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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글올린 게시글: 2017-11-09, (목) 2:47 am 

가입일: 2015-01-01, (목) 10:13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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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병 없기를 바라는 그 마음이 바로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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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신불구무병(念身不求無病)’ 고윤숙 화가

절마다 하나씩 있는 기념품점에서 파는 손수건이나 다포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글로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이 있다. 이 글은 명나라 때 스님인 묘협이 쓴 ‘보왕삼매염불직지(寶王三昧念佛直指)’ 중 제17편 ‘십대애행(十大碍行)’에서 나온 것이라 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흔히 바라게 되는 마음을 뒤집어, 얻고자 하는 마음이 사라질 때 오히려 정작 소중한 것을 얻게 됨을 보여주는 뛰어난 10개의 역설적 문장으로 요약되는 글이다. 어디서 처음 봤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보고선 잊혀지지 않는 앞부분의 문장들을 내 식으로 요약하여 종종 사용한다.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마라, 인생에 고통 없기를 바라지 마라, 일에 장애가 없기를 바라지 마라”면서.

병과 고통 없는 신체란 있을 수 없고
고통 원인 외부 돌리는 건 어리석어
우리는 세균 없이 하루도 살지 못해

생각해보면 너무 자명한 얘기다. 세상이 내 몸에 맞추어 움직여주는 게 아닌데 어떻게 몸에 병이 없을 수 있으랴. 심지어 자기 몸조차 몸이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고 입이나 눈, 생각이나 욕망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에 병이 나는 경우가 대부분 아닌가? 그러니 몸에 병 없기를 바라는 건 폭풍우 속에서 몸 안 젖기를 바라는 일이다.

병 없는 신체란 있을 수 없고 고통 없는 삶이란 있을 수 없는데, 병이나 고통 없기를 바랄 때 우리는 두 번째 고통 속으로 밀려들어간다. 바라는 것을 얻을 수 없는 고통이 그것이다. 몸에 난 병이 주는 것이 신체적 고통이라면, 병 없는 신체에 대한 욕망이 그 병 앞에서 좌절하게 되는 건 심리적 고통, ‘정신적’ 고통이다. 그래서 영화나 소설에서 종종 보게 되지 않던가? 자신에게 닥쳐온 병이나 고통 앞에서 “신이여, 왜 제게 이런 고통을 주시나이까?” “신이여, 왜 하필이면 저입니까?” 외치며 고통스러워 하는 장면을.

‘도덕의 계보’에서 니체는 고통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이 바로 그 고통의 무의미성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토록 고통스러운데 그 고통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니! 저 질문은 바로 이 고통의 무의미성에 대한 항의어린 질문이다. 이는 고통 없음에 대한 욕망이 고통에 대해, 고통의 무의미함에 대해 갖게 되는 분노의 표현이다. 이런 질문을 통해 이들은 자신에게 닥쳐온 고통의 의미를 찾고자 한다. 그리고 종종 찾기도 한다. 자신의 과거사에서 찾기도 하고, 자신을 시험하려는 신의 뜻에서 찾기도 하고, 자신을 단련시켜 더 나은 미래를 찾게 해주려는 신의 의도에서 찾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찾은 답이 고통을 견디거나 그것을 이겨내는데 도움이 될 때에조차, 그것은 헛된 질문이고 허황된 대답이다.

더 나쁜 것은 그 고통의 원인을 남에게서 찾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건 틀림없이 ~~때문이야!’라며 그에게 적의를 갖고 공격한다. 그래서 어느새 자신의 고통을 야기한 누군가를 찾아내려 한다. 책임을 지울 누군가가 있어야 하기에. 집단이나 공동체 안의 병이라 할 수 있는 갈등이나 와해의 고통 같은 것을, 내부에 스며든 이방인들이나 자신이 싫어하던 누군가의 탓으로 돌리고 그를 공격하는 것도 정확히 ‘원한의 감정’이라고 해야 할 이런 감정의 산물이다. 과거의 파시즘이 정확히 이러했고, 지금 ‘여혐’ ‘남혐’이나 외국인에 대한 혐오행위가 정확히 이러하다. 병이나 고통 없는 상태에 대한 욕망(貪心)이 병이나 고통에 대한 분노(嗔心)를 낳고, 이것이 엉뚱한 대상을 공격하는 어리석음(痴心)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병을 외부에서 침입한 병균의 산물이라고 보고, 건강이란 그렇게 침입한 적들을 퇴치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라고 보는 태도는 이런 마음과 아주 가까이 있다. 우리 신체의 내부에는 세포 수에 버금갈 만큼 많은 세균들로 가득 차 있다. 세균들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 몸이란 그들이 생존해야 할 환경이다. 마치 숲이나 지구가 우리가 살아가야할 환경인 것처럼. 우리는 항상 수많은 세균들로 가득 찬 대기를, 혹은 음식(남의 살!)을 섭취하며 산다. 그렇게 섭취한 것들 가운데는 우리 몸에 맞는 것도 있고 안 맞는 것도 있다. 우리 인간이 살기 위해 하는 일이 숲이나 지구에 맞는 것도 있고 안 맞는 것도 있듯이. 안 맞는 게 있어도 내 몸이 그것을 수용할 능력이 있는 한 그 세균이 있다는 사실이 병이 되진 않는다. 반면 내 몸의 수용능력이 떨어져 그것이 생존하기 위해 한 일을 감당할 수 없게 되면 병이 난다. 숲이나 지구에 대해서 인간이 하는 일도 그러하다. 비유하자면, 지구에 발생한 온난화나 이상기후는 인간이란 ‘세균’으로 인해 지구의 ‘몸’이 겪는 질병이다. 병이란 이처럼 내부와 외부, 개체와 환경 사이에 있는 이질성과 불화가 환경의 수용능력을 넘어서게 될 때 발생하는 현상이다.

그러나 내 몸은 내 것이라는 아상은 내게 발생한 병이나 고통을 모두 외부자 탓으로 돌리게 한다. 이런 마음에서 보면 세균은 모두 내 몸에 침투하여 병을 일으킬 잠재적인 ‘병균’으로 보인다. 이는 세균이 인간에게 올 때 ‘병균’으로 왔다는 발생적 요인 때문에 좀처럼 넘어서기 힘들다. 19세기까지 서양에서 전염병의 원인에 대해선 두 가지 다른 입장이 있었다. 하나는 독기(miasma) 때문이라는 입장, 다른 하나는 눈에 안 보이는 미세한 균 때문이라는 입장이 그것이다. 지금과 달리 당시까지 지배적인 견해는 전자였다. 파스퇴르는 병균이 전염병의 원인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는데, 이를 입증하기 위해 병균을 찾다 세균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니 세균은 처음부터 병균이었던 셈이다. 이 때문에 파스퇴르는 어디나 병균이 존재한다는 생각에서 문고리를 만지는 것도, 악수를 하는 것도 대단히 꺼려했고, 강박증 환자처럼 하루에도 몇 십번 손을 씻곤 했다. 이로 인해 꽤 오랫동안 세균은 그 자체가 병균으로 간주되었고, 위생이란 세균을 제거함으로써 확보되는 것이라는 군사주의적 관념이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된다.

그러나 세균이나 외부자를 제거하면, 그것이 제거되기도 전에 내가 먼저 죽을 것이다. 우리는 세균 없이는 살지 못한다. 그렇지만 세균들이 내 몸에, 즉 자신이 살아갈 환경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내 몸에 들어온 지 오래된 세균들은 병을 잘 일으키지 않고, 일으켜도 독성이 약하며, 많은 경우 내 몸에 필요한 기능을 하며 내 몸과 공생한다. 위생관념에 철저하고 소독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병에 쉽게 걸리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평소에 이질적인 것들, 외부적인 것들과의 접촉이 없으면 오히려 미소한 접촉만으로도 쉽게 병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헝그리정신에 따라 유효기간 지난 음식은 물론 좀 상한 것도 엔간하면 먹고, 바닥에 떨어진 것도 엔간하면 주워 먹는다. 위생관념에 철저한 친구는 보면 질겁을 하지만, 그 친구는 이런저런 병에 시달리지만 나는 엔간해선 탈이 나지 않는다. 물론 이는 사람마다 다른 것이니 쉽게 일반화해선 안되겠지만, 위생관념과 병 사이의 거리는 생각만큼 멀지 않다는 건 분명하다. 자기 몸의 능력을, 자기 주제를 모르면서 아무거나 섭취하는 것도 바보짓이지만, 자기 몸의 고통이 모두 남 탓이라고, ‘병균’ 탓이라며 제거하려는 것 또한 그에 못지않은 바보짓이다.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solaris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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