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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2015-01-01, (목) 10:13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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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란 신체를 움직이는 신체의 표면

▲ ‘새로운 대지’ 고윤숙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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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작가 조에 부스케는 1차 대전에 참전했다 포탄을 맞아 하반신을 쓸 수 없는 불구의 몸이 된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대개는 그 사고를 감당하기 힘들어 그나마 남은 목숨마저 끊어버리고자 하게 된다. “스무살에, 나는 포탄을 맞았다. 내 몸은 삶에서 떨어져나갔다. 삶에 대한 애착으로 나는 우선은 내 몸을 파괴하려 했다.”(부스케, ‘달몰이’, 11쪽) 죽고 싶다는 생각조차 실은 삶에 대한 애착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니 삶의 애착과 죽고 싶다는 생각 사이에서 얼마나 번민이 지대했을 것인가! 이런 일이 있어선 안되었는데 하는 마음이, 내게 발생한 사고를 받아들일 수 없는 마음이 죽음보다 더한 번뇌를 만들어낸다. “상처받은 나는 이미 내 상처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살아있는 이에게는 죽음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 하여 “해가 가면서, 내 불구가 현실이 되어가면서, 나는 나를 제거해야겠다는 생각을 그만 두었다.” 망가진 몸을 현실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그 현실 속에서 살아가게 되었을 것이다. “나는 여자처럼 살았다. 정신을 잉태했고, 정신을 내 감각들로 젖 먹였다.” 그렇게 하여 그는 작가로서의 삶을 살게 된다. 작가로서의 삶을 통해 그는 불구가 된 자신의 신체를, 그렇게 불구로 만든 그 ‘사고’를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한 ‘사건’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망가진 신체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된 것이다. 망가진 신체 그대로.

사고로 망가진 신체라 할지라도
마음의 물결만은 끝없이 이어져
마조 스님이 말한 ‘즉심즉불’이란
신체표면 일렁이는 마음 보는 것

‘사고’가 없었으면 좋았을 불행한 일이라면, ‘사건’이란 그것 없는 삶을 생각할 수 없는 삶의 전환점이다. 사건이란 그 이전과 이후가 결코 같을 수 없는 어떤 분기점이다. 부스케에게 신체적 파괴는 사고로 다가왔지만, 이후의 삶을 통해 그것을 긍정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것은 사건이 되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십년 가까운 시간이 흘러야 했다. 그 십년의 시간이 지난 뒤 그는 자신의 신체를 부수었던 그 일을 더없는 암울함 속에서 구해낸 것이다. 차라투스트라가 말하는 ‘과거의 구원’이란 게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일 게다.

무엇이 그를 자유롭게 해준 것일까? 그의 말대로 삶에 대한 애착, ‘정상적인’ 신체에 대한 애착이 그를 망가진 신체에 매이게 했을 것이다. 망가진 신체에 대한 한탄과 망가뜨린 사태에 대한 분노가 신체만큼이나 그의 ‘영혼’을 망가뜨렸을 것이다. 십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의 일이지만, 그 신체를 현실로 받아들이게 되었을 때, 그는 부서진 신체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 신체를 더는 한(恨)하지 않게 되었을 때, 혹은 그 부서진 신체를 버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거기에 달라붙어 살기 시작했을 때, 그의 신체는 새로운 정신을 잉태하는 새로운 대지가 되었다.

신체가 달라졌을 리는 없다. 치료가능성이라곤 전혀 없었을 테니까. 만약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어서 신체를 치료하여 ‘정상’으로 되돌리려 했다면, 그는 평생 충분히 치료될 순 없는 불구의 신체 속에서 애착과 원망, 한탄과 분노의 삶을 살았을 것이다. 결코 자신의 신체를 있는 그대로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며, 그 부서진 신체에서 새로운 영혼의 싹을 피워내지 못했을 것이다. 신체를 바꾸려 하는 대신 그 신체에 다가오는 것들, 그 신체에 달라붙는 것들을 바꾸기 시작했을 때, 그의 삶이 바뀌기 시작했을 것이다. 부서진 신체를 자신의 일상적인 삶의 대지로 받아들이게 되었을 때, 그 달라진 대지 위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 모든 것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 신체가 망가졌다는 사실을 더는 의식하지 않게 될 때, 혹은 망가진 신체 덕분에 지금의 삶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생각에 이를 수 있을 때, 그는 신체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게 될 것이다.

부스케가 왜 그렇게 달라질 수 있었을까? 마음을 확 바꾸어먹는 ‘돈오’ 같은 각성의 계기라도 있었던 것일까? 알 수 없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그가 부서진 신체도, 삶도 긍정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게 되었다 함은 무슨 뜻일까?

이전이라면 밥을 먹을 때조차 이런 몸을 유지하려고 밥을 먹나 하는 등의 번뇌가 있었을 것이다. 안 먹으려 내던졌다가, 망가져도 사라지지 않는 배고픔을 한탄하며 먹었을 것이다. 밥뿐일까? 그는 사고로 침대에 누워 지내게 된 후 몇 년간 창문도 열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빛은 쬐어서 무얼 할 거고 바람은 불어서 어쩌라구 싶었던 것일 게다. 일상생활의 행동 하나하나가 번뇌 덩어리였을 것이다.

“나는 하루하루에서 내 삶을 찾지 않았다. 삶은 [그런] 날들 이전에 있으며, 삶은 사실들을 어떻게 잊느냐에 따라 드러난다.”(‘달몰이’, 20쪽) 그런 식으로 그는 “나에게 닫혀 있는 삶에 예속되기를 원하였다.” 자신에게 닫혀 있는 삶, 사고 이전의 삶, 자신이 가 닿을 수 없는 삶에 대한 헛된 소망이 하루하루의 삶을 잊게 만들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고통스런 사실들을 잊음으로써만 살 수 있었다고 믿었던 게다.

반대로 사고마저 사건으로 긍정하게 된 이후라면? 부서진 신체를 받아들였다곤 했지만, 눈만 뜨면 보이는 부서진 신체, 물 한잔을 마시려 해도 제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신체를 잊을 순 없었을 것이다. “살덩이는 내 욕망들의 수치였다.” ‘존재의 상처’가 되어버린 회한이나 어둠이 사라졌을 리 없다. 그래도 ‘하루하루’에서 자기 삶을 찾게 되었을 것이고, 애써 그걸 잊으려 하지 않았으며, 그 신체의 상처 속에서 길어낸 문장들로 글을 썼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자신에게 열린 삶을 살았을 것이다. 밥 먹는 걸 두고 이전처럼 고민했을 리 없다. 창문도 열었을 것이다. 아니, 열려 있든 닫혀 있는 개의치 않았을 것이다.

아주 상반되는 이 두 가지 다른 삶, 그 모두가 동일한 신체의 ‘표면’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그의 삶이 달라졌다 함은 그 신체에 다가오는 것들, 신체에 와 닿고 신체를 스쳐지나가는 일들이 달라졌음을 뜻한다. 망가진 신체 위에 마음의 물결은 끝없이 이어진다. 때론 파도마저 친다. 물결 같은 마음이란 신체를 움직이는 신체의 표면이다. 움직이지 않아도 움직인다. 움직이지 않는 신체지만, 그것 그대로 다른 삶을 살게 하고 다른 행동을 하게하며 다른 감각 다른 생각이 깃들게 한다. 자신을 긍정하는 삶이란 그렇게 신체의 표면에서 일어난 변화를 뜻한다. 표면을 스치는 하나하나의 마음의 물결들, 그것을 애착도 거리낌도 없이, 안타까움과 분노도 없이 타고갈 수 있게 되었을 때, 그의 삶은 평화를 찾게 되었을 게다. 마조가 ‘즉심즉불’이라며 하나하나 표면에서 일어나는 마음을 보라는 것은 이래서 아니었을까? 마음의 물결 하나하나가 부처처럼 탐진과 애증에 부대끼지 않을 때 부처가 되리라고 얘기한 게 아니었을까? 혹은 그 물결 하나하나가 무언가를 얻으려, 밀쳐내려 애쓰지 않는다면 부처처럼 평화롭고 자유로울 수 있다는 말 아니었을까?

망가진 신체만이 문제일까? 멀쩡한 신체를 갖고서도 우리는 자신의 신체를 탓하고 능력을 탓하며 자신이 살아가야 할 세상을 탓한다. 이유는 부스케와 마찬가지로 자기 삶에 대한 애착 때문이다. 이런 삶을 살고 싶은데, 이런 얼굴을 갖고 싶은데, 이런 집을 갖고 싶은데, 현실이 그렇지 않으니 자신의 삶도, 신체도, 얼굴도 긍정할 수 없고, 자신이 사는 삶도 긍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하루하루의 삶, 하나하나의 행동에서 삶을 보지 않고, 그렇게 부대끼는 날들 이전에 있는 삶을 찾고, 지금 존재하는 저 불만스런 사실들을 잊으려고 애쓰고 있지 않은가? 그런 식으로 나에게 열려 있는 삶이 아니라 닫혀 있는 삶을 구하려 애쓰고 실망하고 애태우고 분노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solaris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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