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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글올린 게시글: 2016-10-20, (목) 9:12 pm 

가입일: 2015-01-01, (목) 10:13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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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학교 이중표교수-중도와 십이입처

브라만교는 범아일여, 사문은 사대론 주장
부처님은 일체가 12입처라고 말했다


불처님의 일체유는 보고 보이는 것이며
부처님의 일체법은 변하며 연기하는 것


역사적으로 가장 높게 평가받고 있는 책이 용수의 중론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가장 많은 가르침을 받은 책이 용수의 중론이다. 처음에는 읽으면서 너무 어려워 왜 그런 평가를 받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계속 읽으면서 사유하다 보니 정말 제2의 부처로 칭송받아도 손색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됐다. 오늘은 중론에서 ‘열반과 세간은 조금도 분별한 것이 없다’는 것을 가지고 이야기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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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목적은 열반이다. 중론의 열반품은 우리의 목적인 열반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게 바른 이해인가를 말한다. 여기서 열반과 세간은 조금도 분별할 것이 없다. 그리고 세간과 열반도 또한 조금도 분별한 것이 없다.

이것은 동일한 말을 하는 것이다. A=B이고 B=A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분별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다르긴 한데 분별할수 없다는 것이다. 중론에는 이에 대해 “열반의 실상과 세간의 실상은 호리의 차별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열반을 추구할 것인가. 의상대사의 법성게에 생사열반상공화라는 말이 나온다. 이것은 생사의 자리에서 깨달음 얻어 올바른 실천을 하게 되면 열반을 증득하게 될 것이지만 현실에서의 생사와 열반은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종교는 현실에서 이상을 추구한다. 이상을 어디에 두느냐는 중요한데 사람들은 이상을 추구할 때 자기가 있는 자리를 떠나고 싶어 한다. 딴 세상에 가고 싶어 한다. 천당이나 극락을 가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론에서는 서있는 자리를 떠나서 열반을 구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는 달라져야 옳은 것처럼 생각하는데 그러지 말라는 것이다. 실제 실상을 보면 생사로서 느끼는 그 자리가 열반의 자리인데 인식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불자들은 신세를 바꾸려 하지 말라. 생사는 항상 함께하고 있어, 그 자리가 열반할 수 있는 자리라는 것이다. 이것은 깨달음을 통해 나오는 세계로 인식의 변화이고, 의식의 전환이다.

불교는 존재론적으로 수행 목적이 열반에 있는데 고통스런 현실 속에서 열반을 얻으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그런 생각이 든다면 부처님을 생각하라. 부처님은 왕자의 지위를 버리고 거기서 열반을 발견한다.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 의식이 문제다.

현실 존재를 변화시키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의식을 변화시키자는 것이다. 의식은 변한다. 삶을 통해 변한다. 선한과보가 열반이다. 열반도 업을 통해 성취하는 것이다. 수행도 업이다. 선업이다. 이런 것을 알고 공부해야겠다.

브라만교의 존재론, 범아일여(창조론)

이 세상에는 세계를 설명하는 많은 이론들이 있다. 그 가운데 브라만교와 사문들의 사상이 대표적이다, 브라만교는 태초 브라만 신이 있어 이 영적 존재가 스스로 욕심을 일으켜 열이나 밖으로 튀어나와 불이됐다. 그래서 사람들이 욕심을 내면 속에서 불이난다. 욕망의 불꽃이다. 그러니까 불이 나오는데 처음 브라만신은 형태가 없다. 브라만은 영적존재이고 순수한 정신으로 생각함으로써 물질이 나왔다. 또 불을 끄기 위해 물이나 왔다. 우파니샤드에서는 이렇게 논증한다,

남이 인정하게 되면 논리적으로 성공한 것이다. 브라만이 욕심내서 불이 나오고 다시 물이 나왔다. 이것을 우리가 욕심을 내면 열이 나는 것으로 설명했다. 언어적 설명보다 더 쉬운 것이 비유를 드는 것이다. 비유도 중요한 논증이다.

이제 철학을 보는 시각이 달라야 한다. 우리가 서양철학에 익숙해 져서 그렇지 논증은 언어적 설명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물 다음에는 물이 동식물을 살리고 이것을 섭취해 살아가듯이 영양분이 만들어졌다. 이 세계의 물질 토대와 생명들이 만들어졌다. 창세기적으로 말하면 생명들이 먹을 것을 만들어준 것이다. 단어는 틀려도 구조는 비슷하게 흘러가는 것이다. 그다음 그것으로 세계를 만들었다.

창세기는 말로 만들어 진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하나님이 있었던게 아니다. 이렇게 물질토대를 만들어주면 재료가 되어 만물을 만들고 그속에 브라만이 들어가 버린다. 모든 것에 브라만이 있게 된다. 너와 나의 브라만이 근본적으로는 하나이다. 즉 범아일여이다. 내가 브라만이고 네가 브라만이기 때문에 그걸 알면 태어나고 죽는 것을 떠나 불사에 이른다. 그는 윤회하지 않는 브라만천에 태어난다.

이런 것을 감로라 한다, 죽음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감로수를 먹으면 안죽는다. 감로탱은 사후에 재 지낼 때 쓰는 탱화이다. 옛부터 사람들은 안죽으려 했다. 죽음이 있으니까 피하려고 했다. 그런데 죽음의 실상인 아트만이 돌아다니고 있고, 본래 죽음이 없는 존재인줄 모르기 때문에 죽음이 나온다. 브라만교는 근본적으로 이런 구조이다.

따라서 깨달은 놈은 안죽고 영생한다. 아트만의 실체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여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문이 나타난다. 모든 종교나 사상은 이 세계가 무엇인가로부터 출발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다고 하는 것은 이 세상 모든 존재론적인 것에 대한 해답을 준 것이다. 더 이상 물을 것이 없다. 그냥 믿으면 된다. 이렇게 의심이 일어나지 않아야 하는데 의심이 일어난다.

사문들의 사상, 4대론(유물론)

부처님의 가르침도 듣고 불만스럽다면 또 다른 답을 찾을 것이다. 부처님이 말씀한 내용을 듣고 의심이 끊어지면 불교를 받아들이는 것이고, 믿지 않고 아닌데 하면 불교와 인연이 없는 것이다. 브라만교의 가르침에 불만을 품고 새롭게 나타난 사람들이 사문이다.

전통 바라문 사상인 브라만 계급들은 제사를 잘 모셔야 좋은 세상에 태어난다고 주장한다. 제사를 잘 지내면 죽어 좋은 세상가고, 해탈한다. 죽음은 이를 모르는 무지로부터 일어난다. 불교도 죽음은 무지에서 일어난다고 가르치는 점에서는 같지만 생사가 벌어지는 과정이 다르다.

아무튼 새로운 사문들은 경험할 수 없는 것은 누구도 모르기 때문에 무슨 말이라도 맞거나 맞지 않거나 둘중에 하나이다. 누구도 시비를 걸수가 없다. 그래서 사문들은 앞에 있는 것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앞서 시간적 환원과 공간적 환원을 이야기 했다. 이것은 존재를 확인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제가 번역한 불교와 일반시스템 이론에 환원주의가 나온다. 시간적으로 되돌려서 설명하려는 것이다. 현실을 설명하기 위해 근원으로 가서 원리나 존재를 찾아보려는 것이다.

근원을 하나님에 귀결시키면 하나님이 진실이고 참이다. 때문에 하나님 이외의 다른 것은 모두 헛된 것이 된다. 그런데 공간적 환원에서는 시간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경험적으로 공간이 없는데 존재하는 것이 있는가. 우리는 존재를 이해할 때 시간과 공간을 전제로 하고 있다. 존재를 이야기하면 언제와 어느 정도 크기라는 공간적 크기와 위치를 전제하기 않고는 있다고 할수 없다. 시간도 공간에도 없다면 없는 것이다.

이 세상은 존재하는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세상은 누가 만들었거나 본래 있었거나 둘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컵은 있다가도 없어지지만 흙은 안 없어진다. 흙은 변하지 않고 형태만 변한 것이다. 이것이 존재 중에서 위대한 존재 즉 마하붓다로 지수화풍 4가지가 있다. 우파니샤드와 연결이 돼 있는. 4대는 경험할 수 있다. 이것의 조화 결합에 의해서 이 세계가 만들어 졌다. 이렇게 유물론이 등장한다.

유물론은 더 나아가 요소론으로 발전한다. 4대로는 설명할 수 없는 우리가 느끼는 고락이나 감정을 우리가 경험할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인지하는 영적 실체, 생명을 가진 존재, 아트만이 우주적 자아라면 동질의 브라만은 개체적 자아이다. 그래서 7요소설, 12요소설이 출현하는데 우리의 삶은 요소가 결합된 것이고, 죽음은 해체된 것이라고 보았다.

죽으면 해체되고 자아는 사라질 것이다고 말한다. 죽은 뒤에 저세상에 간다는 생각과는 서로 안맞는다. 이것이 적취설을 주장하는 진화론이냐 전변설을 주장하는 창조론이냐를 두고 싸우는 핵심이다. 불교는 둘다 망상이며 이해가 안된 상태에서 나온 잘못된 생각들이라고 말한다.

부처님도 이 두가지를 공부했으나 만족하지 못했다. 부처님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가했다, 생로병사의 문제에서 아트만이 있어 늙고 죽는다는 것은 상견이다. 적취설은 죽으면 그만이라는 것으로 단견이다. 둘다 만족스럽지 못하니 어떡하자는 것인가. 부처님은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그걸 불교의 세계관을 통해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존재론, 인연설

안 없어지는 존재가 있다거나, 이것이 돌아다니면서 윤회한다거나 하는 이론은 모두 존재를 상정하고 있다. 브라만이든 4대든 존재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면 무엇을 브라만이라 하고 무엇을 4대라 해야 할까요.

부처님은 “무엇을 불이라고 부르는가 뜨겁게 느껴때이다. 촉촉하면 물, 딱딱하면 흙, 움직임이 느껴지면 바람이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이것이 4대를 실체로 보는 사람들에 대한 부처님의 답이다.

4대의 실상을 보니 촉촉해서 물이라고 부르는 경험을 통해 개념이 부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존재에 대해 다른 이야기를 할수 있을까. 브라만에 대해서도 있다고 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본 것이다. 이것이 존재를 탐구하는 존재론적 구조이다.

불교는 누가 만들었다. 무엇으로 만들어졌다는 질문에 대해 실체론적 대답을 안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불교는 존재론이 없다고 말한다. 부처님은 현실 괴로움에 대해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에 대해서만 말했지 존재론은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존재론에 빠져 의식의 전환, 중도의 깨달음에 접근하기 어려워진다. 우리 공부가 다른데와 다르다는 것은 이런 점에서 정확하게 부처님을 볼 필요가 있다. 그때 부처님은 실제로 말했지만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어느날 부처님에게 생문이라는 바라문이 찾아와 질문을 했다. “고타마는 무엇을 일체라 부르는가”. 이에 대해 부처님은 “일체는 12입처다”라고 답했다. 즉 안이비설신의 색성향미촉법 감각이라고 말한 것이다. 동문서답처럼 들린다. 그런데 주석서보면 일체법을 분류할 대 12처로 이야기 했고, 오온, 12처, 18계는 일체존재를 분류할 때 쓴 것으로 아비달마에서 해석했다.

그 다음에 이어 생문은 “그럼 일체유는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 이 물음에 부처님은 “는이 있는가, 눈이 보는 색이 있는가” 라고 되묻자 바라문은 “있다”고 답한다. 그것이 일체 유라고 말하자 바라문은 다시 “그럼 일체법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 안과 색을 연하여 일어나는 안식, 귀와 소리가 연하여 일어나는 이식 등등 이것이 일체법이다. 이처럼 부처님은 일체와 일체유와 일체법을 다르게 쓰고, 설명을 하고 있다.

생문은 바라문이니까 우파니샤드를 공부한 사람이다. 바라문교에서 “일체는 브라만이다” 라고 하고 있다. 브라만에서 나와서 브라만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 존재의 근원이 되는 존재가 무엇인가 물은데 대해 부처님이 12입처라고 한 것이다. 사문에게 물으면 4대라고 했을 것이다. 즉 궁극적 실체를 물은 것이다.

부처님이 일체는 12입처라고 한 것은 다른 것을 일체라 할 때 어떤 근거도 찾을 수 없고 의심만 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12입처에 대해서는 경전에 반복적으로 너무 자주 나온다. 그래서 사람들이 시시하게 느끼고 소홀히 하지만 반복되는 것은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자주 나온다고 보아야 한다.

12입처는 육근 육경이라고 아비달마는 설명한다. 하지만 부처님이 말한 12입처는 안이비설신의 색성향미촉법으로 실제 우리의 눈귀나 눈귀의 외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각구조 지각활동을 의미한다. 이것은 실제로 우파니샤드에도 존재한다. 신체해부학적 존재로 인드리아라고 하는데 이것을 인근이라 한다. 부처님이 입처라고 하는 말은 아야따나라는 말이다. 부처님은 12입처라고 했지 육근 육경이라고 하지 않았다. 이말은 다른 맥락에서 사용하고 있다. 안이비설신의는 우리 개념 구조로 눈귀코 등으로 생각된다. 색성향은 밖에 보이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반야심경에서 혼란이 온다.

갑자기 눈귀코 등이 없어진다는 것이 무슨이야기 인가. 이해가 안된다. 그런거는 없다. 부처님은 아야따나를 이야기 하는 것이지 육근 육경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 아야따나는 어디다 사용했을까 공처, 식처, 무소유처, 비상비비상처라는데 나온다. 처라는 말은 자아의식과 연결된다. 우파니샤드를 보니 브라만이 머무는 장소가 있는데 볼 때 눈에 머물고, 숨쉴 때는 호흡에 머물고, 생각할 때는 마음에 머문다. 이를 브라만이 머무는 아야따나라고 부른다.

브라만이 머물고 있는 장소를 부처님은 우리 중생들은 눈으로 보고있고, 귀로 듣고 있는데, 컵을 본다면 내눈에 보이는 것은 나와 상관없이 그 놈의 자아가 들어있다. 내가 보지 않아도 컵은 있다. 이런 의식구조 속에서 세계가 벌어지고 있다.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나와 밖에 벌어지고 있는 것, 세계는 그렇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인도철학 세계는 차원이 다르다. 브라만교는 세계보다 브라만이 더 크다. 우리는 세계보다 더큰 개념이 없다. 세계속에 들어있다. 우파니샤드에는 세계는 브라만의 1/4밖에 안된다. 유를 초월해서 존재하는 더 큰 것이 브라만이다. 우파니샤드의 세계는 윤회의세계, 세속의 세계를 벗어나서 가야 한다. 브라만이 세계를 만들어 놨다. 브라만과 세계는 같지 않다. 브라만 밖에 실제가 있는 이런 구조이다.

불교에 세간과 출세간이 있다. 세간을 벗어나서 출세간 열반을 추구하는 것이다. 보고있는 세계 자연과학의 우주를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생사를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지를 물은 것이다. 사문들은 그렇게 보지 않으니 4대로 실체를 설명했다. 4대는 출세간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들은 단견, 쾌락주의 현실주의자, 현실에서 쾌락을 느끼면 끝이다. 수행 해탈이 안나온다. 그게 쾌락주의이다.

부처님이 보고있는 세계는 12입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 관계에서 브라만교에서 세간을 설명했던 지수화풍은 눈으로 보고 만져봐서 느끼는 것이다. 그 때 나오는 것을 계라고 부른다.

우리는 그걸 눈치 못채는 것이다. 기존의 해석들에 가려 묻혀있는 것이다. 부처님이 12처에서 일체가 나온다고 말하니까 바라문이 거기서 나와 존재하는 것이 뭐냐고 묻는 것이다. 브라만으로부터 나온 존재를 물은 것이다. 이에 대해 부처님은 12처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는놈이 있고 보이는 놈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 그러면 있다는 것이 실체가 아니라는 인식을 갖게된다.

그리고 일체법이 뭐냐는 물음에 대해 안과 색이 변하여 발생하는 연기를 이야기 하고 있다. 연기하는 것이 법이다. 이처럼 부처님이 말하는 세계의 근본구조는 연기하고 연결돼있다.

부처님은 중생들의 세계가 인식의 틀 안에서 벌어지는데 자기라는 생각과 밖이 존재하는 이분법적 구조로 세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세간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12입처를 멸해야 한다. 육근육경을 멸해서는 안된다. 일체의 공상에서 보면 12입처는 없다. 모든 법이 연기하는 실상에서 본다면 보는놈 보이는놈은 상호의존적으로 연기하고 있다. 이것이 공이다.

분별로 일어나는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을 실제하는 양 착각하고 사는 것이 이 세간이다. 그 세간의 출발점이 12입처다. 세간과 열반 차이가 없다. 육근 육경 없이 살수는 없다. 육근 함부로 놀리지 않음으로써 육입처가 되고 자아의식이 발전하는 것이다. 육근을 수호하고, 그 속에서 육입처라는 허망한 자아의식 사라지는 것이다. 육입처가 멸하면 열반이 온다. 이런 맥락을 가지고 교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보통 우리는 12처를 육근육경이라고 하고 설명을 끝낸다. 그래서는 안된다. 그래서 부처님의 연기설은 12처설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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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불교 - 2016/10/13 한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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