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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글올린 게시글: 2015-12-20, (일) 11:28 pm 

가입일: 2015-05-11, (월) 8:10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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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지에 보도되었던, 김도안 스님의 간추린 조국통일 염원

「조국통일기원 남북불교도 합동회의」(미국 LA 관음사, 1991.10.29-30)에는 남한의 불교대표로 서의현(조계종 총무원장), 송월주(남북교류위원장), 전운덕(태고종 총무원장), 박혜륜(태고종총무부원장) 등 21명이 참석하였고, 북한의 조선불교도련맹 대표인 박태호(조선불교도련맹위원장), 홍화두(조선불교도련맹부위원장), 심상련(조선불교도련맹서기장), 리동철(평양시위원회부장) 등 4명이 참석하였다.

한민족불교교류 미주불교협의회(회장 김도안)가 주최하여 민족통일문제에 있어서의 불교의 역할과 상호교류 등을 논의하였다. 남한의 불교 대표들은 남북 상호교환 방문을 통한 공동법회, 불교유적지 공동 발굴, 세미나 개최 등을 제의하였으나, 북한의 불교 대표들은 남한 주둔 미군철수 및 국가보안법 철폐 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공동선언문이나 합의문을 내지 못하였다.

미주통일운동 원로 김도안 스님(6.15공동위 미국위원회 공동부위원장, 조국평화통일불교협회 미주본부 회장)이 06년 8월 28일 오후6시 지병을 치료 받던 중 향년70세 일기로 타계했다. 입관식은 9월1일(금요일) 오후8시 한국장의사에서 열리고, 장례식은 다음 날인 2일(토) 오전10시 관음사(4279 W 3rd St. Los Angeles, CA90020)에서 남가주사원 연합회장으로 열린다. 현재 관음사에는 고인의 빈소가 마련되어 있다.

고인은 1937년 4월7일생으로 전라남도 장성읍에서 부친 김기욱, 모친 강오순 여사의 7남매 중 3남으로 태어났다. 국내에서 활동하다가 미국으로 포교활동차 1975년에 떠나 30여년 동안 관음사 주지스님으로 재직하면서 특히 북부조국 불교계와 교류하면서 남북 해외 불자들의 3자연대 운동과 민족의 화해협력, 자주적 평화통일 운동에 매진했다. 그는 또 남가주사원연합회 5대, 6대, 7대회장을 역임하고 2003년에 이임했다.

도안 스님은 ●1952년(당시 14세)에 경남 동래 범어사에 출가 득도●1963년 서라벌예술학교 문예창작학과와 1966년 동국대학교 수학●1962년 서울 돈암동 적조암 주지, ●1971~1975년 조계종 총무원 사회국, 재무국 활동●1975년 포교위해 도미, ●1990~1992년 미서부 승가협회 회장 역임, ●1982~1996년 민주평화 통일자문회의 위원 역임, ●1996~2000년 한반도 통일연구회 연구위원 역임, ●인권문제연구소 미국중앙이사회 활동, ●타계할 때 까지 조국평화통일불교협회미주본부 회장으로 활약하며 조국통일을 위해 노력해 온 불교인으로 미주동포사회에서 존경을 받아 온 인물이다.

김도안 스님(6.15공동위 미국지역위원회 공동부위원장, 평불협 회장)은 통일맞이 나성포럼 창립 5돌 기념식에서 "2006년 통일운동 원로"로 선정되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법타스님의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하면서 그것이 계기가 되어 1991년 이북을 방문하게 되었다고 술회한다. 그는 스스로 그 전에는 무척 보수적 인물였다고 말한다. 그는 불교인이지만 남북문제, 평화문제에 대한 관심은 이승만 목사, 윤길상 목사, 선우학원 박사가 관계하시던 북미주기독학자회 관계자들과 교제하면서도 영항을 받았다고 회고한다.

그는 이북을 방문하여 불교사찰을 돌아보며 느낀 점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1950년 전쟁을 치르고 완전 폐허가 되었던 평양시가 새롭게 건설된 것을 보고 느낀 점도 많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지난 60년 세월 남이나 북이나 너무나 변화했다고 지적하면서 "우리는 더 이상 이데오로기 같은 사상이나 이념 갈등에 연연하지 말고 그것을 뛰어넘어 분쟁을 야기시키는 시대를 끝내야 한다. 미국의 한반도 정책이 평화정책으로 바뀔 수 있도록 우리 미주동포들이 노력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김도안 스님은 미주청년들을 향해서 민족사 공부를 하여 시각의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고 주문하면서 미주내 청년단체들이 통일운동하는 숫자가 별로 많지 않다고 상기시키면서 앞으로는 양적으로 발전하는데에도 힘을 기울여 달라고 당부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우리 민족의 분단이 강대국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게 되기 까지 우리 민족구성원들이 반성해야 할 일이 많다고 꼬집는다. 우리 민족은 각기 성들이 달라 지금 남북에 약 373개의 성(김씨 ,박씨, 최씨 등 다양한 성들)이 있다고 하지만 따져보면 다들 10촌 미만에 해당하는데 이것은 즉 "우리 미주동포들만이라도 이데오로기 싸움을 초월하여 우리들은 남에 있건, 북에 있건, 해외에 있건 우리 모두가 한 민족, 한 형제자매, 한 친족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한 식구처럼 생각하는 입장이 되어야 하고 또 그런 자세로 정비, 정립해야 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김도안 스님은 강연을 마치면서 2000년 8월13일 남북해외 공동행사에서 자신이 써 발표한 시를 소개하며 이 내용을 당시 남과 북에 모두 전달했다고 한다. 그의 시는 마음에 와 닿는 민족적 시이며 동시에 뜨거운 애국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형상화하고 있다. 김도안 스님은 그 시를 읽는 것으로 마지막을 장식했다.

"만남은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
백두산에서 한라에 이르는 동해,
압록강에서 한라에 이르는 서해,
무엇이 두려워 만남을 마다하는가
만나야 하다
우리는 만나야한다.
그 많은 세월
수십년을 기다렸는데..."
중략...

김도안 스님(6.15공동위 미국지역위원회 공동부위원장, 평불협 회장)은 또한 지난 해 6.15공동위 결성식 이후 미주에서 가진 보고회 자리에서 역사적인 결성식을 치룬 소감에 대해 "1948년 남북연석회의의 의의를 되새기며 그 의지가 꽃피우지 못하고 남북 좌우대결구도에서 우리 민족문제를 풀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한편 2000년 6.15공동선언을 통해 남북최고 지도자들이 우리민족끼리 손잡고 평화통일을 이루자고 합의하여 선포한 것은 정부간의 선언이었기에 우리 민족이 반드시 풀어갈 과제"라고 지적하는 한편 "평화적인 통일을 위해서는 근본적 문제-평화가 정착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전쟁분위기가 사라져야 한다. 미군이 주둔해 있고 남북이 대치된 상태에서 선언만 가지고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군사적 대결구도가 바뀌어야 한다. 해외동포들은 남북 동포들과 함께 이 일에 앞장서 나서야 한다. 이제 우리 모두는 이념갈등을 과감히 극복하고 폭넓게 대중운동을 벌여야 한다. 대중 속에서 민중 속에서 그 해결의 열쇠를 찾아야 한다"고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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