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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글올린 게시글: 2017-04-04, (화) 11:11 pm 

가입일: 2015-01-01, (목) 10:13 am
전체글: 149
⊙ 질문 ⇒ 큰스님 법문보기 (제목: 참선이란 무엇입니까?)에 보니 아래 달라이라마가 소승보살상~이라는 대목이 나와서...............
티벳, 중국, 일본, 한국은 대승불교로 아는데 왜 소승보살이라고 하신지 알고 싶습니다.

▶대승 가운데도 소승이 있고 대승 가운데도 최상승이 있나니, 최상승은 직지인심 견성성불을 추구하는 법이요, 대승 가운데 소승은 보살이타행을 추구하는 것이니 이러한 차등이 있습니다. 동양 3국은 대승이라 하지만 소승에 국한해서 수행교리를 연구하는 이들이 부지기 수입니다.

⊙ 질문 ⇒ 1. 티벳 불교역사에서 '삼예의 종론'이라 말하는 인도의 카말라실라스님과 중국 선종의 마하연스님의 논쟁에서 선종의 마하연스님이 논파를 당함으로서 티벳에서 선종이 배척되고 인도의 중관사상을 받아들이게 되었다는데 당시 마하연스님이 선종에 대한 안목이 투철하지 못하여 논쟁에서 지게된 것이라면 마하연스님이 어떻게 논쟁을 했어야 선종이 논파를 당하지 않았을지 궁금합니다.
<아래는 관련 내용입니다>
..<중략> 중국의 선승 마하연을 중심으로 선불교가 교세를 넓히게 되자 인도불교를 따르는 쪽과 선불교를 추종하는 교도들 간의 다툼이 벌어지게 되었다.
티송 데젠 왕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양쪽의 대표자를 초청하여 법의 논쟁을 공식화하기에 이르렀다. 인도쪽에서는 샨타라크시타의 제자인 ‘카말라실라’가, 중국쪽에서는 마하연이 대표로 나왔다.
‘인간은 어떤 일에든 사념(思念)해서는 안되며 무사(無思)·무념(無念)하면 그대로 부처의 경지에 들어 윤회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다. 무사·무분별·무행이야말로 무상(無相)이기 때문에 돈오하여 십지(十地)의 보살위에 도달하게 된다. 따라서 육바라밀은 수행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마하연의 ‘불사·불관’의 주장에 스승 샨타라크시타의 중관사상을 전해 받은 카말라실라는 다음과 같이 대응하였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묘관찰지를 버리는 것이다. 올바른 근본지의 근원은 묘관찰지에 있다. 이것 없이 윤회를 뛰어넘는 반야의 지혜를 얻을 수 없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일체법이 무자성(無自性)하다는 것을 깨칠 수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육바라밀의 수행을 거쳐야만 지혜의 완성과 덕행을 갖출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단순히 생각에 빠지지 않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한다면, 정신을 잃었거나 마음이 산란할 때에도 분별이 없는 경지를 얻을 수 있지 않느냐고 일침을 가했다. 무념·무사에 의해 단번에 성불하기 때문에 일체의 선행이나 육바라밀 등의 수행이 필요 없다는 마하연의 주장에 대해 방편과 지(智)에 의해 올바른 지혜를 얻을 수 있으며 문·사·수(聞思修)의 삼혜(三慧)에 의하여 육바라밀 혹은 십바라밀을 행하고 십지를 닦아 성불한다고 하였다.
이에 마하연은 결국 패배를 시인하고 중국으로 떠나고 말았다. 이후 왕명에 의해 인도 용수의 중관사상이 널리 수용되었으며 실천에 있어서는 십바라밀과 십지를 수행토록 하였다. ..<중략>

2. 하택신회스님에 대한 질문입니다.
저의 짧은 견문으로 하택스님은 북종선계통의 점교를 맹렬히 비판하고 남종선을 일으켜 육조스님의 돈교법을 세상에 떨친 스님이라는 것과, 또 하나는 대표적인 知解宗師로 비판되고 있어서 두가지가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냐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남종선이라면 돈오돈수이고 지해인이라면 돈오돈수와는 정반대인데 하택스님이 어째서 두가지를 다 대표하고 있는지요.

3. 선종어록에 대한 질문입니다.
조사스님들의 어록들을 보다 보면 앞부분에서는 그스님의 고준한 법문이 나오고 뒷부분에서는 스승으로부터 다시 법을 지도받는듯한 일화가 나오는 것은 어록 편집에 시간 순서가 섞여있어서 그러한 것인지요.
예로 [위앙록]에서 앞부분에서는 위산스님과 앙산스님이 서로 相通하는 법담을 나누는 대목이 계속되다가 37번째 내용에서 위산스님이 앙산스님에게 (..그대의 信位는 환히 나타났다고 인정하겠지만, 人位는 숨어 있느니라.) 라고 부족한 점을 지적한 대목이 나옵니다.

▶☞중국 마하연스님과 인도의 카말라실라
두 분의 소견은 한분은 무사(無事).무념(無念)으로 선의 종지를 삼고 또 한분은 묘관찰지 6바라밀로써 수행의 과정을 삼음이니 두 분의 견처가 온당치 않다고 봅니다.
첫째 대원경지(大圓鏡智)를 증득한 후에 무념.무사를 수행할 수 있고 묘관찰지도 또한 수용할 수 있나니 두 분의 문답이 모순이 있습니다.

☞역사로 보건데 육조스님의 사상을 많이 유포를 시켰으나 육조의 적자(嫡子)는 아닙니다.

☞위산 앙산은 중국 선종의 축을 이룸이라 앙산스님은 동양의 소석가라고 칭할만큼 훌륭한 종사의 안목을 갖추었습니다. 이러한 한마디를 가지고 고인을 평할 수는 없습니다.

⊙ 질문 ⇒ 차별지를 알아야 한다 하셨는데,
차별지란 무엇인가요? 고인의 어느 구절에 차별지가 운운 되어 있는지요?...

▶백천가지 깊고 깊은 법문이 다 차별의 법문이니 일일이 뚫어 지나가야사 견성요사인이 됩니다.

⊙ 질문 ⇒ 화두드는 법에 대해 의문이 있는데요.
예를 들어 화두중에 '부처가 무엇입니까? 삼서근이니라' 그랬는데,
꼭 위의 방법대로 참구해야 합니까?
아니면 그냥 '삼서근의 뜻이 무엇일까?' 하고 참구해도 됩니까?

▶어째서 삼서근이라 하였는고? 이렇게 화두를 간절히 참구하시기 바랍니다

⊙ 질문 ⇒ "뜰 앞의 잣나무", 라는 화두 방망이를 휘두르며 전진하고 있습니다.
참구 시에,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의 의미를 어떻게 새겨야 합니까?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을 물었는데, 왜 뜰 앞의 잣나무라고 했을까?", 라고만 밀고 나가도 되겠습니까? 아니면, "불법의 극한 핵심을 물었는데, 왜 뜰 앞의 잣나무라고 했을까?", 라고 뜻을 새겨 참구해야 합니까?

▶어째서 뜰 앞의 잣나무라고 했는고 이렇게 화두를 챙기시기 바랍니다.

⊙ 질문 ⇒ 일상 생활중에 화두를 들고 있는 재가불자입니다. 활구참선을 한지는 약 3달 정도가 되었읍니다. 초기에는 이마중앙이 강하게 뭉치는 느낌과 후에 머리에 열을 동반한 두통이 있었고 3주쯤 전에 머리에서 싸르르한 느낌과 함께 두통은 사라졌읍니다. 요즈음에는 열과 두통은 없는데 이마위 머리털난 가장자리로부터 정수리 근방까지 머리를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이 계속되고 있읍니다. 화두를 들어 집중해 나가면 두피가 약간 아프며 손으로 만져주면 해소되었다가 금방 또 그런 현상이 나타나서 지속적으로 화두들기가 곤란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불경을 독송하거나 들으면 완화가 된다고 하던데요.
조실스님의 가르침을 알고 싶읍니다.

▶화두를 챙기는데 있어서 힘이 들어가니 그러한 현상이 있음이로다. 화두는 생각으로 간절히 챙기는 것이지 힘이 들어가면 안되나니, 마음에 우러나는 화두를 간절히 챙기면 상기는 자연히 없어질 것입니다.

⊙ 질문 ⇒ 깨달으면 어디나 극락이라는 법문은 이미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다시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러한 질문은 깨달으신 분이 아니면 누구에게 질문을 할 수도 없는 일일 것입니다. 부디 자비를 내리셔서 가르쳐 주십시요.
모든 방편을 버리고, 진실만을 볼 때, 실제로 서방 아미타불 극락세계가 있는 것입니까?
아미타불 극락세계에 대한 가르침이 원효스님, 관정스님, 일타스님 외증조모 일화 등에서 주장하듯이 실지로 있는지가 너무도 궁금합니다.
대오하면 그 멀리에 있는 극락도 볼 수가 있는지요. 깨달으면 어디나 극락이라는 법문은 이미 들었습니다. 제가 궁금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아미타불 정근을 하고 있는데, 깨달은 마음 뿐 아니라, 서방에 아미타불극락세계가 실제로 있어서, 경전대로 진실로 있는지 궁금합니다. 종교의 본질과 관련하여,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혹시라도 만일 극락을 볼 수 없으시다면, 볼 수 없다라는 법문이라도 듣고 싶습니다. 만일 그것이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여 말할 수 없다면 저의 e-mail로 보내주실 의향은 없으신지요.
깨달음은 이루기 어렵고, 재가자들이 아미타불을 염불하는데, 재가자들의 대부분은 아미타불의 극락을 원하는 것 외에 어찌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만일 극락이 없다면 그것은 부처님과 연을 맺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 사기극이 아니겠습니까? 자비를 베푸셔서 진실을 알 수 있도록 해주시면 더 없이 감사하겠습니다.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마음 땅의 고향이 극락세계요, 심성(心性) 이것이 아미타불이라 이렇게 알면 착오가 없을 것입니다

⊙ 질문 ⇒ ①선관책진에서 광덕화상 께서는
"좌선을 하면 호흡이 자연히 원만해진다, 보통시는 일분간에 16회전후가 되지만 좌선중에는 1분간에 5회내지 1,2회로줄어든다" 하였는데 본인은 話頭에 集中하면 확확달아오르는 疑心때문에 1분에 호흡이 60여회 되지 싶습니다..
무엇이 문제겠습니까?
②얼마전 청량법문이 듣고 싶어서 모 선지식을 찾아뵈옵고 곽시쌍부의 이유를 물었더니 師曰:"세건 쫌 들라" 했습니다.. 무슨 뜻 입니까?
사실 얼마전부터 붓다의 두발땜에 공부에 적잖이 방해가 되기 때문 이였습니다.
불사에 바쁘시더라도 답변해주시기를 원합니다..
강녕하시옵소서...

▶①정진하는 분상에서는 호흡에 무관하며 화두가 지속이 되게끔 노력하는 것이 근본이 되나니, 호흡의 장단을 다 놓아 버리고 화두에 참의심이 발로되어 일념이 지속되게끔 정진에 몰두하시기 바랍니다.
②곽시쌍부는 분명한 뜻이 있음이니
부처님께서 때로는 꽃을 들어 보이셨고 때로는 자리를 나누어 앉으셨고, 때로는 두 발을 내미셨다. 이 세 가지 공안을 투과하여야 부처님의 살림살이를 아시어 미래제가 다하도록 수용할 것입니다.

⊙ 질문 ⇒ 귀의 삼보하옵고....큰 스님께 삼배드립니다. 법을 청합니다.
태고(?)선사께서 한 스님께 물었습니다.
"공겁(空劫)이 어디로 부터 나왔느냐?" "태고로부터 나왔습니다."
태고스님은 인가를 해주셨습니다.
스님께선 어떠하십니까?
見處와 心處에 차이가 무었입니까?
간절함으로 청하니 자비심으로 ....

▶"공겁이 태고로 쫓아 나왔다"
이를 쫓아 인가를 얻었다 함이나 이 물음 전에 무한한 문답이 전개됨으로 인해서 흡족해 하시어 인가를 함이니 이 견성이라는 것은 모든 부처님과 조사의 살림살이를 꿰뚫어야 동등한 살림살이를 갖춤이니 이것이 견성입니다.

⊙ 질문 ⇒ 한가지 화두에 꼭 한가지 답이 있는 것입니까?
화두를 드는 이유는 생각이전의 자리를 보고자 함인데 이미 선문답이라는 것은 인간의 말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니 이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진정으로 마음에 평안이 깃들면 그때는 인가가 무슨 상관이고, 방 할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백천공안은 진리의 문에 들어가기 위한 길입니다. 공안을 투과하지 못하면 불교의 살림살이를 식파하지 못함이니 진리의 세계와는 거리가 멀게 됩니다.
진리의 눈을 뜨고자 한다면 화두를 들어 화두공안을 들어 투과하여야 옳은 것입니다.
백천공안의 화두의 낙처가 각각 뜻이 있음이니 이러한 안목을 갖추어야 요사인의 선지식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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