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三一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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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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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2015-05-11, (월) 8:22 am

불교와 三一節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2017-09-05, (화) 2:30 am

<한용운 선사를 다시 생각한다>

제61회 삼일절을 맞이하여 남가주 교포 그리고 독립유공자, 사회단체 유지들을 모시고 그날의 뜻과 얼을 되새기는 엄숙한 기념식에 참석하게 된 것을 불교인의 한사람으로 대단히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또한 자유독립을 위하여 이곳 미주에서 헌신적인 노력으로 몸을 바치셨던 원로 독립유공자들께서 오늘 이와같이 식전에 참석하시게 된 것을 진심으로 감사를 올립니다. 그리고 15만 교포의 길잡이가 되어 이민 교포의 권익과 교포사회 발전을 위하여 수고를 하여주신 한인회 임원 여러분들께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61회 삼일절 기념식을 이 한국타운 한복판 아드모아 센타에서 교포 전 가족이 모여 기념식을 갖게 되어 무엇보다 더 반가운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우리 조국 대한민국은 일제 36년간 피압박 밑에서 우리의 말과 글을 빼앗기고 우리의 성까지 앗아간 비극의 수난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애국선열들께서는 잃어버린 국토를 되찾고 자주독립을 쟁취하기 위하여 헌신적인 노력으로 희생을 아끼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전국민이 총 궐기하여 한민족의 혼을 세계만방에 드날리게 된것입니다.

그러면 그 당시 독립운동을 태동시켰던 우리의 선열들은 과연 누구였을까요? 바로 우리들의 선각자이신 종교계 지도자들이 일치단결하여 투쟁하셨던 것입니다.
당시 불교계를 대표하여 민족대표로 한용운, 백용성 선사가 참가하여 타종교계 대표들과 같이 33인이 독립선언문에 서명하고 총대표에 천도교 송병희 선생을 추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면 불교가 3.1운동에 참가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우리의 말과 글을 빼앗기고 우리의 성까지 앗아간 그들의 만행을 분쇄하는데 큰 뜻이 있었으나 그들의 종교정책이 식민지 종교정치화 하는데 모든 종교들이 참가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전통적인 한국불교의 종교이념을 말살하고 식민지 종교정책으로 제도를 바꿔 사찰의 소유재산까지 그들의 감독과 허가를 얻어 관리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에 격분한 사찰의 지도급 승려들은 지하항쟁으로 조직화 되면서 많은 동지를 규합하여 전국적인 국민운동으로 번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중 선두에 섰던 한용운 선사는 18세에 동학운동에 투신하여 피신생활을 하다가 28세에 불문에 입문하여 약 반년간의 일본의 신문학 문물을 시찰하고 돌아와 한일합방의 국치를 참지 못하여 중국으로 망명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의병학교를 설치하고 독립군을 양성한 바도 있습니다. 그 후 다시 귀국하여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체포되어 3년간의 옥고를 치루었습니다. 선언문 중 공약 3장은 바로 한용운 선사가 집필한 것입니다. 옥중에서도 조선독립의 서를 발표하여 일본헌병을 놀라게 한 바도 있습니다.
그러면 독립운동을 태동시키고 민족자결주의를 부르짖었던 한용운 선사는 불교 승려이기에 앞서 국가의 존망을 앞에 두고 분연히 일어선 구국의 선열이었습니다. 그는 불교대승사상의 실천자요 만유평등을 주장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한 대자유인 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한용운 선사를 위시한 백용성 선사, 그 외 56명의 불교계 지도급 승려들이 이 운동에 참가함으로써 많은 불교도들이 참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불교계통의 학생 10명은 독립선언서와 일본정부에 대한 통고문, 미국 대통령 및 파리 광화회의 대표들께 보내는 전단을 보성관에서 인쇄하여 종로, 이북 일원에 살포하여 일경에 체포됨으로써 불교계 승려 56명, 학생 10명이 투옥되었던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불교계는 그들의 강압, 무단정책으로 바뀌면서 많은 제재와 역사에도 유례없는 사찰령을 총독부령으로 공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와 같이 민족의 수난을 겪었던 격동기에 한국불교의 역사도 이조의 배불정책에 이어 종교적 탄압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불교계 지도급 인사들이 이 운동에 참가하게 된 것도 주권국가로서 자주독립을 원하는 전국민의 염원도 큰 이유가 있었겠지만 종교인이 가져야 할 종교신앙의 자유마저 말살당하는 그들의 종교정책에 정면으로 대항하여 투쟁한 것이 더 큰 원인이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민주주의 보루아래 무슨 종교든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국가로부터 보장받고 있습니다. 한 나라의 통치기구가 특정 종교의 비호아래 유지, 보존된다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의 역행입니다. 우리는 공존, 공생의 원리를 깨달아 서로 돕고 서로 이해하는 국민으로서 선열들이 남기신 교훈을 본받아 우리의 권익과 번영을 위하여 소수민족으로서 이 이민 교포사회를 발전, 유지시켜 나가야만 하겠습니다.
오늘 제61회 삼일절을 맞이하여 온 교포가족이 총 단결하여 자라나는 2세들을 위하여 우리의 자세를 확립하고 그들에게 정신적인 유산을 이 미국 땅에 뿌리 깊게 심어주실 것을 간곡히 바라면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980년 61회 삼일절 기념식장에서 김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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