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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글올린 게시글: 2015-12-13, (일) 9:17 am 

가입일: 2015-01-01, (목) 10:13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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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가운동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혁신과제를 중심으로-

1. 들어가면서
한국불교의 재가운동은 해방 이후의 급격한 정치 사회적 혼란과 불교 내부의 중첩된 곤경과 장애들을 해치면서 그동안 크나큰 양적 발전과 질적 성장을 지속해오고 있다. 이것은 누구도 거의 돌아보지 않는 역경 속에서 자신을 던지는 수많은 이름없는 헌신적 지도자들의 억새풀 같은 생명력으로 이룩해온 성과이기 때문에, 그 가치는 참으로 고귀한 것이라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어린이들에게 추위에도 움츠러들지 않는 연꽃의 꿈을 심어주기 위하여 줄기차게 분투해온 어린이 지도자들, 청소년 지도자들, 대불련 지도자들, 대불청 지도자들, 여성단체 지도자들. 군불교 지도자들, 교도소불교 지도자들, 장애인 지도자들, 풀뿌리처럼 얽혀 여기저기서 부처님의 대비생명력을 전파하고 있는 수많은 자원봉사자들, 의료봉사자들, 한국불교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는 수많은 불교대학 지도자들과 수행단체의 지도자들, 직장 · 직능별 신행단체의 지도자들, 각분야 전문가 그룹의 지도자들, 불교시민운동의 지도자들, 신도회의 지도자들과 그리고 그 헌신자들 … 이러한 재가운동이 한국불교를 이끌어가는 견인차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으며 그 동력에 의하여 한국불교가 오늘 이만큼의 생명력을 보전하고 사회적 역할을 담보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이는 아마 거의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불교의 재가운동은 그 동안 스스로 많은 문제점들과 자기 모순들을 온존시켜왔고 좌절과 퇴행의 고통으로 인하여 끝없는 속앓이를 반복하고 있으며, 더 이상의 성장동력을 찾지 못한 채 무기력한 표류를 경험하고 있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현실로 인정되지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재가불교운동의 위기이며 동시에 한국불교운동의 위기로서 진단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는 한국불교의 새로운 도약과 융창을 약속하는 하나의 희망적 전기(轉機)로서 우리들 앞에 그 해결의 출구를 설렘 가득한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자기혁신을 논의해야 할 자리에 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시 한번 융창하는 한국불교의 미래를 상상하면서, 자기혁신의 과제들을 희망으로 애기할 자리에 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본론은 역사를 통하여, 2천 7백년 역사를 뛰어넘어 초기불교의 근본정신으로 돌아가는 역사적 통찰을 통하여 이 희망의 얘기를 시작하려고 하는 것이다. 역사적 통찰이야말로 모든 통찰의 전제이며 현실의 출구이기 때문이다.

2. 한국재가불교운동의 실태와 문제점
1) 역동과 열정의 시대 - 7, 80년대
재가불교운동은 광범한 함의를 지니는 것이지만, 여기서는 재가 중심의 불교운동 - 재가 중심의 민중적 시민적 불교운동으로 규정하려고 한다. 이것은 재가불교운동이 우바새 · 우바이의 재가대중들이 주체가 되어 불교의 근본가치 - 세계관을 민중적 시민적으로 추구하고 전파해가는 불교의 사회적 실천운동이라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반드시 비(非)승가적이거나 승가중심의 출가운동과의 이질성을 전제하는 것은 아니다. 초기불교사를 보거나 한국불교의 현대사를 보면, 실제로 많은 경우 이 운동과정에서 출가 - 재가의 대중들이 이념을 공유하며 상호 협력하고 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문제는 운동의 이념과 방향에 있는 것이지 출가 재가의 차별성에 과도하게 집착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불교운동은 본질적으로 '4부대중의 공동체운동'으로서 이념적 지향을 삼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념은 '4부대중'이라는 불교 특유의 용어 속에 이미 내재되어 있고, Anguttara-Nikaya의 'Etadagga-vagga'(으뜸품)에서 역사적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한국불교의 재가운동이 시대적 조류로서 역동적으로 역할하게 된 것은 1970년대부터이고 1980년대에 이르러 절정에 이르는 것으로 보인다. 1970 ∼ 80년대에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시대적 상황과 관련 깊다. 지루하고 험악한 정화과정에서 불교의 교단적 능력은 탕진되고 종교적 위상은 처참하게 몰락하였다. 조계종단 출범 이후의 종권투쟁 과정을 통하여 폭로된 승단의 비(非)도덕적 폭력성(暴力性)은 교단 전체의 존립자체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치명적 요인으로 작용했던 사실은 새삼 기억하는 것조차 고통스런 일이 될 것이다. 한편 여의도 광장에 백만 민중이 결집했던 엑스플로 이후 한국 기독교계의 양적 팽창과 사회적 영향력의 비약적인 확대는 한국 불교계에 대해서는 그 몰락을 실감케 하고 존립의지를 박탈하는 공포감으로 육박해 온 것이 또한 사실이었다.
이러한 중첩된 위기의식 속에서 불교계는 일부 선각자들을 중심으로 자구노력을 모색하게 되고, 그 전위에 섰던 것이 대학생불교연합회(대불련) 청소년교화연합회(청교련) 대한불교청년회(대불청)의 3대 기간단체이다. 70∼80년대의 한국불교재가운동은 이들 3대 단체에 의하여 주도되었다. 먼저 횃불을 든 것은 박성배 서경수 교수 등이 중심이 되어 1963년에 창립된 대불련이고, 그 정신적 요람은 1964년 서울 뚝섬 봉은사에서 시작된 대학생수도원 운동이었다. 이 수도원은 당시 봉은사 주지이던 광덕 스님이 지도법사를 맡아 적극 지원하였고, 성철 청담 스님 등이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전청렬 이용부 명호근 김규칠 박세일 권경술 김선근 등 14 명의 대학생들이 주축을 이루었다. 그들은 봉은사 미륵전을 수행터로 삼고 출가적인 삶을 몸소 체험하면서 열정적으로 구도정진하였고, 광덕 스님의 지도로 '보현행원'과 '바라밀염송' 등을 수행하며 보살원력을 체득해갔다. 이 수도원 대학생들의 구도열정이 각대학으로 전파되어 대학마다 불교학생회가 결성되고 연합회가 탄생하였다. 70∼80년대 대불련의 열정은 뜨거웠고 그 조직력은 놀랄 정도로 급속히 확산되어 갔다. 전국 백 여개 대학에서 수 천 명에 달하는 눈 푸른 청년 대학생들이 대불련 깃발로 운집하였고, 서울대 고려대 한양대 중앙대 동국대 숙명여대 성신여대 동덕여대 등이 그 중심에 섰다. 그들은 '한국불교 1600년 대회'와 농활 등을 통하여 새로운 불교수행의 열풍을 진작하고 수많은 엘리뜨 출가자들을 배출시켰을 뿐만 아니라, 반독재민주투쟁의 전위세력으로서 각대학의 불교학생회는 '운동권'으로 인식될 정도였다. 1980년 광주 민주화투쟁에서 많은 대불련 학생들의 고귀한 사신공양도 결코 우연한 사건이 아니었던 것이다.
청교련은 순수열정과 붓다 중심운동으로 한국 현대불교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하는 데 앞장섰다. 청소년 운동에는 많은 출가 재가의 대중들이 복색의 차별감 없이 동지애로 결속하였고, 그 중심에 석주 스님이 주석하고 있었다. 안병호 회장(안전양초 사장) 황해진(변호사) 마산의 설봉거사(미술가) 반영규(자비의 소리 발행인, 찬불가작사가) 서창업(작곡가) 김재영(동덕-청보리 창립자) 김안수(사무총장) 이해창(하모니카할아버지) 이종만(아동운동가) 김래동 함재수(녹야원학생회 지도자) 등과 경향각처의 수많은 이름 없는 헌신자들이 가난한 주머니를 털면서 도처에서 어린이회 중고등학생회를 만들어서 미래의 동량들을 키워내고 있었다. 또 청교련은 한국불교 최초로 전국적인 지도자강습회를 열어서 이념적 일치와 방법론적 혁신을 추구하였고, 지도자 지침서 보리誌(김재영 집필)를 발행하여 천수경불교 조사어록불교의 편벽된 풍토 속에서 '고타마 부처님 - 석가모니부처님 제일주의, 불경제일주의, 보살행제일주의'의 새로운 이념모델을 확산시켜갔다. 청소년운동의 기폭재가 된 것은 1970년의 동덕불교학생회 창립이었다. 동덕불교는 전교생의 반이 넘는 650여명의 학생들을 회원으로 포섭하고 매년 수천 명이 운집하는 청소년예술제 「붓다의 메아리」를 개최하였다. 이것을 계기로 수많은 학교와 사찰에서 불교학생회가 창립되고, '붓다의 메아리'라는 청소년전법운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갔다. 매년 수백 명의 우수한 인재들을 대학으로 진학시켜 대불련의 동력원이 되었다. '동덕 - 청보리운동'의 이 작은 성공은 실의에 빠져있던 한국불교계 전반에 새로운 희망과 자신감을 심어주고 그들을 다시 한번 궐기시키는 기폭재로서 작용한 것이다.
대불청 활동은 선진규 회장 시대를 맞아 폭발적으로 확산되었다. 전국각처에 수백 개의 지회가 조직되고 3만 명의 회원을 포용하는 거대한 조직으로 성장해갔다. 대불청은 뿌리찾기운동을 전개하여 만해 스님으로서 그 정신적 지도자로 삼고 만해백일장 개최 등을 통하여 ‘만해정신의 계승’을 표방하였다.
7, 80년대는 열정적이고 역동적인 한국불교재가운동의 전성기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대불련 청교련 대불청으로 대표되는 이 재가운동은 잡초처러 강인한 생명력의 수많은 헌신자들의 자발적 애교심(愛敎心)과 '불교를 살려내야 한다'는 위기의식과 순교적 사명감에 의하여 점화되고 연소되어 간 자생적 자발적 구도운동이며 순수 보살운동이였던 것이다. 이 시대의 재가운동은 죽어가던 한국불교를 구하여 살려낸 거의 유일한 기사회생의 희망이었고, 뜻을 같이하는 수많은 출가대중들이 순수 동지애로 동참하고 향도함으로써 한국불교사상 거의 최초로 4부대중이 뜻을 함께하는 아름다운 화합의 역사를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전체 교단 - 종단들도 이 재가운동의 열정과 동력에 힘입어 새로운 출구를 예비할 수 있는 천금같은 동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2) 좌절과 모색의 시대 - 2000년대
1900년대를 지나고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힌국불교의 재가운동은 선명하게 체감할 정도로 그 기세가 꺾이고 퇴조와 좌절현상이 도처에서 목격되고 있다. 이러한 퇴조와 좌절현상은 3대 기간단체의 활동영역에서 가장 첨예하게 드러나고 있다. 지금 대불련은 가히 빈사 상태로 진단해도 과장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참담하게 무너져 내렸다. 많은 대학에서 불교학생회가 자연소멸되고, 과거의 명문들도 십여 명 안팎의 인원으로 다만 명맥을 유지하기에 급급하고 있다. 청소년교화연합회는 더욱 절망적이다. 7, 80년대 새 불교운동의 희망으로 약진하던 청교련은 어느 샌가 몇몇 사람들의 사설기구로 변질되더니, 지금은 거의 망각되고 있다. 다행이 파라미타가 그 역할을 계승하고 있지만 아직은 걸음마 단계이다. 많은 헌신자들의 노고에도 불구하고, 절에도 학교에도 불교학생회 어린이회가 자취를 감춰가고 있다. 대불청의 경우, 회장선거는 반복되고 있지만,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보이질 않는다. 이와 더불어 7, 80년대 열정을 뽐내던 수많은 재가수행단체들도 거의 보이질 않는다. 원각회(김경만) 관음회(김상봉) 달마회(조병일)... 다 어디로 갔는가? 거의 유일하게 삼보법회(이한상)가 정릉에 정사를 건축하고 맥을 이어가고 있지만 노화현상으로 고민이 깊다.
1900~2000년대의 재가운동에도 많은 새로운 변화가 있었다. 새로운 단체 - 운동들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교수 교사 교도관 경찰 부처공무원 산악인 기업인 운수인 금융인 정치인... 많은 직능 직업별 전문재가단체들이 등장하고, 봉사단체들 - 시민사회단체들이 이름을 내세웠다. 짐재일이 주도해온 보리방송모니터회 - 녹색환경운동은 가장 모범적인 재가불교운동으로서 평가되기에 손색이 없을 것이다. 조계종의 경우 수천 명이 넘은 재가 포교사단을 육성해냈고, 전국교사불자연합회는 2천 500명이 넘는 방대한 전국적 조직을 구축하고 있다. 외형적 규모에 있어서는 괄목할만할 성장이라고 인정할 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소수의 사례를 제외하고는 여기서 자발적 동기와 지속적인 열성의 강도는 매우 미약하게 느껴진다. 제도는 정비되고 시스템은 세련되고 있지만 가슴 설레는 열정은 잘 체감되지 않는다. 한 담론에서 논자는 이렇게 진단하였다.

'1070~80년대에는 포교원이 조직되지 못했지만, 상임포교사들(무진장 김한천 김어수 선진규)의 자발적인 열정은 충천했다. 그 열정이 한국불교의 원동력이 됐다. 조직화되고 시스템화 되면서 양적 발전은 있었지만, 정신은 소멸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즉 제도는 있고 정신은 소멸되지 않았나 우려된다.'

재가운동의 전체적인 퇴조와 정신적 좌절이라는 삭막한 풍토 속에서도 한편에서는 새로운 희망의 나무들을 가꾸는 모색은 끊임없이 계속되어 오고 있다. 자라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2000년대의 재가운동에서 가장 희망적인 사건은 우리는 선우와 재가연대의 출현이다. 1991년 김종서 남지심 박광서 성태용 윤세원 등이 주축이 되어 출발한 우리는 선우는 한때 천 5백이 넘는 열성적 회원을 결집하는 데 성공하였고, 회원들의 자발적 회비를 재원으로 적극적인 사회봉사, 청소년 장학사업, 청소년 - 대학생 켐프 운영, 노숙자쉼터 운영, 몽골 등 주변 불교국가 지원사업 등을 전개함으로써 한국불교 재가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하고 재가운동이 사회적 실천운동으로서 본질적 전환을 기약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보하는 데 성공하였다.
재가연대는 우리는 선우가 이룩한 성과의 연장선상에서 결집되었다. 1999년 박광서 임동주 성태용 임완숙 등이 주축이 되고 우리는 선우가 모체가 되어 창립된 재가연대는 '불교의 사회적 발언권의 확보와 교단 정화'라는 명백한 목표를 표방하면서 전국의 불교지식인 - 운동가들을 결집하는 작업을 활발하게 추진하여 현재 천 여 명의 인적 자원을 확보하고 있다. 불교아카데미 교단자정센터 종교자유정책연구원 등 3개 전문적 기능기관을 설치하여, 불교아카데미는 사회 각계의 중심적 리더들을 교육 훈련하고, 교단자정센터는 재정투명화 등 종단의 선진적 개혁을 촉구하면서 승단의 부조리까지 비판하고 있으며, 종교자유정책연구원은 종교편향 문제들에 대하여 강력한 대응을 추구함으로써 불교의 자주성을 제고하고 종교의 평등권을 구현하는 데 진력하고 있다. 교내의 강제적 예배에 반대하고 종교자유를 주장하며 기독교계에 대항했던 대광고 심의규군의 투쟁을 적극 지원했던 것이 그런 사례의 하나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3) 현단계 재가운동의 문제점
대불련 청교련 대불청 등 3대 기간단체를 주축으로 하는 7, 80연대의 열정적이며 역동적인 한국의 재가불교운동은 2000년대 이후 급격히 퇴조와 좌절의 경향으로 몰리고 있다. 재가운동이 다양화 전문화되고 양적 성장에 있어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는 성장동력을 상실하고 목표도 상실하고 자발적 동기와 헌신적 열정도 거의 상실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재가연대 등 몇몇 단체가 새로운 발전 가능성을 확인하고 있지만, 그것은 아직 모색단계이며, 그 파급적 영향력은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한국불교는 주변적 소수종교로 추락하고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무명(無明)의 전조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무엇 때문일까?
1900년대 이후 재가운동의 이러한 퇴조와 좌절현상은 무엇 때문일까?
이것은 시대상황 - 교단 종단이 처한 시대상황과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 7, 80년대의 왕성한 재가운동 - 불교운동은 내부적 폭력성과 국가권력의 차별화정책으로 인하여 생사기로로 몰리고 있는 한국불교를 반드시 살려내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출가 - 재가의 대중들이 복색의 차별 없이 동지애로 단결하여 헌신한 결과의 성과인 것이다. 순수 구교의 열정이 이 시대 불교운동의 제일 동력으로 작용한 것이다.
그러나 2000년대를 전후하여 종권투쟁이 진정되면서 종단이 안정을 확보하게 되고, 국가의 막대한 재정적 지원을 받으면서 땀 흘리며 탁발할 고생을 면하게 되고, 정치인들이 추파를 보내고 고관대작들이 머리를 조아리면서 승단의 위세는 당당해지고 - 이러한 풍토 속에서 승단은 자족 자만 권위주의에 깊이 침잠하게 되고, 이것은 결과적으로 교단 전체의 위기의식을 탈각시키면서 정신적 무장해제를 초래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7.80년대의 ‘중물’ 든 스님들이 보여준 복색을 넘어서는 4부대중의 동지애는 엄격한 권위주의로 구조화되면서, 승단은 재가를 한갓 ‘신도’로서 종속화 시키고 재가단체를 통제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승단이 각종 선거를 통하여 철저하게 정치권력화면서, 재가대중 - 재가운동에 대한 이러한 정치적 관료적 통제와 권위주의는 이제 더 이상 극복 불가능한 고질적 장애로 고착되어간 것으로 보인다. 스스로 '지도자'이기를 거부하면서 교단의 관료화와 권위주의를 한사코 거부했던 고타마-부처님의 위대한 평등정신은 한국불교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위기의식의 망각과 중첩된 권위적 통제는 전체 자발적 자생적 불교운동 - 재가운동의 동력을 고갈시키고 의지를 꺾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 것이 아닐까? 기원 전 599년, 베살리 벨루와가마, 죽음을 얼마 앞두지 않은 상황에서, '승단의 후계자를 지명해달라'는 아난다 비구의 간청에 대하여 붓다는 이렇게 설하고 있다.

'아난다야, 비구승가는 나에 대해서 무엇을 더 바라는가? 아난다야, 나는 안과 밖이 없이 법을 설하였다. 아난다야, 여래가 가르친 법에는 스승의 주먹 과 같은 것이 따로 없다. 아난다야, "나는 비구승가를 거느린다"거나 "비구 승가는 나의 지도를 받는다"라고 생각하는 자는 비구승가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당부할 것이다. 아난다야, 그러나 여래에게는 "나는 비구승가를 거느린다"거나 "비구승가는 나의 지도를 받는다"라는 생각이 없다. 그러므로 여래가 비구승가에 대해 무엇을 당부한단 말인가?'

부처님도 거부한 지도 통제 지배
고타마-부처님도 한사코 거부하신 승단 - 종단의 계급제도 관료제도
그래서 모여든 불자들 - 민중들 시민들
이들을 가로 막는 이 첩첩한 계급제도 - 관료제도 ․ 권위주의 통제 지배 -

보다 큰 문제는 재가들이 이러한 장애를 스스로 극복하고 대안을 구사할 수 있는 이념적 능력과 자생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한국불교의 재가운동이 승단의 호의와 지원에 의탁하는 데 너무 익숙해져, 스스로 문제를 치유할 수 있는 이념적 정체성을 확보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현재 재가불교운동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심각한 병폐의 하나는 불교적 정체성(正體性) - Identity의 결여라고 생각한다. 저마다 '불교' '부처님'을 표방하지만, '과연 무슨 불교냐?' '무슨 부처님이냐?'하면 곧 문제가 달라진다. 저마다 표방하는 불교의 종류가 다르고 종파가 다르고 경전이 다르고 교설이 다르고 의식이 다르고 수행법이 다르다. '무엇이 불교의 근본 가르침인가?'하는 질문 앞에 서면 중구난방이다. 敎와 禪이 동문서답하고 현교와 밀교가 동상이몽하고 석가와 아미타불이 서로 외면한다. 한국불교도는 이미 일불제자(一佛弟子)가 아닐지도 모른다. 바로 이것이 한국불교운동의 일치성 - 공동체성을 손상시키고 재가 불교도들의 힘을 결집시킬 수 없게 만드는 가장 위험한 내재적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이 정체성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시도하는 어떤 개혁의 노력들도 일시적 열정일 뿐, 결국 무위로 돌아갈 것이다. 불교문제는 본질적으로 이념의 문제이며 정신의 문제, 곧 정체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 대안으로서 본론은 '근본불교에 서서 정체성 확립하기'를 자기혁신의 중심과제로 제시하면서, 논의를 전개해가려고 한다.

3. 재가운동의 정체성을 찾아서
- 초기Parisa의 野性을 중심으로
재가운동의 불교사적 기원은 초기불교시대의 Parisa(Parisad) - 빠리사운동으로 소급된다. Parisa는 ‘대중’ ‘회중’ ‘중’ ‘윤좌(輪座)’ 등으로 번역되는데, 고타마-붓다 당시 불교도공동체를 일컫는 용어로 널리 통용되었다. ‘4부대중’이라고 할 때, 일부에서는 이것을 ‘Sangha’ - ‘승가(僧伽)’라고 규정하고 있으나 이것은 잘 못된 용법으로 보인다. Sangha는 곧 승단(僧團)으로서 출가 2부 - 비구 · 비구니로 구성되며 이 Sangha에는 재가는 포함되지 않는다. 이것은 융통성이 허용되지 않는 절대적 규정으로서, 비구 Sangha · 비구니 Sangha만 존재할 뿐, 우바새 Sangha · 우바이 Sangha, 또는 보살 Sangha는 존재하지 않는다. 일부 학자들이 불교도공동체의 존재를 설명하기 위하여 ‘4부대중으로 구성되는 Sangha’, 또는 ‘Maha-Sangha’ 등의 용어를 쓰고 있지만, 이것은 근본법을 일탈한 편의적 해석으로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불교도공동체’ ‘불자공동체’라고 할 때 그것은 곧 ‘Parisa’이다. ‘대중’이라고 할 때 그것은 곧 ‘Parisa’이다. ‘4부대중’이라고 할 때 그것은 곧 ‘Catasso - Parisa’로 일컬어진다. 붓다 당시에는 많은 종류의 독자적인 Parisa들이 구성되고 활동하고 있었다. 초기경전 도처에서 수많은 종류의 Parisa가 등장한다. Sangha라는 용어보다 더 많이 등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Parisa가 불교도공동체를 의미하는 명칭으로 광범하게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Digha-Nikaya의 'Mahaparinibbana-Sutta'에서는 이렇게 설해지고 있다.

‘아난디야, 여듧 종류의 빠리사가 있다. 그들이 무엇인가? 곧 까띠야-빠리사 ․ 브라만-빠리사 ․ 가하빠띠-빠리사 ․ 사마나-빠리사 - 사천왕-빠리사 ․ 도리천-빠리사 ․ 악마-빠리사 ․ 범천-빠리사들이다.
아난다야, 나는 내가 참석했던 수백 개의 까띠야-빠리사들을 잘 기억하고 있다. 나는 그들과 앉기 전에 그들에게 말을 걸고 그들의 대화에 참여하고, 그들의 외모나 언어가 어떤 것이든, 받아들였다. 그리고 나는 담마에 대해 설법함으로써 그들을 가르치고 고취시키고 분발시키고 기쁘게 하였다. … ’
수백 수천개의 Paris들
까띠야-빠리사 ; 상류층 빠리사
브라만-빠리사 ; 지식인 빠리사
가하빠띠-빠리사 ; 상인 ․ 기업가 빠리사 등

초기불교시대 재가Parisa들의 역할은 이렇게 다양하고 역동적이었다. 특히 Gahapati-Parisa, 곧 거사 Parisa들(혹은 장자Parisa들) - 상인 · 기업가 Parisa의 역할은 불교운동 전체를 견인하는 선구적 추진체가 되었다. 거사 Parisa들은 풍요한 물적 자원을 바탕으로 정사 · 승가람 등을 기증하여 Sangha를 외호하고 그들의 수행을 지원했을 뿐만 아니라. 대상(隊商)을 조직하여 두 마리 말이 이끄는 두 바퀴 수레를 몰아 거친 벌판과 사막을 달리며, 혹은 상선(商船)을 몰아 강과 바다의 풍랑을 헤치며 변방으로 변방으로 달려가 Dhamma를 전파하고 불교세계의 영역을 끝없이 개척해갔다. Buddhist India의 저자 Rhys Davids는 이렇게 논하고 있다.

‘농부들과 수공업자들 이외에 자기들의 상품을 배에 싣고 큰 강을 오르내리며, 또는 해안을 따라 수송하거나, 대상(隊商)을 조직하여 수레에 싣고 바로 다른 나라를 가로지르는 상인들이 있었다. 각기 두 마리 소가 끄는 두 바퀴의 작은 수레들의 긴 행렬을 이룬 대상이 그 당시의 분명한 모습이었다. 만들어지진 길도 없고, 교량도 없었다. 수레들은 숲을 통하여, 농부들에 의하여 열린 작은 길들을 따라서, 마을에서 마을로 고투(苦鬪)를 벌이며 나아갔다. 속도는 한 시간에 2마일을 넘지 못했다. 작은 내천은 여울 따라 좁은 곳으로 건넜고, 큰 강은 수레나룻배를 사용하여 건넜다. 나라를 통과할 때마다 세금과 시장세를 지불하였다. …
Rajputana의 서쪽 사막을 통과할 때 대상들은 오로지 밤에만 여행하였고, 바다에서 별을 발견함으로써 바른 길을 유지하는 사람들과 같은 선도사에 의하여 안내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여로(旅路)에 관한 전체적인 서술은 너무도 정확하고 선명하기 때문에, 그것을 하나의 창작품으로 볼 수 없다.’

이들 상인들에 의하여 황량한 사막과 험한 대하(大河)를 연결하는 교역루트가 동서남북으로 개척되고 이 교역루터를 따라서 Dhamma가 Ganga강 유역의 불교중국으로부터 변방(邊方, prantyantajanapada)으로 변방으로 확산되어 갔다. 교역루트, 곧 silk-road는 단순한 장사길이 아니라 동시에 상인전법사들에 의하여 열려간 Dhamma-road였던 것이다. Rhys Davids는 이렇게 논하고 있다.

‘불교 이전의 문헌에는 이런 루트에 관한 기록이 아무것도 없다. 가장 오래된 빠알리-니까야에서는, 우리는 유행하는 전법사들의 여로에 관하여, 그리고 특히 보다 긴 여로에 관하여 많은 설명들을 확보하고 있다. 그들 전법사들은 일반적으로 이미 만들어진 루트를 따랐을 것이다. 이것은 그 당시 상인들에 의하여 이용된 것과 같은 증거이다. 후기에 와서, 우리는 상인들이 배나 소들이 이끄는 마차들을 실제로 이용한 루트에 관한 설명들을 갖고 있다.’

황량한 사막, 험준한 산악, 폭류, 폭염과 장마, 질병, 기근, 기갈, 맹수, 도적들, 국왕들의 횡포, 내부적 갈등과 이탈자, 시민들의 냉대와 방해, 음모와 박해, 모욕과 비방 -

개척의 여로에서 그들은 수많은 난관과 장애들을 만나게 되었지만, 그들은 회피하지 않고, 상인 특유의 모험정신과 도전의식으로 이 난관과 장애들을 대면하며 통찰하고 극복해갔다. Vamsa국의 수도 Kosambi에서, ‘하녀전법사 꾸주따라(Khujuttara)와 500여인들의 순교사건’ 직후, 붓다와 그 제자들이 Kosambi 시민들의 박해를 받는 위기를 만났을 때, 붓다는 이 위기를 대면하며 이렇게 설하고 있다.

‘마치 코끼리가 싸움터로 나가 화살을 맞듯이
나 또한 사악한 군중들로부터 날아오는 모욕을 견디느니라.
싸움터로 나가는 것은 길들여진 코끼리이다.
왕이 타는 것은 길들여진 코끼리이다.
모욕을 참고 견디는 자는 길들여진 자
그는 사람들 가운데 최상이니라.’

이 과정에서 수많은 출가 · 재가의 Parisa들 - 대중(大衆)들 · 중(衆)들이 중첩되는 안팎의 장애들을 결코 회피하지 않고 대면하며 그들의 신명을 던졌던 사실은 니까야 도처에서 발견되고 있다. Digha-Nikaya의 ‘Janavasabha-Sutta'에서 붓다는 이렇게 설하고 있다.

‘어느 때 붓다께서 니다까의 벽돌집에 계셧다. 그리고 그때 붓다께서는 까시인 · 꼬살라인 · 밧지인 · 말라인 · 체티인 · 밤사인 · 꾸루인 · 빤짤라인 · 맛차인 · 수라세나인 등 죽고 사라져간 나라 위아래의 다양한 헌신자(獻身者)들의 재생(再生)에 관하여 설하고 있었다. 붓다는 이렇게 설하고 있다. … ’

Parisa는 4부대중 - 모든 시민적 계층의 불교도공동체로서, 초기불교 개척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Parisa는 함께 모여 공부하고 수행하는 법회이고, 5계 등 시민적 윤리 문제와 빈궁과 질병 · 폭력 · 삿된 세계관 - 이데올로기 등 사회적 과제들을 함께 추구하고 개혁해 가는 사회적 실천모임이고, 뭣보담 신명을 걸고 Dhamma를 전파하고 불교세계를 확산시켜나는 전법 - 개척자들의 공동체였다. 출가 · 재가의 Parisa들은 독자적으로, 때로는 함께 모여서 작업하였고, 그들 사이에 어떤 우열적 차별성이나 종속관계는 존재하지 않았다. 고따마-붓다의 성공, 초기불교의 빛나는 성공은 실로 이 Parisa운동의 동력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고, 특히 상인 Parisa들 · 기업가 Parisa들의 역할이 결정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기원 전 544년 부처님 열반시, 바로 재가 Parisa들에 의하여 고타마-붓다의 장례가 주관되고 사리가 분배된 역사적 사건에 의해서도 입증되고 있는 것이다.

황량한 사막과 들판을 내달리며
험한 폭류를 거슬러 오르며
달빛 아래 미지의 길을 열며
피땀 흘리며
사방에서 날라오는 화살을 맞으며
때로는 기끄이 죽음을 선택하며
무수히 삼보헌신의 길로 나아가는 이 거친 헌신적 야성(野性) -

바로 초기불교 개척자들이 실증한 이 준열한 야성이 광막한 인도대륙을 Buddhist India로 개척해내고 히말라야와 대양의 격류를 넘어 이 지구촌 구석구석으로 부처님 세계 - 불교세계를 열어간 불교의 생명력이 된 것이다.

4. 혁신과제 - 재가불교운동의 정체성 확립하기
초기 Parisa운동의 거친 헌신적 야성(野性)
목숨을 던지며 황량한 벌판과 급류를 달리며 Dhamma를 전파하며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가는 초기Parisa운동의 거친 헌신적 야성(野性)-

이것이 우리 시대의 재가운동-불교운동이 회복해야 할 역사적 정체성이며 이념적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이러한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구체적인 자기혁신의 전략으로서 다음 3가지를 제시하면서 보다 광범하고 다양한 형태의 논의가 진전되기를 기대한다.

1) 방안 하나; Gotama-Buddha로서 정체성 확립하기
'불교는 Gotama-Buddha의 가르침으로서 근본을 삼는다.'
이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엄숙한 역사적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다불설(多佛說)'이 Gotama-Buddha의 역사적 실제성을 훼손시킬 수 없는 것이고, 법신-화신설(法身化身說)이 석가모니불의 정체성을 초월할 수 없는 것이다. Historical Buddha인 Gotama-Buddha 삭가모니불의 근본 위에 확고히 설(立脚) 때, 대승불교도, 선(禪)불교도 불교로서의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금강경, 법화경 첫머리에서 석가모니가 주불로서 등장하는 것도 대승론자들의 이러한 역사의식 - 정체성의식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모든 불교도들에게 Gotama-Buddha(기원전 624~544년)의 그 절절했던 인간적인 헌신의 삶과 분명한 가르침이 최우선의 Dhamma로서 공통적으로 제시되고 학습되고 생동하는 모범으로서 추구되어가야 할 것이다. 이 때 불교는 비로소 ‘한 진실하고 헌신적인 인간의 종교’로서의 위대한 본성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Parisa의 개척자들이 신명을 버리며 변방으로 변방으로 달려나간 것도, 무슨 초월적인 구경각 때문이 아니라, 늙고 병들고 지친 팔십 노구를 이끌고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숲 속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 속에서 함께 지내는 Gotama-Buddha의 진실하고 인간적인 사랑에 대한 공감 때문일 것이다. 기원 전 544년, 죽음을 앞 둔 붓다는 베살리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아난다야, 나는 이제 여든 살, 늙고 쇠하였구나.
마치 낡은 수례가 가죽끈에 묶여 간신히 굴러가듯,
나 또한 가죽끈에 묶여 간신히 굴러가고 있느니라.’

늙고 병들고 지친 팔순의 노(老)붓다가 생의 마지막 순간에 온몸으로 보여주는 이 헌신적인 사랑 - 인간애야 말로 모든 불교도들을 하나의 생동하는 우정의 공동체로 엮어낼 수 있는 최선의 전략이 될 것이다. 불교가 추구하는 고매한 이상(理想)과 가치는 바로 인간 붓다의 절절한 삶에 대한 공감과 감동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의 한국불교도가 이 늙고 병든 노(老)붓다를 - 그 절절한 삶의 역정을 거의 잊어가고 있는 것이 스스로 생명력을 상실하고 밖으로 한국불교운동의 위기를 자초하는 가장 큰 병폐의 하나로서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2) 방안 둘 ; ‘무상(無常) · 고(苦) · 무아(無我)’로서 정체성 확립하기
Sanyutta-Nikaya의 ‘Sabbe-sutta’(一切經)에서 Gotama-Buddha는 이렇게 설하고 있다.

‘수행자들이여, 일체란 무엇인가?
일체란 눈과 형상 ․ 귀와 소리 ․ 코와 냄새 ․ 혀와 맛 ․ 몸과 부딪힘 ․ 생각과 현상들.
수행자들아. 이것을 일체라고 부른다.
수행자들아, 이것을 두고 다른 일체를 말한다면, 그것은 단지 말뿐이며, 질문을 받으면 답변하지 못하고 곤란에 빠질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수행자들아, 그렇게 말하면(질문하면), 그것은 한계를 넘어서기 때문이니라.’

이 일체경은 근본불교의 세계관 - 가치관을 논의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경이다. 자아(自我, atta)와 사회(loka)-세계 · 자연생태계 등 불교가 문제삼는 모든 주제들을 일체(一切) - sabba로서 포괄하고 그것들을 많은 사람들의 일상적인 감각기관 - 체험의 영역 안에서 문제 삼고 있다. 이것은 근본불교가 기본적으로 일상적 체험의 범주를 넘어서는 초월적인 것들 - 일심 · 진여자성 · 법성 등의 형이상학적 문제들에 대해서는 문제 삼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다.’라고 설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근본불교는 이 일체의 문제를 5온 · 12처 - 18계 · 연기로서 접근하고 있다. 이것이 곧 ‘온(蘊) · 처(處) · 계(界)’의 법으로서 연기도 이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니까야 전편을 통하여 이 5온 · 12처 · 18계 · 연기를 대상으로 ‘무상(無常, anicca) · 고(苦, dukkha) · 무아(無我, anatta)’를 통찰함으로써 이욕(離慾, viraga) · 해탈(解脫, vimutti)을 실현하는 과정이 거듭거듭 시설되고 있다.

‘무상(無常, anicca) · 고(苦, dukkha) · 무아(無我, anatta) · 이욕(離慾, viraga) · 해탈(解脫, vimutti)’ -

이것은 니까야 전편을 통하여 확립된 해탈 열반의 근본법이다. 5온에 대한 통찰도, 12연기에 대한 통찰도 궁극적으로 이 근본법으로 돌아간다. 8정도의 정견(正見, samma-ditthi)이란 바로 이 근본법을 통찰하는 것이며, 이것이 곧 지혜통찰(智慧洞察, panna-bhavana)로서 가장 보편적이며 대중적인 해탈법으로서 인정된다.

‘무상(無常, anicca) · 고(苦, dukkha) · 무아(無我, anatta) · 이욕(離慾, viraga) · 해탈(解脫, vimutti)’ -

이것은 Gotama-Buddha에 의하여 확립된 불교의 근본 Dhamma이다. 법인(法印)이다. 불교가 불교인 한 이 근본 Dhamma를 부정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제종제파의 불교들이 백가쟁명식으로 각기 다양한 교설과 이론을 발전시키고 전개하고 경쟁하는 자유분방한 풍토는 불교만이 누릴 수 있는 아름다운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자유분방함이 이 근본 Dhamma의 정체성을 일탈할 때. 세계불교는 사상적 정통성을 상실하고 끝없는 대립과 갈등 - 지리멸렬 속으로 해체되어 갈 것이다. 초기 Parisa들의 단호하고 흔쾌한 헌신개척은 이 단순명료한 근본 Dhamma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공감에서 솟아나는 진리에 대한 확신 때문일 것이다.

3) 방안 셋 ; sati - 근본수행법으로서 정체성 확립하기
붓다께서 Digha-Nikaya의 ‘Mahasatipatthana-Sutta’(大念處經)에서 이렇게 설하고 있다.

‘수행자들이여, 이 길은 유일한 길이니, 중생들의 청정을 위하고, 근심과 탄식을 다 건너기 위한 것이며,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사라지게 하고, 옳은 방법을 터득하고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이니라.… ’

이것은 초기수행경들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널리 알려져 있는 大念處經의 첫 머리이다. 이 경에서 붓다는 sati가 중생제도와 열반실현의 ekayana-maggo - ‘유일한 길(the only way)’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선언은 니까야 전편을 통하여 관철되고 있다. 최근 학계에서 초기수행법에 관한 논의 - 논쟁이 활발하게 전개되어 왔고, sati가 그 중심과제로서 추구되어 온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지금까지 sati에 관한 논의는 주로 초기수행법의 양대 갈래인 vipassana와 samatha와 관련하여 진행되어 왔고, sati가 이들 수행의 예비단계, 또는 준비과정으로서 많이 주장되어 왔다. 그러나 붓다에 의하면, sati는 그 자체로서 초기수행법의 근본을 이루고 있다. 열 두 살의 어린 왕자 Gotama가 염부수 아래서 처음으로 sati를 체험한 이래 팔순의 노(老)붓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이 sati는 붓다의 전생애를 통하여 일관되게 추구되고 있다. 그리고 붓다는 이 sati로서 중생제도의 근본수행법을 삼고 있다. 초기불경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용어가 아마 이 sati일 것으로 보인다. sati는 vipassana나 samatha,와 관계없이 그 자체로서 가장 보편적이며 중심적인 근본수행법으로 추구되어 온 것이다. vipassana나 samatha 등 초기불교의 모든 수행법은 이 sati에 의하여, sati라는 중심축에 의하여, 불교수행법으로서, 붓다의 수행법으로서 그 정체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초기수행법은 8정도로 요약되고 8정도는 이 sati - 정념(正念, samma-sati)에 의하여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sati를 ‘ekayana-maggo'로서 규정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vipassana는 sati의 한 전문화된 변형으로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요즘 vipassana가 과도하게 강조되면서, 그것이 마치 초기수행법 - 남방수행법의 정통인 것처럼 인식되는 것은 다소 문제가 있는 시각으로 보인다. 각묵은 이렇게 논하고 있다.

‘북방불교, 즉 대승불교에서 초기 불교술어들을 이해할 때 가장 잘 못 이해하거나 소흘히 다룬 술어가 바로 이 sati이다. 어원이 ✓smr(to remember)라서 이 중요한 술어를 단순히 “기억”이나 “생각” 정도로 이해한 것 같다. 그래서 초기불교 수행에서 가장 중요하게, 아니 불교수행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이 용어를 오해 내지는 쉽게, 아니면 간단하게 취급해버린 것 같다. 그래서 8정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정념(正念, samma-sati)이 대숭불교의 실천도인 6바라밀에서는 상실되어버리고, 대승불교 수행의 어느 곳에서도 정념은 강조되지 않는다. 북방에서 이 사띠를 잊어벼렸다면, 남방은 어떠한가? 역자의 견해로는 남방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남방에서는 위빠사나라는 테크닉을 지나치게 강조하여서 위빠사나가 다름 아닌 이 사띠라고 역설하다 보니, 정작 이 사띠를 잊어버리게 되었다고 역자는 보고 있다. 북방에서는 화두라는 테크닉, 남방에서는 위빠사나라는 테크닉을 중시한 테크니션들이 테크닉을 넘어서 근본 수행법으로 제시한 이 사띠의 의미를 바로 이해하고 테크닉으로서가 아닌 도(道) - 저 팔정도로서 수행을 파악할 때, 근본불교의 수행은 전개된다고 생각한다.’

‘안으로(ajjhita) 밖으로(bahiddha) 안팎으로(ajjhitabahiddha)’ ---<DN. 290-314>
안으로 자신의 마음을 통찰하고 밖으로 많은 사람들을 위한 사회적 실천에 매진하고 -

안으로 문제 - 주제를 대상화하여 대면하듯이 집중하여 담담히 지켜보고, 밖으로 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문제상황을 통찰하고 그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헌신봉사하고 -

이것이 sati - 붓다의 마음통찰법의 근본방식이다. 불교수행의 근본방식이라고 할 것이다. 여기서 보다 주목되는 것이 밖으로의 수행이다. 밖으로 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문제를 통찰하고 그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헌신봉사하는 사회적 실천이야 말로 불교수행의 근본정신인 것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 많은 생명들을 위하여 헌신하고 그들을 수호하는 것이 바로 나 자신을 위하고 나 자신을 수호하는 것이며, 바로 이것이 해탈 열반을 실현하는 유일한 길인 것이다. 이것은 자아와 사회 등 일체가 나 자신의 주관적 조건인 안이비설신의와 많은 사람들 - 사회의 객관적 조건인 색성향미촉법의 상호작용에 의하여 형성되고 소멸된다는 일체법(一切法, sabbe-dhamma)의 준엄한 원리의 발로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 - 이 사회의 외곡된 불선의 조건들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피땀 흘리며 헌신 분투하지 아니 하고, 많은 사람들 - 중생들의 고통을 치유하기 위하여 피땀 흘리며 헌신 분투하지 아니 하면서, 홀로 고독하게 앉아 자기 내면의 깨달음만을 위하여 몰두하는 것은 불교적 수행으로서 그 정체성을 인정받을 수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해서 뭣인가 깨닫는다하여도, 그러한 가능성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불교적 깨달음과는 거리가 먼 것이 될 것이다. 수행과 깨달음이 불교만의 것은 아니지 않는가? Sanyutta-Nikaya의 ‘Satipatthana-Sanyutta'에서 이렇게 설하고 있다.

‘수행자들이여, 어떻게 자신을 수호하면서 남을 수호하는가?
sati을 열심히 닦고 익히고 실천함으로써 가능하다. 수행자들이여, 이와 같이 자신을 수호하면 남을 수호하는 것이니라.
수행자들이여, 어떻게 남을 수호하면 자신을 수호하는가?
수행자들이여, 인내하고 해치지 않고 사랑하고 연민함으로써 가능하다. 수행자들이여, 이와 같이 남을 수호하면서 자신을 수호하는 것이니라.’

인내하고(khantiya)
해치지 않고(ahimsa)
사랑하고(mettaya)
연민하고(anuddayatayaa) -

이러한 사회적 실천의 길로 매진할 때, 모든 수행법은 불교적 수행법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불교운동의 생명력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이다. 간화선이든 위빠사나이든, 이러한 sati의 근본정신 위에 확고히 입각할 때, 잡다하고 다양한 수행법들은 백화제방으로 아름다운 해탈 열반의 결실을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초기 Parisa의 불교도들이 평범한 일상의 삶 속에서도 전도개척과 사회적 변혁의 길로 나아간 것 또한 이러한 근본수행법의 정신에 투찰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5. 맺으면서
고타마-부처님의 절절한 헌신의 삶을 최선의 Dhamma로 배우면서
무상 - 고 - 무아 - 이욕 - 해탈의 근본 가르침을 분명히 이해하면서
sati를 통하여, 안으로 마음통찰하고 밖으로 헌신봉사하면서 -

이것이 초기 Parisa운동의 거친 헌신적 야성으로 돌아가는 길이고, 현단계 재가불교운동 - 전체불교운동이 정체성을 회복하고 사회적 생명력을 확보하는 자기혁신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혁신운동의 초점은 역동적인 사회적 실천으로 환원된다. 고타마-부처님의 절절한 삶을 배우는 것이 곧 사회적 헌신의 삶으로 나아가는 길이고, 무상 - 고 - 무아의 근본Dhamma를 이해하는 것이 곧 사회적 헌신의 삶으로 나아가는 길이고, 안팎으로 sati를 일상화하는 것이 곧 사회적 헌신의 삶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불교는 ‘깨달음의 길’이전에 본질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헌신하는 사회적 실천의 길’이기 때문이다. 깨달음 ․ 견성 ․ 돈오돈수는 이러한 헌신의 삶으로 나아가는 하나의 지적 훈련의 과정인 것이다. 그래서 근본불교에서는 ‘깨달아라’하지 않고 ‘헌신봉사하라’라고 하는 것이다. 나눔(dana, 布施)이 모든 수행의 알파 - 오메가가 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불교 성공의 비결은 무엇일까?
경이적인 초기불교운동의 성공의 비결은 무엇일까?
그 화려한 법문일까? 그 찬란한 깨달음일까? 그 초월적인 출가수행의 신비일까? 성도의 땅 보드가야 대탑 벽에는 이렇게 씌어져있다.

‘The brahman is not made by birth.'

고타마-부처님이 선포하고 추구한 사회변혁운동이 초기불교의 성공을 가능하게 한 결정적 조건인 것이다. 고타마-부처님과 초기Parisa들은 인도사회가 온존시켜온 모든 사회적 문제들을 문제 삼고, 많은 사람들의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고통을 문제 삼고, 보다 정의롭고 자유로운 사회의 실현을 위하여 모든 정성과 노력을 기울여 헌신하였다. 전쟁문제, 폭력문제, 정치적 억압문제, 동물희생문제, caste문제, 여성차별문제, 빈부갈등문제, 빈민문제, 질병문제, 소수 소외집단문제, 도덕성문제, 가치관 - 세계관의 문제 등 … 불교는 이 모든 문제들을 문제 삼고 그 해결을 추구하며 역동적으로 행동하였다. 이렇게 해서 초기불교는 변혁의 종교로서의 시대정신(時代精神)을 확립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시대정신이 되지 못하는 불교는 이미 불교가 아닐지 모른다. 이 시대의 중첩된 모구구조를 해결하는 데 실용되지 못하는 깨달음, 한소식, 구경각, 돈오돈수는 이미 화려한 한갓 박제품에 불과한 것인지 모른다. 현대 인도불교운동의 창시자 가운데 한 사람인 Ambedkar는 이렇게 논하고 있다.

‘The purpose of religion is to explain the origin of the world. But the purpose of the Dhamma is to reconstruct of the world.'

우리 시대 한국불교가 추구해야 될 시대적 과제는 무엇일까? 한 담론에서 논자는 이렇게 토로하고 있다.

‘불교가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시대정신에 맞는 리더십” 확보가 무엇보다 시급하고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실천이 뒷받침돼야 한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인도 사회에서 큰 스승으로 추앙받을 수 있었던 것은 교리가 좋아서라기 보다 사회적 실천을 하셨던 분이기 때문이다. 한국불교가 시대정신에 맞는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 좌우갈등(左右葛藤) ․ 빈부의 양극화 ․ 남북(南北)괴리문제를 해소시켜야 한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불교의 중도사상, 복지포교운동, 비폭력 민족화해정책 등의 방편을 펼쳐야 한다.’

Parisa 운동
황량한 들판과 격류를 내달리는 거친 헌신의 Parisa운동
전장의 코끼리같이, 사방에서 날라오는 화살을 맞으며, 수없이 삼보헌신으로 몸을 던지며, Dhamma를 전파하고 사회를 변화시켜가는 거친 헌신의 Parisa운동 -

바야흐로 한국불교는 이 역사적인 대장정으로 떠날 때가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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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제7회 학술대회
한국재가불교운동의 현황과 과제 /
일시 2009년 5월 30일(토) 오후 1시~6시
장소 부산대학교 성학관 1층 102호
주최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부산대 철학과
주관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부산불교지도자포럼
후원 범어사, 여여선원, 안국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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