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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글올린 게시글: 2018-06-26, (화) 4:52 am 

가입일: 2015-01-01, (목) 10:13 am
전체글: 210
조직 원리는 존재하는가?
우주의 놀랄 만한 조화와 정확성에 대해 생각할 때, 전지한 창조자가 있다고 상상하거나 비종교적인 관점에서 우주의 진화 과정을 완벽하게 조절했을지 모르는 어떤 종류의 창조 원리가 존재한다고 상상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창조자의 전능은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우주의 기원과 생명이 나타난 방식에 대해 궁금해 하거나, 생명이 없는 물질이 생명이 있는 물질과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창조자인 신이 있는가 없는가라는 문제는 세계의 위대한 정신적 전통들을 근본적으로 구별하는 요소가 된다.
불교에서 '최초 원인'이라는 개념은 분석을 거치면 의미를 잃어버린다.
어떤 과학자들은 우주가 극도로 정밀하게 조정되는 것이 순전히 우연이라고 주장하면서 신에 대한 필요성을 없애버린다.
그러나 또 어떤 과학자들은 이 세계에서 작동하고 있는 조직 원리가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조직 원리의 개념이 분석을 거친 후에도 유효할 수 있는가?
이것은 필연적이고 논리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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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안 : 16세기 이후로 우주에서 차지하는 인간의 지위는 점차 작아졌다. 1543년 폴란드 성직자인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도는 단순한 행성이라는 사실을 발견함으로써 지구를 우주의 중심적 위치에서 떨어뜨렸다. 이후 코페르니쿠스의 망령은 계속 우리를 따라다녔다. 우리의 행성이 우주의 중심을 차지하지 않는다면, 태양이 그 중심을 차지해야만 했다. 그러나 미국의 천문학자인 할로 섀플리는 태양이란 우리의 은하를 구성하는 다른 수천억 개의 별들 가운데 한낱 변두리에 위치하는 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제 우리는 은하수 자체도 그 반경이 약 150억 광년에 이르는 가시 우주에 존재하는 약 1천억 개의 은하들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인류란 단지 우주라는 광대한 모래밭에서 모래알 하나에 불과하다. 인간은 시간에 있어서도 작아졌다. 우주의 150억 년을 1년으로 치는 달력이 있다면, 인류는 겨우 12월 31일 오후 10시 30분에(약 300만 년 전에) 등장한 셈이다.
인간의 위치가 이렇게 작아지는 것을 보고 17세기에 파스칼은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두렵게 한다.”고 고뇌에 찬 비명을 질렀다. 3세기 후 프랑스의 생물학자 자크 모노는 “인간은 우연히 나타난 무관심한 우주의 무한한 공간 속에서 길을 잃었다.”고 말하면서 파스칼이 한 말을 되풀이했으며, 미국의 물리학자인 스티븐 와인버그는 “우주를 이해할수록 우주는 우리에게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나는 인간이 무관심한 우주 속에 우연히 나타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둘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우주는 우리의 존재를 가능케 하기 위한 방식으로 진화되었다.

마티유 : 주의해야 한다. 그 말은 18세기 말 프랑스 낭만주의 작가였던 베르나르댕 드 생 피에르가 했던 말과 비슷하다. 그는 “서양호박은 얇게 나누어지는데, 가족끼리 먹기 위해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라고 말했다.

투안 : 물론 긍정적인 목적을 정당화하는 데 근거를 둔 논의는 조심해야 한다. 과학 자체도 종교 교리의 영역에 속하는 목적론적 사유를 단호하게 거부하는데서 생겨났다. 어쨌든 현대의 우주론은 인간의 생명을 가능케 하는 조건들이 우주에 있는 각각의 원자나 별, 은하수 속성에, 그리고 우주를 지배하는 모든 물리적 법칙에 입력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우주가 진화해온 방식은 이른바 ‘초기 조건’과 ‘물리 상수 物理 常數’라고 불리는 대략 15개의 수에 달려 있었다. 공이 땅에 다시 떨어지기 전에 공간에 그리는 곡선은 매우 정확하게 기술될 수 있다. 이를 위해 물리학자라면 뉴턴의 중력의 법칙과 초기 조건 -즉 공이 손을 벗어나는 순간의 위치와 속도- 에 대한 지식을 이용할 것이다. 다시 뉴턴의 법칙을 보면, 그것은 ‘중력 상수’라고 불리는 수에 종속되어 있는데, 중력의 인력을 결정한다. 마찬가지로 강한 핵력과 약한 핵력, 그리고 전자기력을 통제하는 세 가지 또 다른 수가 있다. 이어서 원자의 크기를 결정하는 플랑크 상수와 빛의 속도가 있다. 그 다음 양성자와 전자 같은 소립자들의 질량을 나타내는 수들이 온다. 이러한 상수들은 우주의 진화 방식에서 결정적 역할을 수행한다. 왜냐하면 바로 이것들이 은하와 별, 그리고 지구의 질량과 크기를 결정할 뿐만 아니라 생명체의 질량과 크기 -예를 들면 나무의 높이, 장미 꽃잎의 형태, 개미와 기린과 인간의 무게와 크기-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러한 상수들이 변화한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현실은 완전히 다를 것이다. 이러한 상수들은 그 이름이 나타내고 있듯이 공간이나 시간 속에서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멀리 떨어진 은하들을 조심스럽게 관찰하면서 이를 검증했다. 우주의 초기 조건들은 우주가 포함하고 있는 물질의 양과 우주의 초기 팽창률에 관계한다.
이러한 상수나 초기 조건이 조금이라도 달랐다면, 우리는 여기서 우주의 속성이나 법칙에 대해 말하고 있지 못할 것이다. 우주는 시초부터 의식의 출현, 즉 관찰자의 출현을 위해 필요한 조건들의 씨앗을 내포하고 있었던 것 같다. 영국계 미국인 물리학자인 프리먼 다이슨은 이렇게 표현했다. “우주는 인간이 나타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마티유 : 우주의 각 구성요소에 우리의 존재가 입력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은 단지 우리가 어떻게 물리적 세계와 양립할 수 있는가를 보여줄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이 존재해야 하는 특정한 의도가 있기 때문에 당신이 한 말이 옳다는 의미는 아니다.

투안 : 그렇기는 하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왜 이러한 상수들이 다른 값이 아니라 지금 갖고 있는 값을 갖고 있는지를 설명할 만한 물리 이론이 없다. 이러한 수들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마티유 : 정말 그에 대해 설명할 게 아무 것도 없는가?

투안 : 앞으로 다시 말하게 될 순전한 우연을 제외한다면 초끈이론이 있기는 하다. 그 이론에 따르면 소립자들은 무한히 작은 끈들의 진동에 의해 만들어진다. 입자들이 갖는 질량과 전하 電荷는 끈들의 진동 양식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하나의 문제를 다른 문제로 대체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 이론은 끈들이 왜 이런 방식이 아니라 저런 방식으로 진동하는지, 혹은 끈들이 왜 정확히 필요한 속성들을 갖고 있는 입자들을 만드는지를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티유 : 그러한 물리 상수들은 다른 우주에서는 다를 수 있을까?

투안 :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지식에 따르면, 한 우주에서 다른 우주로 넘어갈 때 변동이 없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그런데 천체물리학자들은 컴퓨터에서 수많은 ‘모형 模型 우주’를 만드는 과정에서, 만약 이러한 물리 상수들과 초기 조건들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키면 우주에는 생명이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티유 : 그렇게 되려면 얼마나 변해야 할까?

투안 : 정확한 숫자는 초기 조건에 달려 있다. 어쨌든 아주 조금만 변하더라도 우주에서 생명이 사라지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예를 들어 우주 내에서 물질의 초기 밀도를 생각해 보자. 물질은 초기 폭발의 충격에 대립하는 중력의 인력을 갖고 우주의 팽창력을 늦춘다. 만약 초기 밀도가 너무 높았다면 우주는 100만 년이나 100년 혹은 1년 후에 내부에서 붕괴되었을 것이다. 이 기간은 별들의 핵 연금술이 탄소와 같이 생명에 필요한 무거운 원자들을 만들기에는 지나치게 짧았을 것이다. 반대로 물질의 최초 밀도가 너무 낮았다면, 별들이 생성되기에 충분한 중력이 없었을 것이다. 별들이 없다면 무거운 원자들과 생명도 없다. 그러므로 매우 미묘한 균형 위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내가 말하는 작은 변화가 얼마나 작은 것인지 이해시키기 위해서, 우주가 시작될 때(플랑크의 시간에) 우주의 밀도를 예로 들기로 하자. 우주의 밀도는 약 10⁻⁶⁰의 정확도를 갖고 조정되어야 했다. 달리 말하면 만약 60개의 0 다음에 한 숫자라도 달랐더라면 우주에는 생명이 없었을 것이다. 즉 생명과 의식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당신이나 나나 그에 대해 토론하기 위해 이 자리에 있지 못할 것이다. 이 놀랄 만한 정확도는 가시 우주의 150억 광년 떨어진 다른 쪽에서 한 변이 1센티미터인 정사각형 과녁에 화살을 맞추기 위해 필요한 정확도에 비견할 수 있다.
이렇게 놀랄 정도로 정밀한 조정을 보고 많은 우주학자들은 생명과 의식, 그리고 우주의 아름다움과 조화를 감상할 수 있는 지적 관찰자가 우주에 나타날 수 있도록 그렇게 정확히 조절되었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이른바 ‘인간발생론(anthropique) 원리’인데, ‘anthropique'는 ’인간‘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anthropos'에서 나온 말이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인류는 코페르니쿠스 이전에 인류가 차지하던 태양계에서의 중심 위치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주가 지금처럼 설계되어 있는 이유 그 자체가 됨으로써 다시 최고의 지위를 획득하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여기서 설명하는 것은 인간발생론 원리의 이른바 ‘강도 높은’ 해석이다. 마찬가지로 자연의 설계에 어떤 의도가 있음을 전제로 하지 않는 ‘강도 낮은’ 해석도 있는데, 그것은 거의 도어반복으로 “우주의 속성들은 인간 존재와 양립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 ‘인간발생론’이라는 수식어는 정말 부적절하다. 그것은 우주가 전적으로 인간을 목표로 하여 진화했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앞에서 든 논거들은 우주에 있는 모든 형태의 지성에 적용된다.
이 원리의 해석들 가운데 어떤 것을 선택하든 관계없이, 현대 우주론은 이런 식으로 인류와 우주의 심오한 연계를 재발견했다. 프랑스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폴 클로델의 희망적 메시지는 파스칼의 고뇌에 찬 외침에 대답하며 세계에 대한 새로운 기쁨을 표현했다.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은 더 이상 나에게 두려움을 주지 않는다. 나는 거기서 친숙한 신뢰감을 갖고 산책한다. 우리는 거칠고 통행이 불가능한 사막의 고립된 한구석에 거주하는 것이 아니다. 우주의 모든 것은 우리에게 형제와 같이 친숙하다.”

마티유 : 불교에 있어 인간발생론 원리는 별 의미가 없다. 의식이 나타나도록 완벽한 정확도를 갖고 우주를 조정하는 조직 원리가 존재한다는 생각은 근본적으로 착각이다. 외관상 놀라울 정도로 정밀한 조정은 물리 상수와 의식이 시작도 끝도 없는 우주에서 언제나 공존해왔다는 사실로 간단히 설명할 수 있다.
나는 우주가 정상 定常 상태임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주의 시초처럼 보이는 것, 예를 들면 빅 뱅이 단지 중단 없는 과정의 한 국면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현재 우리 우주의 조건들은 과거와 미래의 우주들의 조건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왜냐하면 인과관계의 과정은 중단이 없으며 원인과 결과 사이의 자연적 일치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주의 의식이 나타나도록 위대한 시계 제작자에 의해 조정되는 것이 아니다. 우주와 의식은 항상 공존해왔고,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배제할 수 없다. 공존하기 위해서 현상들은 서로 어울려야 한다. 인간발생론 원리나 모든 목적론적 이론들이 갖는 문제는 의식을 상수들 앞에 내세우면서 상수들은 오로지 의식을 창조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발생론 원리는 호두 한 개를 반쪽 내어 그 반쪽 난 두 조각을 집어들고, “믿을 수 없다. 이 두 조각은 서로 완벽하게 끼워 맞춰지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 같다.”고 말하는 셈이다.

투안 : 나는 불교가 생명과 의식을 설명하기 위해서 인간발생론 원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정이 유효하지 않으며, 물리 상수들과 우주의 초기 조건들이 이렇게 극도로 정밀하게 조정되는 것을 설명해야 한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이러한 조정이 모노의 표현을 빌리면 우연한 것인지 필연적인 것인지에 대해 자문할 수 있다. 우리가 필연성에 근거한 인간발생론 원리를 받아들이기를 원치 않는다면, 우주학자들이 정밀한 조정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또 다른 주요 논거, 즉 우연이라는 가정에 의지해야 할 것이다.
이 가정은 무수한 다른 우주들이 존재하고 각각의 우주들은 물리 상수들과 초기 조건들의 모든 가능한 조합들 가운데 하나의 조합에 따라 구성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즉 상수들과 초기 조건들의 조합들 각각에 따른 하나의 우주가 한 차례 존재했었다. 그러나 우리의 우주는 정확한 조합으로 태어나 생명을 창조하기 위해 진화한 유일한 우주였다. 다른 우주들 모두는 패배자였고 우리의 우주만이 승장이다. 무한정으로 계속 복권을 뽑다 보면 언젠가는 1등을 ㅉ뽑게 될 것이다.

마티유 : 그 다른 우주들이란 물리학자들이 ‘평행 우주’라고 부르는 것인가?

투안 : 그것은 하나의 가능성이다. 평행 우주라는 개념은 물리학에서 가장 이상한 개념들 중의 하나임이 틀림없다. 그 개념은 양자역학의 기본적인, 그렇지만 아주 이상한 발견들 중의 하나에 의존한다. 양자이론에 따르면 소립자가 어디에 위치하는지 정확히 진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단지 이곳이나 저곳에서 전자를 발견할 수 있는 확률을 계산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태양을 중심으로 도는 행성의 궤도를 측정할 수 있는 것처럼 전자의 궤도를 측정할 수 없다. 이렇게 정확한 위치 선정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이른바 ‘양자 퍼지(모호함)’인데, 이것은 세계에 대해 확률적으로 기술할 수 밖에 없다는 불편하고 이상한 결론에 이른다. 이러한 기술에 따르면 특정한 전자가 어디서나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미국 물리학자인 휴 에버렛은 이러한 결론을 우회하여 특정한 전자는 하나의 위치만 갖고 있다는 실재론의 견해로 되돌아가기 위해 과격한 개념을 생각해냈다. 그는 우주가 전자의 위치에 대한 가능성만큼이나 많은 우주들로 나누어진다는 가설을 제안했다. 전자가 단 하나의 확률적 우주에서 이곳저곳 모든 곳에 존재하는 대신에, 전자가 이곳에 위치할 때의 우주가 하나 있고 저곳에 위치할 때의 또 다른 우주가 한나 있으며, 전자가 또 다른 위치에 있는 세 번째 우주가 있다는 것이다. 즉 전자의 위치에 상응하는 만큼의 우주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점진적으로 분리되는 과정에서 무한한 범위의 우주들이 태어날 것이다. 그 중 어떤 우주들은 단 하나의 원자에서 단 하나의 전자의 위치가 다르다는 점을 제외하면 우리의 우주와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며, 또 다른 우주들은 훨씬 많은 점이 다를 것이다. 당신이 여기서 나와 이야기하는 대신에 산책 나갔을 우주가 하나 있을지 모른다. 티베트가 중국에 침공당하지 않았고 인간이 달에 착륙하지 않았던 또 다른 우주들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또 어떤 우주들은 더욱 근본적으로 다를지도 모른다. 그 우주들은 서로 다른 물리 상수들과 초기 조건들과 물리 법칙을 가질 것이다. 우주가 매번 둘로 분열될 때마다 당신과 나를 포함하여 모든 생명체가 둘로 분열될 것이다. 이러한 평행 우주들은 서로 분리된 상태에 있을 것이고, 그 사이에는 어떤 소통도 불가능할 것이다.

마티유 : 그것이 의식적인 존재에 적용될 때 우리 의식이 매순간 둘로 나누어진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의식이 개별적인 흐름이라는 개념은 더 이상 의미가 없을 것이다.

투안 : 평행 우주에 반대하는 재미있는 논거이다. 선택이나 결정이 생겨날 때마다 우주가 나누어진다는 생각은 매우 이상하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채 육체나 정신이 그렇게 나누어진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마티유 : 불교는 세계나 존재가 다수 多數라고 생각하지만, 서로 어떠한 소통도 없는 평행 우주들이 존재한다는 데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러한 개념은 현상들의 총체적인 상호의존성에 어긋날 것이기 때문이다. 오래 전부터 서로 연관되어 있었고 영원히 서로 연관될 무수한 현상들 ‘바깥에는’ 무엇이 존재할 수 있을까? 현상들이 상호의존성의 방식에 의거해서만 존재한다면, 그것들을 소멸시키지 않은 채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각기 분리되어 존재하는 우주들은 이러한 무한한 총체성 내에서 공존할 수 없다.
이러한 가정이 갖는 또 다른 문제는 다음과 같다. 만약 그 시나리오를 끝까지 연출한다면, 무한한 우주들이 창조되고 이러한 무한성과 함께 가능한 모든 우주들이 존재할 것이 틀림없다. 거기에는 완전히 모순적인 조건들이 참이 되고 정반대의 사건들이 일어나는 우주들이 포함될 것이다. 게다가 만약 매순간 우주의 입자들만큼이나 많은 우주들이 창조된다면, (이러한 입자들은 지속적으로 상태를 바꾸는데, 변화된 상태에는 매번 적어도 두 우주가 대응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인과성의 개념들을 모두 파괴할 것이다. 왜냐하면 동일한 원인이나 초기 조건들은 서로 대립되는 두 가지 결과에 동시에 이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투안 : 그것이 바로 양자역학의 해석이 주장하는 바이다. 평행 우주는 이른바 ‘진짜 우연’, 다시 말하면 인과성의 부재에 의존한다. (주 : 그러나 진짜 우연은 증명될 수 없다. 왜냐하면 비결정론의 결과들과 결정론적인 카오스의 결과들을 분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평행 우주의 세계에서 도덕적 책임감이란 개념은 의미를 잃게 된다.
이러한 시나리오는 사건들의 모든 가능한 결과들이 각각 그 자신의 우주에서 일어날 것이 틀림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범죄자는 어떻게 하다 보니 이 우주가 그가 우연히 범죄를 저질렀던 우주이기 때문에 자신은 범죄에 대해 책임이 없다는 주장을 그럴 듯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덧붙여 설사 자신이 이 우주에서 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그의 많은 다른 분신들은 다른 우주들에서 그 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마티유 : 만약 현상들이 아무런 원인 없이 존재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이 아무것에서나 생겨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상들이 총체적인 상호의존성에 의해 지배된다면, 세계는 단순한 우연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유라는 것도 오로지 인과법칙을 통해서만 표현될 수 있다.

투안 : 나도 평행 우주라는 개념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한다. 그러나 다수의 우주들이란 개념이 나올 수 있는 또 다른 사유방식이 있다.
우리는 이미 순환적 우주의 개념을 언급했는데, 그것은 시간상으로 병행하는 것이 아니라 연속적인 것이다. 우주가 자신이 탄 잿더미에서 다시 태어날 때마다 우주는 물리 상수들과 초기 조건들이 새로운 조합을 취하면서 다시 출발할 것이다. 거의 모든 순환들은 불모의 우주들, 말하자면 생명과 의식의 출현과 양립할 수 없는 우주들을 만들겠지만, 때때로 우리의 우주와 같이 우연히 당첨되는 조합을 갖는 우주가 생겨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이 갖는 커다란 문제는, 지금의 천체 관측에 따르면 우주가 물질의 중력이 은하들이 멀어지는 운동을 역전시켜 그것들을 빅 크런치에 이르게 할 만큼 충분한 양의 물질을 갖고 있지 않은 것 같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지식에 따르면 우주의 팽창은 영원하다.
상상력이 풍부한 물리학자들은 새로운 빅 뱅이 선행하는 빅 크런치 없이도 생겨날 수 있는 각본을 제안했다. 미국 물리학자 리 스몰린은 빅 뱅의 시간의 조건들과 블랙홀 중심의 조건들이 서로 유사하게 초밀도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블랙홀 내부에서 우리의 빅 뱅과 같이 새로운 영역의 시간과 공간을 창조하는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 새로운 우주가 생겨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 새로운 우주는 완전히 우리의 우주와 단절될 것이다. 어떠한 정보도 블랙홀의 중심에서 빠져나와 우리의 우주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이런 각본은 어떠한 실험적 결과도 없기 때문에 과학이라기보다는 공상과학에 속한다.

마티유 : 그러한 새로운 우주는 정보전달의 관점에서는 아마 우리의 우주와 단절될지 모르지만 인과법칙의 관점에서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블랙홀은 우리의 우주에서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두 우주 사이에는 연속성이 있을 것이다.

투안 : 다수의 우주라는 개념에 대한 또 하나의 흥미로운 설명이 있다. 러시아 물리학자인 안드레이 린데는 최초 양자 거품의 무수한 파동들이 각각 하나의 우주를 만들었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그렇다면 우리의 우주는 무수한 기포들로 이루어진 초超우주 안에 있는 하나의 작은 기포에 불과할 것이다. 그리고 다른 우주들의 물리 상수들과 초기 조건들은 적절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들 중 어떤 것에도 지성이 있는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흥미롭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다수의 우주나 평행 우주라는 이론을 받아들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평행 우주는 관찰이 불가능하여 검증될 수 없는데, 그것이 내 과학관에 거슬린다. 실험적 검증이 없으면 과학은 곧 형이상학에 빠진다.

마티유: 그러나 형이상학적 선호도는 끊임없이 과학적 작업에서 하나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서로 양립할 수는 없지만 실험적 사실을 설명하기에 적합한 여러 가정들이 제시될 때, 물리학자들이 특정 가정을 채택하는 것은 종종 형이상학적 고려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면 물리적 방법으로 관찰할 수 없는 것은 어떤 것이라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하는 것도 형이상학적 입장이다. 사실은 더 나아가 이러한 비존재를 입증해야 할 것이다.
결국 우리의 기원을 다룰 때 형이상학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과학이 빅 뱅이나 빅 뱅 이전 혹은 다른 종류의 우주의 시초에 대해 어떠한 발견을 하더라도 형이상학만은 “일찍이 시초가 존재하는가.”라는, 그렇지 않으면 “왜 시초란 존재해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이러한 질문은 몇몇 과학자들이 선택한 것이기도 하다.
프랑수아 자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 가지 영역은 과학탐구에서 완전히 배제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세계의 기원과 인간 조건의 의미와 인간의 삶의 ‘운명’에 대한 질문이다.”
그 이유는 이러한 질문들이 쓸데없는 질문이기 때문이 아니라, 종교와 형이상학, 더 나아가 시詩에 관계되는 것이기 때문인데, 칼 포퍼는 이러한 문제들을 ‘궁극적인’ 것이라고 불렀다.

투안 : 내 입장이 형이상학적인 입장이라는 것에 대해 동의한다. 그러나 과학에서 이론의 운명을 결정했던 것은 언제나 관찰이었다. 예를 들면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은 뉴턴의 이론을 대체했는데, 상대성이론이 뉴턴의 이론에서 벗어났던 현상들을 설명했기 때문이다. 상대성이론이 아무리 아름답고 조화를 이룬다고 해도, 실험적 검증이 없었다면 인정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나의 입장은 어떻게 보면 파스칼의 내기 개념(역주: 파스칼은 확률에 대한 수학적 연구 개념을 원용함으로써 신에 대한 신앙을 변호했다. 이성은 신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없는지에 대해서도 증명할 수 없다. 그러나 신이 있다는 데 내기를 거는 것이 유리하다. 만일 신이 존재한다면 모든 것을 따게 되지만 반대로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잃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을 내 나름대로 받아들인 것이기도 하고, 또 부분적으로는 ‘오컴의 면도날’-여기서 ‘오컴’은 14세기에 살았던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기욤 오컴의 이름에서 나온 것이다-이라고 불리는 경제원칙에 근거를 둔 것이기도 하다. 이 원칙은 어떤 사실을 설명하는 데 불필요한 모든 가정을 체계적으로 제거하는 것으로, 어떤 현상에 대한 단순한 설명이 복잡한 설명보다 올바를 가능성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이 경우에 자기 자신의 존재를 의식하는 단 하나의 우주를 갖기 위해서 왜 생명이 없는 무수한 우주들을 창조할 것인가?

마티유 : 당신은 지금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올바른 우주를 만들기 위해 창조자가 실패한 우주들을 많이 만들어낼 필요가 없었음을 시사하고 있는가? 이것 역시 생명과 의식의 창조에 목적이 있었음을 다른 식으로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창조자란 누구인가? 그는 어디에서 왔는가? 창조자들의 창조자로부터? 그렇지 않다면 그는 자기 자신의 원인이 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결과는 자기 자신의 원인이 될 수 없다.

투안 : 우연이라는 가정에 대해 반대하는 또 다른 이유는 나로서는 세계의 심원한 아름다움과 조화가 무계획적인 우연해 의해 만들어졌다고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주는 아름답다. 빨갛게 타오르는 일몰, 장미 꽃잎의 섬세한 윤곽, 은하의 우아한 나선형 지류는 우리 영혼을 감동시킨다.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이 시간과 공간 속에서 변하지 않기 때문에 우주는 조화롭다.

마티유 : 아름다움이라는 논거 역시 타당성이 없다. 아름다움의 개념은 순전히 상대적이다. 장미 꽃잎은 시인에게는 아름답지만 벌레에게는 먹이이고 고래에게는 아무 것도 아니다. 나선 은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20세기에 그것을 관찰할 수 있기 전까지는 아무에게도 아름답지 않았다. 만약 우주의 아름다움과 조화를 감상할 수 있는 관찰자가 나타나도록 우주가 조성되었다면, 그러한 아름다움은 우주 여기저기에 흩어진 몇몇 지성적 존재들의 눈앞에 전시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생명체가 없거나 생명체가 살 수 없는 행성들의 아름다움이나 아무도 보지 않을 은하들의 아름다움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투안 : 당신의 의견에 동의한다. 처음 볼 때는 그러한 논거가 ‘오컴의 면도날’에 어긋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어쨌든 원칙적으로 이러한 행성들이나 은하들이 언젠가 우리에 의해 혹은 지성을 갖는 외계인에 의해 관찰될 수 있을 것이다.
우연에 반대하여 내가 거는 내기의 마지막 논거는 우주에 심원한 통일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물리학이 발전함에 따라 우리가 완전히 별개라고 믿었던 현상들이 통합될 수 있었다.
17세기에 뉴턴은 하늘과 땅을 통합했다. 과수원에서 사과의 낙하를 결정하고 지구 주위를 도는 달의 운동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동일한 중력이기 때문이다.
19세기에 맥스웰은 전기와 자기가 단지 동일한 현상의 서로 다른 두 양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이어 그는 전자파는 빛의 파동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여 광학과 전자기학電磁氣學을 통합했다.
20세 초에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을 통합하고, 21세기의 벽두에 물리학자들은 자연의 네 가지 기본 힘을 단 하나의 상위의 힘으로 통합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 연구하고 있다. 우주를 기술하는 물리적 법칙들은 통일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마티유 : 우주와 인간의 존재가 창조자의 의도 없이 인과법칙에 따라 진화했을 것이라는 사실이 우주가 조화를 이룰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또한 자크 모노가 말했듯이 “인간은 자신이 순전한 우연에 의해 도착한 우주의 무관심한 광대함 속에서 길을 잃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도 아니고, 우주에 의미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우주와 인간 의식의 상호의존성은 우주의 전체적 구성에 명확한 의미를 부여하는 지식에 도달하기 위해 이러한 의식을 이용할 수 있게 한다.

투안 : 나는 우주의 궁극적인 목적이나 의미가 인간의 삶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야겠다.
생명이 복잡성을 향해 올라가는 운동을 멈추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우주는 지속적으로 진화할 것이고 인간도 그와 함께 진화할 것이다. 어쨌든 나는 인간에 이르는 우주의 진화가 단지 일련의 다행스러운 우연의 일치, 일련의 운 좋은 주사위 던지기에 불과해서, 마찬가지로 그것이 결코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대단히 곤란하다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우연은 자크 모노가 거론하는 우연과는 다르다.
생화학자인 그는 우연에 대해 말할 때 원자핵을 형성하기 위한 쿼크들 사이의 우연한 만남, 별에 열을 공급하기 위해 별의 중심부에서 일어나는 원자들 사이의 우연한 만남, 성간星間 분자와 행성을 만들기 위해 별의 연소에 의해 생겨나는 원자들 사이의 우연한 만남, DNA의 복잡하게 얽힌 나선 구조를 발생시키기 위한 원시 바다의 유기 분자들 사이의 우연한 만남을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근본적으로 이러한 과정들이 양자이론에 의해 발견된 우연에 의해 지배된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러한 의미에서 나는 우주의 진화과정에서 우연성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데 동감한다. 나는 완전히 결정론적 우주라는 라플라스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가 지금 여기서 토론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주의 최초 순간부터 결정되어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일 것이다. 나는 단지 일단 물리 법칙이 확정되면, 그것은 자연이 윤색할 수 있는 이상적인 대강의 줄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다. 이 윤색은 주로 우연에 의해 진행된다. 원자의 세계에서 나타나는 양자의 파동, 기후의 원인이 되는 현상들처럼 거시세계에서 일어나는 카오스 현상, 돌발적이고 우연한 현상들(6,500만 년 전에 지구를 강타하고 공룡들을 멸종시켜 인류의 조상인 포유동물을 출현시킨 운석이 그렇다.)은 자연을 결정론적 속박에서 해방시켰고, 이로 인해 자연은 복잡성을 만들어내는 자신의 창의적인 면을 보일 수 있었다.
재즈 연주자가 전반적인 주제를 중심으로 윤색하여 자신의 영감과 관중의 반응에 따라 새로운 곡조를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것처럼, 자연은 우주가 시작되자마자 확정된 자연 법칙을 갖고 자발적으로 연주한다. 자연은 새로움을 창조하기 위해 자연 법칙을 이용한다.
그러나 나는 물리 상수들과 초기 조건들의 선택이 순전히 우연의 문제였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 일단 상수들과 초기 조건들이 결정되면 물질은 이미 그 안에 의식의 싹을 포함하고 있고, 우주의 임신은 가차없이 인간의 발생까지 이르게 된다.
결국 우리가 우연과 다수의 우주라는 개념을 배제하고 단 하나의 우주, 즉 우리의 우주만 있다고 상정하면, 나는 파스칼처럼 창조 원리가 있다는 쪽에 내기를 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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