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포교시론>; 한인사회와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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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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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포교시론>; 한인사회와 종교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2017-09-02, (토) 2:28 am

(79년 작성, 김도안스님 미주포교시사논지)

필자는 사회학을 공부한 사람도 아니요 또한 비교종교학을 전공하여 어떤 종교가 어떻게 이 한인사회에 기여하고 있는가에 대하여서도 아는 바는 없다. 다만 한국불교의 홍법을 위하여 이 나성에 와 그간 3, 4년간 포교일선에서 체험하고 느낀 바를 한인사회와 관련하여 불교적인 측면에서 약간의 문제를 제기해 볼까 한다.

불교는 오랜 역사속에 우리 민족과 더불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호흡을 같이 해 왔다. 그러다가 이조 排佛정책으로 인하여 도시불교의 형태가 차츰 山中불교로 전환을 했으며, 大衆불교에서 修行本位불교로, 사회봉사불교에서 기복신앙불교로 탈바꿈하여 근 500년간 유지해 왔다.
그러던 중 일제 36년간 피압박 민족으로서 그들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적인 정책이 식민지 정책으로 바뀌어 전통불교의 명맥을 송두리째 앗아가게 되었다. 그들의 종교침략의 획책으로 정신적인 지주였던 수행승단은 여지없이 말살당하고 교단의 僧尼法規인 階段法 마저 재가(在家)불교의 僧尼法으로 고쳐 사찰령을 공포하게 이르렀다. 그 후 승려의 娶妻가 총독에 의하여 처음 허용되고 돈 많은 주지승들의 타락을 부채질하게 되었다.
그 후 한국불교는 교단의 弘法보다는 가정을 거느린 聖職者가 차츰 本來의 사명을 저버리고 세속화 되면서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승려가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 승려들은 형식적이나마 불교현대화를 한다는 미명하에 많은 불교재산을 탕진하였으며 공공 재산을 사유화 하는데 혈안이 되었었다. 이와 같이 그 많은 불교재산은 하나의 뜻있는 사회복지 사업이나 공공복리를 위한 대중봉사사업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교세는 약화되고 승려 교육기관마저 없어 자질 있는 승려가 배출되지 못했고 사원경제도 침체되어 관리할 승려마저도 기근현상이 오게 된 것이다. 그 후 광복과 더불어 물밀 듯 들어온 서구식 자유주의는 이나라 젊은이들에게 해방을 가져왔으며 기독교의 교세는 날로 번창하여 그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확장되면서 서민사회에 깊숙이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뿐만 아니라 젊은 청소년에게는 대화자가 되어주고 사회집단을 통하여 사회청년운동으로 번지면서 건전놀이 지도 및 사회봉사자로서 신앙과 인격도야에 그 신명을 바쳐온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기독교는 행방 34년 조국근대화 작업에 밑거름 역할을 하였고 자라나는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활력소를 넣어준 것이다.

그러나 한국불교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 시대를 이끌어갈 정신적인 지도자가 없었음을 우리는 한국불교 근대 백년사를 통하여 솔직히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불교 현대화를 위한 유신론을 주장했던 선각자인 만해 한용운 선사가 주장했던 기치를 들고 나왔으나 일본의 식민지 종교정책에 의하여 그 꿈을 실현시키지 못하였으며 겨우 불교전문강원인 중앙학림 학인들이 일어나 교육의 현대화를 부르짖고 불교전문학교 설립허가를 정식으로 당국에 제출하여 오랜 투쟁 끝에 허가를 취득한 유일한 한국불교의 전문학교가 탄생된 것이다. 금후 그 후신이 오늘의 종립 동국대학교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설립취지는 많은 불교 승직자를 교육시켜 불교를 현대화하고 대중 속에 호흡을 같이하며 불교를 좀 더 폭넓게 전도를 하여 보겠다는 취지였으나 많은 學人들은 卒業後 登龍門이 열리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며 재가 승려가 되거나 사회 교육계 혹은 문화계에 들어가 불교가 목적하는 바 포교선상에서 물러서게 된 것이다.
그 후 1954년 8월 한국불교는 새로운 봉기운동이 일어났으니 바로 전통불교를 되찾고 식민지 종교정책에 의해 탄생한 불교교단을 폐지하고 수행승단 확립과 사원관리 운영 및 포교책임도 수행승려 위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전국 비구승 2백여 명이 정화봉기를 들게 되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도 반일사상이 투철한 지도자인 만큼 비구승의 주의 주장을 적극 후원하여 당시 문교부장관인 이선근 박사를 지시하여 독신 비구승의 주장을 성사시키는데 독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 후 한국불교사원 1천 2백여개 사찰이 비구승측 주도권으로 이양되고 그 총본산인 조계사가 조계종 총무원으로서 등장되면서 종단이 목적하는 삼대 사업을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삼대 목적사업이란?

첫째 도제양성이요, 두 번째 역경사업, 세 번째 포교사업이다. 이 삼대 목적사업을 성취하기 위한 일환으로 승려도제양성을 위하여 종립 동국대학 불교과에 각 본사가 1명씩 선발하여 입학을 위한 전형을 총무원에서 주관, 매년 25명의 승려를 입학시켰던 것이다. 드디어 한국불교는 불교가 목적하는 주춧돌 역할이 될 수 있는 승려도제양성에 온갖 심혈을 기울여 향후 11년간 학사승 275명, 석사승 33명, 박사승 3명이 배출되어 포교일선에서 그 임무를 다하고 있다. 현재 3명의 박사를 취득한 승려로서 종립 동국대학에 2명이 교수직에 종사하고 있으며 1명은 비교종교를 위하여 카나다에 학업을 계속하고 있다. 현재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승려 중에는 인도에 1명, 대만에 1명, 홍콩에 1명, 일본에 10명, 프랑스 소로본에 2명이 본국에 5명이 불교학문을 위해 정진하고 있다. 이와 같이 승려교육을 통하여 자질향상을 하고 있는 현재 한국불교는 향후 10년후는 불교가 목적하는 시대포교에 적응하여 각 분야에서 활발한 포교가 진행될 것이다.

두 번째 역경사업을 1965년 6월 25일을 기해 고려팔만대장경을 우리말로 번역하기 시작하여 약 40년간 완역판을 내기로 정하고 매년 정부지원금을 받아 현재 약 100여권 한글대장경을 간행하였다. 우리나라 불교는 한문화 영향으로 모든 경전의식들이 한문권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많은 사람들이 불교를 접하기 매우 어려움이 컸다. 그러나 각 종립학교에서 불교교리를 이해시키고 신앙생활을 고취하기 위하여 종립학교 교리교재를 편찬하여 종교이수과목으로 현재 실시중에 있다. 그리고 어려웠던 경전을 총집결하여 우리 생활에 맞도록 우리말로 불교성전을 편찬하여 모든 신자들이 성전을 통하여 불교를 이해하고 신앙생활의 지침으로 삼고 있다. 이와 같이 불교의 역경사업도 본궤도에 들어섰음을 우리는 인식하여 폭넓은 불교서적이 출간되기를 염원하는 바이다.

또한 포교사업도 종래의 한문권의 영향에 묻혀 현대사회에 유리된 포교방법을 일소하고 시대에 알맞은 포교로서 그 임무를 다하고자 노력한다. 현재 약 40여명의 군종포교사가 군의 정신무장을 위하여 포교일선에서 수고를 하고 있다. 또한 젊은 청소년불교단체를 조직하여 어린이부, 중고등부, 대학부, 일반부로 분류하여 전국 대도시 사찰은 거의 이들의 신앙지도와 정신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전국 종합대학에 불교부를 창설하여 전국 불교대학생연합회가 조직되고 동하기에는 약 2개월간을 신앙고취 및 정신훈련을 위한 수련장을 개설하여 각 대학지도교수단이 그들의 활동을 돕고 있다.
그리고 현재 해외포교를 위하여 판견된 나라는 일본 21개소 파견포교사 35명, 홍콩 1개소 2명, 대만 1개소 1명, 타이 1명, 카나다 3명, 프랑스 2명, 미국에 16개소에 22명이 한국불교를 포교하기 위하여 활동을 하고 있다.

미주 한인사회에 불교의 역할
이 미국에 불교가 소개된 것은 일본불교와 실론불교를 들 수 있다. 일본은 약 70년의 역사를 가지고 서구사회에 불교를 심는데 중추적 역할을 다하였다. 일본이 대승불교의 교리를 토착화 하는데 공이 있다면 실론불교는 원시불교인 근본불교를 통하여 미국사회에 뿌리를 내린 것이다.
그러나 한국불교는 1960년대에 서경보 박사가 템플대학에 교환교수로 있으면서 미국에 한국불교를 알리기 시작하였다. 그 후 70년대에 들어오면서 이민교포의 급증으로 일본 홍법원을 개설한 이행원 선사가 LA달마사를 개설하고 이어 재미홍법원을 프로비덴스에 개원하면서 대도시에 한국사원이 도처에 개원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16개소의 한국사원이 개설되었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불교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첫째는 경제적인 여건이 허락되지 못하여 뜻있는 포교사업을 벌일 수가 없고 인적인 자원도 타 종교에 비하여 너무나 미약함을 실감케 한다. 앞으로 불교가 한인사회에 기여하여야 할 목적사업이라면 좀 더 긴 시간을 요하겠지만 종교가 인류사회에 영적인 구원을 목적으로 하는 만큼 한량이 없는 중생에게 온갖 괴로움과 어려움을 덜게 하고 무명에 얽힌 번뇌를 끊어 불도에 이르도록 개도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며 이것이 종교적인 측면에서 불교가 하여야 할 목적이다.
두 번째, 불교는 대승사상에서 자리사상보다는 이타사상을 근본목적으로 한다. 대승 6바라밀사상에 입각하여 헐벗고 굶주린 백성들에게 정신적인 위안과 물질적인 구원이 베풀어져야 할 것이다. 병든 자에게는 약을, 배가 고픈 자에게는 밥을, 혼미한 자에게는 지혜를 일깨워 주는 것이 사회를 위한 봉사가 될 것이다.
세 번째는 불교의 사홍서원에 밝히듯이 모든 중생에게 진리를 깨닫게 하기 위하여 배움을 권장하였다. 그래서 교육은 인간을 완성시키는 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교육이 자신을 외면한 국적 없는 교육이 될 때 우리는 이 땅에 설 땅을 잃게 된다. 우리의 말, 우리의 풍속, 우리의 전통, 우리의 글은 우리가 자손만대에 전하여 주어야 할 우리의 생명이다. 이 생명의 줄이 끊어질 때 우리의 혼은 없어지고 만다. 그러므로 교육적인 측면에서 우리 한인사회에 불교가 기여할 목적이라면 민족주체성을 확립시키는 교육도장을 반드시 개설하여 폭넓은 활동을 전개하여야 될 것이다.

이상 미주 한인사회에 종교가 하여야 할 역할을 불교적 측면에서 제시하여 보았으나 오늘의 시점에서 너무나 미약함을 지면을 통하여 솔직히 고백하면서 앞으로의 설계를 하나하나 전개해 가며 내일을 약속드리는 바이다.(1979년 김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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