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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글올린 게시글: 2015-08-26, (수) 12:59 pm 

가입일: 2015-01-01, (목) 10:13 am
전체글: 217
<1>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
삶을 통해서 어떤 의미에서, 어떤 관점에서 삶을 성찰해야 하는가?
어떠한 비전을 준비하여 새로운 출발을 결행해야 하는가?
살아간다는 것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묻지만 답변은 쉽지 않다.
왜냐면 삶은 기회인 동시에 도전이며, 기쁨이면서 슬픔이요, 사랑이면서 비극이요, 모험인 동시에 행운이며, 아름다움이면서 부끄러움이요, 소중하고 가치가 높으며, 아주 멋진 것이 삶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72억의 사람이 살고 있다. 그 많은 사람들은 저마다 각각 다른 현실(現實)을 배경으로 해서 세상에 태어난다.
부자의 아들로, 덕망과 높은 명예를 지니고 있는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는 사람도 있고,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지적인 투명성, 도덕적 진실성, 감성적 열정을 혼자 힘으로 엮어 나가는 사람도 있으며, 이것저것도 아닌 아주 애매한 사람으로 태어나 방황과 고난으로 한 생애를 엮어나가는 사람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마다 꿈꾸는 가상세계(假想世界)가 모두 다르다. 각박한 현실과 꿈꾸는 세계의 융합(融合)에 나타나는 증강현실(增强現實)도 역시 각각 다르기 때문에 삶이란 이런 것이라고 명료하게 전관적(全觀的)인 관점에서 통시적(通時的)인 답변을 내리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우주의 만물과 조상과 부모로부터 생명을 나누어 받아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는 삶을 아름답게 가꾸고자 노력하는 부피만큼, 자기가 맞이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자기의 삶이 전개될 현실의 깊이와 넓이를 측량하지 못한 채 삶을 펼쳐나가게 되는 경우, 터무니없는 어림셈을 그리다가 도로(徒勞)에 그치게 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실을 바로 알기 위해서 세상이 어떤 구조로 조성되어 있으며, 어떤 패턴으로 변환을 모색하는가를 반드시 알고 있어야만 한다. 세상을 알고 난 다음에는 자신의 삶을 개선해 나갈 수 있는 조건(條件)들을 하나하나 치밀하게 간추리면서, 보완할 것은 보완하고 개선할 것은 개선해야 되리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자기 앞의 세상을 깔보고 자기 마음대로 아무렇게 살아도 된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선 내적인 정신승화(精神昇華)와 더불어 외적인 조건개선(條件改善)이 병행돼야 한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신이라는 첫 기둥과 물질이라는 둘째 기둥을 튼튼하게 세우기 위해서는 (1)세계의 본질과 (2)나타난 현상을 명확하게 규명할 수 있어야만 한다.
다시 말하면, 17세기 이후부터 새로운 제도를 갖추어 나온 세상에 대한 앎이 없이는 높은 경지의 영혼과 풍요한 재료를 비축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르게 변환(變換)을 반복하는 21세기를 슬기롭게 살기 위해서는 세계의 본질과 현상을 명확하게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에 적응하면서, 높은 경지의 영혼과 삶에 필요한 외적인 조건개선을 이끌어 지속가능한 수준 높은 삶을 유지해 나가려면 우리는 현대에 이르러 재조명되는 모든 것을 정확하게 알아둘 필요가 있다.

<2>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잠시도 쉬지 않고 변화를 모색한다. 그러므로 우리들 중에 몇몇 사람은 눈을 부릅뜨고 변하는 세상의 맥락을 읽어내야 한다. 변화하는 세상의 맥락을 읽지 못하면 오늘의 세계를 리드하는 이론과 논리의 근간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우리의 삶에 가장 긴요한 것은 '앎'이다. 삶의 조건을 개선할 수 있는 주택이나 식량이나 의복이나 재화도 중요하지만, 실제 생활에 있어서 가장 긴요한 것은 '앎'이 될 것이다. 앎이 없으면 자신의 언행을 자유롭고 당당하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앎이 없으면 과거의 성찰과 미래의 비전이 동행하는 새로운 출발을 결행하여 인생을 빛나게 경영할 수 있는 길도 찾지 못하게 된다.

그 중 '앎'에 있어서 21세기를 리드하는 이론체제(理論體制)를 분별할 수 있는 앎은 매우 중요하다. 21세기를 리드하는 이론체제를 알기 위해서는 르네쌍스와 산업혁명은 물론 18세기부터 사회를 움직였던 학문체계(學問體系)를 일별(一瞥)해야 한다. 세계를 리드하는 이론체제와 사회를 리드하는 학문체계를 무시하고서는, 올바른 지성과 판단력을 갖출 수 없어 어리석은 언행을 반복하게 될 뿐이다.

세계를 리드하는 이론체제 중에서 세계관(世界觀)에 관한 '앎'은 매우 긴요하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세계관과 같은 패러다임을 유지하면서 실제적으로 사회를 잘 이끌수 있는 메카니즘이다.

세계에 관한 앎이 부족하면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 지적 투명성이 미약하여 사물을 바로 인식할 수 있는 관점을 갖출 수 없을 것이며, 사회를 움직이는 메카니즘의 내용을 모르면 사회를 리드하는 실질적 요소가 어떤 것인가를 가늠할 수 없게 되어 현실과 동떨어진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또한, 세계와 사회를 모두 모르면 바른 가치관과 바른 인생관을 정립할 수 없게 될 것이며, 과거의 성찰을 통한 미래의 비전을 상정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현실에 대한 설명능력을 갖출 수 없게 될 것이다.

우리는 세계와 사회를 잘 설명할 수 있는 훌륭한 설명능력을 갖추기 위하여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을 거치며 현대적인 교육과정을 이수해 왔다. 세계와 사회를 리드하는 장한 메카니즘을 교육시키려고 초등학교 과정부터 미국으로 유학까지 보낸다. 미국에서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6년, 대학 학부과정 4년, 대학원 석사과정 2년, 대학원 박사과정 3년, 무려 20여년에 달하는 시간을 투자하여 형설(螢雪)의 공을 쌓게 된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공부를 했음에도 세계와 사회를 훌륭한 설명능력으로 여유 있게 설명할 수 있는 밝은 눈들은 얼마나 될까요? 찾기 어렵다.

더구나 우리 불교계 현실은 어떤가. 불교 성직자 가운데 21세기를 리드하며 혼돈의 사회를 이끌고 향도해 나갈 수 있는 바른 메카니즘을 여유 있게 설명할 수 있는 인재가 과연 몇 사람이나 있을까요?

<3>
21세기로 들어서서, 우리 모두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우리의 삶에 가장 긴요한 세계관(世界觀)을 신(神)이 상정(想定)하지 않고, 인간이 상정(想定)했다는 사실의 발견이다. 사람이 세계관을 상정했다는 의미는 세계를 관조할 수 있는 눈 밝은 사람이 우리와 함께 어울려 사는 이 땅 위에 서서 세계를 관조한 후 그 모든 내용을 설명했다는 사실을 말한다.

우리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인간이 '하늘'이나 '절대자'를 앞에 내세운 후, 하늘이나 절대자의 이름을 원용하여 세계를 설명하고 해석했다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자기 손에 넣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절대적 권위를 신과 같은 특정한 절대자에게 부여한 후, 그와 같은 절대자의 배후에 서서 세계와 존재를 설명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어떻든, 인간이 절대자의 힘을 빌려 세계를 설명하고 장악할 수 있는 주체자(主體者)가 되었다는 것은, 인간이 절대적 존재로부터 어떠한 명령도 받지 않은 채, 자기 스스로 세계를 설명해 왔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것은 곧 인간이 자신의 의지로 세계를 설명하는 동시에 자기 의지로 자신의 삶을 이끌고 나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만물제관(萬物齊觀)이 가능한 인간이 스스로 존귀한 존재자로 우뚝 서서 세계를 장악하고 설명하게 되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긴 하나, 그러나 만물제관이 제대로 되지 못한 인간이기 때문에 세계에 관한 설명 내용이 시대의 사조와 역사의 변천에 따라 때때로 바뀌게 되는 단점을 갖고 왔다.

다시 말하면 전근대적(前近代的)인 앎의 내용과 현대적(現代的)인 앎의 내용이 달리 설명되어 같을 수 없는 과제로 나타나는 것이다.
앎의 내용이 달리 변천하는 이유는 쉼 없이 반복되는 세계적 변환과 국지적 변환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만물제관이 가능하다고 앞에 나서는 인간이 전체적 변환과 국지적 변환을 빠짐없이 전반에 걸쳐 함께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어렵기 때문인 것이다.

근대적 과학정신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신을 밀어내고 인간의 위치를 확고하게 다진 인간중심주의(人間中心主義)를 찬양하지만, 기실은 인간중심주의가 발호(跋扈)되기 이전부터 인간의 설명체계는 신을 인간의 뒤에 세우고 역사의 전면에 나서도록 체계화 했다. 그러므로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말은, 태초에 세계를 설명할 수 있는 관점과 논리를 갖춘 지적인 인간이 있었음을 시사(示唆)하는 내용이다.

<4>
세계관(世界觀)이라는 어휘는, 보여 지는 세계가 있고, 주관적 관점을 가지고 세계를 본 사람이 있음을 상기시킨다. 이것은 곧 세계를 볼 수 있는 안목을 갖춘 사람이 있으며, 보여 지는 세계가 따로 있음을 상념하게 된다. 세계관은 결국 세계를 볼 줄 아는 사람이 상정(想定)한 세계를 뜻한다. 따라서 세계관은 사람이 주관적 관점과 논리체계를 원용하여 세계를 설명한 구체적 체계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사람이 세계를 주관적 관점을 원용하여 직시하고, 그와 같은 주관적 관점을 기준으로 하여 체계적으로 세계를 설명한 내용이 세계관이라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세계관은 세계에 관한 "관점의 논리화(論理化)"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사람이 상정한 세계관은 주관인식을 완전히 벗고, 있는 그대로의 세계와 일치할 수 없다는 것을 시사(示唆)한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상정한 세계관은 있는 그대로의 객관 세계로부터 약간씩 벗어난 인간의 관점(觀點)일 수 있다는 뜻이다.

인간의 관점이 있는 그대로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의미의 내면에는 사람의 안목으로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보기 어렵다는 복선이 깔려 있다. 뿐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세계>와 별개의 세계, 즉 인간의 영혼의 능력에 의해서 상정된 <어림셈의 세계>가 될 수 있음을 뜻한다.

있는 그대로의 객관 세계를 완전하게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은 인간의 관점에 불확실성이 내포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관점은 있는 그대로의 세계와 서로 다른 주관적 관점에 의존하여 <어림셈의 세계>를 상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자신의 주관적 관점에 의존하여 상정한 세계관은 있는 그대로의 세계와 별개의 세계관이 될 수 있는 소지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사람이 상정한 세계에서의 모든 이론은 자연적으로 적용성의 한계를 갖게 된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지구촌에서 삶을 모색했던 모든 사람들은 자기의 주관적 관점을 중심으로 세계를 설명해왔다. 문제는 세계를 인식하는 주관적 관점의 불투명성(不透明性)이다. 왜냐하면 전체와 부분을 빠짐없이 볼 수 있는 통찰지(洞察知)를 갖추지 못한 사람의 관점이 투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적 투명성을 보장받지 못한 사람의 관점은 틀릴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일러 <어림셈>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현대물리학을 이끈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1901∼1976)와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1879∼1955)은 이를 다음과 같은 말로 언급한 바 있다.
"어림셈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틀릴 수 있으며, 사람이 마련한 모든 이론은 적용성의 한계를 갖게 된다."

<5>
세계에 대한 인간의 관점과 논리가 불투명하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우리는 세계의 기원(Origin)을 알고자 몸부림 한다. 그것을 알아야 세계와 존재에 관한 자기의 관점(觀點)을 정립할 수 있으며, 자기의 관점을 주축으로 하여 세계를 설명할 수 있는 이론과 논리를 체계적으로 정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지적인 투명성을 기하여 <어림셈>으로나마 만물제관(萬物齊觀)이 가능해지도록 자신의 안목을 높이려면 세계의 기원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세계의 기원을 언급한 사람은 많다. 우리가 주목하는 사람은 노덕(老德)과 공자와 석가모니와 아리스토텔레스가 된다.

우리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사람 중 노덕은 일생도(一生道), 이생삼(二生三), 삼생만물(三生萬物)이라고 세계의 기원을 언급했다. 그렇지만 처음에 나타난 도(道)를 우리 눈으로는 볼 수 없다. 두 번째 등장한 양성자 중성자 전자도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다. 세 번째 등장한 만물(萬物)도 역시 만물제관(萬物齊觀)이 어려운 사량분별(思量分別)로서는 측량하기가 쉽지 않다.

노덕에 의해 세계의 기원이 언급되어 있지만, 그 실체는 우리 육안으로 볼 수 없다는 점이 문제다. 우리의 육안으로 (1)도를 볼 수 없고 (2)양성자 중성자 전자도 볼 수 없다는 것은 일체 존재의 불확실성(不確實性)과 연관된다. 존재의 불확실성은 세계의 기원의 불확실성으로 연장된다. 따라서 세계의 명확한 기원을 얻기는 어려운 일이며, 세계를 상정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을 갖춘 사람만이 자신의 정신세계를 원용하여 사량하고 분별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도록 한다.

<6>
세계의 기원에 관한 가설이 있는데, 들리는 바로는 137억 년 전, 또는 45억 년 전, 빅뱅의 순간에 물질이 등장했다고 한다. 빅뱅의 순간에 무한한 에너지로부터 물질과 반물질이 일어나 서로 상쇄되는 찰나에 빛이 발생했으며, 빛으로 바뀌고 남은 것들이 서로가 서로의 성립에 도움이 되고자 원융회통(圓融會通)하는 순간에 만물(萬物)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세계의 근원에 관한 언급에는 빛으로 인하여 만물(萬物)이 있게 되었다는 추론이 첨가되고 있다. 따라서 만물제관(萬物齊觀)에 뜻을 둔 사람은 광명(光明)을 멀리할 수 없음은 물론 광명과 동행하는 정신세계를 유현하게 가꾸지 않을 수 없을 듯하다. 그리고 자기 스스로 정신[靈魂]의 경지를 승화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통찰지(洞察知)를 원용하여 일체 존재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성찰하는 동시에 전체와 부분의 커넥션을 탐구하는 길 밖에 다른 길이 없을 듯하다.

<7>
지구는 우주 공간에 떠 있는 무수한 별들 가운데 하나인데, 이것의 둘레는 40192km이며, 잠시도 쉬지 않고 108000km의 시속(時速)으로 공전궤도를 질주한다고 한다. 이러한 지구에는 오대양(五大洋) 육대주(六大州)가 있고, 여러 대륙의 자연환경과 해양에서 다양한 민족이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원용하여 제각기 값진 삶을 향유(享有)한다는 함의를 갖고 있기 때문에 "지구촌(地球村)"이라 이름하고 있다.

지구촌에서 삶을 모색하는 인류(人類)는 문자와 상상력을 원용(援用)하여 눈에 보이는 세계를 설명하는 동시에 눈에 보이지 않는 가상세계까지 상정하여 오늘과 내일을 기획하고 설계하고 있다. 오늘에 이르러서는 <가상세계융합컨퍼런스>를 만들어 인류 문화를 화려하게 이끌어 나가고 있는 때다.

산업혁명과 동시에 기계론(機械論)과 환원론(還元論)을 상정(想定)하여 세계를 설명하기 시작한 인류는 패러다임과 과학기술을 일으켜 지구촌을 문명촌(文明村)으로 만들었지만, 앞으로는 어떠한 이데올로기를 내세워, 얼마나 찬란한 지구촌으로 만들지는 예측으로 맴도는 과제일 뿐이다.

<8>
삶의 세계 구조의 변환을 가늠하기 위해 (1)취프의 공묘(孔廟)와 (2)바쿠의 이체리세해르와 (3)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와 (4)로마의 포로로마노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공자와 짜라투스트라와 플라톤과 카이사르를 알게 됨으로써 이념의 세계와 형상의 세계를 아우르는 건축(建築)과 도시(都市)를 관류하는 인문(人文)의 깊이를 간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고대와 근세와 현대를 맥맥히 이어주는 인문과 건축의 맥락이 오늘 날의 취프신도시, 바쿠신도시, 알렉산드리아도서관, 밀라노디자인시티를 휘감고 있기 때문이다.

◐공자의 취프와 공묘와 취프신도시
B.C 5세기경 위대한 사상가이며 정치가, 교육자였던 공자의 사당 및 고택으로 산동성 곡부현에 있다. 사원은 B.C 478년에 공자를 기려 세웠으나 그 후 파괴되어 수세기에 걸쳐 재건되어 현재 100여개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묘지에는 공자의 무덤은 물론 그의 후손 10만 명의 묘가 포함되어 있다. 공가(孔家)의 집들은 거대한 귀족저택을 이루고 있으며 152동의 건물이 남아 있다.
취프의 공자 기념물군은 2000년 이상 중국 역대 황제들의 봉헌을 받은 뛰어난 예술적, 역사적 특징을 유지하고 있다.

◐짜라투스트라의 바쿠와 이체리세헤르와 바쿠신도시
바쿠는 아제르바이잔의 수도이다. 카스피 해 서쪽에 뻗어 있는 야프셰론 반도에 위치하고, 시가지는 반도 남쪽의 바쿠 만에 접한 항구 도시다. 59의 행정구역으로 분할되어 있으며 2003년 시점의 총인구는 182만 9천 명이었다. 아제르바이잔 최대의 도시인 점과 동시에 남 카프카스 지역 대도시이다.
대규모 유전 지대가 자리하고 있으며, 제정 러시아시대부터 석유의 생산지로 발전해 왔다.

◐플라톤의 아테네와 아크로폴리스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아테네는 그리스 수도이며 아티카주의 주도지다. 인구는 74만 8110명(1991)에 지나지 않는다. 아티카반도 중앙의 살로니카만에 면한 평야부에 있다. 동쪽은 히메토스산, 북동쪽은 파르네스산, 서쪽은 아이갈레오스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케피소스강과 그 지류 일리소스강 사이에 있다. 그리스 제1의 도시로서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다. 시내에는 아크로폴리스(해발고도 156m)를 중심으로 하여 리카베토스(277m)·프니크스(109m) 등 몇 개의 작은 언덕이 있다.
고대에는 아크로폴리스 주변, 특히 북쪽이 시의 중심이었다. 1834년 그리스의 수도가 되기 이전에는 인구 5000정도의 외진 마을이었는데 그해 이후 국왕 오토1세의 명에 따라 바바리아 출신의 건축가에 의해 수도로서의 체재가 정비되기 시작하였다. 그 뒤 공화국정부의 수도로서 발전을 거듭하여 지금은 대도시권을 형성하며 또한 신시가 주택지구가 건설되었다. 옛 시가지의 모습은 아크로폴리스 북쪽 플라카지구에 남아 있다. 시의 남쪽 12㎞에 헬레니콘국제공항이 있어 그리스의 주요 도시와 정기 항공편으로 직결된다.
시의 북서부 라리사 역과 펠로폰네소스 역에서는 남북으로 통하는 철도와 버스가 발착한다. 오모니아 역으로부터의 철도는 피레에프스 항에 이른다. 오모니아광장과 의사당에 면한 신타그마광장 및 이 둘을 연결하는 스타디오우로와 대학로 주변이 중심부로 그곳에는 호텔이나 상점이 즐비하다. 아테네대학과 그리스국립도서관을 비롯하여 서유럽 여러 나라의 고고학연구소 등과 같은 문화시설들이 모여 있다. 파르테논신전 등 고대 유적이 많고 고고학박물관과 베나키박물관 등도 있어 관광객이 모여든다. 외항 피레에프스는 그리스 제1의 항구이며, 이를 포함한 아테네 대도시권에서는 제철 섬유 의류 기계 화학 식품 등 여러 공업이 발달 되었다.

◐카이사르의 로마와 포로로마노와 밀라노디자인시티
로마는 이탈리아의 수도이다. 이탈리아 중부 라치오자치주의 주도이다. 면적은 1507.6㎢, 인구 265만 5970명. 이탈리아 도시 중에서 면적이 가장 넓고, 인구밀도는 1904명/㎢으로 이탈리아에서 제1위이다. 시내에 바티칸시국(市國)이 있으며 가톨릭교의 중심지로 고대 로마시대부터 계속되는 오랜 역사를 지닌 도시다. 지중해의 일부를 이루는 티레니아해로 흐르는 테베레강이 시내를 가로지르며, 시역(市域)은 하구에서 약 25㎞ 상류의 평야와 구릉지대에 펼쳐져 있다. 로마 발상지인 테베레강 왼쪽 연안의 구시가는 캄피돌리오, 팔라티노, 아벤티노, 에스퀼리노, 퀴리날레, 첼리오, 비미날레 등의 해발고도 50m 내외의 7개의 언덕으로 둘러싸인 홍적대지(洪積臺地)로 된 구릉에 위치한다. 최고지점은 몬테마리오의 139m, 동쪽으로 아펜니노산맥, 북동쪽으로 사비네 언덕, 동부에 알바노 언덕을 끼고 있다. 기후는 지중해성이므로 온난하며, 여름의 기온은 높으나 습도는 낮다.

2015.8.25
운정 김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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