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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글올린 게시글: 2017-03-26, (일) 1:47 am 

가입일: 2015-01-01, (목) 10:13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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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다고 믿는 모든 관념 깨부수려는 의도

▲ ‘나를 묻다’ 고윤숙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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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어록, 다는 아니라 해도 이해할 수 없는 문답으로 가득 찬 책들이다. 불법을 전하기 위해, 도를 깨쳐주기 위해 선사들은 그렇게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사용했다. 왜 그랬을까? 그뿐 아니다. 그들이 주고받는 언행은 대단히 과격하고 파격적이며 극단적이다. 소리를 지르고 몽둥이질을 하는 건 아주 흔한 일이다. 그래서 자비를 설파하는 불교의 가르침과는 아주 달라서, 종종 사람을 당혹하게 하기도 한다. 가령 이런 식이다.

등은봉(鄧隱峯)이 하루는 흙 나르는 수레를 밀고 가는데 스승인 마조도일(馬祖道一)이 다리를 쭉 펴고 길바닥에 앉아 있었다.

“스님, 다리 좀 오므리세요.”
“이미 폈으니 오므릴 수 없네.”
“이미 가고 있으니 물러나지 못합니다.”

수레 가는 길에 다리를 뻗고 버티는 스승이나, 그런 스승 앞에 그냥 수레를 밀고 가는 제자나 모두 난감한 분들이다. 결국 등은봉은 수레바퀴를 그대로 밀고 갔고, 마조는 다리를 다치고 말았다. 나중에 마조는 도끼 한 자루를 들고 법당으로 들어와 말했다.

“조금 전에 바퀴를 굴려 내 다리를 다치게 한 놈 나오너라!”

아니, 도끼를 들고 어쩌시려구! 그런데 등은봉은 서슴없이 나와 마조 앞에 목을 쑥 뺀다. 그걸 본 마조는 도끼를 그냥 내려놓았다(‘마조록/백장록’, 장경각, 39~40). 설마 정말 도끼질을 하려고야 했을 리 없겠지만, 그래도 안도감이 든다. 휴, 다행이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선사들이 고함을 지르고 뺨을 때리고 주장자나 몽둥이로 학인을 때리는 일은 선가의 다반사다. 그거야 학인들을 가르치는 방편이라고들 하지만, 범인의 눈으로 보면 일부러 다리를 뻗어 수레를 막아 시험하려는 스승이나, 가던 길 그대로 스승의 다리 위로를 수레를 밀고 가는 제자나 이해하기 어렵다. 그 뒤에 도끼를 들고 올라와 ‘나오너라!’ 소리를 지르는 스승과 서슴없이 나와 목을 쑥 내미는 제자의 모습에서 ‘움직이거나 멈추어 있거나 앉아 있거나 누워 있거나 항상 곧은 마음을 낼 뿐’(‘육조단경’, 정화 역, 법공양, 48) 집착도 거리낌도 없는 행동의 의연하고 장쾌함을 느꼈다면, 아마도 쑥 내민 목과 도끼 사이로 조금은 시선을 밀어 넣은 것이라 하겠다.

마조와 등은봉은 이렇듯 주거니 받거니 하였지만, 어설픈 식견을 내거나 했다가 호되게 당하는 경우도 많다. 임제의 제자 정상좌는 자기 스승 못지않은 과격함으로 유명하다. 한 번은 진주(鎭州)에 있을 때 재(齋)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다리 위에서 쉬다가 강사를 하는 좌주(座主) 세 사람을 만났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물었단다.

“선하(禪河) 깊은 곳은 모름지기 밑바닥까지 궁구해야 한다는데 무슨 뜻입니까?”

그러나 정상좌가 이 사람 멱살을 잡고서 다리 아래로 던져버리려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두 좌주가 허둥지둥 말렸다.

“제발 그만두십시오. 이 사람이 상좌의 비위를 거슬렀으니,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두 좌주 스님만 아니었으면 강바닥까지 처박아 넣었을 것을....”

선사, 말과 행동 극단적 표출
멱살 잡고 죽이겠다고 으름장
온갖 상식들 뿌리 채 뒤흔들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할 것 요구

설마 정말로 강 속에 처박으려 하기야 했으랴만, 정말 사람 잡을 기세로 멱살을 잡고 흔들어 어설픈 질문을 한 좌주의 혼을 쑥 빼놓아버렸던 것이다. 비슷하게, 길을 가다 암두, 설봉, 흠산과 만났을 때, 정상좌는 자신에게 질문한 흠산의 멱살을 잡고 혼을 빼놓은 적이 있다. 옆에서 대신 사과하며 말리는 암두와 설봉 말에 “두 노장만 아니었으면 오줌도 가릴 줄 모르는 이놈을 쳐죽여버렸을 것이다”라며 멱살을 풀어준다.

흠산도 그렇고 앞의 저 좌주도 불도를 닦는 스님으로선 당연하다 싶은 질문을 했을 뿐인데, 불도를 깨친 정상좌는 왜 이리 과격하게 대꾸한 것일까? 여기서 정상좌를 두고 말도 안되는 트집을 잡아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눈멀었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뭐가 정상좌의 ‘비위를 거슬렀’을까? 이렇게 물으면, 여러분도 필경 멱살잡이를 당하든지 뺨을 세차게 한 대 맞든지 했을 게 틀림없다. 저 좌주가 던진 질문은 내가 보아도 무언가를 진심으로 의정(疑情)을 갖고 물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갖고 있는 식견을 슬며시 드러내기 위해 물은 것이다. “불법의 대의가 무엇”이냐고 진지하게 물었다가 스승 임제에게 세차게 뺨을 맞고 정신이 나가 멍 하니 있다가, 옆에 있던 스님이 “정상좌야, 왜 절을 올리지 않느냐?”하는 말을 듣고 절을 하다 크게 깨친 정상좌 눈에 이게 안 보일 리 없다. 나 같은 범인(凡人)이라면 저 잰체하는 태도가 비위에 거슬렸을 수도 있지만, 도를 깨친 정상좌가 그에 거슬릴 비위 같은 걸 갖고 있을 리 없다. 즉 감정이 일어나 한 행동이 전혀 아니란 말이다.

정상좌가 한 행동은 임제가 당시 자신에게 묻던 정상좌의 뺨을 쳤을 때와 다르지 않다. 사실 임제 자신도 스승인 황벽에게 불법을 묻다가 뺨을 맞길 세 번이나 거듭한 바 있다. 그래서 원오는 “이러한 솜씨를 보면 임제 스님의 솜씨가 있었다”고 칭찬한다(‘벽암록’, 중, 장경각, 32). 왜들 이러는 것일까? 유감이 있는 것도 아니고 뭘 그리 특별히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이리 과격하게 멱살을 잡고 죽여버리니 살려주니 하는 살벌한 언행을 하는 것일까? 흠산이나 질문한 좌주나 물었을 때는 이미 그 안에 나름의 답이나 견식을 갖고 있었던 셈인데, 질문으로 그게 드러나자마자 달려들어 박살을 내준 것이다.

격한 행동이나 당혹스런 말을 통해 선사들이 겨냥하는 것은 앞에 있는 학인의 생각이나 견해를 깨부숴주는 것이다. 이는 격하다기보다는 재치있고 유머러스한 선사의 대답 또한 다르지 않다. 가령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을 때에도 허물이 있습니까?”라는 물음에 운문문언(雲門文偃)이 “수미산”이라고 대답한 것도 그렇고, “한 물건도 지고 있지 않을 땐 어떠합니까?”라는 물음에 조주종심(趙州從心)이 “내려 놓아라”라고 답한 것도 그렇다. 한 생각 일으키는 게 허물이라는 생각에서 앞의 학인은 저리 물었을 터인데, 운문은 그에 대해 고지식하게 답을 해주는 게 아니라, 그렇게 물은 스님이 이미 한 생각 일으켰음을 포착하곤 그의 기대에 완전히 반대되는 대답을 해준 것이다. 허물이 수미산이라고. 나중에 ‘종용록’에서 만송(萬松) 또한 이리 말한다. “사실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는 사람이라면 어찌 허물이 있는가 없는가를 묻겠는가?”

이런 언행을 두고 선사들은 이렇게 말한다. “나뭇가지를 던져주면 개는 그 나뭇가지를 향해 뛰어가지만, 사자는 그걸 던진 사람을 향해 달려든다.” 선사들은 학인이 던진 질문을 향해 달려가는 게 아니라, 질문을 던진 사람에게 달려들어 그를 뒤엎고 그의 견식을 깨부수어준다는 말이다. 조주 또한 그렇다. 묻는 이에 대해서 고지식하게 답하는 게 아니라, 그가 갖고 있는 생각을 알아보고 그것을 뒤집어버리는 답을 해준 것이다. 그런데도 이 눈치 없고 둔한 스님은 다시 묻는다. “한 물건도 지고 있지 않은데 어찌 내려놓으라 하십니까?” “그럼 그냥 지고 다니거라!” 이 얼마나 재치 있고 멋진 대답인가!

그러나 다시 의문이 들 것이다. 왜 선사들은 묻는 말엔 대답하지 않고 묻는 이의 견식을 깨주려는 것일까? 저 강한 응답을 통해 깨주려는 것은 견식 정도가 아니라 학인이 어느새 전제하고 있는 모든 관념, 옳다고 믿는 모든 생각이다. 이점에서 선불교는 아주 남다르다. 사실 어떤 종교도, 나아가 어떤 ‘이념’도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이들을 보면 반가워하고 다른 생각을 하는 이들을 보면 자기 생각에 맞춰 설득하려 한다. 비슷한 생각을 공유한 이들을 ‘우리’ 안에 있는 내부자로 간주하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우리’ 바깥의 외부자로 간주한다. 이는 심지어 ‘상식’ 또한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비판이나 토론은 대개 상대방이 갖고 있는 관념이나 전제를 겨냥하여 묻지 ‘나’나 ‘우리’의 전제를 향해 묻지 않는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말을 하거나 묻는 이를 보면, ‘그렇지’ 하며 그 다음 얘기를 하려 한다.

반면 선사들은 자신 또한 옳다고 믿는 얘기를 입 밖으로 내며 묻는 학인에게 몽둥이질을 하고 멱살을 잡으며 그가 전제하고 있는 관념을, 불도의 ‘이념’이나 ‘상식’을 되묻고 깨부순다. 학인 뿐 아니라 같이 공부하는 동료, 심지어 스승에게까지도 그렇게 시험의 칼을 슬쩍 들이민다. 그건 바로 ‘자신’의 전제를 반복하여 묻는 것이다. 선방이든 절에서든 상식화된 교의나 잘 알려진 말을 입에 올리는 순간, 박살난다. 부처는 무엇이고, 달마대사가 서쪽에서 온 것은 무엇을 전하려 했음이고 등등... 그렇게 모든 전제나 관념을 깨부숴놓곤, 모든 것을 처음부터 스스로 다시 생각해보라며 등을 떠민다. 그게 성공하면, 필경 ‘홀연히 깨치는’ 순간이 올 것이다. 모든 것을 근본에서부터 다시 생각한 것이니, 이전과 같은 말이라도 이전과 같을 리 없고, 모든 것을 아무것도 잡을 것 없는 상태에서 스스로 생각한 것이니 어떤 것도 절실하게 몸에 달라붙은 것일 게 틀림없다.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solaris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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