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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2015-05-11, (월) 8:22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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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락 시바락사의 참여불교
글_마테오 피스토노/ 사진_한나 소머/ 번역_민정희
2013.04.01 –불교포커스

이 글은 참여불교의 태두이자 사회비평가이며 대표적 불교활동가인 술락 시바락사 박사에 대하여 교토저널에 실린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올해로 80세를 맞이한 술락 시바락사는 여전히 삶의 현장에서 ‘신자유주의 반대’와 ‘지속 가능한 개발’ 그리고 ‘평화’운동을 통해 평화와 인권, 사회정의를 외치고 있습니다. 글쓴이 마테오 피스토노는 이 글에서 술락 시바락사가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했음에도 세계에 만연된 고통과 착취, 침략을 직시하고 운동의 현장에 서게 된 배경에서부터, 21세기 사회변화에 대한 술락의 비전등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소 많은 분량인 관계로 부분 편집 등의 방안을 고민했으나 한 번에 읽혀야 하는 글이라는 판단에 그대로 옮깁니다. _편집자(불교포커스)

저명한 불교 저술가이자 활동가인 술락 시바락사(Sulak Sivaraksa)는 태국 북부 국경지역을 중심으로 물건을 교환하고 판매하는 지역 주민들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옷을 갈아입었다. 그는 지난 3일 동안 국영 TV에 그의 얼굴이 도주자로 방송된 것을 알고 있기에 모자를 낮게 끌어내렸다. 태국 국경 보안 검문소를 피하기 위해서 보트 주인에게 많은 돈을 찔러준 술락은 작은 카누를 타고 몰래 메콩강을 건너 라오스로 갔다. 1991년 8월, 그는 도주 중인 수배자였다.
탐마삿(Thammasat) 대학에서 “태국 민주주의 퇴보”라는 주제로 강연한 후 술락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되었다. 그래서 그는 방콕 주재 독일대사관으로 피신하였다. 경찰차들이 대사관 앞에서 술락을 기다리고 있었고 사복경관들이, 그를 걱정하는 아내와 세 자녀와 함께 있는 집 근처에 배치되었다. 대사관에서 2주간 갇혀있던 술락은 경찰에 자수하여, 왕과 왕실, 태국 군대에 대한 비판을 금지하는 불경죄의 엄중한 처벌, 즉 최소한 15년의 징역을 받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다음날 경찰에 자수하는 대신 술락은 작은 통로로 몰래 빠져나와 태국-라오스 국경행 자동차에 몸을 실었다. 시골길을 택해 안전한 집들과 정글에서 잠을 자면서 술락은 라디오방송에서 자신을 쥐새끼와 범죄자로 부르는 것을 들었다.
메콩강을 건너 라오스로 간 술락에게는 가방에 든 몇 백 바트와 소금기 있는 크래커가 전부였다. 그는 두려웠지만 흔들리는 버스를 타고 친분이 있는 라오스 외교관의 집으로 가면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호흡에 마음을 집중시켰다. 피신한지 2일 후, 술락은 러시아로 유학 가는 한 학생의 탑승권을 이용해서 애로플로트(Aeroflot) 항공에 탑승했다. 결국 스톡홀름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경찰이 자신의 집 전화를 도청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아내에게 안전하게 있지만 얼마나 오래 망명생활을 할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전 세계 불교계를 통틀어 정신적 여정이 하나이면서 동시에 정치적 활동과 동일한 수행자들이 있다. 세계적인 불교지도자로 가장 유명한 이들은 평생 동안 사회정의 증진과 자비로운 행동으로 알려진 달라이라마와 틱 낫한이다. 그리고 최근 군사정권에 의한 가택연금에서 풀려난 아웅산 수치와 그녀의 국회의원 당선은 미얀마의 불교를 세계 정치무대의 중심에 세웠다.

티베트와 베트남, 미얀마에서의 정치적인 투쟁은 다른 상황일 경우 달라이라마, 틱 낫한과 아웅산 수치가 할 수 있었던 것보다 더 큰 역할과 책임을 그들이 맡도록 만들었다. 이들 사회적인 참여불교인들처럼, 술락 시바락사의 정치적 행동주의, 주민조직화, 소외된 이들을 위한 활동은 그의 불교수행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의 행동주의, 저술, 연설 때문에 술락은 두 번(1976년~1977년, 1991년~1994년)이나 망명을 했고, 네 번이나 투옥되었으며 태국 국왕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여러 차례 기소되었으나 무죄가 입증되었다. 어느 누구도 술락을 침묵하게 하지는 못했다.
지난 35년간 술락은 전 세계를 돌며 강연과 저술활동, 멘토 역할을 하였고 종교간 대화에 참석하였으며 달라이라마, 틱 낫한, 고(故) 마하 고사난단 스님과 함께 국제참여불교네트워크(International Network of Engaged Buddhists)와 같은 단체를 조직하였다. 그동안 그는 자신과 다른 이들의 저서와 글을 출간했는데, 태국어와 영어로 발간된 그의 저서가 100권이 넘는다. 그는 부유한 가문에서 성장하였기 때문에 사회참여적 불교운동가이자 억압받는 이들의 옹호자로서, 또한 연이는 태국 정부와 왕실의 골칫거리로서 그의 명성은 예상 밖의 것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보수적인 왕정주의를 받아들여 왕은 절대 오류가 없는 것으로 믿었으며 진보적인 승려나 민주주의 주창자들에 대해서 매우 회의적인 태도를 갖도록 배웠다. 1940년대 초 왕실의 후원을 받는 한 사원에서 2년간 승려생활을 했던 경험은 그로 하여금 왕실과 엘리트 지배계층이 숭고한 자비심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더욱 견고하게 했다. 그의 부모는 방콕에서 유명한 성공회와 가톨릭 학교에 보냈고 그는 1950년대 영국에서 법학과 철학 학위를 받았다. 술락은 정부 고위직에 올랐고, 부유한 화교출신 태국인 기업가로서 안락한 삶을 사는 등 출세가도에 있었다.
그러나 술락은 돈을 모으거나 정치적 영향력을 쌓는 대신 다른 길을 선택했다. 주디스 짐머 브라운(Judith Simmer-Brown)은 “이 두 길 가운데 어떤 것이든 태어날 때부터 그의 권리였던 권력과 명성이 보장되는 길이었다. 그러나 술락은 이례적인 선택을 했다. 그는 자신의 궁궐 밖으로 걸어 나와 세계에 만연해 있는 고통과 착취, 침략을 주의 깊고, 면밀하게 살펴보았다. 결국 그는 전통적인 권력과 명성이 보장된 궁궐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고 서술했다.
5년간 영국유학을 마친 술락은 1960년대 초반 태국으로 돌아왔다. 그가 해외에 있는 동안, 군부가 태국의 정부, 학계, 공적 생활의 거의 전 영역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는 지적(知的) 지형이 척박함을 깨달았다. 당시 막 시작한 사회개혁운동들이 있었지만 1960년대 태국은 계엄령하에 놓여 있었다. 미국의 지원을 받은 군 장성들은 모든 형태의 정치적 이견을 제거하기 위해서 공산주의라는 꼬리표를 사용하였다. 그래서 공산주의라는 혐의에 대해 조사하지도 않은 채 수 백명의 예술가, 저술가, 언론인, 편집자들이 투옥되었다. 술락은 “독재가 어둠을 만들어냈다”고 기록했다.
1960년대에도 술락은 여전히 왕실과 엘리트 계층의 옹호자였고 태국사회에서 최선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1963년, 술락은 사회과학 리뷰(Social Science Review)라는 잡지를 창간하고 편집을 맡았는데, 이 잡지는 곧 이어 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식인들의 분출구가 되었다. 리뷰는 학생들의 자각을 일깨우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러한 학생들의 자각은 결국 1973년 군부독재 타도라는 결과를 낳았다.
술락이 리뷰의 편집자로 있을 때 그의 생각에 변화를 가져다 준, 태국의 진보적인 왕자 시티폰(Sitthiporn)과의 만남이 이뤄졌다. 이 만남에서 왕자는 “술락, 바로 이 나라에는 지적인 잡지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잡지가 지적인 자위가 되게 해서는 안됩니다.”고 말했다.
술락이 자신의 글로 국민들을 돕고 있고, 태국의 지적 역사를 다시 이야기하고 있다고 주장하자 왕자는 “농민에 대해서 알고 있나요? 그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데도 당신은 그것을 모릅니다”\n\n이 만남은 술락으로 하여금 단순히 자신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실제로 뭔가를 하도록 영감을 주었다. 이는 행동에 대한 그의 소명이었다. 술락은 자신의 오만하고 하향식 접근방식에 근본적인 결점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사람들의 실제 조건을 이해하기 위해서 농촌마을과 사원, 계단식 논밭을 찾아갔다. 그가 만난 농부들과 노동자들은 술락에게 깊은 가르침을 주었고, 지금도 그가 되풀이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그것이 빈곤이건 전쟁이나 혹은 환경재해이든 고통스러운 상황을 다루려면, 그곳에 가서 고통 그 자체, 그리고 영향을 입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즈음 술락은 태국에서 Suksit Siam(suksit은 ‘지적 知的’을 의미함)이라는 대안적인 서점을 처음으로 열었다. Suksit Siam은 방콕에서 문화, 불교 및 교육활동의 중심이 되어 사회개혁, 민주주의를 증진시켰으며, 이는 군 장성들의 의심스러운 시각에서는 부담이었다. 또한 술락은 서점 인근의 Coffee House Council에서 모임과 워크숍을 이끌었다. 1973년 학생봉기의 몇몇 지도자들은 술락 모임의 일원이었고 오늘날 정치운동단체(Red Shirts와 Yellow Shirts로 알려진)의 대다수 지도자들의 정치철학은 이 워크숍에서 길러졌다.
1970년대 지식인 엘리트에서, 사회정의를 위한 민중운동가로의 술락의 변모는 농촌주민과 농민, 학생들로부터 그가 배운 것에 기인하였다. 그는 불교와 왕실, 정부를 비롯하여 사회 모든 영역은 비판과 논쟁에 열려 있어야 한다는 강한 신념을 갖게 되었다.
당시도 그렇지만 지금도 여전히 태국에서 그러한 비판은 구속의 사유가 된다. 술락이 불교행동주의를 시작하게 된 것은 1970년대 베트남전, 공산주의 통치 지배에 들어간 라오스와 캄보디아로 인해서 태국이 엄청난 영향을 받은 것을 비롯해서 태국의 사회적, 정치적 불안이라는 배경 때문이다. 1970년대와 80년대, 그는 재단, 자선단체, 비정부 단체와 행동가 그룹 등 여러 단체를 결성하였고 이는 현재 존재하는 태국의 강고한 비정부단체 네트워크의 초석이 되었다. 농촌과 도시지역에 대한 그의 활동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정치적 목소리를 제공했고 태국북부에서 환경을 파괴하는 파이프라인과 댐에 효과적으로 저항하면서 눈에 보이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술락의 행동주의의 기반은 붓다의 가르침에 있다. 『사회개혁을 위한 불교적 비전(A Buddhist Vision for Renewing Society』에서 술락은 “불교적 실천은 사회, 정치적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으며 팔리 경전에 나타난 것처럼 사회, 정치적 문제들은 붓다의 가르침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불교의 사회적 차원을 떼어놓고 불교를 이해하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불자들이 오늘날 사회, 정치적 맥락과 관련하여 의미 있는 방식으로 불법을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술락은 불교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주장하지 않고 오히려 개인이 붓다의 가르침을 현대의 사회, 경제적, 정치적 딜레마에 적용할 것을 주장했다. 이런 점에서 술락은 틱 낫한과 달라이라마, 20세기 태국의 가장 진보적이고 영향력 있는 승려 붓다다사(Buddhadasa), P.A 파유토(Payutto)와의 논의와 활동으로부터 큰 영감을 받았다. “소문자 b로 표기하는 불교(Buddhism)”는 술락이 이러한 방식의 불교적 실천을 칭하는 것이다.

“소문자 b의 불교”
가장 널리 읽혀지는 술락의 저서 『평화의 씨앗(Seed of Peace)』에서 그는 “소문자 b”로 불교를 나타냈다. 그는 개인에서 출발하여, 수행자들이 마음챙김, 관용과 상호연관성에 대한 붓다의 가르침에 따라 그들의 성격을 개발할 것을 권장한다. 그는 이를 통해서 한 개인의 정신적 발전이 사회의 고통을 덜어내기 위한 우리의 활동과 얼마나 직접적으로 연관되는지를 깊이 이해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소문자 b”의 불교, 즉 내면적 수행, 즉 마음챙김 및 관용정신의 함양과 상호연관성에 대한 깊은 깨달음과 더불어 술락은 전통적 5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이를 개인을 넘어 전체 사회로 확장하였다. 예를 들어, 첫 번째 계율과 관련하여 개인은 당연히 살생하지 말아야 하지만 자신들의 행위가 전쟁, 인종적 갈등 또는 소비 용 동물사육을 뒷받침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한다. 도둑질을 하지 말라는 두 번째 계와 관련하여 술락은 자본주의가 갖는 도덕적 의미에 물음을 제기한다. 여성에 대한 착취를 중단하는 것은 그릇된 성행위를 하지 말라는 세 번째 계를 자연스럽게 확장한 것이다. 잘못된 언행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대중매체와 교육이 편향된 세계관을 조장하는 방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경제체제로 인하여 농민들이 자립적으로 쌀과 채소를 재배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제 3세계의 농민들이 헤로인, 코카인과 커피, 담배를 재배하기 때문에” 중독성 있는 물질을 삼가라는 마지막 다섯 번째 계는 국제평화, 정의와 관련된다.
술락은 강렬한 연설로 유명하지만 5계의 재해석에 대한 글을 쓸 때는 보다 분석적인 어투를 보인다. “나는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지 않겠다. 단지 우리가 고려할 수 있도록 이 질문들을 제기하고 싶다”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술락의 21세기 식 표현에 대해서, 달라이 라마는 “술락과 나는, 인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면 경제적, 기술적 개발과 함께 내면의 정신적 성장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만일 우리가 이러한 두 목표를 달성한다면 분명 보다 행복하고 더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태국과 전 세계에서 40년간 술락의 저술과 행동주의는, “민주주의와 정의, 문화적 통합성에 근간을 둔 개발과정을 추구해오면서 보여준 그의 비전과 행동주의, 정신적 헌신을 이유”로 술락을 두 번이나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르게 하였고, 1995년 '바른생활상(Right Livelihood Award)'을 수상하도록 하였다. 2011년 술락은 니와노 평화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도반 - 정신적인 우애
술락의 모든 활동을 통해서 형성된 것은 팔리어로 정신적 우정을 의미하는 도반(kalyanamitta)의 정신이다. 술락의 정신적 우애는 방콕 중심에 있는 그의 전통식 티크 집에 잘 드러나는데, 집 자체가, 만연된 도시화의 폐해에 대한 저항을 나타낸다. 그는 수 십년간 자신의 집에서, 전 세계로부터 온 수 많은 학생, 활동가, 정치인, 난민들을 재워주었다. 둘러싼 대나무 의자와 매트가 놓여있는 종려잎 마당에 앉은 술락은 활동의 중심으로, 자신의 비전을 만들고 상상하며 꿈꾸고 실현하면서 서로의 정신적인 여정을 평가하고 비판하며 분석하는 공개포럼을 발전시켜왔다. 술락은 퀘이커교도와 개신교도를 가장 귀중한 도반의 일부로 생각한다.
잡아함경 반경(半經)에서 붓다는 제자 아난다가 도반이 성스러운 삶의 반(半)인지에 대해 묻자 아난다에게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성스러운 삶의 반이라고? 그렇게 말하지 마라 아난다야”. “존경할만한 벗, 존경할만한 동료, 존경할만한 동지는 성스러운 삶의 전부이니라. 존경할만한 친구, 동료, 동지로서 존경할만한 사람이 있는 승려는 8정도를 발전시키고 따를 수 있다”고 붓다는 답했다.
술락은 불교와 개발에서 “도반은 친구가 적절한 발전경로를 택하여 사회를 도피하지 않고 사회를 개선하길 원하도록, 그래서 그것을 자신의 성과로 주장할 수 있도록 친구의 또다른 양심의 목소리가 되는 것”이라며 도반에 대한 자신의 현대적 해석을 요약한다.
술락은 코카콜라 병을 들고 있는 달라이라마 사진을 보았던 때를 떠올렸다. 인도에서 다음에 만날 때, 술락은 도반의 정신으로 티베트 지도자에게 단 하나의 음료 캔과 연관된 고통과 환경의 해로움에 대해서 알려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술락은 또한 최근 그의 벗, 틱 낫한에게 베트남 승려의 가르침을 듣는데 돈을 내는 것에 대하여 물어봐야겠다는 생각과 프랑스에 있는 플럼 빌리지 수련센터가 오직 부유한 사람들만을 받아들이고 가난한 이들은 이용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졌다. 틱 낫한은 “술락에게 자신의 법문을 듣기 위해 돈을 내지 않으며 어느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다”고 장담했다. 술락은 또한 틱 낫한에게 그가 친밀한 사람들 밖의 이들과는 연결되어 있지 않으며 틱낫한 스님과 제자들 사이에 너무 많은 막이 쳐져 있어, “독백만 있지 그로부터 배우는 사람들과의 대화가 없다”는 점도 이야기했다.
지난해 방콕에서 술락은 틱 낫한 스님에게 “좋은 도반은 당신이 듣기 싫은 것도 당신에게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뜻이 같지 않더라도 나는 우려하는 바를 표현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술락은 “스님을 만나는 것조차 무척 어렵습니다”라고 술락이 말했다. “스님은 경호원처럼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래서 모르시죠. 아마도 스님 주변의 사람들이 이와 같은 일을 비난하지 않거나 스님에게 이야기하지 않겠지만, 우리는 오랜 친구이기 때문에 저는 이야기할 것입니다.”
틱 낫한의 대답은, 즉 술락에 대해 부드러운 비판은, 술락은 공개적으로 자신 또는 다른 이들을 비판하기에 앞서 모든 정보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실상 연로한 두 불교활동가 도반의 만남은 두 사람이 1970년대 초반 베트남으로 쌀을 밀반입하기 위해서 협력했을 때, 그리고 두 사람 모두가 망명하던 시절 1976년 틱 낫한의 아파트에서 술락이 머물렀을 때, 후에 베스트셀러가 된 틱 낫한의 책을 활동가용 명상 매뉴얼로 발간하던 수 십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음챙김의 기적, 술락이 매일 하는 명상수행은 틱 낫한의 개인적 가르침 덕분이다. 틱 낫한은 자신의 벗에 대해서, “술락 시바락사는 다른 이들을 돕는데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바치는 보살이”라고 이야기해왔다.

술락은 동료 불교인들에 대한 가장 통렬한 비판은 남겨 두고, 화려한 의례, 타이틀과 깊이가 없는 의례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을 비난했다. 그는 영성을 주지 못하면서 가부장적인 계급과 신화와 미신, 진실하지 못한 의례를 이어가는 불교의 제도화된 요소들에 대해서도 충고했는데, 그는 이러한 불교를 “대문자 B”의 불교라고 불렀다. 정부의 지원을 받는 승려든 또는 그저 대형 불교단체든 술락은, 정치적 동기를 지닌 의제를 제기하려는 개인이나 단체에 의해 불교적 가르침이 사용될 경우 맹목적 애국심, 편견, 민족주의의 씨앗이 뿌려지는 것이라 생각했다.
술락의 가장 친한 동료들도 그의 날카로운 평가를 피할 수 없지만, 좋은 도반에 대한 술락의 설명은 그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 사이의 충실함을 제안하고 영감을 주었다. 로시 존 할리팍스(Roshi Joan Halifax)는, “술락은 사자다. 그의 큰 으르렁거림은 사회 활동가들의 진정한 소명을 일깨운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러한 으르렁거림은 너무 과해서 술락의 중심그룹에 있는 사람들은 다른 길을 찾아 떠났다. ”나는 술락의 활동을 지지한다. 그러나 나는 멀리 떨어져서 그런 활동을 할 것이며 그를 위해 일하지는 않겠다“는 것이 태국의 수많은 유명활동가들이 하는 불평이다.
술락 자신도 상당히 자존심이 강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으며 자신이 말한 바를 실천하지 않을 경우, 도반들에게 지적해달라고 한다. 술락은 정기적으로 이러한 친구들로부터 자신의 한계-즉 그의 성미, 조급함, 고압적인 태도, 레드와인을 유난히 좋아하는 것 등-에 대해서 듣는다. 눈에 띄는 술락의 결점을 재빨리 지적하는 사람들조차 인정하는 것은 술락이 다른 이들의 결점을 지적하는 것만큼이나 빠르게 스스로를 비판할 수 있다는 점이다.

21세기 사회 변화에 대한 술락의 비전
술락의 행동주의는 지난 10년간 변화했다. 지난 기간 그는 종종 윤곽이 명확한 이슈 또는 국가의 특정 문제들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지금 그는 세계화에 대해 투쟁하며 그가 보고 있는 것을 구조적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술락은 자신의 최근 저서, 『지속가능성의 지혜(The Wisdom of Sustainability)』에서 구조적인 폭력이란 “사회자원이 불평등하고 불공평하게 분배되어 사람들이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는 제도적인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고통의 구조가 어떻게 유지되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는 모든 개인에게는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이 있다는 점을 강조한 불교의 근본 가르침을 되돌아본다. 이 삼독이 고통의 원인이다. 명상과 성찰을 통해서 이 독이 완전히 근절될 수 있고 자비와 자애, 지혜로 변화될 수 있다. 이는 불교에 대한 고전적인 설명이지만 술락은 이를 개인으로부터 시작해서 세계와 사회경제 시스템으로 확장하여 설명하였고 삼독심이 부유하고 권력을 지닌 이들에 의해 비도덕적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술락은 개인의 욕심이 사회적으로는 재산축적에 대한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으로, 끝없이 확대되는 “소유”로, 즉 자본주의와 소비주의, 환경의 한계를 간과하는 자연자원의 추출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둘째, 그는 개인의 증오의 씨앗이 군국주의로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셋째 술락의 가장 통렬한 비판은 망상을 판매하는 광고회사와 주류 미디어에 대한 것으로, 이들은 쓸모없는 상품과 유해한 생각을 조장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만족의 의미를 아는 삶으로부터 벗어나 빈곤과 이질감을 갖게 한다.
어떤 이들은 술락의 자본주의와 미디어에 대한 자극적이고 통렬한 비판을 예언자적이라고 평가하는 반면 다른 이들은 그를 연로한 이상주의자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국제 경제가 유일한 미래로 생각됨에도 불구하고 술락은 시장이 전통적인 도덕과 윤리를 대체하고 있으며 이러한 시장논리를 거부하는 것이 나약함, 순진함과 열등함의 징후로 간주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술락은 오늘날 세계가 인간 개발의 최 정점에 있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데, 이는 대개 무언의 정서가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다른 열망을 추구하지 못하게 하고 그들의 생활과 전통을 개선하거나 유지하기 위한 대안적인 방법을 생각하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제 80세가 된 술락이 세계화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면 사람들은 자신의 나라와 세상에 대한 깊은 슬픔을 느끼게 된다.
“전 세계 다양한 삶의 방식이 점점, 궁극적인 행복은 끝임 없는 재화와 서비스 소비에 의해 실현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소비자 문화의 동일한 선율에 맞춰 춤추고 있다”고 술락은 이야기한다. “이러한 억압적인 환경은 삶에서 의미있는 자유, 민주주의와 인권을 몰아내려는 팽팽한 올가미와 같다”
“결국 사람들이 스스로 힘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나는 단지 작은 역할만 한다. 아마 일깨우기를 통해서 그들을 도와줄 수 있다. 내게는 소비주의적 세계화, 세계은행, 세계무역기구(WTO), 국제통화기금(IMF) 등을 무너뜨릴 능력이나 네트워크도 없다. 그러나 이러한 기구들이 사람들을 돕는 방향으로 변화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자멸할 것이다. 그들은 도덕적 합법성을 갖지 못했고 단지 그들을 몰고 갈 탐욕만이 있으며 이 때문에 그들은 몰락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나는 힘 없는 사람들이 대안을 갖고 살아남을 수 있기를 바란다.”

손에 지팡이를 들고 태국 전통의상을 입은 술락은 계속해서 전 세계를 다니며, 사람들, 특히 자본주의적 승리주의와 소비주의에 세뇌당한 젊은이들이 종교지도자들과 그들의 전통 속에 남아있는 성자들의 삶을 살펴보고 그들로부터 지침을 삼을 것을 권유한다.
“나는 불교 국가 출신이고 과거 다른 문화의 수 많은 현자들처럼 붓다는 종교적 깨달음의 기반이었던 두 가지 중요한 특징, 소박함과 겸허함을 길렀다”
“생활에서 소박함과 다른 이들과 환경에 대해서 겸허함을 개발하기 시작하면, 이 억압적인 그물망을 풀게 된다. 아마도 더욱 중요한 것은 분노와 탐욕, 망상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완전히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이러한 개인의 변화를 통해서 서로, 그리고 우리 주변 환경간의 상호연관성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러한 통찰력으로 우리는 다른 이들을 돌보는데 있어서는 지혜를 찾고, 지구의 자원을 남용하지 않는 방법을 찾게 되며 다른 문화와 전통, 신앙을 존중하게 될 것이다.”
개인들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자본주의를 거부해야 하는가? 전쟁을 어떻게 막을 수 있는가? 어디서부터 구조적 폭력을 해체하고 보다 공정한 사회를 이끌어낼 수 있는가?
술락은 개인의 책임성, 그리고 명상을 통한 마음 챙김의 개발을 강조함으로써 이 질문들에 답하고 있다. 아래 내용을 보면, 술락이 개인들에게 인류의 현재 경로를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낙관적으로 믿는 경향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정치적, 경제적 제도의 개혁 그 자체만으로 해방을 달성할 수는 없다. 개인의 변화는 출발점이다, 사회 안의 개인이 평화로울 때에만 평화가 사회에 퍼질 수 있다. 탐진치가 개인사를 지배하면 우리 사회의 제도 속에서도 탐진치가 나타나게 되어 영원히 사회변화를 이루지 못하게 할 것이다. 진정한 안전은 우리 스스로의 수행에 달려 있다.”

마테오 피스토노(Matteo Pistono)는 티베트 불교 저술가이자 수행자이며 『붓다의 그림자: 티베트에서의 비밀스러운 여정, 성스러운 역사와 영적 발견(In the Shadow of the Buddha: Secret Journeys, Sacred Histories, and Spiritual Discovery in Tibet)』. 티베트와 히말라야의 문화적, 정치적, 종교적 풍광에 대한 피스토노의 저술과 사진은 워싱턴 포스트(Washington Post), BBC의 In-Pictures, Men’s Journal, Kyoto Journal, 그리고 HIMAL South Asia에 게재되었다. 그는 전 세계 성지 순례지를 보호하는 재단 Nekora의 설립자로 국제참여불교네트워크(INEB)과 Rigpa Fellowship, 티베트 예술과 문화 보호단(Conservancy for Tibetan Art and Culture)의 이사로 있다.
저자 관련 홈페이지 [http://www.matteopiston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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