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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글올린 게시글: 2017-04-10, (월) 3:41 am 

가입일: 2015-01-01, (목) 10:13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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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시대적 요청과 불교의 역할-1
송희식(새문명아카데미 원장, 변호사)
<2004년 3월 LA관음사 30년사 총연감>


1. 지금의 변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 문명의 전환

우리는 지금 작년 이맘때에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사태에 처해있다. 바로 IMF 시대이다. 이처럼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러한 변화는 이미 10여년 전에 시작되었다. 1989년에 베르린 장벽이 무너지고 뒤이어, 공산권이 순식간에 붕괴한 것 또한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미국이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10년 후 또는 3년 후에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 대공황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이처럼 아무도 상상하지 못하던 변화가 일어나는 이유는, 바로 오늘 우리가 문명의 거대한 전환기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문명의 전환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그렇지만 문명이 전환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문명의 전환은 상식적인 현실이 바뀌는 것이기 때문에 상상이 잘 안 되는 그러한 변화이다.(우리의 상상은 대개 상식의 한계 안에 있다) 문명이 전환한다는 것은 이처럼 상식적이고 당연한 것들이 모조리 달라지는 것이다. 그런 문명의 전환을 우리 선조들은 한 번 겪었다. 구한말의 조선왕조시대로부터 지금 현재의 사회 즉 서구 근대문명사회로의 전환이 그것이다.
그것은 무엇이었던가?


2. 근대 문명에로의 전환

1) 물질적 차원의 변화: 농업적 삶에서 공업적 삶으로

조선시대는 삶의 물질적 기초가 농업이었다. 인구의 80%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였고 양반계급이라고 하더라도 실은 농업에 종사하는 지주였다. 상업이나 공업은 극히 적은비율의 사람들이 종사하는 것이었고 산업적으로도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때에는 농업이 우리의 삶의 성격을 규정했다.

이러한 사회에서 근대 서구문명으로 전환한다는 것은 우선 삶의 물질적 차원이 완전히 바뀌어 진다는 것이다. 시골에서 농사짓는 것이 아니라 도시에서 장사를 하거나 공장에서 노동을 하는 것으로 바뀌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과정을 집약적으로 1960년대 이후에 겪었다. 사람들은 도시로 몰려들었고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10%선으로 떨어졌다. 이제까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수많은 공업적 제품, 물질적 제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에 따라서 부자라는 개념도 바뀌게 되었다. 농업사회에서의 부자는 천석꾼 만석꾼과 같이 쌀을 더 많이 소유하는 사람들이었지만, 상업사회, 공업사회에서의 부자는 더 많은 화폐를 가진 사람, 더 많은 공업제품, 예를 들어 아파트나 냉장고, 승용차, 피아노 같은 것을 소유하는 사람이 되었다.

2) 정신적 차원의 변화: 도덕적, 수행적 정신에서 논리적 이성적 정신으로

문명의 전환은 인간의 정신적 차원도 변화하는 것이다. 근대이전의 사회에서는 거의 모든 사회가 종교적 도덕적 정신을 바탕에 깔고 있었다. 조선왕조의 양반계급은 비록 불교도와 같은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아도 그 사고방식은 도덕적인 내용이거나 수행적인 것이었다. 삶에서 수행이나 종교적 행위가 중요한 것이었다. 도덕적, 수행적 정신이 비합리적이거나 비이성적인 것은 아니다. 다만 합리적 이성만이 아니라 감성을 포괄하는 총체적 인간정신의 중심에 도덕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 근대이전의 정신이었다. 서구 중세에는 그 중심에 신이 있었다.

이에 대하여 근대정신은 합리적 정신이고 이성적 정신이다. 가령 중세에 처음 화폐가 상용될 때 기사계급이나 영주계급은 투자라는 개념이 없었다. 100만을 투자하여 사업을 해서 20만원의 이익을 남긴다는 식의 개념이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이들이 화폐중심의 경제체제하에서 급격히 몰락하게 된 한 요소였다. 합리적 정신이라는 것은 기업을 하는 사람, 거래를 하는 사람들의 화폐에 의한 계산적 정신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여기에는 도덕이나 수행은 전혀 중요한 측면이 아니다.

근대문명으로의 전환 속에서 인간의 신념이나 가치관도 이러한 합리적 정신에 의하여 결정되었고 그것이 이데올로기였다. 현실에 대한 해석, 미래에 대한 전망, 전체 역사에 대한 해석, 경제에 관한 이론 등이 모여서 형성한 <합리적 이론의 총체>로서 이데올로기는 이성적 정신이 제공하는 세계관이고 가치관이었다. 이것이 근대의 정신이었고, 이제까지의 우리의 정신이었다.


3. 21세기의 새로운 문명?

이러한 근대문명 -공업적 사회, 이성적 정신-이 지금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것이 문명의 전환이다.

산업사회(공업사회)의 종언은 오늘날 많이 언급되는 주제이다. 지식 정보사회의 등장과 함께 산업사회가 끝나고 있다는 것이다. 산업사회의 종언이 우리의 삶의 물질적 차원에 근본적인 변화를 야기하는 것이라며, 그것은 서구 근대문명과는 다른 새로운 문명이 도래하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1) 지식정보사회와 물질적 차원의 변화

아마존(https://www.amazon.com)이라는 홈페이지가 있다. 사이버스페이스(또한 인터넷 공간)에서의 서점이다. 이 홈페이지는 250만 권의 책에 대한 완벽한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되어 있다. 방문자가 어떤 주제나 키워드를 넣으면 그에 관련된 책의 목록이 나온다. 가령 문명이라는 단어를 넣으면 그에 관련된 책으로 처음 100권이 나오며 동시에 너무 많은 책이 있으니 좀더 상세하게 검색해 달라고 하면서 검색방법에 관한 안내가 나온다. 이렇게 하여 책을 선택하고 신용카드를 통해 주문을 하면, 한 달 또는 2~3개월 안에 그 책이 배달되어 온다. 이것이 세계 최대의 서점이라고 자랑하는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서점, 아마존이다.

이 서점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서점과는 전혀 다르다. 우선 수많은 책을 꽂아 놓는 매장이 없다. 서점이라는 공간이 아예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매장을 지키는 종업원도 없다. 그 서점에 책을 사러 온 손님도 없고 책을 주고 돈을 받는 카운터도 없다. 우리의 개념에서 이 사이버서점은 서점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지만 이것이 새로운 서점인 것이다. 또한 앞으로 성미 급한 사람을 위해서 홈페이지에서 바로 디지털로 책 내용 전부를 전송하는 것이 상업적인 의미를 가질지도 모른다. 이것은 기술적으로는 지금도 가능한데 그렇게 된다면, 이 새로운 서점은 호스트 컴퓨터, 데이터베이스 프로그램, 데이터베이스에 책을 입력하는 종업원, 주문을 받아 처리하는 종업원으로 구성되어 있을 것이다.

이렇게 바꾸어 생각해 보면, 오늘날 서점이 얼마나 원시적인가 하는 느낌이 든다. 마치 우리가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당연했던 것을 보면 원시적으로 느껴지듯이, 오늘날의 서점은 50년 후 혹은 그 전환이 일어났을 때의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원시적으로 보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지식정보사회는 다음 몇 가지 점에서 근대 서구문명과는 전혀 다른 전망을 열어놓고 있다.

첫째, 농업문명에서 산업문명으로의 변화는 농업 인구가 전체의 80%에서 10%로 축소되는 농업인구의 변화였듯이 산업문명에서 정보사회로의 변화가 공업인구의 대폭적인 감소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선진국에서는 21세기 초 약 2010년경이면 공업인구가 10%정도로 축소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것이 앞의 전근대문명에서 근대문명으로의 변화가 같은 문명의 변화의 중요한 한 요소이다.

둘째,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물질이나 재화의 성격이 바뀐다. 농업문명에서 공업문명으로의 변화가 우리의 삶이 공산품으로 둘러싸이는 것을 의미하였던 것처럼, 공업문명에서 지식정보사회로의 변화는 우리의 삶이 지식상품, 정보상품, 문화상품 등과 같은 비물질적인 가치들로 둘러싸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조선시대의 삶과 근대사회의 삶이 달라졌던 것과 같은 정도로 새로운 사회에서의 삶이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물질적 삶의 모습이 변화한다는 것이다.

2) 정신의 변화: 영성, 깨달음, 종교적 정신의 부활

지금까지는 합리적인 정신이 우리들을 지배해왔다. 이데올로기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이론이 신념과 믿음의 내용이 되던 시대였다. 가령 마르크스주의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이론이다. 그리고 공산주의자들은 마르크스주의로서 종교를 대체할 수 있었다. 이것은 이성적 정신이 종교적 정신을 대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이성적 이론이 믿음의 차원에서는 다만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하나의 시대가 끝났다.

오늘날에 있어서는 모든 합리적 이론들은 다만, 많은 지식 중에 하나의 지식, 많은 정보 중에 하나의 정보에 불과하게 되었다. 냉전의 종식과 지식 정보사회의 도래는 합리적 이론들을 신념의 차원에서 정보의 차원으로 격하시켰다. 이제 아무리 고매한 학자의 이론이라고 하더라도 그 이론을 신념으로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다만 어느 학자가 제시한 이론이라는 정보일 뿐이다. 다른 학자는 그와는 다른 이론을 제시했다는 것도 역시 하나의 정보이다. 이제는 어느 이론을 신념으로 믿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여러 가지 이론들에 대한 정보를 많이 가지는 게 중요한 그러한 시대이다. 지식정보사회는 간단히 말하여 일체의 합리적 이론들을 정보로 취급되게 만들었다.

그와 함께 그러한 모든 이론들이 제공할 수 없는 문제는 우리는 여전히 가지고 있다. 그것이 바로 삶과 죽음의 문제와 같은 것이다. 우리는 합리적 정신을 뛰어넘어 오히려 합리적 정신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러한 진리를 구한다. 그 진리는 이성적 추론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행과 깨달음 또는 믿음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여기에 오늘날 종교, 영성, 수행이 중요해지는 이유가 있다.

부처는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엄청난 시도를 했다. 그러나 그는 오랜 수행 끝에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왕자의 지위를 버리고, 모든 것을 버리고 얻으려고 했던 죽음에 대한 해답-영생(永生)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그 절망감은 어떠했을까. 그런데 한잔의 우유죽을 받아 마시고 그 절망감을 넘어서 깨달았던 것, 즉 필연적으로 죽음에 이르는 자아는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 자아를 넘어선 곳에 처음부터 태어남도 죽음도 없는 진정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것은 이성의 세계가 아니다.

종교적 진리는, 신념과 믿음이 소멸한 마음의 공간에 유일한 대안인 것이다. 이것은 어떤 점에서는 인류가 정상적인 정신으로 되돌아온 것이기도 하다. 오직 이성만을 떠받들던 시대에서 정신적 지평이 좀더 넓어진 것이다. 그리하여 21세기에는 이성을 넘어서는 정신, 깨달음의 정신, 종교적 정신이 다시금 인간의 정신세계가 될 것이다.


4. 역사의 기로

21세기에는 위와 같이 물질적 차원에서 그리고 정신적 차원에서 문명의 변화가 일어나리라는 것은 명백하다. 21세기에는 물질적 상품에 대한 욕망이 인간과 사회를 움직이는 주요한 동력도 아닐 것이며 주요한 가치도 아닐 것이다. 또한 정신적 차원에서도 합리적 이성적 정신이 모든 사람들의 신념, 믿음, 가치관을 지배하는 시기는 끝났다. 이러한 두 가지 점에서 21세기가 20세기의 물질문명과는 다른 성격의 문명이 될 것은 명백하다.

그렇지만 다음 두 가지 점은 명백하지 않다. 이 부분에는 어떠한 역사적 필연도 없으며, 오늘과 내일을 살아가는 구체적인 인간(그리고 민족, 종교, 인류)의 선택과 창조에 의하여 좌우될 것이다. 그 하나가 사회체제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동서양 문명의 관계의 문제이다.

사회체제의 문제는 자본주의가 유지될 것인가 하는 문제이고, 동서양 문명의 문제는 21세기에는 미국, 유럽, 동아시아, 이슬람 중 어느 것이 문명의 중심이 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1) 자본주의는 유지될 것인가?

세계체제로서 자본주의가 유지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지금으로서는 막연히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당연히 유지되고 심지어는 전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참으로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가 하루아침에 붕괴하는 것을 보았다. 자본주의도 마찬가지이다.

첫째, 자본주의는 세계금융체제 문제이다. 현재와 같이 세계금융자본이 급격하게 이동하고 그 결과에 따라서 여러 개의 국가경제가 하루아침에 붕괴하는 상태가 지속될 수는 없다.

둘째, 이미 터키, 멕시코, 아시아를 거쳐 진행되고 있는 경제 불황이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 홍콩경제의 붕괴, 일본경제의 붕괴와 미국에 대한 채권의 회수, 미국경제의 붕괴 등의 과정을 거쳐 세계적 대공황으로 가고 있다는 유력한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셋째, 정보사회와 자본주의 경제가 서로 어울리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이것은 특히 노동의 종말과 관련하여 제기되는 문제이다. 자본주의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수 없다면 그러한 체제는 유지되기 어렵다. 다수의 실직자를 항상 안고 있는 사회와 체제가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는가?

현재로서는 미국경제의 호황에 힘입은 미국문명의 압도적 우위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다. 그렇지만 불과 5년 전만 하더라도 수많은 미국인들이 미국의 쇠퇴를 예측하고 있었다. 이것은 앞으로 5년 후에는 상황의 변화에 따라 또다시 어떤 예측이 난무할지 모른다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만일 중국경제가 이제까지의 속도로 발전을 계속한다면 늦어도 2020년이면 미국경제는 중국경제의 상대가 안 될 것이다. 미국은 인구, 영토, 문화적 유산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여기에 문명의 충돌의 문제가 있다. 미국의 압도적 우위가 흔들린다면 세계질서에서 독립성을 유지하고 패권을 둘러싼 경쟁이 격화될 때, 그것은 자연히 문명의 충돌이라는 형상을 야기할 것이다. 헌팅턴은 이미 이러한 문명의 충돌이 시작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헌팅턴의 논리를 차치하고라도, 미래세계에서의 충돌은 동질적인 국가단위의 동맹과 대립의 차원이 아니라 언어, 종교, 민족, 문화 등에 의한 문명의 충돌이며, 그것이 세계역사의 중심이 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종교의 중요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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