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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글올린 게시글: 2016-09-19, (월) 8:48 am 

가입일: 2015-05-11, (월) 8:22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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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공덕회 명조·지상 스님
▲ 명조(사진 왼쪽) 스님과 지상 스님은 서로의 심장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 늦가을 향운사 포대화상 미소가 두 비구니스님 미소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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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 뛴다. 벌써 5~6년 사이에 5번이나 심장이 멎었다. 생사가 오가는 응급실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심폐소생술로 간신히 생을 이었다. 명조 스님이 응급실에 실려 올 때면 의사와 간호사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운다. 잦은 출입은 짙은 죽음 냄새를 풍겨서다. 옆에서 간절히 기도하는 지상 스님은 그 냄새가 소름끼치도록 싫다. 살려야했다. 심폐소생술 받는 명조 스님을 바라보며 “누워 지내더라도 10년을 살게 하겠다”는 발원이 죽음을 밀어내고 밀어냈다.

동학사 승가대학 도반 인연
소임마다 함께 하며 정 쌓아
호주서 유학하던 지상 스님
명조 스님 심장질환에 귀국

심장 5번 멎는 등 죽음 위기
병원서 숱한 밤 지새며 간병
시한부 선고에도 10년 살아

부처님 은혜 보시행 회향 발원
네팔 어린이 돕는 공덕회 설립

공주 동학사승가대학 1987년 입학 동기였지만 막내와 큰 언니였다. 지상 스님이 어렸다. 다겁생래 인연이 그렇게 지중했을까. 소임 때마다 짝꿍이었다. 명조 스님은 채공(반찬을 마련하는 소임)을 잘 못했다. 한데 지상 스님은 일사천리였다. 100여명에 가까운 대중공양을 책임졌던 일인데도 탈이 없었다. 지상 스님이 팔을 걷어붙이면 명조 스님은 허드렛일을 도왔다. 4년이란 시간은 생각보다 짧았다. 졸업 뒤 서로 각자 선방으로 흩어졌다.

지상 스님이 명조 스님 소식을 접한 건 뜻밖이었다. 한 주도 거르지 않고 주말법회에 서면서 모았던 시줏돈 털어 국제포교를 위해 호주 멜버른에서 유학하던 때였다. 1년 뒤 믿었던 지인에게 맡겼던 종자돈이 사라졌다. 우연히 한국 내 신도와 통화하던 중 명조 스님 소식을 들었다. “심장이 아프다.” 2001년 1월 한국행 비행기에 무거운 몸과 마음을 실었다.

▲ 서울 도봉구에 위치한 작은 절 향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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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조 스님에게 있던 작은 돈으로 서울 도봉구 수유리에 포교당을 인수했다. 명조 스님 치료와 지상 스님 학업을 위한 거처였다. 3층이었다. 명조 스님은 숨이 차서 계단을 오르지 못했다. 지상 스님이 업거나 부축해야만 했다. 명조 스님은 승모판막 협착증이었다. 좌심방 좌심실 사이에 있는 판막이 좁아져 좌심방에서 좌심실로 가는 혈액 흐름을 방해해 좌심방이 확장되는 질환이다. 조금만 움직여도 호흡 곤란과 피로감이 몰려온다. 누워서 호흡하는 것도 힘들다. 수술은 피할 수 없었다. 수술실 밖 보호자 대기소 시간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의사가 지상 스님에게 서류를 건넸다. 죽을 수도 있으니 15가지 항목에 서명하라고 했다. 스님은 불쑥 다가온 죽음에 놀랐다. 5시간이 넘는 수술을 마치자 의사는 고개를 저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병이 너무 깊다. 20년도 넘었다.” 명조 스님은 입원실 침대에 누워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간병차 지상 스님도 병원에 오래 머물다보니 포교당 운영은 어려웠고, 결국 처분했다. 2002년 6월 명조 스님 첫 수술은 그렇게 지나갔다.

다시 얻은 포교당은 4층이었다. 명조 스님 심장은 10%만 움직였다. 심장이 말을 안 들으니 혈액 순환은 안 되고 뇌에 산소 공급도 어려웠다. 지상 스님은 틈만 나면 명조 스님을 주물렀다. 음식도 직접 지상 스님이 챙겼다. 공양을 마치면 배를 마사지했다. 장기에도 혈액 공급이 안 돼 소화시키려면 마사지밖에 방법이 없었다. 지상 스님은 명조 스님에게 또 하나의 심장이었다. 7년을 그림자처럼 명조 스님 옆에서 간병했다. 그 무렵 심장이식을 해야 한다는 진단이 나왔다. 6개월 시한부 선고가 내려졌다. 지상 스님은 생소한 일에 사지가 떨렸다. 결정을 강권하는 의사가 오면 수차례 화장실로 피했다. “내 심장이 뛸 때까지만 살게요.” 명조 스님이 입을 열었다. 지상 스님이 답했다. “누워 지낼지언정 10년은 살게 할 겁니다.”
포교당으로 돌아왔다. 지상 스님은 그 길로 심장, 의학, 음식 관련 서적을 모조리 탐독했다.

명조 스님은 간병 때문에 좋아하는 공부를 못하는 지상 스님이 마음에 걸렸다. 홀로 정토마을에 들어가 조용히 죽을 테니 공부하라고 으름장(?)을 놨다. 지상 스님은 펄쩍 뛰었고, 명조 스님이 어렵게 잠을 청하면 그제야 책 펴고 공부했다. 주간수업이 있는 이틀은 간병인을 불렀다. 그러나 여럿 관뒀다. 지상 스님의 간병을 따라갈 수 없어서였다. 여름이면 뜨거운 열을 피해 1층 그늘로 명조 스님을 옮기고, 옥상에 물을 뿌려 열 식힌 뒤 해가 질 무렵 다시 4층으로 업고 올라와야 했다. 경력 15년차 간병인도 버거웠다. “부모도 자식에게 이렇게 못하는데, 도대체 두 분은 무슨 인연이길래….”

지상 스님은 장을 봐도 단 한 번 자신을 위한 찬을 산 적이 없다. 음식을 만들 때도 마사지를 할 때도 명조 스님 걱정만 한다. 그리고 기도한다. 늘 관세음보살을 염하며 공양을 준비하고 마사지한다. 목욕 시킨 뒤 잠깐 졸았던 모양이다. 관세음보살이 지상 스님 꿈에 나퉈 측은한 눈빛을 보냈다. 흰 종이에 두 글자만 남기고 사라졌다. ‘노력’. 깬 지상 스님은 야속하고 서운했다. 아픈 불자들이 지극정성이면 관세음보살 나퉈 병고가 나았다는 가피를 여러 번 들었는데, 노력이라니…. 이 뜻을 깨닫는 데 꼬박 2년이 걸렸다.

“부처님이 폼만 잡던 중노릇을 고치려고 하신 거죠. 한 때 승가대학 습의사로 위의를 가르친다고 자신만만했던 마음을 꾸짖으셨던 겁니다. 허례허식이란 껍데기를 벗겨냈지요. 명조 스님을 도반으로 보내 수행에 부족함이 없도록 가피를 주신 셈이에요. 좋은 도반 만나 큰 복이에요.”

지상 스님을 깨친 일은 또 있다. 명조 스님은 수중에 있던 300만원 전부를 지상 스님에게 건네고 방글방글 웃었다. 보는 사람마다 행복해진다고 했던 그 웃음이었다. 지상 스님은 농을 던졌다. “스님은 나한테 미안하지도 않아요?” 명조 스님은 또 웃었다. “내가 다 나아서 원 없이 공부하게 해 줄게요.” 지상 스님은 놀랐다. 그런 심장으로 누구보다 따듯한 말을 건네는 마음이 존경스러웠다.

“만족하지 못하는 삶은 탐욕에서 비롯됩니다. 채워지지 않으니 불만족스럽고 채우려고 애쓰니 탐욕이 들끓어요. 그러니 진짜 웃음이 사라진 겁니다. 안 죽어봐서 모르지요. 지금 숨 쉬고 있는 그 자체가, 심장이 뛰는 1분 1초가 경이로움이라는 사실을 몰라서 그래요.”

6개월이면 끝이라던 심장이 10년 넘게 뛰고 있다. 말을 이어가던 지상 스님 얼굴에 뭐가 묻었나보다. 명조 스님 손길이 가서 닿는다. 지상 스님은 눈길 한 번 돌리지 않았다. 두 비구니스님 사이가 오래됐다는 증거다. 명조 스님이 “우리 도반은 부처님”이라며 웃는다.

▲ 지난 10월 네팔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후원했다.

▲ 네팔을 찾을 때마다 지역 어린이들이 환영한다.

두 비구니스님은 하루를 숨 쉬고 살아가는 고마움과 부처님 은혜를 갚고자 2009년 6월 ‘남을 위해 기도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자비공덕회다. 회원으로 가입하면 기도문과 보시함을 준다. 매일 집에서 남을 위해 기도 올리며 보시함에 성의껏 보시금을 넣는다. 기도 하지 않는 날은 보시도 하지 않는 게 원칙. 기도와 정성 없는 보시는 효과도 없다. 매월 넷째 토요일 오전 정기기도법회에서 1시간 동안 ‘남을 위해 기도’ 올린다. 보시가 모이는 대로 이웃을 돕는다. 부처님이 탄생한 네팔 어린이들 학자금을 후원하고 있다. 선정된 어린이들은 12년 동안 도울 예정이다. 지난 10월엔 네팔 쩌퍼러마리 지역 버드러칼리 하이어 세컨다리스쿨과 잔타초등학교, 자나죠티고등학교를 찾아 컴퓨터 70대, 볼펜 3000자루 등 학용품과 책가방 104개, 의류 100점, 핸드백 100점, 구두 50켤레를 전했다.

▲ 학용품을 받은 학생과 부모가 감사를 전했다.

“사물은 실제로 보이는 것보다 가깝게 있습니다.” 자동차 사이드미러 문구다. 마음은 거울이다. 불성 비추면 부처님이고, 성나고 이기적인 모습 비추면 마음은 화난 들소가 된다. 명조, 지상 스님은 마음거울에 서로를 비추고 있다. 그 마음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졌다. “부처님은 실제로 보이는 것보다 가깝게 있습니다.”

늦가을 향운사 포대화상 미소가 마주보며 웃는 두 비구니스님을 닮았다. 02)905-7175

2014.11.24 / 법보신문-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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