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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글올린 게시글: 2017-09-06, (수) 4:29 am 

가입일: 2015-05-11, (월) 8:22 am
전체글: 119
속담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인류역사상 빛을 남긴 사람 중에 원효스님과 같은 인물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세계사적인 인물 중에 석가, 공자, 맹자, 예수와 같은 인물들은 종교적으로 빛을 남긴 사람들이다. 또한 콜럼버스나 뉴톤, 아인슈타인과 같은 분들은 인류문화사적인 측면에서 위대한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한국이 낳은 원효스님은 세계사적으로서 보나 문화사적으로 보아도 그분의 업적과 사상적 위상은 세계 어느 위인에 뒤떨어지지 않는 성사로 꼽을 수가 있겠다.
원효스님은 삼국간의 전쟁과 통일의 격변기였던 7세기에 살았으나 온갖 사슬과 속박으로부터 해방하였고 자유인이었으며 일백여부 이백사십여권의 저서를 남긴 세계적인 대저술가요 대학자였다.
스님의 성은 설씨로 신라 26대 진평왕 39년(서기617년) 현재의 경북 경산군 자인면 당시 압량군 불지촌에서 잉피공의 손자요 담내의 아들로 태어났다. 젊은 날에 관한 기록은 거의 없으나 (송 고승전)의 기록에 의해서 15세쯤 출가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자신의 살던 집을 초개사라는 절로 만들고 출가한 스님은 이후 젊은 시절을 구도의 열정으로 불태웠다. 타고난 천재성을 간직하고 있던 스님은 특정한 스승에 의존하지 않았으나 학문 범위는 불교학 전반에 걸쳐서 뿐만 아니라 유가서와 도가서에도 상당히 밝았음이 그의 저술에 나타나는 인용문을 통해 알 수 있다. 스님은 낭지, 보덕, 혜공, 대안스님 등으로부터 배운 적이 있다. 낭지는 스님으로 하여금 “초장관문”과 “안신사심론”을 저술토록 했으며 의상스님과 함께 보덕스님에게 “열반경”과 “유마경”을 배웠다. 특히 혜공과 대안스님으로부터는 무애행을 통한 대중교화와 거리의 교화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650년 진덕여왕 4년 34세의 스님은 진리의 벗 의상스님과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으나 실패했다. 45세(661년)때에 다시 시도했으나 남양만이 멀지 않은 적산의 한 무덤속에서 “마음 밖에 법이 없는데 어떻게 따로 구하겠는가”라고 깨달은 후 의상스님을 뒤로한채 돌아와 저술과 대중교화에 몰두하였다. 스님은 40세 전후시기에 요석공주와 결혼을 했고 설총을 낳았다. 계를 잃은 후에 승복을 벗고 스스로 소성거사라고 부르며 천촌만락을 돌아다녔지만 이때부터 스님의 행동은 계율행 즉 무애행 그 자체였던 것이다. 스님은 교화 못지않게 학문연구에 전력, 671년 해명사에서 “판비량론”을 저술한 것을 비롯해 분황사에서 지은 “화엄경론소”를 마지막으로 240여권의 저술을 남겼다. 밤을 지새우며 학문생활로 거리를 누비는 교화의 길로 불같은 열정으로 일관해 당시 사회에서 대중들로부터 왕실에 이르기까지 두루 영향을 미쳤다. 스님의 일생은 686년(신문왕 6년) 3월 30일 혈사에서 마감했다.

금년(1993년)에는 한국문화부가 6월을 원효의 달로 제정하여 각종 기념세미나와 전시회가 잇다라 열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불교가 지향하는 바는 위로는 진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구제에 그 뜻이 있다. 원효스님을 파계승으로 그 행적을 탐탁해하지 않던 보수교단 그룹에서 그랬듯이 전통계율과 사상을 근간으로 하는 출가교단이 지금까지 성 원효스님을 열외 취급하였던 것을 사회의 문화계와 해당교단이 원효스님을 재조명하는 운동을 일으키고 있다고 하니 반가운 일이다.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 국민은 외세의 문물과 사상을 선택없이 받아드리고 또한 무조건 빠져들어 면면이 이어온 우리민족 고유의 정신문화마져 송두리째 던져버리고 주객이 전도된 채 본질을 상실하고 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우리 조상의 얼은 우리 후손이 지켜 간직할 소중한 자산이다. 현재 원효스님께서 남기신 문헌 중에 귀중하게 소장되고 있는 것으로는 해인사 판목판 금강삼매론소 상 중 하 품이 있다. 아주 소중하고 귀한 보물들이다.
동국역경원이 약 45년간 간행사업으로 매년 10여권의 한글대장경을 출간하고 있다. 영인본 48권을 현재 LA관음사가 미국의 사찰로서는 전질을 한 장소에 보관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자랑할만한 일이라 하겠다. 그리고 원효스님 저술서인 금강삼매론소 전질을 금자 영인하여 십일면관음상(목조대불상) 후면 벽면에 액틀로 잘 모셔진 것도 유일무이한 보고를 관음사가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자랑할만한 일이 될 것이다.
1991년 4월 북한사찰 순례길에 묘향산 보현사 보물전시관에 고려팔만대장경 초간 장경(목판판화) 사경이 전시된 것을 보고 얼마나 감격했는지 모른다. 더구나 고려대장경 해제본(한글로 번역된 장경) 15권이 완성되어 전시한 것을 보고 두 번 다시 감격했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약 45년간 간행사업을 목표하고 번역사업에다 몰두해 왔으나 전 8만대장경 해제본을 번역해 놓은 것은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리 문화의 전수인 그리고 우리 한민족의 조상이 저술한 우리 고승대덕들의 귀중한 자료가 우리 현대인들에게 우리 글로서 번역되어 읽힐 수 있는 대 간행사업이 기필코 성취되어지길 간절히 기원해 마지않는다.
또한 원효스님의 사상과 그 정신이 이 미국사회에서도 크게 선양되어지기를 빌어마지 않는다.
<김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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