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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글 제목: 불교철학의 구성성분
전체글올린 게시글: 2018-09-13, (목) 2:23 am 

가입일: 2015-01-01, (목) 10:13 am
전체글: 210
철학은 자연과 인류사회와 사유발전의 일반적 법칙을 연구하는 학문분과이며 이것은 세계관과 관련된 학문이다. 불교의 3학 중에서 주로 혜학이 철학적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3학 중의 계학과 정학은 주로 도덕수양학설에 속한다. 그러므로 戒는 철학적 내용을 아주 작게 포함하고 있지만, 혜학은 불교도덕학설의 내용으로 관철되고 있으며, 또한 인생과 우주에 대한 입장을 광범하게 섭렵하고 있어서 더욱 많은 철학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불교의 근본목적은 현실생활의 궤도에서 벗어나 이른바 해탈을 얻는데 있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불교는 일관되게 인생과 우주만상의 진실한 본질을 탐구하고 있다.
신도들에게 설교하기 위해, 그리고 다른 外道들과의 투쟁의 필요에 부응하기 위해서 불교의 이론과 사유의 수준은 부단히 발전해 왔다. 역대 불교사상가들은 계속 그 인생관과 세계관에 따라 교의를 고도로 밝히고 계속 철학의 색채를 첨가하여 철학의 내용을 풍부하게 했다.

불교의 이론은 일반적으로 境, 行, 果의 3방면에서 논술이 진행된다. 경은 관찰되는 대상, 곧 인식의 대상이다. 행은 수행이고, 과는 수행으로 얻어진 결과이다. 다시 말해 境은 불교의 세계에 대한 인식이고, 行과 果는 불교의 실천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철학사상은 주로 경이라는 범주의 논술에서 드러나고 있으니, 즉 경의 진실한 본질에 대한 여러 설법에서 표현되고 있다. 불교는 인식대상에 대한 진실한 본질의 인식이 불교의 진리를 구성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런 종류의 진리는 결코 객관사물에 내재한 법칙에 대한 정확한 반영이 아닌 전도된 방영, 허구적인 반영일 경우가 많다. 그런데 바로 이런 이론이 대승불교학설 중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불교철학은 불교 전체 교의의 사상의 기초다. 달리 말하면 불교교의 중의 인생관, 세계관, 방법론이다. 그러므로 불교철학의 대상과 범주는 불학에 비하여 좀 제한되어 있어서 그것은 불학 중의 일부분이요, 그 중의 사상적 핵심부분이라 할 수 있다.

불교는 독단적 설교이고 경건한 신앙이지만, 철학은 지혜의 추구이고 이성적 사색이다. 불교는 철학과 다르고, 철학 또한 불교를 개괄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러나 불교 안에는 철학적 이치가 포함되어 있고, 그것을 이론적 기초로 삼는다. 종교라는 신앙과 철학이라는 사색이 바로 불교 안에서 기묘하게 결합하고 있다. 이러한 까닭에 불교는 곧 종교이면서 철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불법은 종교도 아니고 철학도 아니다’라는 말은 불교의 실제 정황과 부합하지 않는다.

그러면 불교철학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불교철학은 객관존재의 반영이고, 사회존재의 반영이며, 또한 인식의 범주에 속해 있고, 사회인식의 형태에 속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역사상에서 보면 불교철학의 범주는 그 발전과정을 갖고 있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불교이론의 축은 인생 내지 우주만상의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며, 해탈을 구하기 위한 논증이다.

불교에서는 ‘진실’을 ‘眞性’ ‘眞實性’이라고 하는데, 이는 불교철학에서 대상으로 삼는 중심범주이다. 이러한 ‘진실’을 찾기 위해서 불교의 사상은 내용적으로는 간단한 데서 복잡한 데로, 범주로는 작은 데서 큰 데로, 정도에 있어서는 낮은 데에서 깊은 데로 진행해 왔다.
불교가 처음 일어났을 때에는 인생현실의 문제를 고찰하는 데 치중하다가 그 다음에는 인간과 우주의 교섭문제를 탐색하고 마지막에는 전체 인생과 우주를 깊이 파고 들어 인생의 참뜻과 우주의 실상을 깊이 탐구하였다.

불교는 인생의 ‘진실’을 탐구하는데, 인생에 대한 가치판단을 내리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즉 인생의 내용은 苦이며, 인생의 이상은 현실생활에 수반되는 여러 고통을 제거하여 해탈을 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독특한 가치판단이며, 독특한 인생관이다. 불교는 인생의 ‘진실’을 깊이 탐구한다. 이 ‘진실’은 바로 저명한 불교사연구 전문가인 呂燈선생이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지식이나 과학에서의 진실과는 다르며 윤리도덕면에서의 이른바 ‘善’과 같은 것이다. 眞의 의미는 곧 善이니 眞은 善이다.
‘진실’의 반대는 ‘虛妄’인데, 眞과 妄은 상대되는 것이어서 眞이 善이라면 妄은 惡이다. 善은 또한 ‘淨’과 관계된다. ‘淨’은 청정이니, 번뇌를 제거한 상태이다. 惡 또한 淨과 반대되는 ‘染’과 관계된다. ‘染’은 오염이니, 곧 망념, 번뇌, 과실이다. 淨, 善은 眞이고, 染, 惡은 妄이다. 여기서 善과 惡은 도덕의 범주에 속하고, 淨과 染 또한 기본적으로는 도덕의 범주에 속한다. 여기서 도덕을 眞과 妄을 구분-검사하는 척도로 삼았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윤리학의 내용을 포괄하는 것이다.

불교는 인생의 ‘진실’을 깊이 탐구하는 것에서 우주의 ‘진실’을 찾는 데까지 이른다. 나중에는 ‘진실’은 ‘境’ 즉 인식대상과 상대하여 설명된다. 境은 또한 ‘所知’(알려지는 것)라 불린다. 알려지는 것은 인식대상이니, 즉 감성활동의 대상이며, 또한 이성활동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 안에는 心과 物의 관계에 관한 문제, 의식과 물질의 관계에 관한 문제라고도 말할 수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진실’과 ‘所知’의 관계에 대한 문제는 사유와 존재, 의식과 물질의 관계문제의 구체적 형태이며, 이것은 세계관과 인식론의 근본문제이다.

불교에 있어 전체 인생과 우주의 ‘진실’에 대한 탐구는 연기설로 귀결되고 있다. 즉 인생과 우주사상은 모두 여러 원인과 조건이 화합하여 생겨난다는 것이다. 연기설은 불교 전체 교의의 이론적 기초이다. 연기이론으로부터 추론해 나가면 일체 현상이 모두 찰나의 변화이며, 영원히 변화한다는 ‘無常’의 관점을 얻게 된다. 다시 말해 이미 일체 사물이 모두 인연이 화합하여 일어난 것이니, 자아의 주재도 있을 수 없고, 영원히 변화하지 않는 실체도 없는 것(無我)이어서, 인생과 우주만물은 모두 ‘무아’이다. 여기서 이른바 ‘人無我’와 ‘法無我’의 이론이 나온다. 이로 인해 불교는 그 외 다른 유파의 기본이론과 구별되는 특징을 갖는다. 불교의 연기설과 그로부터 끌어낸 ‘무상’론과 ‘무아’론은 철학적으로는 우주생성론과 본체론, 動靜觀 등의 중대한 문제와 관계를 갖는다.

불교는 인생과 우주의 ‘진실’을 탐구하면서 또한 주체의 인식활동과 내용, 형식 등의 인식론의 문제도 포함하여 다룬다. 불교는 ‘진실’의 인식은 결코 일반적 사유활동(불교에서는 일반적 사유활동을 ‘識’, ‘了別’이라고 부른다)으로 도달할 수 없고, 일반인들의 총명한 지혜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단지 불교의 지혜(‘반야’라고도 부른다)에 의해서만 비로소 ‘진실’을 인식할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이른바 ‘진실’에 대한 인식이 곧 ‘지혜’, ‘반야’임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불교는 불교지혜 역시 일반 사유활동을 정밀하게 단련하면 ‘고급’인식으로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것은 불교의 반야지혜와 일반인의 인식활동과의 관계문제를 야기한다. 그 외의 문제로는 사람들의 사유활동은 반드시 단계적으로 개념을 형성하는데, 개념이란 사물을 구분하는 작용이다. 철학에서의 개념을 불교에서는 ‘名言’이라고 한다. 개념에 대해서 어떤 불교유파는 실재한다고 생각하고, 어떤 유파는 허구라고 생각하여 假名이라고 한다. 또 다른 유파는 개념을 ‘戱論’이라 하여 불교도덕의 실천에 대해 해롭게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또한 개념의 구성, 성질, 의의, 가치 등의 이론적 문제를 포괄하는 것이어서 불교학자는 이런 문제에 대해 모두 가지각색의 설명을 하였다.

불교는 인생의 ‘진실’을 탐구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사람이 무엇으로 성불할 수 있으며, 어떻게 성불할 것인가의 문제를 설명하기에 이른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사람에게 성불하기 위한 내재적 근거(佛性)가 있는가 없는가, 사람의 본성은 선한가 악한가 하는 등의 문제를 탐구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인성의 문제, 또한 불교에서 비중있게 다루는 큰 문제라고 답할 수 있다.
인도불교는 일반적으로 사람의 心性은 寂淨한 것이라 생각하여 ‘心性寂淨’을 말하면서 사람에게 성불의 내재가능성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또 일반적으로 모두 사람의 본성이 善하다는 데로 기울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보면 어떤 유파는 어떤 종류의 사람은 성불할 수 없다고 하기도 하고, 어떤 유파는 모든 사람이 성불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중국 불교학자는 중국 고유의 사상적-문화적 배경의 단련과 영향을 깊이 받아서 더욱더 사람의 본성을 탐구하는데 치중하였는데, 대체로 사람의 심성은 본래 깨달음의 상태라 생각 했다. 이것이 이른바 ‘心性本覺’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단지 內心을 향하여 추구하여 본래의 깨달음을 드러내야만 하며 이것이 곧 성불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어떤 유파는 사람의 본성은 善惡 두 요소를 다 갖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대다수의 유파는 보편적으로 사람의 본성은 선하다고 강조하고 사람마다 모두 성불할 수 있다고 하면서 그에 대한 직접적 논증을 하고 있다.

위에서 살펴본 대로 불교학설은 인생관, 우주관, 윤리학, 인식론 등 다방면의 철학영역을 포함한다. 이것이 불교철학의 골격이고, 불교철학의 기본범위이다.

여기서 상술한 불교철학의 네 방면의 내용이 불교저작 안에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통일적인 것이어서 나눌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마땅히 강조해야만 하겠다. 불교저작은 모두 그 종교도덕의 실천적 요구로부터 출발한 것이어서 그 내용은 인생이 추구하는 해탈의 因果를 논증하기 위한 이론이다. 불교의 우주관과 인식론은 모두 해탈론을 위한 논거를 제공하는 데로 귀결된다. 그래서 불교의 우주관과 인식론은 불교의 인생관과 윤리학 속에 포함되는 것이다. 비록 몇몇 불교 전적들이 비교적 우주관의 논술에 치우쳤다 하더라도 불교철학 중에서 우주관과 인식론은 인생관과 윤리학의 논증의 도구와 구성요소로서 중시되고 강조되고 있다.
우리들이 불교철학의 내용을 몇 분야로 나누는 것은 분석하고 서술하는데 있어서 편의롭게 하려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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