟁억제를 강화하고 북측의 경우 감시체제를 강화하는 등 상호 도발적 행동에 적극적인 대응을 견지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2002년 6월 29일 연평도 해협의 도발 사태는 그 배경에 있어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남북의 어선들의 월경 어로획득을 보호하려는 경제적 이익추구의 차원에서 발생되지 않았는가 하는 견해도 생각 할 수 있다.

(2) 남북 경제공동체 토대 구축
남북 경제협력은 남북 모두에게 실질적인 이익을 제공하고 민족의 복리를 도모해 나갈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된다.
당국 차원에서는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남북경제공동체 건설을 위해 철도와 도로의 연결 등 인프라 구축과 4대 경협합의서 타결 등 제도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또한 민간차원의 경제 협력사업과 교역이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으며 개성공단 개발사업도 추진되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개최된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 서울과 신의주 간의 철도(경의선) 연결과 문산과 개성간의 도로개설에 있어서도 (2000년 9월 1일) 합의하였다.
남측은 2000년 9월 18일 경의선 철도 및 도로 착공식을 갖고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 이남지역 공사를 진행하여 2001년도 말에 철도 및 도로공사를 완료하였다. 2002년 2월 12일 설날에 새로 완공된 임진각역과 도라산역 구간 망배열차를 첫 운행, 2002년 5월 경의선 열차가 1일 2회 도라산역까지 운행되고 있다.
한미 정상은 도라산역을 방문하여 북한이 대화에 호응해 주기를 촉구한 바 있다.(2002년 2월 20일)
그러나 비무장지대의 공사는 남북한 군사보장합의서가 발효되지 않아 아직 착수하지 못하고 있으며(철도, 도로, 군사보장합의서 2001. 2. 8. 타결) 북측이 아직까지 발효를 지연하고 있는 실정이다.
2002년 4월 임동원 대통령 특사 방북시, 북한은 경의선 철도의 조속한 연결에는 동의하면서도 구체적인 연결시기를 밝히지 않음으로써 내부입장이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비무장지대의 공사 소요시간은 철도는 3개월, 도로는 6개월이므로 향후 남북한 군사보장합의서가 발효 되는대로 공사를 계속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시베리아 횡단철도(TSR) 및 중국 횡단철도(YCR)의 연결과 동해선 연결에도 관심을 표명한 바 있다.
김정일 위원장 2002년 2월 16일 러시아 대사관 방문시와 2002년 2월 10일 러시아 대통령 전권대표 면담시 각각 시베리아 철도연결 문제를 언급하였으며 2002년 4월 임동원 대통령 특사 면담시에도 동해선 철도연결 문제를 언급한 바가 있기도 하다.
동해선 철도는 남북한이 연결해야 할 구간이 길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과제이며 우선 금강산 관광을 위한 동해안 육로개설이 더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추진한 가시적인 성과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개성공단 개발
2000년 8월 현대와 북한간에 개성공단 건설에 합의하고 2000년 12월 현대와 토지공사에 의해 현지조사가 완료되었으며 2000년 12월 현대측은 개성공단 지역에 대한 특별법인인 ‘국제 자유경제지대 기본법(안)’을 북측에 전달하였는바 이는 북측이 개성공단 설립에 필요한 법률 제정에 참고하기 위해 현대측에 요청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
2001년 1월 30일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를 통해 남과 북은 개성공단 건설을 위한 실무협의회를 구성 합의하였으나 현재 남북관계가 소강상태에 있는데다가 북측이 개성공단 건설과 관련된 특별법을 제정하지 않고 있어 착공이 지연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남측은 개성공단 내에서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보장되고 국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북한측에 임금, 고용, 토지임대, 세제, 송금 등과 관련된 법제를 조속히 제정하도록 요구 중에 있다고 듣고 있다.

<개성공단 건설 사업 개요>
*위치 : 개성직할시 개성시 및 판문군 평화리 일대
*면적 : 총 2,000만평(공단 800만평, 배후도시 1,200만평)
*효과 : 16만명의 고용과 연간 200억불 수출효과 예상
*소요기간 : 3단계에 걸쳐 8년간 단계적으로 개발(1단계 100만평, 1년 소요)

개성공단에서 남쪽의 기술력과 자본, 북쪽의 노동력이 결합된 제품이 생산된다면 남측의 중소기업 특히 신발이나 섬유 등 사양산업이 활로를 찾고 국제 경쟁력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보고 있다.

② 임진강 공동수해방지 사업
남측은 임진강 공동수해방지 사업을 북측에 촉구하여 2000년 9월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임진강 공동수해 방지사업에 합의를 하였으며 2001년 2월에 평양에서 임진강수해방지 실무협의가 개최되어 임진강 유역에 대한 남북공동조사연구단 구성과 조사대상, 조사방법 등에 대해 상당한 의견접근을 하였다고 한다.
앞으로 공동조사 결과에 따라 임진강 주변지역의 강수량, 하천수위 등 수방대책을 위한 정보교환과 홍수 예보체계의 구축, 하천정비 제방축조 사업 등이 단계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것이며 임진각 수해방지사업은 남북이 함께하는 치수사업으로서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에 기여할 뿐 아니라 남북이 함께 잘사는 터전을 만드는데 의미가 있다고 본다.
한편, 최근에 북한의 금강산댐(임남댐) 안전문제가 제기되면서 임진강뿐만 아니라 북한강 유역에 대한 공동대책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③ 경협관련 4개 합의서 채택
남북경협의 법적 제도적 장치마련을 위해 남과 북은 남북경협 실무접촉에서 투자보장, 이중과세 방지, 청산결제, 상사분쟁 해결 등 4개 경협 합의서(2000. 11. 11)를 채택하여 남북 경제교류 협력을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었으나 아직까지 발효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④ 남북간 인적 왕래 및 물적 교류의 급증
남북정상 회담 이후 지난 2년간(2000. 6 ~ 2002. 4) 남북한 인적왕래가 급증, 금강산 관광객을 제외하고도 17,838명이 남북을 왕래하였고 89년부터 2002년 4월까지 13년간 총 왕래인원은 북한 방문이 30,248명 남한 방문 1,534명이며 그 중 지난 2년 동안의 왕래인원이 56%를 차지하고 있다.
남북의 교역액은 2000년, 2001년도에 각각 4억 달러를 기록함으로써 1999년의 3억 달러 대비 무려 25%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위탁가공 교역액도 2000년도에 1억 3천만 달러 2001년도에 1억 2천 5백만 달러에 이르며 1999년의 1억 달러 대비 25 ~ 30%의 증가추세에 있으며 위탁가공에 참여하는 업체와 품목도 남북정상회담 이후 꾸준히 증가추세에 있다.

(3) 언론, 문화, 종교 분야 등의 교류
남북정상회담에서 사회, 문화, 체육, 보건 등 제반분야의 협력과 교류활성화를 합의한 이래 다양한 교류가 이루어졌다. 언론 분야에는 2000년에 언론 사장단 방북(8월), KBS의 백두산 현지 생방송(9월), SBS의 평양 현지 생방송(10월)이 각각 이루어졌으며 2001년에는 MBC의 방북 취재 및 현지 생방송(3월), 스웨덴 페르손 총리 방북시 남측 기자단 동행취재(5월), 정상회담 1주년에 즈음한 KBS의 방북취재(5월 ~ 6월)가 각각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문화 분야에서는 2000년에 남북교향악단 서울합동연주회가 열렸으며(8월), 영화[공동경비구역JSA]필름을 북측에 전달하였고 2001년에 남측 창극단 [춘향전]이 평양에서 공연(2월)되고 대중가수 김연자가 함흥에서 공연(4월)을 하였으며 이영희의 민족 옷 전시회와 패션쇼(6월)가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또한 동해대학과 조선기자 동맹은 남북 공동사진전 [백두에서 한라까지]를 서울과 평양에서 2001년 6월 8일에 각각 개최한바 있다.
종교분야에서는 2000년에 부활절 남북 연합예배, 남북 불교도 8.15동시법회 행사와 2001년은 부처님오신날 남북 동시법회 행사가 개최되기도 하였다.
한편, 2001년 5월 노동절 행사에 6.15민족통일 대 토론회, 7월 남북농민통일대회, 8.15기념행사 등이 민간차원에서 남북 공동으로 개최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민간차원의 남북 공동행사에 대규모 기자단이 동행 취재한 것은 과거와 달라진 모습으로 보여 지고 있다 하겠다.
이와 같은 사회, 문화 분야의 교류협력은 남북주민간의 상호이해의 폭을 넓히고 민족 동질성을 회복하는데 기여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4) 시드니 올림픽 남북공동 입장과 체육 분야 교류
2000년 9월 시드니 올림픽에서 남북선수단은 한반도기를 앞세우고 KOREA라는 이름으로 공동입장을 하였으며 국내 체육 분야에서도 남북교류가 이루어져 2000년에는 금강산에서 자동차 경주대회(7월), 전국체전성화 채화(9월), 평양에서의 통일탁구경기대회(7월)가 성사되었다.
2001년에는 남북 태권도 시범단 교환, 제46회 세계탁구선수권 대회 남북 단일팀 참가 등이 합의되었으나 북한 측 소극적인 자세로 최종단계에서 성사되지 못하였다.

(5) UN 등 국제무대에서의 협력
2000년 7월 방콕에서 개최된 아시안 지역 안보포럼(ARF) 각료회의를 계기로 남북 외무장관회담이 개최되었으며 2000년 10월 제55차 UN총회에서 남북정상회담과 6.15남북공동선언을 환영하는 “한반도 평화와 안전 및 통일”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채택되기도 하였고 2001년 4월 9일에는 UN 인권위원회에서 남북은 일본의 종군위안부 및 역사왜곡에 대하여 공동으로 항의하기도 하였다.

(6) 이산가족 고통해소
이산가족 문제의 해결은 가장 기본적인 인도주의 실천인 동시에 남북한 화해협력의 상징적인 징표라 할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에서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에 합의한 이후 네 차례에 걸친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을 통해 1차 1,170명 2차 1,220명 3차 1,240명 4차 850명 총 4,480명의 이산가족들이 상봉하였다.
1차부터 3차까지는 서울과 평양에서 4차는 북측의 요청에 의하여 금강산에서 상봉이 이루어졌다.
방문단 교환과 생사 주소확인을 통해 총 10,213명이 생사 및 주소를 확인하였으며 총 662건의 서신교환이 이루어졌다고 전한다.
앞으로 북측이 서울-평양간 상봉 사업에 부담을 안고 있는 관계로 상설 면회소가 동해선 육로 지점사이에 설치되는 것도 무방하다고 본다.

(7)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
대북지원은 인도적, 동포애적 차원에서 북한 동포를 돕는 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남북한 화해협력관계를 증진시키고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협을 감소시키는데 역할이 크다 할 것이다.
남측 정부는 만성적인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측에 대해 주로 식량과 비료 등을 지원함으로써 긴급구호와 농업생산성 향상에 중점을 두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측 정부의 대북지원은 연평균 8천3백만 달러로 이전의 연평균 5천만 달러에 비해 60%가 증가하였고 민간차원의 대북지원은 연평균 5천7백만 달러로 이전의 연평균 1천만 달러에 비해 5.7배가량이 증대되었다.
민간차원의 연평균 대북지원액이 5배 이상 급증한 것은 남북 화해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민간의 참여가 급증한 데 따른 것으로 평가된다.

4. 향후 진행되어야 할 과제

남과 북은 현재 중단되어 있는 남북대화 재개 여건을 만들어 가면서 기존 합의사항을 이행토록 주력하여야 할 것이다.
특사간 방북 방남시 합의한 경협추진위원회 개최 북측 경제사절단 남측 방한, 금강산 관광 활성화를 위한 당국회담 개최를 추진하여야 할 것이며 이를 토대로 경의선 철도 도로 연결과 개성공단 건설, 금강산 육로관광 실현, 군사적 신뢰구축, 이사가족 문제 해결 등 5대 과제를 상호간 주력하여야 할 것이다.
남북의 평화를 저해하는 남북의 법령을 개정 또는 폐기하고 군비축소를 위한 공동 군사조절위원회 같은 기구가 상설되어야 한다.

5. 남과 북이 극복하여야 할 과제

6.15공동선언 실천이행에 있어서 극복하여야 할 과제 중 가장 시급한 것은
첫째, 남과 북의 군사적 대결구도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일로서 군사 작전 통제와 상호 감시체제(군사공동위원회)를 상설하여 군사적 충돌을 막아야 한다.(불가침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문 1992. 2. 29 발효)
둘째, 남측 정부에서는 모처럼의 협력을 통한 남북대화의 진전과 발전을 위해서는 대북정책에 있어서 폭넓은 국민적 합의와 정당간의 협력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이제 대북사업 추진에 있어 여야 합의에 의한 남북회담 대표로 참가하였으면 한다.
셋째, 상호체제에서 겪은 피해를 입은 기억이 현존하는 상황에서 이데올로기와 결부된 남북 문제는 논란을 피할 수 없는 사안이다. 이러한 이념적 논의는 서로에 대한 충분한 입장을 개진하면서 화해와 용서, 사랑의 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한편, 논란이 극단화되거나 폭력화되는 사례를 방지하면서 대다수 국민이 동의할 수 있는 합의점을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19세기말 우리 민족의 국운이 일제에 의하여 좌초된 역사적 과오를 되풀이해서는 안될 것이다.

6. 맺는 말

남북분단 55년 만에 이루어 놓은 대화의 창구가 이대로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 앞으로 어느 정당, 어느 정권이 집권을 한다하더라도 남과 북의 평화체제 없이는 민족 번영은 기약할 수 없으며 남북의 공존공영의 협력 없이는 민족의 통일의 기반을 다지는 일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 민족은 남북사이의 갈등과 대립을 없애는 적극적인 평화가 필요하며 남북간 상호의존 구조가 정착될 때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가 도래할 것이다.
그러므로 남북관계 개선은 민족 전체의 명운을 결정짓는 중대한 요소임을 인식하고 우리 민족의 지속적인 번영을 보장받는 길은 화해협력을 통한 남북의 공조만이 미래 통일조국의 기반을 다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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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북한문제연구소 刊, [국민의 정부 대북 포용정책](2001년 12월 20일)
*한미교육연구원 刊(차종환 저), [통일정책과 민족교육](2002년 1월 10일)
*평화문제연구소 刊, [남북정상회담 2주년 해설자료](2002년 5월)
*평양출판사 刊, [김정일장군 조국통일연구](2002년 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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