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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글올린 게시글: 2017-11-03, (금) 3:36 am 

가입일: 2015-01-01, (목) 10:13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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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와 비존재(1)
우주에는 시초가 있는가?

투안: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상태에서 우주의 기원을 가장 훌륭하게 설명하는 이론은 빅뱅이론이다. 우리는 약 150억 년 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작고 밀도가 높으며 뜨거운 농축 에너지가 폭발해서 우주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그 폭발은 또한 시간과 공간을 낳았을 것이다. 이후 우주는 지속적인 확장상태에 있다.
미국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은 1929년 대다수의 은하가 우리의 은하인 은하수에서 빠른 속도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관찰한 후 이러한 이론을 공식화했다. 더욱 이상한 것은 더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그만큼 더 빨리 은하수에서 멀어진다는 것이다. 10배 멀리 떨어져 있는 은하는 10배 빨리 멀어지고 있었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관찰을 통해 모든 은하들이 출발점에서 현재의 위치에 도달하기 위해 정확히 동일한 시간이 걸렸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그 사건들의 진행과정을 거꾸로 상상해보자. 은하들이 떨어져 나가는 운동의 궤도를 다시 되돌린다면 모든 은하들은 동일한 순간 우주의 동일한 한 점에서 만날 것이다. 이러한 통찰을 거쳐 팽창을 촉발한 대폭발, 즉 빅뱅이 있었다는 생각이 나온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빅뱅은 창조의 종교적 개념을 대체했다.
1922년 러시아의 기상학자이자 수학자인 알렉산더 프리드만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사용해서 팽창 우주 모델을 구성했다. *(주: 1915년 아인슈타인이 발표한 상대성이론은 운동, 시간, 공간에 중력이 미치는 영향을 기술하고 있는데, 그 이론을 중력의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10년 전의 특수상대성이론과 구별하기 위해 ‘일반’상대성이론이라고 부른다.
1927년 벨기에의 우주과학자이자 성직자인 조르주 르메트르도 독자적인 똑같은 작업을 수행했고, 무한히 작은 우주의 초기 상태를 ‘원시 원자’라고 명명했다. 1946년 러시아계 미국인 물리학자 조지 가모프는 우주가 생겨난 후 최초의 30만년 동안 우주의 온도와 밀도가 너무나 높아서 현재의 어떠한 구조들(은하, 별, 생명)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며, 우주에는 단지 소립자들과 복사선(輻射線)만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모프에 따르면 그 뜨거운 최초의 복사선은 우주가 팽창하는 150억년 동안 에너지를 잃어버려 상당히 열이 식기는 했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도달한다.

마티유: 그것이 이른바 우주 배경복사라는 것인가?

투안: 그것은 확실히 ‘창조의 불길’에서 남아 있는 열기이다. 그리고 1965년 배경복사가 검출되어 빅뱅이론에 가장 훌륭한 증거로 제시되었다. 그 이전 몇 년 동안 아무도 배경복사를 찾으려고 애쓰지 않았지만 우연히 발견되었다. 이렇게 배경복사의 발견이 지체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빅뱅은 많은 신학자들에게 환영을 받았는데, 그것이 천체물리학자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1951년 교황 피우스 12세는 빅뱅을 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빛이 있어라.”라는 신의 말씀과 연계시겼을 정도였다.
지체의 또 다른 이유는 당시 빅뱅이론에 맞서 유행하던 우주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영국의 천체학자인 헤르만 본디, 토머스 골드, 프레드 호일이 창안한 ‘정상(定常) 우주론’이다. 이 이론은 우주가 과거나 미래나 언제나 거의 ‘변하지 않는(定常) 상태’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창조에 대한 논쟁을 피해나갔다. 우주는 시작도 끝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이론은 우주 관찰에 의해 급속하게 종말을 맞게 되었다. 1960년대 초 퀘이사와 전파은하(자신이 갖는 대부분의 에너지를 전자파로 발산한다)가 발견된 것이다. 그런데 퀘이사와 전파은하의 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감소되는 것으로 관찰되었고, 이로 인해 우주에는 변화가 없다는 정상우주 가설은 반박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1965년 예상치 못했던 우주 배경복사의 검출은 정상우주론에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 호일과 그 동료들의 이론은 초온도와 초밀도를 갖는 시초의 가능성을 배제했고, 따라서 우주 전체에 흐르고 있는 최초의 열에서 나오는 배경복사의 존재를 설명할 수 없었다. 따라서 빅뱅이론은 우주의 시초에 대한 새로운 해설이 되었다. 그 이론만이 은하들이 멀어지는 운동, 우주 배경복사, 별의 화학적 성분과 같이 겉으로 보기에는 서로 연관이 없는 현상들을 설명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마티유: 그러한 대규모의 폭발이 어떻게 우주의 진화라는 결과를 낳을 수 있었겠는가? 빅뱅 직후 어떤 일이 뒤따랐는가? 또 그 이론에 따르면 어떻게 우주가 지금의 형태를 갖게 되었는가?

투안: 물리학자들은 우주가 진공에서 태어났다고 말한다. 그것은 ‘양자(量子) 진공’이라고 부르는데, 그 진공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같이 고요하고 평온하고 일체의 물질과 활동이 결여된 진공이 아니다. 양자 진공은 어떤 물질도 포함하고 있지 않지만 에너지로 들끓고 있다. 비어 있는 듯한 공간은 파동으로 묘사될 수 있는 에너지 장들로 가득 차 있다. 사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공간은 서로 다른 종류의 변화무쌍한 파동으로 가득 창 있다.
무선파(無線波)는 가장 작은 에너지를 갖고 있다. 단지 스위치를 돌리기만 하면 제자제품은 마술처럼 그것을 베토벤의 교향악이나 텔레비전 쇼로 전환한다. 태양에서 오는 가시광선은 우리 주위를 둘러싼 사물들의 표면을 끊임없이 스쳐가고 우리의 눈에 들어와 사물을 볼 수 있게 한다. 자외선도 있다. 우리 주위의 공간이 이러한 파동으로 충만한 것처럼 우주가 탄생할 때 존재했던 양자 진공도 에너지 장으로 넘치고 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랄만한 규모와 과정을 통해 이 엄청난 에너지는 우주를 급속하게 팽창상태로 몰아넣었을 것이다. 이러한 우주 진화단계를 천체물리학자들은 ‘인플레이션’ 시기라고 부른다. 이러한 ‘인플레이션’을 통해 우주의 부피는 이주 짧은 시간에 걸쳐 현기증 나게 증가했을 것이다. 빅뱅 이후 10⁻³⁵ 초부터 10⁻³² 초에 걸쳐 수소 원자보다 훨씬 더 작았던 우주가 급격히 오렌지 크기까지 커졌을 것이다.
우주가 팽창함에 따라 온도도 내려갔다. 빅뱅 직후 우주는 단테가 상상한 어떤 지옥보다도 뜨거웠고, 그 엄청난 열 때문에 어떤 물질도 형성될 수 없었다. 물질들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은 우주의 냉각 때문이다. 에너지가 물질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아인슈타인은 ‘E=mc²'이라는 유명한 공식으로 이러한 메커니즘에 실마리를 제공했다. 아인슈타인의 발견에 따르면 에너지량은 물질의 입자로 전환될 수 있다.(그 질량 m은 빛의 속도 c의 제곱에 의해 나누어진 에너지량 E와 같다.) 이 순간부터 우주는 오랜 시간에 걸쳐 복잡성을 향해 진행되었다.
소립자들(예를 들면 쿼크와 전자)은 최초의 진공에서 출현하여 서로 결합되어 원자와 분자, 마침내는 별들을 형성한다. 별들은 수천억 개가 모여 은하를 이루고, 가시(可視) 우주의 수천억 개의 은하들이 모여 우주에 거대한 장식융단을 짜놓는다. 무한히 작은 것이 무한히 큰 것을 낳은 것이다.
이러한 은하들 가운데 하나인 은하수 안에 있는 태양이라고 이름 붙은 항성 가까이에 있는 행성 지구에서 분자들이 모여 DNA 사슬을 이루는데, 이것이 생명과 의식에 이르게 될 것이고, 마침내 자기를 둘러싼 세계와 자기를 탄생시킨 우주에 대해 질문할 수 있는 인간을 낳게 되었던 것이다.

마티유: 그 이론이 우주의 진화에 대해 아무리 설득력을 갖는다 하더라도, 빅뱅의 원인을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내가 티베트의 박식한 친구에게 빅뱅에 대해 말해주자 그가 이렇게 소리쳤다.
“그래서 우주와 시간과 공간이 무(無)에서 아무런 원인 없이 쾅하는 폭발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그것은 결국 그 스스로의 원인인 창조주의 존재를 가정하는 것만큼이나 비논리적이다.
불교에 따르면 시간과 공간은 세계에 대한 우리의 지각에 의해 만들어진 개념에 지나지 않으며, 그것들은 우리의 지각과 분리된 고유한 실체를 갖고 있지 않다. 달리 말하면 그것은 ‘실재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불교적 사유에서는 시공의 절대적 시초라는 개념은 무효화된다. 우리는 또한 어떠한 것도 심지어 시간과 공간의 가시적으로 명백한 시초까지도 원인과 조건 없이는 나타날 수 없다고 믿는다. 다른 말로 하면 어떠한 것도 비존재에서 존재로 이행할 수 없고, 반대로 존재에서 비존재로 이행할 수도 없다. 오직 변화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빅뱅은 시작도 끝도 없는 하나의 연속체 내부에서 일어나는 한 국면에 지나지 않는다.

투안: 당신은 빅뱅 ‘이전’에 무엇이 일어났는가라는 곤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나는 ‘이전’이라는 말에 따옴표를 쳤는데, 그 이유는 시간이 빅뱅과 함께 나타났다면 그 ‘이전’이라는 개념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과학은 우리가 창조의 순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게 해주는가? 그 대답은 ‘아니다’이다.
지금으로서는 이른바 플랑크의 벽이라고 불리는 인식의 벽이 존재한다. 플랑크는 독일 물리학자인데, 그는 최초로 이러한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이 벽은 ‘플랑크의 시간’이라고 불리는 10⁻43초(1이라는 숫자는 43개의 0다음에야 겨우 나타난다.)라는 극소 시간에 자리를 잡는다. 그때 우주는 수소 원자보다 10²⁵배나 더 작았다. 그 지름은 플랑크의 길이, 그러니까 10⁻³³센티미터였다.

마티유: 당신은 그것이 일종의 자연적인 한계라고 말하는 것인가? 그래서 우리는 그 이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결코 알 수 없다는 것인가? 아니면 그 장벽은 우리의 지식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난 것인가?

투안: 플랑크의 시간은 절대적인 한계가 아니다. 그 시간 이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것은 단지 무지의 소치이다. 지금 우리는 20세기 물리학을 대표하는 두 가지 이론인 양자물리학과 상대성이론을 어떻게 통합해야 할지 모르고 있다.
양자물리학은 무한히 작은 우주를 기술하고 중력이 지배적인 역할을 하지 않을 때 원자와 빛의 운동을 설명한다.
상대성이론은 무한히 큰 우주를 기술하고, 우주와 그 구조를 우주적인 규모로-여기서 핵력(核力)과 전자기력(電磁氣力)은 지배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다-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런데 아직 우리는 자연의 네 가지 기본 힘(주: 약한 핵력, 강한 핵력, 전자기력, 중력. 모든 물리적 현상들은 이 네 가지 기본 힘에 의해 매개되는 상호작용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이 동일한 수준에 있을 때-이것이 최초의 폭발 이후 10⁻43초인 플랑크의 시간에서 일어나는 상황이다-물질과 빛의 운동을 기술할 수 없다.(주: 플랑크의 시간에서는 우주가 매우 압축되어 있고 밀도가 너무 높아서 소립자의 수준에서는 매우 미미한 효과를 갖는 중력이 약한 핵력, 강한 핵력, 전자기력만큼이나 중요했다.)
이러한 인위적인 플랑크의 벽 뒤에는 물리학자들에게 아직 알려지지 않은 실재가 숨어 있다. 몇몇 사람들은 오늘날의 우주에서 그렇게 긴밀하게 접합된 시간*공간의 쌍이 초기 우주에서는 분리되어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각본에 따르면 시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 현재, 미래라는 개념은 모든 의미를 상실한다. 시간과 분리된 공간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유동하는 형태들을 갖는 양자 ‘거품’ 이상이 아니다.
초끈이론을 연구하고 있는 또 다른 물리학자들은 양자 거품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이들의 대안에 따르면 물질의 소립자들은 그 크기가 플랑크의 길이와 같은 매우 작은 에너지 끈의 진동으로 만들어진다. 어떠한 것도 이러한 초끈보다 작을 수 없기 때문에, 이 길이 이하 규모의 공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하는 문제는 더 이상 제기되지 않는다. 정말이지 공간도 이보다 더 작은 크기를 가질 수는 없다. 이러한 이론은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을 통합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수학의 베일에 싸여 있으며 실험적으로 증명되지 않고 있다.(주: 물리법칙은 빅뱅 이후 약 10⁻12초보다 더 큰 시간에만 검증되었다. 그 이전의 우주 소립자들의 에너지는 우리의 입자가속기가 재생하기에는 너무 커서 이러한 극단적인 조건의 물리학은 아직도 실험적으로 연구될 수 없다.)
우리가 양자 거품의 존재를 받아들인다면, 아마 양자 거품 안에 있는 셀 수 없이 무한한 유동적 형태들 가운데 하나가 150억 년 전 우주와 우주의 시공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그 이전에는 공간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간이 이런 저런 형태로 그렇게나 오랜 시간을 보냈다고 말할 수 없다. 무한히 지속되는 기간까지도 플랑크의 벽 뒤에 자리 잡을 수 있다.

마티유: 당신이 말하는 무한히 지속되는 기간은 바로 ‘시초의 부재’를 의미하는가?

투안: 모든 가정이 가능하다. 10⁻43초라는 시간은 단지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법칙을 제로(0) 시간에 확대 적용한 결과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러한 법칙들은 이 벽 뒤에서는 근거를 잃는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통용되고 있는 물리학은 빅뱅 이후 10⁻43초에 시작한다.

마티유: 불교는 우주의 실재를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다.
불교에서 현상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생겼던’ 것이 아니다. ‘생겼던’이라는 말을 현상들이 비존재에서 존재로 이행한다는 의미에서 사용한다면 말이다. 그것들은 우리의 ‘상대적인 진리(世間)’에 따르면 존재하지만, 궁극적인 실재성이 없다. 상대적인 혹은 관습적인 진리는 세계에 대한 우리의 경험, 즉 사물이 객관적으로 실재한다고 가정하면서 우리가 세계를 지각하는 일상적인 방식에서 나온다. 불교는 이러한 지각이 기만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궁극적으로 현상들은 내적으로 고유한 실체를 갖고 있지 않다. 이것이 ‘절대적 진리’이다. 이 경우에 창조라는 문제는 잘못된 것이다. 창조라는 관념은 객관적 세계가 존재함을 믿을 때만 필요하다.
그러나 불교의 관점은 세계가 드러나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분명 우리 모두가 주변에서 보는 현상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현상들이 존재하는 방식을 검토해보면 스스로 존재하는 독자적인 실체들이 모인 것으로 간주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므로 현상들은 꿈이나 환상, 신기루처럼 존재한다. 거울에 비친 영상과 비슷하게 현상들은 분명히 보이기는 하지만 따로 떨어져 존재하는 실체가 없다. 2세기 인도의 위대한 철학자인 나가르주나(龍樹)는 이렇게 말했다.
“현상들의 본질은 상호의존성이다. 현상들은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다.”
현상들의 전개는 무계획적인 우연에 의한 것도 아니고, 신의 개입에 의해 결정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총체적인 상호의존성과 상호적인 인과성 안에서 인과법칙을 따른다. ‘기원’의 문제는 현상들의 궁극적 실재와 시간과 공간의 존재에 대한 믿음에 근거를 두고 있다.
반면 절대적 진리의 관점에서 볼 때는 창조도 지속도 종말도 없다. 이러한 모순은 현상 세계의 환상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 현상 세계는 그 궁극적 본질이 공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무한한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 우리는 가상(假象)의 상대적 진리라는 관점에서 볼 때 조건지어진 세계인 윤회전생(輪廻轉生)은 ‘시작이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각각의 상태는 반드시 선행하는 상태가 원인이 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빅뱅 이론은 무(無)로부터의 창조와 비슷한 것인가, 아니면 아직 우주에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이미 존재했던 잠재성의 표출인가? 그것은 진정한 시초로 간주되는가, 혹은 우주 진화의 한 단계로 간주되는가?

투안: 이미 말한 것처럼, 현대 물리학은 플랑크의 벽 앞에서는 시간을 탐구할 수 없다. 그러므로 빅뱅 이전에는 무한한 시간대가 존재했을 수도 있고, 전혀 시간이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또 다른 가능성은 우주가 순환적이며, 빅뱅이란 단지 그 무한한 순환들 중 새로운 순환의 시작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경우에 우주가 어떻게 제로 시간에 무에서 창조될 수 있었을까라는 문제는 제기되지 않는다. 이러한 가능성들은 창조의 문제를 피해나가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여전히 순전한 사변에 불과하고 어떠한 관찰이나 실험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마티유: 어쩌면 빅뱅은 무한하지만 발현되지 않았던 잠재성에서 현상 세계가 생겨나 전개되는 과정으로 해석될 수도 있겠는데, 이를 불교는 비유적으로 ‘공간 입자들’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용어는 물질의 조각이라는 의미에서의 입자가 아니라 ‘공간’의 잠재성을 지칭한다. 우리가 이러한 잠재성에 구체적이고 독립적인 ‘실재성’을 부여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잠재성은 어쩌면 당신이 설명한 물리학의 진공으로 비유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교는 무로부터의 창조란 있을 수 없다고 믿는다. 7세기에 샨티데바(寂天)는 <보살행(菩薩行)에서 이렇게 썼다.

무가 지배하고 유가 없다면
도대체 어떻게 유가 생겨날 수 있겠는가?
왜냐하면 존재가 생겨나지 않는 한
비존재 자체는 떠나지 않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존재가 사라지지 않는 한
존재가 나타날 가능성은 전혀 없다.
유는 변하여 무가 될 수 없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이중의 성격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무’가 ‘유’가 될 수 없는 이유는 무가 무라는 자신의 상태를 버리지 않는다면 변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존재하지 않는 것을 제거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무는 단지 존재와의 관계에서만 정의될 수 있는 개념에 불과하다. 그것은 존재가 없을 때는 생각될 수 없기 때문에 그 자체의 실재성은 조금도 가질 수 없다. 그리고 무는 변화될 수 없다. 어떤 것이 나타날 때 그것은 발현의 잠재성이 이미 존재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투안: 물리학은 그러한 발현을 위한 잠재성이 진공의 에너지에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남는다. 어떻게 이러한 진공이 만들어졌는가? 아무 것도 없었는데 에너지가 가득한 진공과 더불어 동시에 시간과 공간이 나타나 갑작스러운 불연속성이 생겨났는가.....

마티유: 무를 유로 만드는 원인 없는 불연속성이라..,..., 정말 기묘한 시작의 방식이 아닌가! 빅뱅이나 특정 우주의 또 다른 ‘시초들’ 모두 원인이나 조건 없이 일어날 수 없다. 현상 세계는 무에서 생겨났을 리 없다. 불교의 핵심적 사상에 따르면 사물들은 독립적인 실재성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고유한 실체로서 ‘시작할’ 수 있거나 ‘끝날’ 수 없다. 시초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어떤 것’의 시초를 마음에 그린다. 시작과 끝이 있는 우주라는 개념은 상대적 진리에 속한다. 절대적인 진리의 관점에서 그것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예를 들어 당신이 꿈에서 본 성을 생각할 때, 누가 실제로 그 성을 만들었는지 고민할 필요는 없다. 모든 종교와 철학은 이러한 창조의 문제에 부딪쳤다. 과학은 창조자로서의 신이라는 개념의 필요성을 제거함으로써 그 문제에서 벗어났지만, 불교는 시초라는 개념 자체를 제거함으로써 그 문제에서 벗어난 것이다.

* 다음(2)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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