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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2015-01-01, (목) 10:20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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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사철 박사 “깨달음의 과학” 강의 요약
1강
고따마는 종교적 명제를 증명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명상적 증명)
이를 통해 과학과 종교가 통합될 수 있으므로 고따마는 위대한 과학자라 할 수 있다.
“과학”이란 영어 science로 일본에 의해 잘못 번역된 것이다.
우리말로 하면 “바르게 알기”로 ‘바르게’란 ‘증명을 통해서’란 뜻이다.
과학은 이론과 실험이 있어야 한다. 실험을 통해 이론을 증명해야 한다.
증명함이란, 명제가 진실인가 거짓인가를 알기 위해 기준을 세워 실험하고 그 기준을 통과하는 것이다. 명상적 실험은 meditation으로 직접 해봐야 한다.
고따마는 명상의 단계를 구체적으로 단계별로 알려 주었다. 이를 통해 우리는 transformation을 해야 한다. 이것이 종교이다.
고통을 덜어 주는 방법이 있고, 그 방법이 왜 효과적인가 하는 이론이 있고, 그 방법을 채택하면 그것이 나의 종교가 되는 것이다.

붓다, 고타마는 이렇게 설했다.
들어라. (수타마야)-open mind로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라.
정확히 이해하라. (치타마야)-믿거나 동의하지 말고 말한 그대로 이해해라.
스스로 실험하고 확인하라. (바바나마야)-제시하는 방법으로 스스로 증명하라.

우리는 고따마의 이론을 알기 위해서는 그가 사용한 술어들의 의미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팔정도의 ‘바른 말, 正語’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 말은 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야 자유롭다.

“깨달음”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나’란 무엇인지 알았다.”이다.
그래서 “깨달음의 과학” 이란 뜻은 “‘나’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과학적 즉 명상적 증명과 다른 과학에서 사용하는 5가지 증명법으로 알아내는 것”이다.

다른 5가지 과학적 증명법이란
1. 뜻새김의 증명: 독신녀란 결혼하지 않은 여자다.
2. 논리적 증명: 1+1=2
3. 실험적 증명: 순수 물은 1기압에서 섭씨100도에 끓는다.
4. 관찰적 증명: 제비가 봄이면 돌아온다.
5. 증거적 증명: 법의학, 범죄학에서 사용하는 DNA 검사로 범인임을 증명 방법 같은 것

2강
삼마디티(正見) 바르게 본다, ‘나’에 대한 올바른 이론, 깨달음의 이론을 뜻한다.
진실은 믿든가 의심하든가 관계없이 증명될 수 있다.
증명하지 않고 진실이라고 받아드리는 것은 “미련함”이고, 증명하지 않고 거짓이라고 받아드리는 것은 “의심”이다. 미련함과 의심함은 무지이다.

역사상 정견을 갖고 깨어난 자는 많지만 모두 비슷한 말을 했다.
소크라테스, 디오게네스, 성 프란시스코, 마하비라, 짜라투스트라, 장자, 노자 등.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고, 장자는 도덕경을 얘기했으며, 예수는 사랑을 얘기했다. 모든 깨어난 자들은 깨어나지 못한 사람들과 소통이 어렵다. 깨어남으로 본 내용을 사람의 언어로 표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또 그런 깨닫는 방법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 예수도 깨닫는 방법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힌트만 주었을 뿐이다. 그러나 고따마는 철저하게 친절히 알려 주었다. 불교는 고따마가 친절히 가르쳐 준 이론과 깨달음의 방법을 쫓는 것이고, 그런 사람들을 “브라흐마나”라고 한다.

3강
한국어의 ‘마음’은 상당히 포괄적인 개념이다. 이런 개념은 이론에 참여시키면 안 된다.
술어는 정확해야만 한다. 깨달은 상태를 깨닫지 못한 자들과 소통하려면 사용하는 술어의 정의를 분명히 해 주어서 상호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불교 용어를 중국을 통해 많이 잘못 알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고따마가 사용했던 언어를 직접 우리말로 번역해 사용해야 한다.

고따마의 이론을 이해하고 실천 방법을 쫓아가려면 고따마가 사용한 말의 정확한 뜻을 알아야 한다.
이제부터 불교의 key words를 이해해 보자.

제일 중요한 것이 ‘삿까야’이다.
삿(있는) 과 까야(몸)의 합성어이다. 우주의 모든 物 을 통합하는 개념이다.
모든 삿까야는 폭력 앞에, 죽음 앞에 떨고 있다.
그래서 살생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고, 삿까야를 사랑하라는 것이다.

우리가 ‘나’, ‘사람’이라고 통상 지칭하는 것도 불교 개념으로는 ‘인간 삿까야’일 뿐이다.
모든 삿까야는 동등하다(만민 평등)는 의식이 필요하다.
모양과 성질이 다를 뿐 이 우주에 살 권리는 똑 같다.

‘나’를 알기 위해서는 ‘나’와 ‘나의 삿까야’의 관계를 알아야 한다.
1. ‘나’가 삿까야인가?
2. ‘나’는 ‘삿까야와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인가?
3. ‘나’와 삿까야는 별개도 아니고 하나도 아닌 어떤 관계가 있는가?

4강
삿까야의 구조를 살펴보자.
삿까야는 외부 자극에 반응을 한다. 즉 알고 있다, 의식 기능이 있다.
또 형태, 모양이 있는 육체, 물질이 있다.

즉 namarupa(육체정신기능-몸)와 윈냐냐(의식), 의식과 물질을 가지고 있다.
이 둘은 상호 의존한다. 즉 몸이 무너지면 의식도 무너진다. - 영원한 의식은 없다.

여기서 육체는 생물, 생체해부학적 의미이고, 정신은 심리학의 대상인 뇌의 기능을 뜻한다.
의식에 대한 연구는 역사적으로 고따마 이외에 이제까지 별로 없다.

요즘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의식에 관한 연구를 위해 투자를 많이 하고 있다.
이 의식은 모든 세포에, 온 몸에 있다.
컴퓨터에 비유하면, 육체는 hardware, 정신(뇌기능)은 software, 의식은 electricity전기다.
정신(뇌 기능)에는, 지각/인지 기능, 느낌(웨다나), 사유, 생각, 감정, 결단, 등 지각, 느낌이외의 모든 정신기능이 있다.

Dynamic 즉 작동하는 측면에서 보면 삿까야는 감각기관을 가지고 있다.
삿까야 마다 그 수가 다르다. 사람은 6가지지만, 해삼은 1가지(촉감), 뱀은 귀가 없다.

6가지는 눈, 귀, 코, 혀, 몸의 말초신경, 마음(mind) - mind의 번역어인 ‘마음’의 한국어 의미는 너무 포괄적이다. 빠알리어로는 mana인데 이것은 해부학적 기관으로 뇌에 있는 것을 의미한다.(중국이 번역한 意는 틀린 것이다.)

여기서는 딱히 다른 번역어가 없으므로 마음이라고 쓰고 그 의미는 ‘뇌의 감각하는 일부분’으로 정의하자. mana(=mind=brain)가 감각해서 나타내는 것이 image, idea(想念)이다.

이 여섯 감각기관의 대상이 있다. 즉 색깔, 소리, 냄새, 맛, 촉감, 생각/상념이다.
모든 대상의 실체는 에너지이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모든 것은 전자파이다. 그러나 실제 파동은 없다. (이것을 진공의 율동이라 한다.) 이것이 신경세포를 자극해서 뇌의 시냅스로 모인다. 여기서 전자파에 의한 전기장이 생기고, 의식이 전기장을 알기 시작하면 밖의 경치, 소리 등을 안다. 즉 외부에서 오는 것은 에너지이고 그것을 인식해서 아는 것은 의식이다.

색깔을 아는 것은 의식인데, 그것을 밖으로 투사해서 마치 삿까야 밖에 물체가 있는 것으로 안다. 마치 홀로그램과 같은 현상이다. 그래서 고따마는 “세계는 내 안에 있다.”고 했다.
삿까야 밖의 세계는 모두 허상이다.(홀로그램)

5강
대상과 감각기관과 의식이 만나는 것을 파사(촉)이라 한다.
5관이 감각하는 것은 here and now이다. 즉 현재의 시공간이다.

그러나 mana가 감각하는 것은 과거(추억), 미래(공상)이다.
대상은 에너지 파동인 순수감각물이지만 사람이다, 종소리다, 단맛이다 등등 무엇인지 알아차려서 분별한 것을 지각물이라 한다. 인간 삿까야는 지각물로 ‘나’의 세계를 만들고 있다.

스스로 만들어 놓고 진짜 세계가 그런 줄로 알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의식 안에 만든 세계를 밖으로 투사하고 있다. (World stands in Consciousness.)

“삿까야는 나에게 세계를 제공하는데 그 세계란 자신의 의식 상태에 따른다.”
이렇게 세계가 만들어지면 웨다나(feeling, 기분/느낌 정확한 용어 부족)가 수반된다.

웨다나도 의식 안에서 생기는데 3 종류가 있다.
기분 좋은 느낌, 기분 나쁜 느낌, 어리벙벙한 중립적 느낌.

결국 삿까야는 나름의 세계와 그에 따른 느낌을 제공한다. 그리고 그런 느낌에 반응한다.
좋은 느낌의 세계는 가까이 가서 control하려하고, 소유하려하고, 그 소유를 유지하려 한다.
나쁜 느낌의 세계는 도망치거나, 회피하거나, 아니면 공격하고, 부수고, 파괴하려한다.

벙벙한 느낌의 세계에 대해서는 평소 자신의 신념, 가치관, 습관, 경험, 전통, 풍습대로 반응한다. 즉 “뭐는 어떻게 되어야(해야) 한다.”와 같은 belief system(신념체계)에 짜 맞추어 반응하게 되는 것이다. 이 3가지를 로바(탐욕), 도사(증오), 모하(어리석음)라고 한다.

belief system에 따라 교류관계를 가질 때 불화와 불행이 따른다. 즉 ‘나’의 것을 ‘남’에게 강요하기 때문이다.(설교를 하는 것은 자신의 모하를 들어내는 것이다.)

이 3가지 로바, 도사, 모하는 모든 행(karma)의 숨은 동기로 작용한다.
즉 이 3가지 느낌이 일어나면 탐, 진, 치를 달성하기 위해 번개같이 구상을 하고 그대로 행위를 일으킨다. 행위란 실체의 움직임이다. 즉 표정, 말(소리), 동작이다.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이것이 연기 사슬이다. 이것이 삿까야의 시스템이다.)
대상(wave, energy) / 의식 안의 세계 / 웨다나 / 구상 / 행위
6 감각기관 탐,진,치 숨은 동기

6강
삿까야가 하는 일은 감각된 것을 지각해서 행위를 일으키는 것이다.
고따마 명상으로, 지각이 생기기 전의 감각을 알아야 한다.
역동적으로 변해가는 현재를 알아야 한다.

매 순간 감각에 의한 세계는 매 순간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아는 것을 삼마디티(정견)이라 하는 것이다.

두 번째 key word는 상카라이다. (行은 틀린 번역이다.)
상카라는 ‘만든다.’에서 나온 말이다.

고따마는 만드는 자, 만드는 행위, 만들어진 것 3가지가 하나임을 보았다.
삿까야는 이 3가지가 하나이다. 즉 세포분열을 보라. 단 세포가 분열해서 두 개세포로 되면 거기에 만드는 자(단 세포), 만드는 행위(분열), 만들어진 것(2개 세포)이 다른가?

상카라를 production이라 하겠다. 이는 producer, producing, product를 포함한다.
이렇게 계속 만들고 만들어지는 가운데 총괄하고 변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는가?

우파니샤드에서는 “있다.”고 하고 그것을 ‘atta'라고 한다. 즉 ’나‘ 안에 ’atta'가 있다.
우주에는 이런 것이 있는가? 있다. 그것을 brahma=하나님 이라 한다.

고따마는 이것을 의심하고 직접 관찰하고자 했다.
‘나’라고 할 만한 것, 불변하고 안정된 것이 정말 있는가?
시간이 흐른다. =변화한다, 공간 = 변화하는 장, 거리가 있다 로 정의된다.
따라서 불변하며 안정된 것이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즉 편재하는 것이다.

언어의 패러독스에 의하면, ‘모든 것이 변한다.’라고 하면 무엇인가는 안 변함을 뜻한다.
과연 변하지 않는 무엇이 있는가?

그래서 고따마는 삿까야를 관찰했다.
1. 육체덩어리(rupa khanda) - 변하지 않는 게 없다.
2. 웨다나 무더기(vedana khanda) - 변하지 않는 게 없다.
3. 지각 무더기 - 변하지 않는 게 없다.
4. 의식 무더기 - 변하지 않는 게 없다.
5. 나머지 무더기(의지, 감정, 등 행온) - 변하지 않는 게 없다.

4가지 상카라를 살펴보고, 나머지 상카라를 살펴보니 변하지 않는 게 하나도 없더라.
(이것이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오온개공’이다.)

즉 삿까야는 빈 깡통이더라. ‘비어있다.’를 순냐라고 하는데 이것을 空이라 한 것은 틀렸다.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삿까야 안에는 없다. (이것을 無我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나’라고 하는 것이 있다면 삿까야 밖에 있다?
삿까야의 세계, 즉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 곳에서는 없고, 시공간을 초월한 곳에 있다.
과연 시공간을 초월한 세계는 있는가?

고따마의 절규(우다나)에서 시공간을 초월한 세계가 있음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여기에 만들어 지지 않은 것, 되어 지지 않은 것, 조건 지어 지지 않은 것이 있으므로, 만들어 진 것, 변화하는 것, 조건 지어 진 것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다.”

현대 양자물리학에서 이 시공간을 초월한 세계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1980년 프랑스 양자물리학자 아스펙트가 한 실험은 그것이 오류가 아니라 시공간을 초월한 세계를 인정하지 않으면 성립되지 않는 것이었다. 시공간 내에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가 틀릴 수 없다. 과학자들은 아인슈타인의 원리를 유지하려면 시공간을 초월한 세계를 받아드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고따마는 2,500년 전에 이미 이 세계를 경험했다.
그래서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 삿까야 (오온)내에는 ‘나’가 없다. 이것을 非我라 해야 한다.

7강
법문은 내가 얘기하는 게 아니다. 고따마 붓다가 한 말을 전하는 것이다.
고따마 방식(이론에 따라)으로 깨우치겠다면 그가 한 말의 정확한 개념을 알아야 한다.

‘나’라는 화살표는 ‘삿까야’를 가리키고 있다.
과연 ‘나’가 삿까야인가? 아니다. 그렇다면 ‘나’란 화살표는 어디를 가리켜야 하는가?
시공간 內가 아닌 초월한 세계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삿까야를 보고 있는 ‘나’와 삿까야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고따마는 ‘나’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초월한 세계에 있음을 암시했다. 왜? 삿까야가 ‘나’를 언급하는 순간 ‘나’는 시공간 우주로 떨어져 삿까야의 6감각기관에 포착되어야 하는 모순이 생긴다. 그래서 붓다는 ‘나’에 대해 침묵한다.

즉 시공간 밖에서 시공간 안의 삿까야를 지켜본다. 삿까야가 대상을 6 감각기관으로 알듯이 ‘나’는 sati라는 도구로 삿까야를 본다.

시공간 우주의 대상 / 삿까야 / ‘나’
6 감각기관 / sati
시공간 세계 / 초월 세계

cosmos(우주)는 시공간 우주와 비시공간 우주로 구성되어 있다.

미국의 수학자가 수학적으로 밝힌 바에 의하면 전 우주의 기본은 비시공간이고 많은 씨앗이 어느 순간 생겨서 그것이 팽창하며 작은 우주로 커지는데 그 소 우주 내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다는 것이다. 마치 물이 끓을 때 작은 기포들이 생겨서 수면으로 올라오며 커지는 현상과 같다.

고따마는 왜 출가했고 무엇을 알아냈는가?
사람은 왜 죽어야 하는가? 왜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나’란 무엇인가?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을 얻고자 출가해서 다음과 같은 3가지를 알아냈다.(고따마의 3가지 과학)

1. 고따마는 깨우치기 전날 저녁 무렵 명상을 시작해서 밤 12시부터 동틀 무렵까지 삿까야의 6감각을 죽여 없애고 ‘나’가 있는 세계에서 그 상태를 알고 삿까야를 살렸다.
초월적 세계에서 안 것을 무엇이라고 사람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dhamma라 한다.
초월 세계에서 ‘나’는 모든 전생의 삿까야들을 보았다. 즉 전생에 대해 훤히 알았다.

2. 초월 세계의 ‘나’가 삿까야와 어떻게 관계를 짓는가? 를 알았다.(karma의 법칙)
왜 인간으로, 소로, 개로, 이 행성의 삿까야로, 저 행성의 삿까야로 태어나는가?

3. 어떻게 하면 고통 받는 시공간의 삿까야로 태어나지 않고 초월 세계에 남아 있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시공간에서 초월 세계로 넘어 갈 수 있는가? 고통을 벗어나는 여덟 겹의 고귀한 길을 발견하였다.

그 외에 많은 것을 알았지만, 그것들은 사람들이 고통에서 벗어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아서 고따마는 침묵했다. 깨달았다고 하면 이같이 3가지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

1. 전생을 보았는가?
2. Karma의 법칙을 알았는가?
3. 초월 세계에 머물 수 있는 방법을 알았는가?

초월 세계의 ‘나’가 어떻게 시공간에 태어나 있게 되는가를 설명한 것이 12연기이다.
초월 세계로 넘어가서 남아 있는 방법이 팔정도이다.

8강
설법은 담마 자체가 아니고, 담마를 알도록 얘기해 주는 것이다.
깨닫기 위해서는 이론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실험을 해야 한다.

고따마가 가르쳐준 명상법을 실천하여 초월의 세계로 여행을 해야 하는 것이 목표이다.
고따마는 명상을 통해 나타나는 단계별 현상을 가르쳐 주었다. 마치 여행의 이정표 같이.
1단계인 쏘따빠나(수다원)에 이르기 전까지는 혼자가기가 어려워서 지도를 받아야하고 그 이후는 최종 목표까지 혼자서 갈 수 있다.

이제 명상을 시작하기 전에 다음 사항들을 준비해야 한다.
1. ‘나’는 초월적 존재라고 의식을 가져라.
2. 명상은 ‘나’가 삿까야를 데리고 병원에 가는 것과 같다.
3. 모든 말, 생각, 행동은 삿까야가 하는 것이다.
4. 다른 사람들은 다른 삿까야로 보라.
5. 삿까야가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지켜보라.(sati)
6. 삿까야에게 잘 먹이고, 피곤하면 쉬게 해주라. 명상은 삿까야가 활기 있어야 할 수 있다.
7. 계(sila)를 지켜라. 계는 삿까야란 도구를 재정비하는 것이다.

9장
이제까지 내용을 한번 정리하자.
1. Atta '나‘는 오온 속에는 없다. 즉 시공간 내에는 없다.
2. 시공간을 초월한 세계에 있음을 보았다.
3. 그 말을 믿지 마라. 스스로 체험할 방법을 알려 주마.

붓다고사가 번역한 우다나(고따마의 절규)
There is , all bhikkus, unborn, unoriginated, unmade, and unconditioned state.
If, all bhikkus, there were not this unborn, unoriginated, unmade, and unconditioned state, escape from the born, originated, made, and conditioned would not be possible here. There is unborn, unoriginated, unmade, and unconditioned state, escape from the born, originated, made, and conditioned is possible.

모든 비구들이여, 이 우주에는 태어나지 않은, 시작되지 않은, 만들어지지 않은, 조건 지어 지지 않은 영역이 있다.(비시공간이 있다.) 만약에, 비구들이여, 태어나지 않은, 시작되지 않은, 만들어지지 않은, 조건 지어지지 않은 영역이 없다면, 태어난 것, 시작된 것, 만들어진 것, 조건 지어진 것들로부터 도피는 불가능하다. 고로 태어나지 않은, 시작되지 않은, 만들어지지 않은, 조건 지어지지 않은 영역이 있으므로, 태어난 것, 시작된 것, 만들어진 것, 조건 지어진 것들로부터 도피가 가능하다.

이상의 이론과 더불어 실험을 해야 한다.
실험을 해서 얻은 지식이 빤냐(지혜)이다. 이런 정보(information)을 가지고 실험하면 자신이 변한다.(transformation) Transformation을 위해서는 고따마가 제시한 것을 실천해야 한다. 붓다시절 상가에 온 수행자에게 90일간의 시간을 주었다. 그 기간 동안 수행을 게을리 한 자는 가차 없이 퇴출시켰다. 게을러서는 안 된다. 노력해야 한다. 매일 매일 실천 수행을 해야 한다. 첫째도 practice, 둘째도 practice, 셋째도 practice 이다.

고따마 수행의 목표는 오로지 깨어나는데 있고, 가장 효과적이다.
‘나’가 뭔지, 어떻게 하면 깨어나는가에 최고의 가치를 두어야 한다.

수행을 하려하면 장애mara가 생긴다. 빤냐를 얻기 위한 노력은 삿까야를 통해서 해야 하는데, 삿까야는 가치중립적이다. 수행 전에 이런 삿까야를 정비해야 한다. 이것이 계 sila다.

1. 특히 말을 조심해라.
- 아부하지 마라. 친절한 것은 좋다.
- 군림조로 말하지 마라. (자랑할 게 없으면 나중엔 나이가 많다고 군림하려든다.)
- 남에 대해 험담하지 마라. 부정적 험담뿐 아니라, 긍정적 험담도 하지마라.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을 3자에게 소개할 때 참 착한 사람, 순진한 사람이라는 등)
- 쓸데없는 수다 떨지 마라.
- 거짓말 하지 마라. 하얀 거짓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거짓말 할 때마다 체크하라.)

2. 미워하지 마라.
미움은 탐진치 강도의 측정치가 된다. 미움이 많을수록 삿까야에 유착됨이 강하다.
미움 check book을 만들어서 매일 미움이 일어날 때마다 체크해 나가 보라.

3. 버려라.
하루 30분이라도 탐진치를 버려라. 명상시간만큼은 깨어나기 위해 힘을 쏟아라.
고따마는 시공간 밖에서 시공간 내의 삿까야를 보는 도구를 발견했는데, 그것이 sati이다.
sati가 강해지면 sati하는 자가 나타나고, 그것을 ‘나’라고 의식하게 된다.
커튼만 걷으면 빛은 들어온다. 커튼을 걷는 것이 sati를 개발하는 것이다.
sammasati - 삿까야를 바르게 본다.
sati가 강할수록 ‘나’를 가리키는 화살표가 삿까야에서 비시공간의 ‘나’로 바뀌어 간다.

Anapanasati 들숨날숨 깨닫기
들숨날숨부터 ‘나’가 아닌걸 알아야 한다.
이 수행을 하기 위해서는 다음 사항들을 지켜라.
1. 호흡을 만들어 하지 마라. 자연스럽게 하라.
2. 졸릴 때는 하지 마라.
3. 활력을 갖춰라.
4. 숨 쉴 때의 미세한 변화를 보라.

들숨 후 참고 있으면 고통이 따른다. 이 고통을 피하기 위해 날숨을 한다. 날숨 후에 참고 있으면 또 고통이 온다. 이같이 이 시공간 내에서는 변화가 없으면 고통이 생긴다. 고통을 없애려면 계속 움직여야 하고 변화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숨을 쉬는 것도 삿까야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10장
불경은 ‘나는 이렇게 들었다.’로 시작한다. 후세 많은 불경들이 있지만 후손들의 경험에 의한 변형된 것들이 많다. 붓다의 말을 직접 들어야 한다.

깨우침은 점차적, 단계적으로 노력 여하에 따라 일어난다. 붓다가 제시한 깨우침의 방법에 따르면, 실험의 결과는 “몰랐던 것을 알았다.”이다. 실험의 도구는 삿까야이다.

그러나 삿까야가 ‘나’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삿까야가 가진 6감각기관 이외의 도구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sati이다.

수행을 함에 있어 가속도를 내기 위해 만트라를 쓰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주문이 반야심경 끝에 나오는 “가테 가테 파라가테 파라상가테 보디 사드바하”이다. 이 주문을 통해서 아발로키테스바라 즉 옆에서 훤히 보았다.(조견) 지혜의 완성은 sati의 완성이다.

그러나 이런 만트라는 부작용이 심할 수 있어서 붓다가 설한 아나빠나사띠 방법을 사용하길 바란다. 명상을 잘못하면 도인 병에 걸린다. 그러면 현실적응이 어려워진다. 고따마 수행법을 사용하면 이런 위험이 없고 현실생활을 활력 있게 할 수 있다.

고따마의 가르침대로 sati를 개발하라.
우선 5가지 삿까야의 기능을 개발하라. 전제는 금욕하지도 방종하지도 말라.(중도)

Energy(활력, 기력) / 확신(삿다) / sati / 빤냐(지혜) / 사마디(하나의 감각에 집중)
삿까야가 기력을 갖게 하기 위해서 평소 운동시키고 잘 먹여라.
확신은 의심하지 않고 사실임을 받아드리는 기능이다.

빤냐의 개발은 처음에 문자로 된 이론을 정확히 아는 것으로 시작해서(聞慧와 思慧) 수행을 통해 실재로 깨달은, 즉 sati로 안 修慧를 쌓아 나가며 개발한다.

사마디는 처음에 하나의 감각에 집중하는 힘을 길러서 나중에는 satisamadhi, sammasamadhi 즉 sati 기능에 집중하는 것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stai는 약하면서 사마디만 강화시키면 정신분열증이 되고, 듣고 생각해서 얻은 빤냐만 키우면 현학적이 되어서 책을 쓰고, 강의를 하고 돌아다니게 된다.

확신만 키우면 맹신이 되고, 기력만 키우면 광신도 내지 종교 선동가가 된다.
또 과도한 사마디와 빤냐만 있으면 종교적 독선가가 되고, 과도한 에너지와 (수행 없는)빤냐 만 있으면 사이비 종교의 교주가 된다.

그러므로 이 5가지 기능을 균형있게 개발해야 하는데 그중에 sati 개발이 우선되어야 한다.
모든 동작의 근원이 들숨날숨이다. 모든 동작 때마다 모양이 변하고 있는 것, 모양이 변할 때마다 아픔, 압력, 온도, 균형이 바뀌는데 그것을 신체감각은 빠뜨림 없이 잘 알지만 우리는 의식하지 않고 산다. 그것은 다른 감각에 비해 신체 감각이 제일 천천히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행은 이 신체 감각을 sati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마음감각이 제일 빠르기 때문에 이것에 대한 sati를 제일 늦게 수행한다.

육체 - 느낌 - 지각 - 생각 순으로 sati의 대상을 늘려 나간다.
수행 시에는 항상 “삿까야가 나가 아니다.”라는 의식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이것이 바른 마음가짐이다.) 모든 행동, 말, 생각은 ‘나’가 하는 것이 아니고 삿까야가 하는 것이다.

삿까야가 하는 모든 것을 가만히 지켜보며 깨닫고(sati)만 있으라. 꼭 앉아서 수행할 필요는 없다. 설거지 할 때 삿까야가 하는 움직임을 자세히 보라. 걸을 때, 앉을 때, 등산할 때,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지켜보라. 잘 때는 발끝부터 온몸의 감각을 지켜보라.

이렇게 육체가 움직이는 것을 sati하는 것을 rupasati라 한다. 걸을 때 몸의 모든 세포가 알고 있다. 자동차 운전할 때도 sati를 잘 두어야 사고가 나지 않는다. 기다릴 때도 조용히 앉거나 서서 sati를 하고 있으면 지루하거나 짜증냄 없이 짜투리 시간이 수행 시간이 된다.

시끄러운 곳에서는 귀로 소리가 들어오는 걸 sati해 보라.
가만히 들숨날숨을 지켜보라. 그것이 sati를 개발하는 것이다. 생각하면 안 된다.
알고만 있고 느끼고만 있어야 한다. 이 명상을 하면 뇌의 산소 소모량이 1/3로 줄기 때문에 명상 후에는 보통 때보다 천천히 움직여야 한다.

11강
Anapanasati Sutta (들숨날숨 깨닫기에 관한 대화)
서문, 상가에서의 수련, 숨쉬기를 통한 깨닫기 개발, 결론으로 구성 되어 있다.
(이 내용은 연방죽 선원에서 옮긴 위말라람시 스님이 지으신 아나빠나사띠 숫따 참조)

이 경에 대한 김 사철 박사의 comment는 다음과 같다.
붓다는 깨어난 코치이고, 담마는 이론과 방법, 상가는 수행 단체이다.
이 3가지가 모두 있으면 깨어나는데 효과적이다. 붓다가 없으면 붓다가 남겨 놓은 담마에 의지해야 한다. 또 깨어나고자 하는 자신의 의지와 노력이 있어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담마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다. 또 설사 상가가 없더라도 깨어나겠다는 확고한 의지와 담마에 대한 철저한 이해가 있으면 가능하다.

일상 생활자에게 중요한 것은 바르게 먹고 살면서 바르게 노력하여 아나빠나사띠 수행을 하는 것이다. 고따마 자신도 평생 이 수행을 했고 열반에 들 때도 이 수행을 했다. 아들 라훌라에게도 이 수행을 시켰다. 특수한 부분을 강조하며 사회적 의의가 큰 수행 프로그램으로 메타(친절, 사랑, 아가페), 가루나(도와 줌), 무디따(더불어 기뻐함), 우뻬카(평정, 안 흔들림, 균형, 정의)가 있으며 이 모두가 깨어난다는데 있어서 방법론으로 상호 교차뿐 아니라 기실 동일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삿까야를 관찰함으로써 단 시일 내에 초고속으로 깨닫게 하는 방법으로서 아나빠나사띠를 능가하는 명상기법은 없다고 본다.

sati의 개발 없이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 요즘 사마타 명상과 위빠사나 명상으로 나뉘어 수행을 하지만 고따마는 두 가지 중 어느 한 가지도 깨달음의 도구로 설하지 않았다. 다만 그 요소들을 포함시킨 아나빠나사띠 만을 수행법으로 제시했을 뿐이다. 이 수행법은 sati를 효과적으로 빨리 개발하여 삿까야를 관찰하고 삿까야가 내가 아님을 알고, 삿까야가 속한 시공간에서 해방되고, 초월세계로 뛰어 넘게 하는 고따마가 개발한 방법이다. 촌음을 아껴 수행하라.

Anapanasati 수행방법
1. 조용한 곳에 홀로 가부좌를 하고 앉는다.
2. 허리를 곧게 세우고(잠을 쫓는데 효과적) 앉은 자세 전체를 깨닫고 있는 상태로 있으라.
3. 삿까야가 들숨 하는 것을 완전히 깨닫고, 날숨 하는 것을 완전히 깨닫고 있으면서 sati로 들숨 날숨과 함께 있으라.(들숨 날숨에 집중하라.)
4. 사까야가 긴 들숨을 할 때 그것이 긴 들숨이란 것을 ‘나’는 깨닫고 있다.
사까야가 짧은 들숨을 할 때 그것이 짧은 들숨이란 것을 ‘나’는 깨닫고 있다.
사까야가 긴 날숨을 할 때 그것이 긴 날숨이란 것을 ‘나’는 깨닫고 있다.
사까야가 짧은 날숨을 할 때 그것이 짧은 날숨이란 것을 ‘나’는 깨닫고 있다.
깨닫고(sati)있는 것은 ‘나’이다. 삿까야는 sati의 대상이다.
이때 신체가 숨 쉴 때마다 변하는 압력을 감각하는데, 이 압력을 깨닫고 있으라.
5. 들숨 날숨이 일어날 때 몸 전체, 전 과정을 깨닫고 있으라.

삿까야의 숨과 신체는 상호 연관되어 있다. 숨은 신체를 조율하는 조율사다. 숨이 조용 해지면 신체도 조용해진다. 산다는 것은 신체의 움직임인데 그것을 조율하는 것이 숨이라면 산다는 것은 숨 쉬는 것이다. 길고 조용한 숨을 쉬면 신체도 고요해진다. 흥분과 긴장이 되었을 때 긴 숨을 토하면 몸도 안정된다. ‘나’가 삿까야의 숨 쉬는 것을 지켜보면 삿까야의 상태를 알게 된다.

조용히 앉아 코를 지긋이 내려 보고 있으며 저절로 눈이 감겨진다. 억지로 뜨거나 반개하려고 하지 마라. 인위적으로 호흡을 하지 말고 자연스레 호흡하며 가만히 삿까야를 지켜보라.
이렇게 하여 sati가 개발되면 환한 빛이 생긴다. 어디를 가든, 서든, 앉든 sati로 지켜보라.
의식을 하지 못해서 그렇지 sati로 온 몸을 훑어보면 온 몸이 쑤시고 저리고 아프다.
그러고 있는 전체를 가만히 깨닫고 있으라.

12강
세계는 내 의식 안에 있다.
내가 변하면 세계가 변한다.
Anapanasati 이외에 여러 가지 program이 있다. 이 경에서 그런 것들을 언급했다.
우리는 anapanasati 수행을 우선해야 한다. 어느 수행도 이렇게 숨 쉬는 것을 보기만 하는 간단한 방법으로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이 없다. 이보다 더 쉬운 방법이 무엇인가?

그러나 이 수행에도 장애가 있다.
1. 무의식적으로 숨 쉬기
이렇게 되면 ‘나’가 숨 쉰다고 생각하고 산다. 또 생각에 빠지게 된다.
2. 졸음
이 장애들을 극복하기 위해서 들숨 날숨에 sati로 달라붙어라.
세상과 모든 것을 단절하고 하루 30분 이상 들숨 날숨을 깨닫고 있으라.

(이상 12개 mp3 음성 강의를 요약했습니다. anapanasati 강의 내용이 더 있을 것 같은데 자료의 부족으로 여기서 마칩니다. 요약 내용 중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지적바랍니다.
2011년 2월 1일 (Khemac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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