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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글 제목: 1). 개괄적 제시
전체글올린 게시글: 2017-03-25, (토) 4:44 am 

가입일: 2015-01-01, (목) 10:13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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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추린 불교 이해와 수행포교 과제

불교의 세계관.

(1)우주와 지구 환경 간에 뗄 수 없이 깊은 연관성이 있으며, (2)우주와 극미(極微) 존재 및 불가시세계(不可視世界) 간에도 뗄 수 없는 연관성이 있고, (3)우주와 두두물물(頭頭物物) 간에도 뗄 수 없는 연관성이 있으며, (4)우주와 지구 환경과 일체의 두두물물 간에도 뗄 수 없이 깊은 연관성이 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존재가 세계와 지구 환경과 생태계와 뗄 수 없이 깊은 연관성을 가진 동시에 존재와 존재 상호 간에도 뗄 수 없이 깊은 연관성을 갖는다. 세계와 존재는 물론이며 존재와 존재끼리도 상호 의존적이며 상호 보완적인 긴밀한 관계 속에서 점진적으로 쉬지 않고 진화를 계속해 나간다.

따라서 성장과 진화를 멈춘 존재는 지구 환경이나 생태계에 있을 수 없으며 “모든 존재는 완료형이 아닌 진행형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어떠한 현존재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현재완료형적인 수사를 사용할 수 없다.

존재는 단 한번도 완전하게 결정되어진 바 없기 때문에 그것의 궁극적 근원도 말 할 수 없다. 다만 이것과 저것의 연관성 즉 “관계(서로관계)”에 관하여 언급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불교의 세계관은 “관계론적 세계관”이 된다.

불교의 세계관(世界觀)을 언급하고자 하면 응당 불교의 존재론(存在論)을 고찰해 보아야 한다. 존재에 관한 언급은 금강경(金剛經)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금강경은 존재의 실상(實相)을 부정한다. 모든 존재는 실체(實體)를 갖지 않는다고 언급한다.

금강경은 실재(實在)의 결정불가성(Indeterminableness)을 극명하게 설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관계론적(關係論的) 세계관(世界觀)”을 천명하고 있다.

“무릇 있는 바 형상이 모두 허망한 것이니, 만약 모든 형상이 형상 아님을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凡所有相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卽見如來).”

금강경에서는 일체(一切) 존재(存在)의 실상(實相)을 부정한다. 모든 존재의 실체(實體)는 존재하지 않고 허상(虛像)에 지나지 않는 한시적(限時的)인 유(有)를 나타내고 있다는 뜻이다.

금강경에 있는 이 경구의 의미는, 허망한 형상을 보지 말고 형상의 배면에 숨겨져 있는 형상의 원인자(原因者)인 여래(如來)를 보라는 뜻이다. 그러면 왜 형상은 보지 말고 형상의 원인자를 보라고 했을까.

형상은 이것과 저것이 인연의 성숙에 의해 잠시 가화합적(假和合的)인 상태로 뭉쳐져 있다가 인연이 다하면 곧 흩어져서 미시세계(微視世界)로 환원(還元)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형상은 허망한 존재라고 규명하는 것이다.

불교에 처음 입문한 사람이 초기불교 설일체유부 중관사상 유식사상 기신론사상 선사상이 마구 뒤섞인 법문(法門)을 듣게 되면 무엇이 무엇인지 구별을 지을 수 없어 고통을 겪게 된다.

초심자들의 이와 같은 고통을 덜어주려면 법사(法師)가 시대의 변천과 교리의 발전과정에 맞추어 순차적으로 체계를 밟아 불교를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그렇지 못하다. 그 까닭은 한국불교의 어떤 교단에도 그 교단 특유의 불교 교리서(택스트)가 불교전반을 일관성 있게 해놓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에 처음 입문한 사람에게는 초기불교를 먼저 가르쳐야 마땅하고, 초기불교를 완전하게 익힌 사람에 한해서 설일체유부를 가르쳐야 된다. 초기불교와 설일체유부를 모두 배운 사람에게 중관사상을 가르쳐야 하고 세 과정을 이수한 사람에게 유식사상과 기신론사상을 가르쳐야 한다.

그런 다음 돈오를 지향해 나가는 단계에 들어선 사람을 상대로 해서 선사상이 담겨져 있는 선서(禪書)를 읽도록 해야 한다.

불교에 입문한 년 차에 따라서 질서 있게 체계적으로 불교 교리를 공부하지 않으면 무엇이 무엇인지 올바로 알지 못하게 되며 몇 해를 절에 나다녀도 교리의 질서와 체계를 잡지 못하여 스스로 혼돈에서 벗어나오지 못한다. 교리의 혼돈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불교에 대한 설명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으며, 그렇게 되면 자연적으로 타인을 대하여 불교를 설명할 수 없는 입장에 처하게 된다.

다른 사람에게 불교의 교리를 설명할 수 없는 입장이 되면 자신감이 없어서 누가 자기에게 불교의 교리를 물을까 봐 자리를 피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불교의 포교”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누구나 기억해야 할 불교의 근간.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신 내용 가운데 우리들이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실재의 결정불가성’이다.

지구상의 일체 존재는 정신적인 사온(수상행식)과 물질적인 사대(지수화풍)가 가화합적(假和合的) 한시적(限時的) 존재이기 때문에 적용성과 시의성의 한계를 지니게 되며, 가화합체의 적용성이 한계를 넘게 되면 사온(수상행식)은 우주의 미분화된 심미적 연속성으로 돌아가고, 사대(지수화풍)는 자연에 내재하는 만물조화의 창조적 율동으로 돌아간다.

따라서 가시적인 형태를 갖춘 실물이라 하더라도 그것의 실체가 완전하게 결정지어진 바 없이 한시적 가화합체로 존재하기 때문에 실체의 영속성이 없다고 보는 것이 불교의 관점이다.

따라서 모든 존재의 근원에 변함없는 실체(나)는 없는 것으로 인식한다.

모든 존재의 내면에 실체가 없기 때문에 어떤 것을 가리켜 ‘실재’라고 결정짓지 못한다는 불교의 사상(실재의 결정불가성)이야말로 그 유례를 다른 어느 종교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불교사상의 중핵이라고 할 수 있는 ‘실재의 결정불가성’은 서구 중심의 교육을 받은 오늘의 한국인들에게 고정불변한 실체를 찾는데에 익숙한 개념에 젖어있는 이들에게 이를 변환해서 이해하도록 설명하기가 매우 힘들다. 설명을 한다고 해도 반대되는 관점이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오늘의 세계를 이끌어나가고 있는 지식사회학(知識社會學)에서는 모든 존재의 본질적 실체는 있다고 본다.

따라서 불교의 sunya(공)는 오늘의 우리 사회에서 공부한 지식사회학적인 체계에 비추어 보았을 때 쉽사리 긍정을 표할 수 없다.

‘지식사회학’은 모든 대학에서 가르치는 학문의 다양한 체계이므로 누구나 이것을 익히지 않고서는 지식인이 될 수 없다.
그런데 지식사회학은 ‘실재는 존재한다’는 관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불교의 개념을 수용하기 어려운 입장에 있다.

오늘의 지식사회학과 반대되는 관점인 불교의 ‘실재의 결정 불가성’이야말로 창조론을 거부하고 진화론을 주장할 수 있는 유일한 진리체계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불교의 ‘실재의 결정불가성’만이 21세기에 새롭게 등장한 ‘비선형카오스과학’과 가장 빨리 융합할 수 있다는 전망을 오늘의 석학들이 제시하고 있다.

지금까지 지식사회학으로는 쉽게 용납되지 않던 불교의 세계관이 21세기의 새로운 학문에 의해서는 쉽게 용납될 수 있는 개연성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미래학을 연구하는 학자나 비선형카오스과학을 연구하는 학자나 현대물리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모두 ‘실재의 결정불가성’에 공감을 표하고 있음은 물론 불교를 알기 위하여 동양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그러나 ‘실재의 결정불가성(공)’은 불교의 또 다른 특수한 사상체계인 ‘윤회사상’과 정면으로 대치된다.
윤회할 실체가 없는데 무엇이 주체자가 되어 윤회를 거듭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받게 되는 것이다.

불교는 이와 같은 외부로부터의 질문에 적절한 답변을 내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그렇지만 공(실재의 결정불가성)과 윤회(업설에 대한 이해)에 따른 논리의 해명(不二)을 명쾌하게 못해주고 있는 듯하다.
더구나 공과 윤회를 빼놓고 불교를 말 할 수는 없다.

실재의 결정 불가성과 윤회사상은 불교의 가장 핵심적인 사상이기 때문에 불교에 처음 입문하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공과 윤회를 바로 알아야 한다.

불교의 실천성과 추상성
불교에 처음으로 입문하신 분은 물론이요, 여러 해 동안 절에 나다니며 불교를 공부한 분들도 ‘불교는 대단히 어렵다’는 말을 한다.

그 까닭은 부처님은 무한히 밝은 지혜의 힘으로 이 세계를 남김없이 살펴 보신 후 세계의 구조와 구성 요소들 그리고 모든 구성인자들의 변화과정을 상세하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부처님은 당신께서 알고 있는 내용을 ‘있는 그대로’ 다 밝히셨지만, 중생들의 눈에는 실천이 가능한 것과 전혀 실천할 수 없는 추상적인 것으로 나뉘어 보이기 때문에 ‘추상성이 짙은 불교는 어렵다’는 표명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불교가 어려운 것이기 보다는 초심자에게 불교를 가르치는 지도 교사들이 불타의 추상성과 실천성을 엄밀하게 규명하지 않은 채 어림셈으로 뜻을 혼동하여 전달하기 때문이다.
추상적인 것과 실천적인 것의 개념 파악이 분명하게 진행된다면 불교가 어렵다는 말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불교의 우주관이나 세계관은 대단히 추상적이기 때문에 난해한 내용임에 틀림없지만, 불교의 가치관이나 인생관은 매우 실제적이며 현실적인 내용이기 때문에 누구나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실현이 가능한 것이다.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후 깨달음에 대한 설법가운데는 처음 접하는 우리들에겐 매우 추상적인 비유담이 많기 때문에 쉽게 이해될 수 없는 부분들이 많다.
그렇지만 5비구를 대상으로 해서 실천성이 높은 삼법인 12인연 사성제 팔정도 등은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고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내용이다. 누구나 들으면 실천할 수 있는 내용이 부처님께서 천명하신 ‘초기불교’의 내용이다.

‘초기불교’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세계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확연하게 깨달으신 부처님께서는 45년 동안 말씀으로 제자들을 가르치셨다. 부처님께서 45년 동안 가르치신 내용을 부처님의 제자들이 정연한 이론과 정연한 논리에 담아 놓은 ‘언어 체계’가 불교이다.

부처님은 자연의 실상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자연의 운행은 잠시도 멈추지 않으며, 멈춤 없는 운행(생사윤회)으로부터 해탈의 길을 찾는다. 자연의 운행은 곧 쉼 없는 변화이기 때문에 ‘자연의 운행’에 자기를 승화시키지 못하면 좌절의 상황에 빠지게 되어 있다. 누구나 맞게 되는 인간좌절의 상황이 바로 고통의 바다이다.”

부처님께서는 연기(緣起)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생명은 무명의 바다에 맴돌며 있는데 그 무명의 바다는 우주의 미분화된 심미적 연속성과 자연에 내재하는 만물조화의 창조적 율동으로 파도치고 있다.”

우주의 연속성과 만물의 창조적 율동에 힘입어 이것과 저것이 만나 한시적인 존재로 세상에 머물다가 시의성이 다하면 다시 우주의 연속성과 만물 창조의 율동으로 복귀해 가는 생명의 실상을 말씀하셨다.

가화합적 상태의 한시적 존재로 공간에 머무는 존재이기 때문에 ‘실재의 결정 불가성’을 주장하셨다.
이것이 곧 불교의 가장 난해한 ‘비결정성(Indeterminicy)’이다.

부처님께서는 생명이 처한 상황윤리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모든 생명은 변화의 물결에 휩쓸리게 되는 탓으로 좌절하기 쉬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러한 좌절의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기유지능력을 함양하지 않으면 안된다. 인간 좌절의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자기유지능력을 함양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고정(그릇된) 판단을 멈추고 만물과 동사섭할 수 있는 ‘열린 삶’을 모색해야 한다.”

부처님께서는 도(道)를 말씀하셨다.
우주의 미분화된 심미적 연속성과 자연에 내재한 만물조화의 창조적 율동을 직견할 수 있는 도(道)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도를 체득한 사람은 자기유지능력(自己維持能力)을 갖게 된다고 하셨다.
자기유지능력을 확보하려면 다음과 같은 방안에 의해서 노력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 (ㄱ)지구적 환경과 생태계의 구조는 물론 만물의 상호 보완성과 상호 의존성을 잘 살펴 보고 (ㄴ)항상 바른 관점에 서서 정당한 생각을 하며 (ㄷ)거짓되거나 남을 기만하는 말을 하지 말고 (ㄹ)남에게 도움을 베푸는 일을 실행하며 (ㅁ)생명적 존재는 물론 전 생태계에 이익을 주겠다는 사명의식을 갖고 (ㅂ)한번 결정한 목표를 지향하여 일관된 노력을 지속시켜 나가며 (ㅅ)마음을 안정시킨 가운데 선정을 잘 닦아 (ㅇ)만물의 실상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지혜를 증득해야 한다.”

이상의 내용이 초기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한 승가공동체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가르침(안심입명)의 내용이다.
이것을 ‘초기불교’라고 한다.

초기불교의 내용.
(삼법인. 12인연. 사성제. 8정도)

(가) 자연의 실상에 대하여(三法印).
자연의 운행은 잠시도 멈추지 않으며(諸行無常), 서로의 관계성을 벗어나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諸法無我). 변화해 가는 자연의 운행과 자연의 섭리에 맞추어 자기 앞의 삶을 전개 시켜 나갈 수 있는 자기유지능력을 함양하지 못한 사람은 인간 좌절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一切皆苦).

(나)연기(緣起)에 대하여.
무명(無明) 행(行) 식(識) 명색(名色) 육입(六入) 촉(觸) 수(受) 애(愛) 취(取) 유(有) 생(生) 노사(老死)는 무엇인가.

우주적 세계로 생태계(生態系)를 구성하는 생명의 세계는 10단계로 구성되어 있는데 맨 아래 단계부터 열거한다면 (1)지옥 (2)아귀 (3)축생 (4)수라 (5)인간 (6)천상(7)성문 (8)연각 (9)보살 (10)부처이다.

10단계로 구성되어 있는 생명의 수준은 곧 생명그룹이 구성하는 문화의 수준을 의미하는 것이다.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천상, 성문, 연각, 보살, 부처는 각각의 생명그룹이 이룩한 정신적 수준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윤회(생명)의 세계는 무명(無明)으로부터 시작되며, 생명의 태동과 의식과 명색과 감각기관과 부딛침과 받아들임과 갈애와 취함과 그러한 존재의 생성과 소멸이 쉼없이 진행된다고 하셨다.

이것은 곧 원형이정(元亨利貞)과 성주괴공(成住壞空)을 의미하고, 모든 존재가 끝없이 생을 연장해 나가는 세계의 실상을 천명한 내용이다.

이 세계의 모든 형상은 서로서로 끊을 수 없이 깊은 연관성을 갖고 한시적인 삶을 영위해 나간다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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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를 위한 포교對案을 찾는다.

한국불교는 오랫동안 포교 활성화라는 외침만 높았을 뿐 실질적인 성과는 많지 않았다. 그 원인은 한국불교의 수행 전통과 무관하지 않다. 전통이라 함은 ‘일초직입 여래지(一超直入 如來智)’라는 조사선(祖師禪)의 간화선(看話禪) 중심의 전통을 말한다. 이러한 전통에 입각한 사고 체계에서는 일체의 사변적 사유(思辨的 思惟)를 배제하며 논리적 추리(推理)를 거부한다.

반면에 포교는 합리적이며 보편타당성을 근거로 하는 대사회적 기능(對社會的 機能)이다. 이러한 궁극적인 목표와 그것을 이 땅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노력의 차이점(방법론)이 결국 불교가 많은 종도 및 일반 국민들과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있어 장애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일부 개인의 원력과 노력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는 포교활동 사례가 나타나고 있지만 그러한 성과가 종단 혹은 종도의 보편적인 활동으로 확대되지 못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포교 내지 포교 방법론은 우선 현실 문화에 적응하는 것이라야 하며, 그 계획의 입안(立案)에는 합리적 사유와 논리적 타당성이 근간이 되어야 하며, 보편적 사고 위에서 특수한 상황이 고려되어야 한다.

포교는 불교가 사회에 미치는 기능을 말하므로 이 사회에 대응하는 논리와 합리성을 가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포교 이론은 불교의 근본 목적에 부응하는 보편적 사유, 즉 사방승가(四方僧伽)<사방승가는 관념적으로 사방의 일체 비구, 비구니를 포함하는 승가를 의미하며, 현실로 눈앞에 보는 비구, 비구니 승가를 현정승가(現前僧伽)라고 부른다.> 이념을 바탕으로 하여 그 틀을 근거로 다양한 사회 계층에 대응하는 이론으로 정립되어야 한다.

또한 한국불교가 앞으로 전개될 새로운 세기에 즈음하여 어떤 역할을 하여야 하는가와 한국사회에서 어떤 기능을 담당하여야 하는가에 대한 전체 구도 속에서 각계각층, 그리고 각 분야에 활용할 수 있는 이론 체계가 필요하다. 동시에 직접 포교와 간접 포교, 즉 전략적 구도와 전술적 포교 방안을 구체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

이상적인 포교방법론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체계를 세워 유형화하는 한편, 포교 현실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그 원인과 배경 및 영향을 파악하며 나아가 대안을 창출하고, 포교의 구체적인 방법을 모색하는 전문적인 방법과 일반적인 방법을 망라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1. 포교의 의미와 개념

포교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이해시키고, 납득시키며, 수용케 하고, 함께 실천하는 모든 활동과 매체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러므로 포교는 불교의 모든 수행제도, 사원 안팎의 모든 불교적 행위 및 활동을 포함하며 불교와의 만남을 성취시키는 구체적인 행위를 말한다.

포교라는 어휘는 경전에서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고, 천태지의(天台智顗, 538~597) 선사의 ‘법화현의’ 권10에 ‘但論 如來布敎之 元始’라는 용례가 있다. 이어 같은 권에 ‘聖人之布敎 各有歸宗 然非諸家判非-<성인의 가르침을 펴는데 각각 돌아갈 종지가 있다. 그러나 제가의 판단이 하나 아님이 아니다.>’이라 쓰고 있다. 부처님의 교법을 홍포하는 의미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즉 불보살의 중생 교화의 방편을 포교라고 말하고 있다.

경전이나 율전(律典)에는 전법륜, 교화, 전도, 전법 등이 널리 쓰였으며 특히 교화라는 어휘가 많이 쓰이고 있다. ‘법화경 오백제자 수기품’에 ‘常勤精進 敎化衆生’ 혹은 ‘敎化饒益 無量衆生’이라는 표현이 있으며, ‘장아함경 권16 대본경’에는 ‘존재를 교화하다’ 혹은 ‘증일아함경 권1’에서는 ‘敎化 三乘 無差別’이라는 표현을 볼 수 있다. ‘불본행집경 권39 권40, 불소행찬 권4’ 등에서도 이러한 표현을 하고 있다.

교화는 범어 pari-pacana, 중론의 pari-paka, 정법화경의 sasana, 구사론의 vinesate 등의 역어로 교도화익(敎導化益)의 뜻이다. 설법교도(說法敎導)하여 중생들을 화익케 하는 뜻으로 사람들에게 정법(正法)을 가르쳐 깨우치게 하며 고통 받는 이들을 편안케 하며, 의심하는 이들을 믿도록 하여 정법의 길로 나가도록 하는 것을 의미하며 설교와 같은 말로도 쓰이고 있다.

부처님은 불공법(不共法)으로 중생 교화를 하였으나, 제자들은 부처님의 교법을 해석하여 일반인들에게 부처님의 법을 전하였다. 법을 전하는 이의 이해 심도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법을 전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중생을 일깨우는 것은 남을 위한다기보다 먼저 자신의 수행의 일부이다. 법을 전하는 것은 자신의 불성(佛性)에 눈뜨게 하는 것이며, 보리심을 일으키는 것이며, 나아가 안심입명(安心立命)을 얻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대승경전에서는 ‘불국토를 장엄하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자리(自利)가 곧 이타(利他)인 도리이다.

이러한 표현들을 축약하고 정리하여 보면 포교란 부처님의 뒤를 따르는 것이며, 그 가르침을 신명을 다하여 널리 펴는 것이며, 나아가 보살행의 내용이며, 불국토를 장엄(莊嚴)하는 것이다.

교법(敎法)을 설한다는 행위만을 든다면 설교에 해당하지만 설교의 목적이 집착과 의망(疑網)을 끊고 윤회로부터 해탈을 증득하고자 함이므로 결국 불국토를 이루어 나가는 행위인 것이다. 장엄이란 곧 건설의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다. 포교란 곧 불국토의 장엄이다. 따라서 포교는 불국토의 건설이며 이상세계의 구현을 위한 구체적인 행을 말하는 것으로 정의 하고자 한다.

2. 전법륜의 포교론적 의미

과거현재인과경 권3에 의하면 부처님이 성도 후 바라나국 녹야원에 나아가 아냐타 카운디냐(교진여) 등에게 처음으로 사성제법을 설하셨는데, ‘그들은 모든 법으로부터 원진이구(遠塵離垢)하고, 법안정을 얻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어 모든 사람들이 한량없는 환희심을 일으키고 외쳐 말하길, 대법륜을 굴리기 시작하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였다. ‘전법륜’은 포교의 개념에 부합하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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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제부터 보다 현대사회에서 환영할 만한 적절한 수행포교對案(사부대중 공동체)을 찾아 끊임없는 노력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며 혁신적 실천으로 나아갈 방도는 무엇일까!!

2017년 3월24일
발췌: 제월 김안수 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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