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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글올린 게시글: 2018-10-31, (수) 2:57 am 

가입일: 2015-01-01, (목) 10:13 am
전체글: 215
입법부가 법을 만들고 행정부가 법을 집행하지만 그들도 법을 지키지 않으면 처벌 받아야 한다. 그와 같이 하나님이 설혹 우주의 법칙을 만들고 집행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도 그 법칙을 지켜야 한다. 자신이 법을 만들었다고 해서 그 법을 지키지 않으면 법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국민이 법만 잘 지키면 경찰이나 검찰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듯이 인간도 우주의 법칙만 잘 지키면 기독교처럼 하나님에게 예속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도 우주의 법칙을 충실히 지키고 있는데 우주의 법칙을 잘 따른 인간을 징벌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참고로 말하면 부처님도 우주의 법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으므로 불자들이 우주의 법칙에 위배되는 기도를 하면 절대로 들어주지 않는다.

벌이나 상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대가이므로 공정하게 받아야 한다. 그런데 국민이 법은 잘 지키지 않으면서 대통령이나 검찰에게 잘 보여서 징벌을 면하려고 하면 잘못인 것처럼 인간이 하나님에게 잘 보여서 죄를 사면 받으려고 하는 것도 역시 잘못이다. 하나님이나 부처님은 자신에게 뇌물(헌금, 시주)을 준다고 해서 절대로 편파적인 심판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이나 부처님께 바쳐진 뇌물은 중간에서 성직자들이 모두 가로챘으며 하나님이나 부처님은 그 뇌물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반인은 법률을 잘 지키고 종교인은 계명(계율)을 잘 지키기만 하면 자기가 할 도리를 다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승려들은 동남아의 스님들이 탁발을 통해서 수행을 하는 이유를 깊이 새겨보아야 한다. 모든 욕심은 음식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승려가 부와 권력을 가져도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없다면 그 부와 권력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많은 종교인들이 경전의 가르침이 이성적으로는 잘 이해되지 않더라도 주변에서 일어나는 신비한 현상에 미혹되어 감성적으로 신앙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필자가 수행을 하면서 산중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다보면 신통력을 지닌 사람들을 가끔 만나게 된다. 정통 종교인은 물론 이단 종교인들이나 무당들 중에서 그런 사람들이 많은데 과연 그런 능력이 신으로부터 주어진 것인지 알아보자.

인류가 원시인이었을 때는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적과 아군의 구별이 모호해서 상대가 살기(殺氣)를 품고 있는지를 직관적으로 파악해야 했고, 길을 가다가 근처에 맹수가 있는지도 감각적으로 알아내야 생명을 보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인간이 집단생활을 하면서 안전한 주택과 방위체제가 확보되었으므로 점차 그런 감각이 퇴화돼버렸다. 전화나 통신매체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가족 중 누군가가 외지에 나가면 부모님이 별 탈이 없는지 혹은 자식은 잘 있는지 걱정이 돼서 텔레파시로 그걸 알아내거나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제는 통신매체가 발달해서 그런 능력이 필요 없으므로 모두 퇴화됐다. 다만 아직도 일부 사람들에게는 그런 텔레파시 능력이나 신유(神癒) 능력과 같은 신통력이 나타나기도 한다. 무당이나 일부 종교인들이 아직도 그런 능력을 발휘하는데 그들이 신통력을 발휘하는 원인과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사람의 뇌는 매우 복잡한 전자기계와 같으므로 모두 고유한 뇌파가 발생한다. 그런데 신통력이 있는 사람은 정신력을 집중하면 상대의 뇌파와 공조를 일으켜서 상대의 파동을 수신(해킹)하는 능력이 있다. 그래서 상대편 뇌 속의 데이터 일부를 무선으로 다운로드할 수도 있다. 모든 점쟁이들이 과거에 대해서는 족집게처럼 매우 정확하게 맞추는데 미래는 잘 맞추지 못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 상대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데이터를 읽어서 과거는 맞추지만 미래에 대한 데이터는 상대의 머릿속에도 없기 때문에 현재의 데이터를 근간으로 유추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미래는 맞출 확률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이다. 신통력이 정말로 신이 주신 능력이라면 과거나 미래를 똑같은 확률로 맞추어야 하는데 왜 커다란 차이가 날까?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최근에는 인간과 기계는 물론 인간과 인간끼리도 뇌파(뇌전도)를 이용해서 의사를 전달하는 실험에 성공했다. 눈을 감고 손가락으로 책을 읽는 어린이가 TV에서 방영된 적이 있다. 필자는 그것을 보고 처음에는 이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자세히 지켜보다가 그 이치를 깨달았다. 신통력이 있는 아이가 손가락으로 글자를 짚으면 주변 사람의 시선이 전부 그리로 모이고 그 영상이 그들의 머릿속으로 전달되는데, 이때 아이가 해킹 능력으로 주변 사람들의 눈에서 뇌로 전달되는 영상을 읽어 내는 것이다. 신통력을 가진 아이도 책을 덮어놓고 손가락으로 책을 읽어보라고 하면 읽지 못한다. 결국 아이가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아이 대신에 주변의 사람들이 글을 읽어 주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여자들은 매우 직감적이라고 말하며 특히 남편이 바람을 피우면 육감적으로 그것을 안다고 말한다. 그러면 왜 여자들의 감지 능력이 강할까? 여자는 신체적으로 약자이므로 강자들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 자기를 보호하는 필수적인 수단이고 그래서 상대의 마음을 읽는 직감력이 퇴화되지 않고 아직도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바람을 피우고 집에 들어오면 행동이 자연스럽지 못할 뿐만 아니라 머릿속에 다른 여자 생각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부인이 쉽게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신유 은사를 가진 사람도 환자가 진통제를 먹고 아픔을 느끼지 못하면 상대가 아프다는 것을 알아내지 못한다. 왜냐하면 환자의 정보를 신으로부터 받는 것이 아니라 환자 자신으로부터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독교에서는 신과 통한다는 방언이라는 기괴한 언어가 있는데 이것은 언어장애 현상이다. 쉽게 말하면 벙어리가 마음만 급해서 마구 떠드는 소리와 같다. 방언을 통역하는 사람이 있는데 방언을 통역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읽어서 비슷하게 번역하는 것이다. 만약에 그들에게 방언을 녹음기로 녹음해서 통역하라고 하면 각자 다르게 통역할 뿐만 아니라 수개월 후에 똑같은 소리를 다시 똑같은 사람에게 통역해보라고 하면 예전과 다르게 통역한다.

기독교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에서 나타나는 초능력이나 신통력은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원시적인 생명력의 회복 현상이며 신의 작용이 아니다. 성직자의 안수 기도와 신유 그리고 무당의 굿이나 무술 고단자의 내공에 의한 환자 치료는 그들의 생체 전기를 환자에게 주입해서 일종의 전기침을 놓는 것과 같다. 운동이나 정신 수련이 많은 사람들 혹은 선천적으로 신통력(?)이 있는 무당 같은 사람들은 원시적인 생명력이 강해서 그들의 생체 전위가 일반인보다 높으므로 환자와 접촉하면 그들의 생체전기가 환자에게 흘러들어가서 질병을 치료하게 된다. 그래서 환자와 직접 접촉을 해야 치료효과가 높아진다. 안수 기도를 할 때에 상당수가 약한 감전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도 전기가 흐르기 때문이다.

초능력이 정말로 신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라면 접촉할 필요도 없으며 모든 병에서 동일하게 효과가 나타나야 하는데 신경성이나 기능성 질환에만 효과가 있고 세균성 질환에는 효과가 없다. 왜냐하면 사람은 신을 무서워하지만 세균은 신을 무서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균성 질환을 기도로 치료하려고 하다가 적절한 치료 기회를 놓치고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으니 조심하라.

신유 능력이 신경 계통의 질환에 효과가 큰 것은 신경 계통이 생체 전기와 매우 관련이 깊기 때문이며, 기능성 질환의 경우는 호르몬의 분비나 면역체계와 관련이 있는데 이들에게는 심리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가끔 성직자가 소위 말씀으로 치료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것은 말씀에 깊이 도취된 환자가 스스로 자가발전을 해서 치료되거나 최면에 빠져서 일시적으로 치료된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신유 치료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은 치료받는 사람이 치료하는 사람을 신뢰하고 믿어야만 효과가 잘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것은 신유를 행하는 사람의 치료 능력이라기보다 환자의 최면적인 자가발전 치료가 더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환자가 의사나 약을 신뢰하지 않으면 치료 효과가 현저히 감소하는 플라시보 효과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에서 흔히 행하는 신유 능력자의 환자 치료행위는 법률적으로 말하면 무면허 의료행위에 불과하다.

2018년 10월 22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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