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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2015-01-01, (목) 10:13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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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발 버리며 전등 단절한 혜능에서 선은 시작

▲ ‘보리본무수(菩提本無樹)’ 고윤숙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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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든 무언가가 새로운 게 시작되는 지점을 표시하는 사건이 있게 마련이다. 선(禪)이 시작되는 사건은 어디일까? 양무제(梁武帝)를 만나 법을 펴 보려다 ‘모른다’는 말만 남기곤 소림사에 들어가 누군가 말려들 때를 기다렸던 달마대사의 9년간의 면벽(面壁)? 아니면 그 면벽의 소문에서 어떤 냄새를 맡고 말려 들어가 눈 내리는 어느날 밤 팔을 하나 잘라 바치며 도를 구했다는 혜가의 구도(求道)? 그렇다고 할만하다.

달마대사는 중국 선종의 1대 조사고, 그 제자인 혜가는 달마의 법을 이은 2대 조사니, 어쩌면 가장 쉽게 동의를 구할 법한 선의 ‘시점(始點)’이 그것이라 하겠다. 좀 더 멀리 거슬러 올라가 달마로부터 인도의 스승으로 27대를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하여 석가모니의 연꽃을 보고 가섭이 미소로 답했다는 그 조용한 사건이 그것이다. 교외별전의 전통이 그 긴 궤적을 꿰어줄 것이다.

창조주를 찾는 기독교를 비롯
모든 종교 족보 통해 권위 확보
경력·수행실적 무시하는 역설
본격적인 선의 시대 개막 알려

그러나 이는 너무도 익숙한 사고방법 아닌가? 현재 자신이 속한 집단의 기원을 찾아, 조상을 찾아 위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 출가한 이들마저 어느새 다시 가문을 짓고 초조(初祖)와 이조, 삼조로 이어지는 족보를 그리는 것은 어디서나 조상을 찾고 정통성의 족보를 그리는 중국의 오래된 전통 때문일까? 아니, 혼자서는 자신을 흔드는 바람을 견디지 못하는 인간의 나약함 때문인지도 모른다. 현재의 자신을 당당하게 긍정하는 이라면 누구도 자기 뒤의 위대한 조상이 누구인지 들먹이지 않는다. ‘족보’의 빛나는 광채를 굳이 빌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서양에서도 기원을 이루는 ‘조상’을 찾아가려는 시도는 창조주를 찾는 기독교든 ‘이데아’나 ‘부동의 시동자’를 찾는 그리스적 철학이든 다르지 않았다. 이점에서 법통을 상징하는 의발(衣鉢)을 전하며 육조, 칠조를 잇는 전통을 끊어버린 혜능(慧能)의 행동은 아주 희소한 경우라 하겠다. ‘오조(五祖)’ 홍인(弘忍)이 넘겨준 의발 때문에 사람들에게 쫓겨 다녀야 했던 자신의 경험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부처의 자리도 구하지 말라면서 스승의 의발에 연연하는 게 부질없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이유가 무엇이었든, 혜능은 선의 역사 안에서 무언가 근본적으로 달라진 어떤 분기점을 보여준다. 어쩌면 선의 역사는 그때 시작되었다고 해야 할 지도 모른다. 정통성의 족보를 중단시키는 것, 그것이야말로 어쩌면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고 가르치는 선의 종지에 부합하는 시작 아닌가!

혜능을 전후하여 발생한 ‘단절’은 이것만이 아니다. 잘 알려져 있듯이 혜능이 홍인의 인가를 받고 의발을 전해 받았을 때, 그는 아직 사미계도 받지 않은 일개 행자에 지나지 않았다. 선방에 들어가 보지도 못한 채 방아를 찧고 잡일을 하던 행자인데다, 이른바 ‘남방 오랑캐’ 출신의 어린 소년이었다. 오랫동안 교수사를 맡고 있던 제자 신수(神秀)가 있었음에도, 벽에 적은 게송 하나만 보고 ‘의발을 줄 사람은 이놈이다’ 판단했던 홍인 또한 혜능만큼이나 이 단절의 주역이다.

안으로 문 닫아 걸고 몇 년, 장좌불와 몇 년 하며 신기록 경쟁하듯 이적(異蹟)의 기간을 세고, 절구통처럼 흔들림 없는 좌선이 깨달음으로 가는 최고의 미덕으로 존숭되는 절집의 통념을 어쩌면 선은 그 본격적인 역사의 시점부터 깨고 시작했던 것이라고 하겠다.

선의 역사를 연구하는 이들은 이를 혜능의 남종을 추어올리고 신수의 북종을 끌어내려 자신의 법통을 정당화하기 위해 하택 신회(荷澤神會)가 만든 신화라고 비판한다.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신회뿐이랴. 달마대사로도 모자라 27대를 더 거슬러 올라가 장구한 법통을 만든 ‘전등록(傳燈錄)’의 도언(道彦) 또한 그렇지 않은가? 중요한 것은 그런 법통을 만들면서 선택해야 했던 사건이 절집 안에서의 모든 ‘경력’이나 수행 ‘실적’ 모두를 무시하는 것이었다는 역설이다. 그리고 아마도 이것이 ‘전등’의 법통을 강조하는 와중에도 의발이나 선판(禪板) 같은 걸 전해주려는 시도에 대해 선상을 뒤엎고 뺨을 치려는 또 다른 이들이 나타날 수 있었던 이유일 것이다.

홍인과 혜능이 야기한 단절을 하나 더 추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단절’이란 말이 과도한 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교리’적인 측면에서의 중요한 변화를 강조하기 위해선 그것도 무의미하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달마대사가 중국에 오면서 들고 왔던 경전은 4권본 ‘능가경’ 하나였다고 한다. 이후 제자들 역시 ‘능가경’ 한권을 소의경전으로 삼았고, 이 때문에 이들은 모두 ‘능가사(楞伽師)’라고 불렸다. ‘능가사자기(楞伽師資記)’는 이들의 행적을 기록한 책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선종에서 한 권의 소의경전을 들라하면 ‘능가경’이 아니라 ‘금강경’을 든다. 소의경전이 달라진 것이다. 언제 달라졌을까? 알다시피, 행자 혜능의 게송을 본 홍인이 밤에 몰래 불러 하룻밤 새 선의 진수를 가르치기 위해 설한 경전이 ‘금강경’이었다. ‘금강경’의 ‘장엄정토분’(10장)에 나오는 “머무는 곳 없이 마음을 낸다(應無所住而生其心)”는 문장에서 혜능이 깨달음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아니, 그 이전에 혜능이 시골에서 나무꾼을 하던 시절, 나무 팔러 갔던 관가에서 ‘금강경’ 읽는 소리를 듣곤 마음이 맑아지며 매료되어 그 경전에 대해 묻다가 홍인대사에 대해 알게 되고 결국 황매산으로 찾아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그가 선비에게 들은 말도 “‘금강경’ 한 권만 지니고 읽으면 곧 자성을 보아 바로 부처를 이루게 된다”고 설한다는 얘기였다(‘육조단경’, 14쪽).

그렇다면 의당 물어야 한다. 소의경전이 ‘능가경’에서 ‘금강경’으로 달라졌다는 말은 무얼 뜻하는 것일까? 가르치려는 교의가 달라지지 않았다면 굳이 “한 권!”을 말하는 경전을 바꾸었을 거 같지 않다. 더구나 ‘능가경’은 ‘금강경’보다 더 후대의 경전으로, 교리에서 아뢰야식 같은 유식불교 개념을 포함하여 많은 내용을 담았고 깨달음을 이루기 위한 수행법 또한 구체적인 경전이다. 그런데 이를 왜 ‘공’ 개념조차 등장하지 않는 오래된 경전으로 바꾸었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금강경’의 요지가 ‘능가경’의 요지와 어떻게 다른가를 물어야 한다. 표준적인 해석에 따르면 ‘능가경’은 모든 중생들이 여래가 될 씨앗을 잠재적으로 갖고 있다고 하는 소위 ‘여래장(如來藏) 사상’의 형성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경전이다. 본래 청정한 자성(自性)을 갖는 여래장이 모든 중생의 마음속에 있는데, 이는 “상주하며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음, 18계, 12처와 같은 더러운 옷에 싸이고 탐진치의 부실한 망상의 티끌에 더렵혀져” 있을 뿐이다. 그러니 수행을 닦아 이 더러운 티끌을 제거하면 청정한 여래의 성품이 드러나 부처가 되리라는 게 이 경전의 중심 사상이다.

반면 ‘금강경’은 대표적인 반야부 경전으로 ‘공’ 개념은 아직 등장하지 않지만 실질적으로는 그 내용을 중심으로 삼은 경전이다. 모든 법에 자성이 없고, 참된 불법이란 상(相)이 없음을 보는 것이라고 설하는 경전이다. “머무는 곳 없이 마음을 낸다”는 말이나 “모든 형상 있는 것에서 형상 없음을 보면 여래를 보리라”라는 유명한 문장이 모두 이를 응집해 보여준다.

그렇다면 소의경전이 ‘능가경’에서 ‘금강경’으로 바뀐 것은 ‘여래장 사상’에서 ‘공 사상’으로의 변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상의 발전 순서를 본다면 후대에 발전된 여래장 사상에서 그보다 앞선 초기의 공사상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왜 그랬을까?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solaris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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