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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글 제목: 사량분별과 연기법
전체글올린 게시글: 2015-03-12, (목) 10:19 am 

가입일: 2015-01-01, (목) 10:13 am
전체글: 217
불교닷컴 [연재] 강병균 교수의 \'환망공상과 기이한 세상
사량분별과 연기법 2014.08.11

인류등정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 사량분별이다. 스님들은 툭하면 사량분별이라는 말을 쓴다. 기독교인들이 말문이 막힐 때 신의 뜻이라고 억지를 부리는 것처럼, 스님들은 설명할 길이 막히거나 이치에 어긋난다는 비평을 받으면 ‘사량분별’을 하지 말라고 하면서 이 말을 남발한다. 설명할 수 있는 것은 거침없이 하면서도, 꼭 막히면 전가의 보도처럼 이 말을 꺼낸다.
스님 A가 보기에 (설명할 수 없는, 그래서 설명하면) 사량분별인 것을, 스님 B는 거침없이 잘도 설명한다. 물론, 당연히 그 역도 발생한다. 이보다 더한 모순이 있을까?
그런데 사량분별이란 무엇일까? 연기(적인 관계)를 못 보는 것을 사량분별(思量分別)이라 하는 것이다. 세상(유정물 무정물 정신적•물질적 현상)은 그 탄생과 소멸과 작동이 연기법에 의해서 된다는 것을 모르고, 신 등의 초월적인 존재에 의해서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사량분별이다.
그래서 ‘사량분별을 꺼내들고, 연기적인 설명을 범주적으로 부인(categorically deny)하는 것’이 바로 사량분별이다!
사량분별은 결코 ‘신비적인, 초월적인, 또는 직관적인 체험의 부재’나 ‘신비적인, 초월적인, 또는 직관적인 이해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연기는 서로 '연결'되어 있고 '의지'하는 것이며, 분별은 '단절'되어 있고 ‘의지하지 않는 것’이다. 사물과 현상이 연기적인 관계로 생성되는 것을 거꾸로 ‘창조주 신의 뜻’으로 이해하여, 이 세상과 신을 나누어 분리(분별 分別)하여 보는(사량 思量) 것을 유신론적 사량분별이라고 한다. 몸과 마음을 분리하여 서로 별개의 것 또는 주종관계라고 생각하는 것을 유심론적 사량분별이라고 한다. 마음이 몸의 주인이라는 견해이다.
그와 반대로 ‘몸과 마음은 진화론적으로 같은 기원을 가지고 있으며, 서로 연기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연기적인 사고이며 연기법이다. 진화론이야말로 연기법의 진수이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면서 변화해왔는가를 설명해 주는 경천동지할(하늘이 놀라고 땅이 부르르 떨) 이론이다.
과학적인 업적 중에 팔만대장경에 새로 들어갈 내용이 있다면 단연코 진화론을 꼽을 수 있다. 부처님의 연기법과 다윈의 진화론은 정확히 쌍대적인 관계이다. 둘 다 무아론이자 무상관(無常觀)이고 연기법이다. 구태여 구분하자면, 하나는 정신적인 무아론(무상관, 연기법)이요, 다른 하나는 물질적인 무아론(무상관, 연기법)이다.
우울증에 걸리면 리튬을 처방하면 치료가 된다. 정신병은 많은 경우 약물로 치료가 가능하다. 즉 물질이 정신(마음)에 작용하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연기법이다. 예전에는 뇌가 어떤 기능을 하는지 전혀 몰랐으므로, ‘정신(마음)은 물질(뇌와 육체)과 기원과 기능에 있어서 독립’이라는 망상을 했다. (그런데 풍을 맞아 뇌의 핏줄이 터지면 인식기능이 사라지고 자식도 못 알아본다. 정신•육체 이원론자들은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하실 것인가? 뇌가 마음에 영향을 끼치는 다른 예로 간질이 있다. 옛날에는 간질을 신성한 병이라 생각했다. 역사상 다수의 교주들이 간질병을 앓았다는 설득력 있는 설도 있다. 간질발작은 뇌의 특정부분이 생체전기적으로 과도하게 흥분하는 현상으로 밝혀지고 있으며, 그 부분을 제거하면 간질증세가 사라진다. 일부 간질은 유전되기도 한다. 학자들은 유전공학이 발달하면 해당유전자를 제거함으로써 간질을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즉 유전공학으로 마음을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정신•육체 이원론자들은 이 현상은 또 어떻게 설명하실 것인가?)
그래서 마음이 심장에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망상을 했으며 지금도 인도인들은 대부분이 그리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사량분별이다.
원시적인 사량분별에 찌든 사람들이 오히려, 사량분별을 벗어난 사람들을 공격하는 기막힌 일이 벌어지고 있다. 고대 구석기시대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북경원인과 크로마뇽인의 화석이나 미라가 돌도끼 돌칼 돌화살촉을 들고일어나 핵폭탄을 소지한 21세기 문명인을 공격하는 꼴이다. 길 한가운데 서서 수레를 막아선 당랑이 아닐 수 없다.
첨부파일:
파일 댓글: ▲ (좌로부터) ①헬리 혜성. 1986.3.8 긴 꼬리가 수증기이다 ②중앙상단에 헬리 혜성이 보인다. 헬리 혜성은 예수탄생 4년 전에 나타난 바 있다. ③태양계 행성 궤도도. 가장 큰 원이 명왕성 궤도. 좁고 긴 타원형 궤도가 헬리 혜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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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장미꽃조차 우주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연기법이다. 그렇지 않고 우주의 각각의 행성이 분리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사량분별이다. 지구의 물의 기원으로 혹성유래설이 있다. 먼 옛날에 혹성들이 수없이 원시지구에 충돌하였는데 혹성의 물이 지구로 전달되었다는 설이다. (예를 들어 혜성의 구성물질은 대부분이 물이다. 혜성의 긴 하얀 꼬리는 수증기이다.)
만약 그 가설이 맞는다면 지구의 물은 혹성에서 온 것이고, 따라서 (장미의 물도 물이므로) 장미는 다른 행성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며, 물이 70%나 차지하는 우리(몸)도 다른 행성과 연결되어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한다. 촉촉한 장미꽃잎을 볼 때마다 저 먼 우주의 다른 쪽을 상상해보시기 바란다. 우주공간을 세로지르고 가로질러 그 먼 길을 달려와 우리 마음을 설레게 하는 장미꽃의 신비를. 무슨 연유로 그리할까 신비롭지 않을 수 없다.
과학과 종교가 단절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량분별이다. ‘종교는 과학을 초월한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사량분별이다. 단절되지 않은 것을 단절되어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량분별이다. ‘과학이 뭐라 하건 간에, 설사 과학에 위배된다 하더라도 종교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바로 사량분별이다. 이런 생각은 역사상 최대의 사량분별이자 대망상이다.
또 다른 예를 들면, 빅뱅이론에 의하면 우주는 150억 년 전에는 1mm도 안 되는 응축된 상태로 하나였다. 그 티끌보다 작은 점이 대폭발을 하여서 우주가 탄생한 것이므로, 우주는 다 같은 물질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현대 분광학에 의해서 다른 은하와 별과 행성의 구성물질을 알아냈다. 놀랍지 않은가? 더 놀라운 것은 그 구성물질들이 우리 지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즉 우주는 하나인 것이다. 옛날에는 이러한 사실을 꿈에도 알 수가 없었으므로, 여러 가지 숱한 대망상(大妄想)이 나온 것이다. 에덴동산이 나오고, 하나님의 창조가 나오고, 길가메시의 신화가 나오고, 원시천존(元始天尊)이 나오고, 아간냐경처럼 천인들이 타락하여 지상에 나타난 것처럼 설명을 하였다. 진화론은 꿈에도 몰랐다. 그래서 온갖 괴이한 이론이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경전을 무조건 다 믿는 것은 광신이다. 당신이 맹목적•광신적으로 믿으면 성직자들의 먹이로 전락한다. 이미 당신은 결정을 한 것이다. 그 경전에서 바위로 메주를 쑤기로 했다면 무조건 믿기로. 눈앞에 드러난, 바위로 메주를 쑬 수 없다는, 명명백백한 반대증거 앞에서도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광신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 경전을 믿기로 한 것은 당신의 의지이자 결정이지 다른 사람의 의지나 결정이 아니다. 그렇지 않은가? 수십억 명의 수많은 다른 사람들은 다른 종교를 믿기로 하였지만, 그들과 역행해서 그 종교를 믿기로 한 것 역시 당신의 의지이자 결정이다. 그렇지 않은가? 만약 그렇다면,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므로, 모든 사람들의 믿음(특히 광신적인)은 다 평등한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의 믿음을 반성적으로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 세상이 환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것은 연기법에 의해서 서로 관계를 맺고 있으므로, 세상은 문자 그대로 환상인 것은 아니다. 만약 그러하다면, 모든 것은 영화자막속의 등장인물들처럼 서로 단절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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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댓글: ▲ (좌로부터) ①아마존 원시림의 석기문명의 야노마미족. 흥미롭게도 이들이 한민족이라는 설이 있다. ②뉴기니 석기문명의 원시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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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 환상이라는 의미는 상주불변하는 실체가 없다는 의미에서 환상이지, 결코 ‘문자 그대로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로서의 환상이 아니다.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이건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이건 간에 서로 연기관계로 얽혀있는 것은 사실이다. 예전 사람들은 꿈, (뇌가 만들어내는) 환상, 물거품, 그림자, 사막의 신기루, 결로현상이나 번개가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를 전혀 알지 못했다. 알 수가 없지 않은가? 만약 뇌의 진화에 상관없이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원숭이,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 멍멍이, 그리고 지렁이도 다 알아야 할 것이다. 크로마뇽인이나 북경원인이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어떠한가? 멀리 갈 것도 없다. 아직도 석기시대에 살고 있는 뉴기니, 오스트레일리아, 아마존, 아프리카 원시인들은 어떠한가? 그들은 종교적인 진리는 고사하고 구구셈도 없다. 수도 없다. 하나 둘 그다음에 셈은 없거나 ‘많다’이다. 셋이건 넷이건 100이건 다 그냥 ‘많다’이다. 어느 정도 세는 부족일지라도 수를 세려면, 문자 그대로 손가락 발가락을 다 이용한다. 땀을 뻘뻘 흘리며 이용한다.
불교에서 유위법을 환상이라고 하는 것은, 연기에 의해 즉 인연에 의해 생하고, 잠시 머물다, 인연에 의해 멸하므로 환상이라고 하는 것이다. 만약 여기 더해서, ‘현상의 배후에 있는 실체’로서, 주인공이나 참나나 진아나 여래장 등을 도입하면, 이것은 부처님의 근본 뜻을 꿈에도 보지 못한 외도 아트만 사상과 다를 바가 없다.
주인공은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의 뜻으로서의 ‘주체적이고 진실한 인간상’을 상징하는 것이지, 불변의 어떤 놈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다. 참나나 진아가 불변의 실체로서 현실세계와 유리되어 있다면, 무정물이나 다름이 없다. 당신이 참나나 진아이고, 참나나 진아는 사바세계의 고통을 겪는 것이 아니라면 수도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당신은 참나나 진아가 조정하는 허깨비인가? 이 다양한 세상과 고락을 경험하지 못하는 사물이 어찌 이상향이 될 수 있겠는가? 종교와 철학은 살아있는 자의 것이지, 죽은 자나 무정물의 것이 아니다. 세상은 모두, 살아있는 자의 몫이다. 고락과 해탈이 만드는 하나의 거대한 서사시가 우리 삶이지, 고락이 없는 해탈만이 의미 있는 삶은 아니다. 지난겨울의 혹독한 추위가 있었기에, 이 봄의 매화향기가 더욱 짙은 것이다.
어리석은 자들은 ‘사량분별을 여읜다’는 것을 마치 ‘생각을 안 하고(멈추거나 끊고) 신비한 경험을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부처님은 재가제자들에게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세속적으로 일러주셨다. 그럼 부처님도 (당신들이 혐오하고 폄하하는) 사량분별을 한 것인가? 부처님은 ‘오온(몸과 마음)이 무상이고 고이고 무아라는 것(五蘊卽無常苦無我)’과 사성제와 팔정도를 분석적으로 설명하셨다. (콘단야는 이 분석적인 설명을 듣고 최초의 아라한이 되었다.) 그럼 부처님도 사량분별을 한 것인가?
현대과학은 환원주의적인 성격이 강하다. 기본적인 성질을 갖는 물리학적 법칙(중력 전자기력 등을 설명하는)이나 (분자 원자 소립자 등의)요소로 환원하여 탐구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상호관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소립자들은 문자 그대로 끝없는 상호관계를 한다. 보통 하나의 반응은 0.000000001초도, 즉 나노초도 지속되지 않는다. 즉 1초에도 10억 번이나 수없이 서로 관계를 맺는다는 말이다.)
부처님은 우리 심신(心身 마음과 몸)을 5가지 구성요소인 색, 수, 상, 행, 식으로 해체한 다음 그 어느 구성요소에도 ‘아(我 atman)’가 없음을 논증하셨다. 이 점에서, 부처님이 ‘왜 모든 것이 무아인가’를 설명하신 방법은 바로, 소위 신비주의자들이 공격하는, 사량분별인 것이다. 세상의 본모습이 우리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로서의) 사량분별을 넘어서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과학이 아직 충분히 발달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그게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지만, ‘뭔가’ 있기는 하다. 이것이 옛 수행자들의 딜레마였고 표현할 길이 없었다. 사실은 엄밀한 의미에서는 알지 못한 것이다. 직관은 옳았으나 그 근거를 명확히 몰랐던 것이다. 직관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므로 직관을 맹목적으로 추종할 이유는 없으나, 다행이 불교적 근본교리는 현대과학에 의해서 그 타당성이 증명되고 있다.
부처님 말씀(불경에서 그렇다고 주장하는)이라서 무조건 옳은 것이 아니라 현대과학과(에) 부합하고 위배되지 않으므로 옳은 것이다. 부처님 말씀일지라도 그릇된 것은 그릇된 것이다. 부처님은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격자이자 지혜로운 이이다. 하지만 우리가 부처님을 존경하는 것은, 부처님이 완벽하여 전혀 잘못된 점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렇지 않을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존경하는 것이다(다행히 아직 그렇다는 증거는 없다. 문제는 불경의 내용이 사안에 따라 가탁假託인지 불설인지, 즉 제자들의 생각인지 부처님의 생각인지 알기 힘들다는 점이다).
사랑에 빠진 연인은 서로 상대방이 이상적인 이성으로 보이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은 정말 사랑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이다. 사랑에 빠져보지 않은 사람은 아직도 사랑에 대한 환상에 빠져있어서, 벌거벗은 진실을 알 길이 없다. 그래서 진실은 체험을 통해서 그 벗은 몸을 드러낸다(體蘆眞相). 진정한 사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다.
산삼 도라지도 아니고 오래된 것이면 무조건 옳다는 법이 있는가? 예를 들어 늙은 사람은 배우자로서는 인기가 없다. 늙은 오이도 인기가 없다. 늙은 미나리는 정말 인기가 없다. 그러므로 오래된 책에 쓰인 것이라고 해서 교조적으로 무조건 믿을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다. 오래된 것은 다른 용도가 있다. 지혜의 보고(寶庫), 미래의 거울이나 과거의 영광, 또는 골동품으로서의 쓰임이 있다.
불교인들은 소원성취를 위해서 기도를 하지만 기도는 연기법이 아니다. 왜냐하면 정말 심각한 사태가 발생할 때 사람들이 의지하는 것은 인과법이지 기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불이나면 소화기를 꺼내들지, 그리하지 않고 신(이나 관세음보살)에게 불을 꺼달라고 기도하는 자는 없을 것이다. 소화기로 불을 끄는 것은 인과법이지만 기도는 인과법이 아니다. 자기 아이가 물에 빠지면 바로 물에 뛰어들지, 그리하지 않고 신(이나 관세음보살)에게 구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을 것이다. 수영을 할 줄 아는 사람은 절대 기도부터 하지 않을 것이다. 고3이라면 수능에 대비해서 공부를 하지, 공부는 하지 않고 그 시간에 신(이나 관세음보살)에게 잘 보게 해달라고 기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데이트에 앞서서 양치질을 하지, 그리하지는 않으면서 신에게 구취(口臭 입내 입냄새)가 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전에도 없고 지금도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것이다. 그런 (성향의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진화과정에서 짝을 얻지 못해 이미 오래전에 멸종했기 때문이다. 설사 새로 생겨도 얼마 못 버티고 곧 멸종할 것이다. 아무리 독실한 신자일지라도 전쟁에 나갈 때 갑옷을 입지, 그리하지 않고 신(이나 관세음보살)에게 칼이나 창이나 화살이 자기 몸을 통과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은 없다.
불교적으로 말하자면, 연기법과 인과법은 가깝고 신, 관세음보살, 염라대왕과 명부 시왕은 멀다. 악인을 벌함에 있어서, (세속)법은 가까우나 (신의)주먹은 멀다. 그래서 인간사회에 소송•고발이 난무하는 것이다. 특히, 대한민국, 미국, 인도 등, 신을 믿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일수록 더 그러하다.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신의 직무태만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자기의 시끄러운 기도소리로 신을 깨우려는 의도이다. 진실로 (영적으로 볼 때) 천국은 멀고 지옥은 가깝다.
인간이 달리 할 방법이 없을 때 인과의 냉정한 법칙이 주는 과도한 정신적인 짐을 덜기 위해서, 즉 뇌에 걸린 과부하를 처리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기도이다. (뇌의 활동은 전기화학적이므로 전기적인 부하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 일종의 향정신성 (정신)약품이다. 항인과스트레스약 또는 항인과성과부하(抗因果性過負荷)약이다. 그래서 신은 변경에 존재한다. 즉, 우리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의 변경에 존재한다. 절대로 그 너머도 아니고 그 안도 아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신에게 맡기고 무사태평인 사람은 없으며(이것은 ‘신을 믿는다는 인간조차 사실은 신을 믿지 않는다’는 결정적인 증거이다. 특히 잘할 수 있는 일일수록 그렇다. 그러니 자기를 믿지 신을 믿는 것이 아니다. 신은 잘 안 될 경우를 대비한 보험일 뿐이다), 인과는 냉정하기 이를 데 없다. 일어나야 할 일이 안 일어난 적도 없지만,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적도 없다. 잘라진 손가락이 저절로 붙는다든가, 항공기 사건이나 선박사건으로 공중분해 되거나 익사한 사람들이 다시 살아난 예도 없다. 다 썩어서 뼈만 남은 사람이 부활한 예도 없다. 기독교 신약에 예수가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순간 예루살렘의 묘지(모두 돌로 만들어져 있다)들이 열리고 시체들이 걸어 다녔다고 적혀있는데(뼈만 남은 시체조차), 무슨 좀비영화도 아니고 그런 말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설사 독실한 기독교신자라고 해도 그냥 비유적인 말이라고 얼버무릴 것이다.
현상에 대한 대응은 우리 마음의 작용이므로, 어떤 대응을 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一切唯心造). 우리 마음을 자비, 사랑, 관용, 인욕, 지혜, 그리고 평정으로 인도하고 유지하는 것은 모두 우리 의지이다. 이것이 신통력이지, 신통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행복과 불행이 우리마음(먹기)에 달려있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닌가?
그리고 그런 마음을 내는 것은, 참나나 진아(眞我)가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자리의 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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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균 : 서울대 수학학사ㆍ석사, 미국 아이오와대 수학박사. 포항공대 교수(1987~). 포항공대 전 교수평의회 의장. 전 대학평의원회 의장. 대학시절 룸비니 수년간 참가. 30년간 매일 채식과 참선을 해 옴. 전 조계종 종정 혜암 스님 문하에서 철야정진 수년간 참가. 26년 전 백련암에서 3천배 후 성철 스님으로부터 법명을 받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며, 가장 위대한 발견은 무아사상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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