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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글 제목: 선과 정신의학
전체글올린 게시글: 2017-03-27, (월) 4:06 am 

가입일: 2015-01-01, (목) 10:13 am
전체글: 142
여는 글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은 무한 경쟁시대에 살고 있다. 하루하루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이웃마저도 옛날의 그 정겨운 이웃이 아니다. 다만 경쟁의 대상이요 이용의 대상일 뿐이다. 실로 차고 메마른 시대다. 특히 오늘의 첨단화된 정보화 통신시대는 불꽃 튀는 정보경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허덕이게 한다. 진정 이시대야말로 스트레스와 노이로제의 시대인 것이다. (사실 인간은 죽는 날이나 되어야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끝날 것이다) 이것을 뒷받침이나 하듯 일상의 약품소모 중에서도 신경 안정제의 양이 놀라울 정도로 증가 하고 있다고 한다. 동시에 약물의 중독성(간과 신장에 손상이 오거나 혹은 안면근육이 떨림이 옴)과 습관성의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으나 이렇다 할 무슨 방법이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언제부터인가 세계적으로 정신의학계에서는 정신안정과 심신이완에 탁월한 잠재력이 있다는 동양의 선불교에 대하여 기대를 갖고 해결책을 연구하게 되었다.

고색 잠긴 동양의 선법(禪法)은 이때에 만나지게 되니 마침내 동양의 선사상과 서양의 정신의학이 손을 잡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집고 넘어가야할 것은 좌선은 결코 초월이나 자기 최면을 꾀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고요하게 안정된 마음 상태를 계속 유지시켜 주며, 자신이 의도하는 하나의 대상에 온 마음이 집중되도록 해준다. 배금주의와 상업주의에 물든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흥분, 충동, 그리고 관능적인 쾌락에 온통 심신을 내맡기고 있는데, 이러한 것은 심신의 모든 에너지를 아주 빨리 탕진시켜서 우리의 몸과 마음의 평형은 완전히 파괴되어버리고 만다. 그러나 선(禪)은 에너지의 이러한 과다 소비를 억제하는 한편, 어떠한 외적 충동 속에서도 평형 상태가 유지될 수 있도록 우리의 정신력을 굳건하게 해준다. 필자는 그동안의 참선수행의 체험과 몇몇 정신과학자들의 견해를 참고하여 현대인이 격고 있는 마음의 스트레스와 정서불안 우울증 등 정신적인 문제들을 해소할 수 있는 방편으로써 또한 문제들의 예방적 차원에서 참선수행법을 실용하고자 한다. 참선수행은 현대인 누구나 정신건강에 큰 도움을 얻게 될 것이다.

펴는 글

1. 한국의 전통선

한국의 선은 신라 도의국사(道義國師)로부터 시작이 된다. 국사의 성은 왕씨로 북한군(北漢郡)에서 태어났으며 스님의 모친이 임신한지 39개월만에 낳았다. 구산선문의 하나인 가지산파의 원적으로 국사의 법손 체칭이 860년(신라37대 헌안왕 4년) 보림사를 열었다. 국사는 784년 선덕왕 5년에 입당하여 달마대사의 7대 법손인 마조도일 선사의 제자인 서당지장(西堂智藏)화상에게 처음 선법을 받아 821년 헌덕왕 13년에 돌아오니 실로 37년만의 귀국이다. 도의국사는 당시의 상황이 교학(敎學)만 성행했던 시기로 아직 선법을 펼 때가 아님을 알고 북악(현 설악산)의 진전사에서 잠거하다가 제자 염거(廉居 ?-840)에게 선법을 전하고 입적한다. 그 후 홍척국사가 809년 선덕왕 때 입당하여 같은 지장선사의 심법을 증득하여 826년 흥덕왕 때 돌아오는 등 신라 말과 고려 초기에 당나라로 유학한 구법승들에 의하여 선법을 받아와서 구산선문을 열게 된다.

(1) 구산선문(九山禪門)
홍척국사 이후로 개산된 구산선문은 다음과 같다.

① 실상사 ㅡ전북 남원군 실상사.
실상사는 신라 42대 흥덕왕 3년(828년) 증각국사 홍척이 개산하였다. 시호는 홍직, 탑호는 응적, 실상화상 남한조사라고 하며, 41대 헌덕왕 때 입당하여 마조의제자 서당지장(西堂智藏 735-815)에게 심인(心印)을 전해 받아 826년 귀국하였다. 국사는 흥덕왕과 선강태자의 도움으로 지리산 실상사를 창건하게 된다. 그의 문하에 천여 명의 제자가 있으며 가장 뛰어난 제자는 수철이었다.

② 가지산 ㅡ전남 장흥군 보림사.
보림사는 860년(47대 헌안왕 4년) 도의국사의 법손 체칭이 개산했다. 가지산파의 개산조인 원적국사의 휘는 도의이고 성은 왕씨로써 북한군(北漢郡 태어났으며 임신한지 39개월만에 낳았다. 선덕왕 5년(784) 당나라에 들어가 서당지장에게 선법을 받아 821년 귀국했다. 그리고 도의의 법손인 체칭은 공주사람이다. 희강왕 2년에 중국에 들어가 여러 선지식을 찾아보고, 도의국사의 가르침보다 지나치는 것이 없으므로 다시 신라로 귀국, 헌안왕의 청으로 가지산에 내려가 도의국사를 개산조로 모시어 보림사를 열었다.

③ 사굴산 ㅡ강원도 강릉 묘정면 굴산사.
굴산사는 847년(46대 문성왕 9년) 통효국사 범일(810-889)이 개산하였다. 국사의 성은 김씨, 휘는 범일, 계림의 호족이다. 스님의 어머니가 해를 받는 꿈을 꾸고 13개월만에 태어났다. 15세에 출가하여 20세에 구족계를 받았고, 낙산사에 머물다가, 831년 당나라로 유학하여 처음엔 명주 개국사에서 공부하였다. 여러 해 동안 중국 총림에서 머무르다가 염관 제안대사의 법을 이었다.

④ 동리산 ㅡ전남 곡성군 태안사.
태안사는 839년 적인국사 혜철이 개산했다. 스님은 경주출신으로 성은 박씨, 자는 체공, 휘는 혜철, 탑호는 조륜청정이다. 어려서 출가하여 22세 때 비구계를 받았다. 율과 선을 함께 닦다가, 뜻을 세우고 814년(41대 헌덕왕 6년) 당나라에 들어가서, 서당지장 선사를 찾아보니 그가 법기임을 알고 비밀리에 심인(心印)을 전하여 주었다. 국사의 제자중에 도선이 가장 유명하며 고려의 왕건을 도왔고 후일에 국사가 되었다.

⑤ 성주사 ㅡ충남 보령 성주사.
성주사는 847년 대랑혜국사 무염이 개산했다. 무염스님(801-888)은 서라벌 사람으로 성은 김씨, 신라 무열왕 8세손이다. 12세 때 출가해 설산 오색석사 법성화상 밑에서 공부했고, 부석사 석징대사에게 화엄경을 배웠다. 821년(헌덕왕 13년) 당나라에 들어가 마곡 보철화상 밑에서 지성으로 수신하며 남이 어려워하는 일은 싫어함이 없이 도맡아 실천하였다. 하루는 마곡스님이 조용히 불러 문답을 하니 막힘이 없었다. 드디어 마곡의 심인을 전해 받았다. 문성왕 7년(846)에 신라로 돌아와서, 847년 왕자 흔의 간청으로 성주사에 머물며 40년 동안 교화하였다.

⑥ 사자산 ㅡ강원도 영월군 흥영사.
흥영사는 철감국사 도윤(798-868)이 개산했다. 국사의 속성은 박씨, 호는 쌍봉, 황해도 봉산군 사람이다. 18세에 출가하여 귀산사에서 화엄경을 공부했다. 825년 중원으로 건너가 남전 보원선사를 찾아가니, 국사를 처음 보자 매우 기뻐하며 오가(吾家)의 법이 해동으로 흘러간다고 칭찬했다. 마침내 심인을 얻어 847년에 귀국하였다.

⑦ 회양산 ㅡ경북 문경군 봉암사.
봉암사는 879년(49대 헌강왕 5년) 지증국사 도헌(824-882)이 개산했다. 대사의 성은 김씨, 호는 도헌, 자는 지증, 탑호는 적조, 신라 서라벌 사람이다. 그의 모친이 잉태한지 사백일 만에, 사월초팔일 석가탄일에 탄생했다. 17세에 부석사에 가서 범체 선사 밑에서 스님이 되고, 그곳에서 수학하다가 경의율사로부터 비구계를 받았다. 혜은선사 문하에서 현리(玄理)를 깨닫게 되니 중원의 4조 도신의 말손이 되었다. (혜은선사는 4조 도신의 제자인 법랑의 증손이다) 도헌은 신라 헌강왕 8년(882)에 세수 59세, 법랍 43세로 입적하였다.

⑧ 봉림산 ㅡ지금의 경남 창원군 상남면 봉림사.
봉림사는 효공왕(52대 897-911)원감국사 현욱이 개산했다. 국사는 혜목산 고달사에 오랫동안 살았으므로, 혜목화상이라고 한다. 현덕왕 16년(814)에 입당, 마조도일선사의 제자 장경 회휘(?-818)의 법을 받고 희강왕 2년(837)에 신라로 귀국했다. 국사는 원성왕 3년 5월5일(787)출생하였고 성은 김씨, 휘는 현욱, 시호는 원감이다. 경문왕 9년(869) 11월15일에 입적하였다.

⑨ 수미산 ㅡ황해도 해주 광조사.
광조사는 신라 56대 경순왕 6년(932년) 진철화상 리엄존자(870-936)가 개산하였다. 진성여왕 10년(896)에 입당하여 동산양개 화상의 제자 웅거 도응선사(운거도응 ?-920)에게 달마의 서래종지를 계승하였고, 6년간 시봉하였다. 효공왕 15년(911)에 귀국하였다. 리엄의 성은 김씨, 휘는 리엄, 시호는 진철대사, 탑호는 보월승공이며 경문왕 10년(870) 계림에서 출생하였다. 12세에 충남 서산 소재인 가야사 덕양법사 밑에서 승려가 되었고 886년 정강왕 원년에 도견율사에게 비구계를 받았다. 936년 8월17일 개성의 오룡사에서 세수 67세, 법랍 48세로 입적했다.

(2) 해동의 선맥(禪脈)
화두선맥(話頭禪脈)이 신라를 거쳐 고려왕조를 통해 가면서 고유한 전통의 선으로 자리잡게 되었으며, 특히 고려에 이르러서는 보조국사 (普照國師: 1158 - 1210) 같은 걸출한 인물 등을 배출하며 활활히 전통의 맥을 이어나가게 된다. 그러나 고려 말에 와서는 혼미한 상태에 접어들게 되었다. 다행이도 태고 보우선사(太古普愚1301~1381)같은 원력보살을 만나게 되면서 선맥을 바로잡게 된다. 선사는 고려의 공민왕과 우왕의 양대에 걸쳐서 王師 16년 國師 12년을 한 당대의 선지식이다. 선사의 어릴 적 이름은 보허이고 커서 보우라 했으며 태고(太古)는 호이다. 성은 홍씨로 1326년(충성왕 13년) 승과에 급제하여 화엄선에 뽑혔다.

스님은 당시의 선맥의 전통을 바로 잡는데 있어 아예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코져 했다. 드디어 1346년 홀연히 元나라로 건너가게 된다. 마침내 1347년 (선사의 나이 46세) 7월 元의 하무산 천호암(天湖庵)에서 임제종 양기파인 석옥청공(石屋淸珙)선사에게로부터 임제의 심인(心印)을 전해 받게 된다. (석옥청공선사는 임제의 18세 법손으로 元의 국사로 있었다) 당시 석옥청공선사는 태고선사에게 법을 전해주며 중원의 선법이 모두 해동으로 가게 됐다고 감탄해 마지않았다고 한다. 이로써 태고선사는 海東禪宗의 중흥조가 되었다. 국사는 다음해인 1348년(戊子 충목왕 2년) 봄에 귀국하여 당시 오교구산으로 어지럽던 종파의 난립을 통합하고자 하였다. 다행이 국왕의 오랜 신임에 힘입어서 숙원을 이루게 되니 1356년에 통합되었다. 오늘에 와서는 한국의 전통선인 간화선법이 세계에서 유일무이하게 현존하는 화두공안선의 종주국으로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중국은 전통의 선맥을 계승하지 못하고 끊어진 상태다. 그리고 근세에 이르러서 간화선법의 종풍을크게 진작시킨 선지식으로 경허성우(鏡虛性牛 1849~1912)선사와 용성진종(龍成震鍾 1864~1940)선사가 있다. 경허선사는 용암혜언(龍巖慧彦)의 법을 이었고 용성진종선사는 환성지안선사의 법맥을 이었다.

경허스님의 제자로는 수월(水月 1855~1928), 혜월(慧月 1862~1937), 만공(滿空 1871~1946), 한암(漢岩 1876~1951)선사 같은 분들이다. 이분들로 말미암아 오늘에 이르기까지 선맥을 이어오게 되었으며. 현재 전국의 100여개의 선원에서 2000여명의 수좌들이 참선정진을 하고 있다. 특히 경허(鏡虛)선사 는 구한말의 대선지식으로써 풍전등화 같은 근세의 선맥(禪脈)을 다시 한 번 일으켜 세운 영걸로써 오늘의 조사선이 있게 했다.

경허선사의 속성은 宋씨이니 여산 사람으로 경기도광주 청계사에서 처음 중이 되었고 충청도 동학사(東學寺)에서 만화화상으로부터 경을 보았다. 스님은 선사이면서 일대의 강사로 시문에 능하여 많은 선시를 남겼고 또한 무애자재한 생애로 많은 일화를 남기게 된다. 오도송은 이러하다. (忽聞人語 無鼻空)홀연 코구멍 없다는 사람의 말을 듣고 (頓覺三千是吾家)삼천대천 세계가 내집임을 깨달았네 (六月燕巖山下路)유월 연암산 아랫길에 (野人無事 太平歌)일없는 시골사람 태평가를 부르네!

(3)한국 선맥 의 경로.
부처님으로부터 보리달마-28조, 혜가-29조, 승찬-30조, 도신-31조,
홍인-32조, 혜능-33조, 남악회양-34조, 마조도일-35조,
백장회해-36조, 황벽희운-37조, 임제의현-38조, 흥화존장-39조,
남원혜옹-40조, 풍혈소연-41조, 수산성념-42조, 분양선소-43조,
석상초원-44조, 양기방혜-45조, 백운수단-46조, 오조법연-47조,
원오극근-48조, 호구소륭-49조, 응암운화-50조, 밀암함걸-51조,
파암조선-52조, 무준원조-53조, 석암혜랑-54조, 금암종신-55조,
석옥청공-56조, 태고보우-57조, 환암혼수-58조, 구곡각운-59조,
벽계정심-60조, 벽송지엄-61조, 부용영관-62조, 청허휴정-63조,
편양언기-64조, 풍전선례-65조, 월담설제-66조, 환성지안-67조,
호암체정-68조, 청봉거안-69조, 율봉청호-70조, 금허법천-71조,
용암혜언-72조, 영월율범-73조, 만화보선-74조, 경허성우-75조,
(수월, 혜월, 만공, 한암)-76조


2. 선이란 무엇인가?

선은 범어의 말로 선나(禪那)라고 한다. 마음이 한 경지에 전일(全一)히 머문다는 뜻으로써 적정, 평형, 평안을 의미한다. 쉴 새 없이 준동하고 있는 복잡다난한 마음을 다잡아서 가라앉게 하는 훈련법이라고 할 수 있다. 실로 오염된 지각을 정화하고 바로 잡아주는 가르침인 것이다.

오늘날과 같은 번잡한 일상생활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마음을 고요히 안정되게 하여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해준다. 마침내 중생들로 하여금 무명에서 오는 모든 속박과 구속에서 벗어나게 해주며 피안의 열반에 이르도록 이끌어 준다.

또한 선에 있어서의 삼매는 명상의 대상에 완전히 몰두하는 상태를 말한다. 마음이 존재의 궁극적인 실재와 완전히 합치하는 바로 그 순간을 삼매의 상태에 들었다고 하며, 이때는 온전히 하나로 통일된 의식만이 있을 뿐이다. 이런 경우에 있어서의 선은, 바로 우리를 삼매로 데려다주는 수단이며, 과정인 것이다.

한 바이올리니스트가 세계적인 연주회를 감상하기 위해 카네기홀로 가던 길이었다. “카네기홀로 가려면 어느 길로 가야 합니까?” 그는 카네기홀로 가는 길을 잘 몰랐기 때문에 마침 근처에 있는 뉴욕시의 한 경관에게 물었다. 그 경관은 바이올린을 들고 있는 젊은 연주자를 흘끔 보더니 대뜸 이렇게 말했다. “연습을 많이 하십시오 카네기홀에 가는 길은 그 길밖에는 없습니다.” 했다. 참으로 명답이다. 열반의 피안에 이르는 길 역시 말과 문자에 있지 않음이니, 실제적인 체험적 선 수련의 길밖에는 없다. 선이야 말로 고통을 끝내주는 법을 추구하고 있으며 해법을 가지고 있다.

(1) 그러면 열반 즉 피안이란 무엇을 의미함인가?

⓵ 열반은 평화 바로 그것이다. 열반경에는 열반을 아래와 같이 설하고 있다.
“모든 만들어진 것은 쉬지 않고 변한다. 이것이 바로 모든 존재가 가지고 있는 본질이다. 즉 만들어진 것은 그것으로 끝나고 이것이 멸하면 바로 그때 평화가 온다했다.” 이때 평화란 집착이 끝난 것을 뜻하며, 결과적으로는 고통이 멈추고 적정의 상태가 온다.

⓶ 열반은 최고의 기쁨 즉 희열이다. 열반은 반야 즉 지혜다. 열반은 환하게 밝은 의식이다. 열반은 영원한 평온을 제공한다. 또한 열반은 인간의 인식을 넘어선 적정과 평화를 가져온다.

⓷ 열반은 시작도 없고 변하지 않으며 멸하지 않는다. 죽지 않는다(無死: amrta) 그곳에는 인(因)과 과(果)도 없으니 진실로 그곳은 모든 고통이 끝난 곳이다.

⓸ 열반은 바람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 일체 제행(諸行)은 고요한 그침, 일체 의거(依據)의 내버림, 갈애의 모든 소멸, 떠남, 일본의 스즈키 박사는 “열반은 의식의 소멸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열반은 [나]라는 개념의 소멸이다. 그리고 잘못된 생각 때문에 일어난 모든 욕망의 소멸이기도하다.”라고 했다. 열반 안에서 자아(무명)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열반의 문턱에서 자아(무명)는 멸한다. 결론적으로 변화된 다른 차원의 순수의식세계로의 진입이다.

(2) 《월등삼매경(月燈三昧經)을 보면 선을 수행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공덕이 다음과 같이 설해져 있다.

1) 옳은 방법으로 바르게 선을 수행하는 이는 그의 모든 감관이 적정해지고 맑아지며, 결국 이러한 것들이 몸에 완전히 배어서 즐거이 선을 수행할 수 있게 된다.
2) 애친(愛親)하는 마음이 가득해지고, 모든 죄의식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며, 모든 중생이 그의 형제·자매처럼 생각된다.
3) 분노, 탐닉, 탐욕 따위의 악독하고 파괴적인 열정들이 점차 사라진다.
4) 사악한 것들의 침투로부터 모든 감관을 잘 지킬 수 있게 된다.
5) 성품이 고요해지고 마음이 정화되어서 비천한 열정에 대한 무절제한 욕망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6) 고매한 명상에 마음이 집중되기 때문에 모든 유혹과 아집이 사라진다.
7) 무상(無常)의 법을 알고 있으면서도 결코 허무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
8) 비록 생사에 얽혀 살고는 있지만, 항상 그로부터 빠져나가는 길을 환하게 알고 있다.
9) 법(法)의 깊고 깊은 지혜를 터득해서 위(位)없는 부처님의 지혜에 이른다.
10) 어떠한 유혹에도 동요되지 않으므로 마치 공중을 날아다니는 독수리와 같이 자유롭다.


3. 인간의 성격

(1) 인간 성격의 구성
인간의 성격구성이 세 가지로 구성된다고 본다. 原初我, 自我, 超自我가 그것이다. 원초아는 본능적 욕구를 직접적으로 충족시키려한다. 자아는 현실적인 자아로써 현실에 비추어 이를 저지하려고 노력한다. 초자아는 도덕과 이상적인 자아이므로 원초아와 자아가 이상과 도덕에 위배되는 행위를 하는지 늘 감시한다. 이러한 갈등들이 심리적 문제의 근원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즉 자아, 원초아, 초자아 간에 서로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이 心理的 문제증상 형성의 출발점이 된다는 것이다. 原初我-모든 본능적 욕구들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이며, 自我-현실계와 접촉하는 성격의 한 부분으로 現實的 자아가 된다. 超自我-자라는 과정에서 가정의 부모로부터 영향을 받은 傳統的인 가치관과 사회의 규칙들 道德과 良心들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이다.

(2) 自我의 역할
重要한 것은 자아이다. 한 지붕 아래 같이 있는 각기 개성과 취향이 다른 세 가지 성격(원초아, 자아, 초자아) 구조간의 갈등을 중재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자아이기 때문이다. 現實的인 자아가 만일 외부로부터 강한 어떤 충격에 의하여 약화될 때 자아가 조정하는 힘이 미약해지면 心理的인 문제가 發生하게 되는 것이다. 自我의 기량이 미약하여 통제력이 상실되면, 정신집중력이 약화되고 정신적 질환인 노이로제, 피해망상, 관계망상, 조울, 우울증, 심지어는 정신분열증 등이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현실적인 자아의 기량이 늘어나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연인으로부터의 진정어린 위로라든지, 부모 형제와 절친한 벗으로부터의 이해와 격려 등을 통해서도 자아의 기량을 크게 상승하여 오르도록 도와준다. 또 스트레스나 갈등 상황에 있을 때는 어머니 역할 같은 사람을 갈구하게 된다. 넉넉한 어머니같이 마음의 안정을 주는 그런 사람으로부터 고무와 격려를 받고 싶어 한다. 그런 사람이 옆에서 지켜주고 있는 것이 확신될 때 안정을 얻고 자아의 기량이 증강한다. 인간의 본능적인 것과 이성적인 것과의 갈등상태에서 스트레스가 발생하게 된다. 대개의 경우 정서불안, 우울증, 신경증 같은 증세는, 가정불화나 그곳에 처한 갈등을 해소하지 못한데서 발생하는 수가 많다. 따라서 자기 자신이 정신적으로 허약하거나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면 다른 사람에 비해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자세히 살피고 문제를 발견하여 먼저 이것을 반드시 제거해야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평소에 정신적으로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된다. 정신적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으로서 선수행의 필요함을 제시하고 싶다. 禪修行은 마음을 텅 비워서 심신의 이완은 물론이요 의식정화를 이룸으로써 현실적 自我의 기량(器量)을 크게 증강케 하여 이 같은 정신적 문제들을 해소시킬 수 있다.

즉 자아의 器量이 자아의 强力함이고 精神健康의 푯대가 되는 것이다. 심연(深淵)처럼 안정 상태인 禪定은 순수의식(pure consciousness)의 당처로 우주의 에너지가 充滿해 있다. 이곳이야말로 적연부동(寂然不動) 한곳으로 어느 때 보다 자아의 기량이 증강 되어진 곳이다. 따라서 現實的인 자아가 强해져 있다. 주관적으로 고통이 없고 객관적으로도 이상이 없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불편함이 없는 상태를 정신적으로 건강한 상태라고 말하고 있다


4. 선정(즉 실체)과 망념

(1) 선정과 망념은 -
현대는 곡예 하듯 숨통을 조이는 긴장된 삶을 살아가는 시대로, 너나없이 만병의 근원인 스트레스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심인성에서 오는 질병이 많은 시대다. 사실 오늘날의 삶은 내면으로부터의 진정한 휴식의 축복을 모른다. 선수행(禪修行)은 내적인 반조를 통하여 기관차가 폭주하듯 치닫기만 하는 삶의 굴레로부터 마음을 쉬게 한다. 여기애서 휴식이란 잠을 자는 것도 아니고 또한 잠을 자지 않는 것도 아닌 의식의 완전한 평정상태를 말한다. 의식의 완전한 평정상태야말로 선정(禪定)이니 곧 실체인 것이다. 선정(禪定)을 필자는 “영원한 현재라고 정의 한다.” 순수의식(純粹意識)인 선정의 당처가 과거와 미래를 초월하여 오직 현재로만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로 시간과 공간마저 함축한 우주의식인 것이다.

중생의 마음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마음은 아니다. 하나의 진행의 과정으로써 혼잡한 생각이 과거에서 미래로 부단히 움직이고 있는 생멸심의 상태일 뿐이다. 그래서 실체가 없다. 그러나 진행의 과정이 끝난 곧 생멸심이 멸한 시공의 어느 한 점에 정지되어져 온전히 하나로 통일된 순수의식(pur consciousness)이 계속되며 유지될 때 이것이 선정이며 곧 진정한 의미에서의 마음이며 실체다.

옛글에 이르기를 조용히 앉아서 자기를 돌이켜 보아라 5온(色 受 想 行 識)을 비추어 보면 참으로 아무것도 있는 바가 없어서 자연히 나라는 것이 공하게 된다. 이미 주관인 내가 공하면 객관적인 모든 경계(色 聲 香 味 觸 法)도 공하여져 나와 경계가 모두 공하게 되니(마음이 멸할 때 경계가 멸함) 자연히 모든 것을 쉬게 된다 했다. 2조 혜가스님은 초조 달마스님으로부터 그대의 불안한 그 마음을 가져와 보라하는 물음에서, 홀연 마음이 공함을 깨달아 일체를 쉬였다. 중생의 망념이 일어날 때 그 망념이 일어난 곳을 돌이켜 보면 일어난 근본이 공적하여 이름과 형상을 모두 얻을 수 없다 당처가 허명(虛明)하여 청정무구 할 뿐이다. 실로 형상과 이름을 모두 얻을 수 없는 청정무구한 한 곳이야말로 일체가 쉬어진 곳으로써 본심이며 불성이다.

향엄스님의 오도송에 “한번 치는 소리에 아는 것을 모두 잊었다.”했다. 모두 잊은 그 자리가 일념미생전(一念未生前)의 공적한 곳으로 본래로 부처의 자리인 것이다. 또한 대전화상(宋代의 선사)이 이르되 以心觀境 境上有空, 見色便見空 心卽是空 (이심관경 경상유공, 견색편견공 심즉시공) 衆生法性 只在目前, 應物現形(중생법성 지재목전, 응물현형) 長者長形 短者短形, 方者方空 圓者圓空(장자장형 단자단형, 방자방공 원자원공) 白者白空 黃者黃空, 小者小空 大者大空(백자백공 황자황공, 소자소공 대자대공) 反觀自己 是色 色卽是空, 應現種種相 種種相卽是空(반관자기 시색 색즉시공, 응현종종 종종상 즉시공) 즉 마음으로써 경계를 관하니 경계위에 공이 있다. 물질인 사물을 봄에 문득 공을 보니 마음이 곧 공이다. 중생의 법성이 다만 눈앞에 있어서 사물에 응하여 긴 것은 길게 나타내고 짧은 것은 짧게 나타내지만, 모난 것은 모난 대로 공하고 둥근 것은 둥근 대로 공하고 흰 것은 흰 대로 공하고 노란 것은 노란대로 공하며, 작은 것은 작은 대로 공하였고 큰 것 은 큰대로 공하였다. "자기의 몸을 돌이켜 관해보면 이것은 색이니 색이 곧 공하다 가지가지 모양을 나타내지만 가지가지 상이 바로 공하다."했다.

객관의 경계를 대함에 분별심인 작용과 무분별심인 공적함이 동시에 일체를 이루게 된다(중생은 분별심만 있다). 그러므로 보아도 봄이 없는 것이며 가고 옴이 가고 옴이 아닌 것이다. 실로 작용 속에 공(空)함이 함께 하고 있고 공(空)속에 작용이 함께 있어, 보고 보지 않음이 동시인 것이다. 또한 진공인 진제(眞際)는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근본으로 현상(現像)계의 뒤에 있어 보이지 않는 실체(實體)자이다 그러므로 진공(眞空)인 실체를 일체의 모든 경계(色 聲 香 味 觸 法)위에서 항상 있어 여이지 않아야만 된다. 일체의 경계위에서 본연(本然)의 당처(當處)를 곧 허명(虛明)함을 여이지 않음으로 인하여 여러 군중(群衆) 속에 섞이어 있으면서도 섞인채 짐을 벗어나 있다. 이것이 초월이며, 참된 자유로움인 것이다.

만약 경계위에서 진공을 여이게 되면 곧 공함을 보지 못하면 분별 망상심인 착심(着心)만을 일으킬 뿐이다. 곧 생각의 당처가 비어져 공해있음을 관하지 못하므로 경계에 집착하게 된다. 실로 객관의 경계를 대하여 중생은 경계만을 봄으로 집착하게 되고, 도인은 공(空)한 마음을 봄으로 어떤 경계도 끝내 취하지 않아 걸림이 없게 된다. 취하지 않음이 적멸심(寂滅心)이며 구경심(究竟心)이다. 고려의 보조지눌(普照知訥 1158-1210)스님의 어록에 말하기를 “眞如自性 起念六根 雖聞覺知 不念萬像 眞如自在.”(진여자성 기염육근 수문각지 불염만상 진여자재) “진여자성이 육근에 생각을 일으키어 비록 듣고 깨닫고 알고 하지만 결코 객관적 대상인 만상에 물들지 않아서 진여자성은 항상 자재한다.“ 했다. 사실 진심은 육근육식을 거치지 않고 경계에 조용히 응함이 없이 응함이니 망상 분별심이 아니다. 또 보조스님이 설하기를 ”거울의 본바탕은 체가 되고 거울의 비춤은 작용 즉 혜(慧)가 되고 거울에 나타나는 그림자는 인연을 따르는 것이다.“ 했다.

여기에서 혜(慧)라 함은 거울 속에 흰 것의 인연이 오면 흰 그림자가 거울 속에 나타나고 검은 것의 인연이 오면 검은 것이 나타나고 붉은 것의 인연이 오면 붉은 것의 그림자가 거울 속에 나타남이다. 그러나 거울 속에는 흰 것의 그림자도, 검은 것의 그림자도, 붉은 것의 그림자도 남아있음이 없으니, 거울은 본래의 모습 그대로여서 맑아있음을 본다. 이처럼 만상에 물들여지지 않음이 무념이며 청정심이며 부동심이니 보되 봄이 없고 듣되 들음이 없다함이 이것이다. 옛 스님은 “범부는 생각도 있고 아는 것도 있으며 二乘은 생각도 없고 아는 것도 없으며 여러 부처님은 생각 없이 아신다”하였다 ”그러면 어떤 것이 정과 혜일 때인가? “계곡의 물소리 또렷또렷하고 대천세계가 무너져서 일체를 쉬었다.“고 하겠다.

(2)진공에 대하여
그러면 위에서 언급한 진공이란 무엇일까? 좀더 자세히 설명하고자 한다. 진공은 모든 생각, 이미지, 공포, 야망, 두려움 등이 제거된 곳으로 조작되어짐이 끝난 곳이다. 겨우 한 생각을 일으키자 이미 진공의 본 바탕을 상실하게 되고 만다.그래서 옛 선사들은 제자가 입을 떼려하면 곧 몽둥이로 쳐서 내쫓아 버렸다. 진공에는 두(유무) 상이 없다. 유에 상대적인 공과 유를 다같이 버림이니 진공에는 유도 상관하지 않고 무도 상관하지 않는다. 실로 무일물(無一物)하여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고 일체가 끊어진 자리이다. 운문선사(雲門禪師 ?-949)는 말하기를 "백적적 청요요(白的的 淸寥寥 : 희어서 밝고 밝으며 맑어서 고요하고 고요하다.”)라 했다. 사실 담연 상적한 진공인 본체는 청정 무애하거늘 어느 곳에 유무와 생과 사가 있겠는가? 중국의 반산보적(盤山寶積)선사는 길을 가는데 어떤 사람이 고기를 사러 푸줏간에 가서 백정에게 말하기를 “깨끗한 것으로 한 조각 주게”하니 백정이 칼을 던지고 팔짱을 끼고 말하기를 “서방님 어느 것이 더러운 것입니까?” 하는 것을 보고 크게 깨달았다. 참으로 수저를 가지고 입안에 넣어주듯이 친절하다.

진공은 또한 단지 공이 아니요 만법을 생하게 하는 공으로써 단멸의 공이 아닌 것이다. 단멸 공이란 무정물인 목석과 같은 죽음의 공을 말함이니, 선가에서는 이를 크게 경계하여 오고 있다. 실로 생명력이 내재하고 있는 진공으로써 상대적인 공과 유를 떠난 크게 죽은 곳 대무심처[십의론주(十疑論註)에 이르되 “생각이 없음이란 곧 진여삼매니 또록또록하고 고요하여 반연을 일으키지 않는다”했다]에서 어느 날 홀연히 크게 살아남(현실의 차별지)이 된다. 이것이 백척간두 진일보하여 깨닫게 된 것으로써 대 부정에서 대 긍정이 되는 진공묘유(眞空妙有)인 것이다. 여기에서의 긍정은 산은 오직 산일뿐이며 물은 오직 물일뿐이니 차별적인 긍정이 아니다. 산이다 물이다 하는 차별적인 긍정은 묘유가 아닌 망상분별심일 뿐이다. 독일의 낭만파 철학자 쇼펜 하우워가 말하기를 “인류가 책을 통하여 후손에게 전할 수 있는 감명적인 철학서적이다.”라고 극찬한 인도의 철학서적인 우파니샤드에는 이런 말이 있다.

“아들아 가서 무화과 열매를 따오너라.”
“이미 따왔습니다.”
“그러면 그 열매를 쪼개어 보아라.”
“무엇이 들어 있느냐?”
“아버지시여 씨앗이 들어 있을 뿐 입니다.”
“아들아 그 씨앗을 다시 쪼개어 보아라.”
“무엇이 있느냐?” “씨가 들어 있습니다.”
“아들아 그 씨를 쪼개어 보아라 무엇이 있느냐?”
“아버지시여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들아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일체가 생하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아트만이니 곧 실재(實在)니라” 했다.

이것이 공즉시색(空卽是色)인 진공묘유(眞空妙有)의 도리인 것이다.

실로 공한 이곳으로부터 만법이 생하게 되고, 비록 만법을 생하나 또한 근본의 당처가 항상 적연부동하여 공적(空寂)함으로 만법을 냄이 본래 만법을 냄이 없는 것이다. 이것이 불가사의한 것이니 이 무슨 도리인가? 維摩經에 云 外能善分別 諸法相하고 內於第一義(근본당처) 而不動也라 유마경에 이르기를 밖으로 능히 제법의 상을 잘 분별하나 안으로의 제일의는 움직이지 않는다 했다. 또한 고려의 태고보우(太古普愚)선사는 “정야천반현(靜也千般現) 동야일반무(動也一般無) 고요하면 천 곳 에 나타나고 움직이면 한 곳에도 없다.” 했다. 어떤 것이 고요하면 천 곳에 나타남인가? 필자에게 묻는다면 “산이 다하고 물이 다한 곳에 꽃은 붉고 버들은 푸르다”하겠다.

서양의 정신분석학자 융(1875-1961)은 평생을 선수행한 사람으로 잘 알려진 사람이다(융은 집안에 선실을 따로 가지고 있었다). 그가 말하기를 “선(禪) 수행은 잘못된 의식을 공중분해하여 버린다. 또 깨달음의 과정이란, 자아의 형태로 제한된 의식이 무아적인 자기 자신으로 돌입하는 것이다. 즉 진아의 불성에 의한 교체이며 하나의 커다란 인격변화의 과정이다.” 라고 했다. 또한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그의 저서에서 이런 말을 했다. “세계의 모든 종교 가운데서 불교가 가장 합리적이고 이치에 맞는다. 또한 불교는 과학에 상응하는 종교다.”라고 했다(그는 말년에 일본을 통하여 선불교를 만났다). 이 시대에 있어 현대인들을 스트레스와 노이로제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선(禪)수행이야 말로 현실에 상응한 수승한 방법이 될 것 이다. 서양의 심리학자들이 조사한 바로는, 坐禪中 무념상태의 禪定에 들면 頭腦에서 알파파라는 뇌파가 나타나고 禪定이 30분 이상 지속되면 델타파라는 수면뇌파가 나타나게 된다고 증명하였다. 델타파는 수면뇌파로서 잔잔하고 느린 뇌파이고, 알파파도 잔잔한 뇌파로서 둘 모두 心身의 安定됨을 나타내주고 있다. 이것은, 마치 의식이 잠든 상태와 같으므로 정신적 수면상태라고 한다. 육체가 숙면상태를 거친 것 보다 몇 배의 상쾌함이 있는 것이다.

미국 알라스카의 유명 정신과 의사인 닥터 외버 부부는 말하기를 동양의 “선사상(禪思想)이야말로 심리학을 넘어서는 심리학이며 과학을 넘어서는 과학이다.”라고 했다. 공안선은 더욱 그러하다 했다. 실재(實在)는 인식(認識)의 추론을 거부한다. 상념의 세계를 벗어난, “언어나 지성 너머에 있기 때문 이다.” 사실 인식(認識)된 모든 개념들은 실재의 문턱에서 추론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주저앉고 말것이다. 실재의 곳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실질적 선수행의 체험 등을 통하여 인식의 한계를 벗어나야만 한다. 여기 인식의 한계를 벗어난 언어들이 곧 화두공안들인 것이다.


5. 화두공안

(1) 화두공안이란, 역대의 조사스님들이 중생들을 깨달음으로 이끌기 위하여 또한 깨달은 바를 점검하기 위하여 격외로(격식밖에 언어들) 설한, 일상적인 말을 초월한 말들이다. 화두는 일상적인 분별의식을 말끔히 불태워 말길과 생각의 길을 끊어지게 하여 곧바로 마음의 당처인 본성(불성)을 보게 한다. 이는 개념화 되기전의 순수한 곳으로 이끄는 길잡이인 것이다. 또한 자성을 깨닫는 여러 가지 참선법 가운데하나로 주로 한국과 중국에서는 화두공안 참구법(參究法)으로 많은 도인스님들이 나왔다.

(2) (실 예)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조주(趙州 778-897)스님이 말하기를 “뜰 앞에 잣나무니라.” 했다. 이 무슨 도리인가?

한 스님이 조주선사에게 물었다. “개(犬)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조주스님의 답이 무(無)하고 없다고 했다. 부처님은 일찍이 유정무정 모두가 불성이 있다고 했는데 어째서 없다고 했을까?! 부처님이 옳은가 조주스님이 옳은가?! 이 무슨 뜻인가?

어떤 스님이 운문(雲門文偃 864-949)스님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운문스님이 말하되 “마른똥막대기다.”라고 했다. 마른똥막대기가 어째서 부처일까?

또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와 조사를 초월한 말입니까?
운문스님의 말이 “호떡이다.”했다.

한 스님이 동산(洞山良介 807-869)스님에게 찾아와서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동산스님의 답이 마(麻)가 세근이니라.”했다.

어떤 것이 완전한 거울인가 물으니 “낡고 금이 간 쟁반이다.” 했다. 도대체 이 모두가 무슨 도리일까?

혹암(或庵)선사가 대중에게 이르되 “달마대사는 어째서 수염이 없는가?” 물었다
달마대사는 수염이 많은 스님이다. 이 무슨 도리인가? 필자에게 묻는다면 묻는 자의 입을 손바닥으로 막아버리겠다.

양당의 두 스님이 만나서 동시에 할(선가에서 억하고 크게 소리치는 것)을 했는데 임제 스님(?~867)은 여기에 대하여 “주인과 손(客)이 나누워져 있다”고 했다. 여기에서 누가 손이고 누가 객인가 이 무슨 도리일까?

경봉스님(1891~1982)에게 한 수좌가 물었다. 스님의 나이가 얼마나 됩니까?
경봉스님은 “앞에도 육육, 뒤에도 육육 이다.”라고 답을 하셨다. 도대체 이수가 얼마라는 뜻일까?
필자에게 묻는다면 “이음왕불 이전에 이미 셈하여 마쳤다.”고 하겠다.

아란존자가 초조 가섭존자에게 묻기를 부처님께서 가사와 발우밖에 무엇을 사형에게 전해셨소 하고 묻자, 문 밖에 있는 찰간대를 부셔버려라 했다. 이 무슨 도리인가?
필자에게 물었다면 “이미 찰간대가 이미 부서졌다.”고 했을 것이다.

위에서 말한 화두공안들은 보통의 상식적인 인식으로는 알 수 없는 격 밖의 언어들이다. 그러므로 중생의 의식세계를 벗어난 청정본연식(淸靜本然識)을 깨달아야만 격 밖의 언어들인 화두공안을 알 수 있게 된다. 화두공안 모두가 괴변 같기만 한 말이겠으나 깨달은 자에게는 일상어일 뿐이다. (화두공안이 1700가지가 있다.)


6. 위빠사나와 화두공안선의 비교

1) 위빠사나 수행법은 정적인 수행법이고 공안선은 역동적인 수행법이다.
2) 위빠사나는 점수의 수행법이고 공안선은 돈오의 방법이다.
3) 위빠사나는 남방불교의 수행법으로써 불교전래의 전통적 수행법이다.
4) 화두공안 역시 부처님 당시부터 행하여진 방법으로써 삼처전심(三處傳心)법이 화두공안선의 연원이 된다.

삼처전심(三處傳心)이란?
a) 다자탑전분반좌(多子搭前分半座): 부처님께서 가섭존자에게 당신의 자리를 나누워 앉게 했다.
b) 염화미소(拈花微笑): 부처님께서 영산회상에 계실 때 어느 날 연꽃 한 송이를 들어서 대중에게 보이시자 오직 가섭존가가 홀로 미소 짓고 있었다.
c) 곽시쌍부(槨示雙趺):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어 관속에 7주야를 누워계실 때 가섭존자가 늦게 도착하여 관 주위를 돌자 관 밖으로 홀연 두발을 내밀었다. 실로 부처님 재세시에 화두공안선은 만들어진 것이다.

5) 화두공안선은 화두를 관하면서 묘관찰지로 생활할 수 있다. 화두를 타파하면 공적하고 허명(虛明)한 곳에서 묘관찰지(妙觀察智)로 생활한다.

위빠사나 수행법에서는 일상에서 의식(意識)을 생활 속에 두고 생활 자체를 수행처로 삼는다.

6) 위빠사나 수행법은 화두공안 대신에 코끝과 윗 입술사이에 의식을 집중시키는 방법과 또한 방법은 배꼽아래 단전 쪽에 배의 나옴과 들어감을 자연스레 관하는 방법이다. 이때 아랫배에 너무 힘이 많이 들어가면 아니 된다. 아주 자연스럽게 다만 배의 들고 남에 의식을 집중하기만 하면 된다. 수행이 일구월심하여 깊어지면 마침내는 적정처의 곳에 들어가게 되며 그윽한 곳에 이르러서는 아라한과를 성취하게 된다.

7) 화두공안 수행법은 1700가지의 화두 가운데에 하나만을 택하여 참구해 나가는 방법이다. 화두선 수행법에는 공안의 문제에 대하여 다만 의심만을 해나가야 되며, 사량분별심으로 따지면 아니 된다. 의심덩이가 공안선의 생명인 것이다. 의심이 돈발하여 집중될 때 망상잡념 등은 자연이 쉬여지게 되며 공공적적(空空寂寂)한 곳에 이르게 된다. 여기에서 더욱 분발하여 정진하면 심행처(心行處)가 멸한 대무심처(無心處)에 도달하여 어느 날 어느 곳에서 공겁 이전의 본래면목을 깨닫게 되는 수행법이다.

한국의 선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달마정맥인 화두공안선을 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중국은 이미 정맥의 전통이 끊어진 상태로 있고 세계에서 유일 무이하게 정맥의 전통을 한국이 계승하여 이어오고 있다. 필자는 달마정맥을 참구하는 후손으로써 정맥이 계승되어 후손만대에 이어갈 수 있도록 견마지력을 다하겠다.

필자에게 삼처전심(三處傳心)의 의지를 묻는다면
“고목에 꽃이 피니 꽃마다가 새롭다.” 라고 하겠다.

7. 위기에 대한 심리적 이해

위기를 사전에서는 위험한 고비 어떤 일의 전환점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위기는 위험(danger)과 기회(opportunity)라는 두말이 합쳐져 이루어진 말로, 한쪽은 위험을 한쪽은 기회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위기에 대하여, 어떤 외적 위험에 대한 개인의 내적인 반응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위기를 촉발시키는 어떤 외적인 사건과 위기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외적인 사건은 위기의 원인일 뿐 위기자체는 아닌 것이기 때문이다. 그 위기를 받아드리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서 그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자기에게 불어 닥친 위기를 원망과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본다면 좌절과 고통을 초래 할 수 있으며, 그 반대로 위기를 잘 수용한다면 삶의 과정에서 도약의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일본의 조동종 창시자인 도원선사는, “위기야 말로 깨닫게 하는 원동력이다.”라고 했다. 세계 이차대전 중에 발생한 전염병인 호열자는 당시의 전쟁보다 더 사람들을 무서움에 떨게 하였으며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갔다. 그러나 이로 인해 페니실린이 발명되는 계기가 되었다. 유명한 돈키호테는, 세로반데스가 감옥에 있을 때 써진 작품이었고, 베토벤의 고향곡 9번 합창곡은 그가 귀가 먹었을 때 작곡된 불후의 명작이다. 마틴루터는 성안에 숨어서 오히려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했다. 위기는 오히려 기회를 만들기도 한다.

토마스 칼 라일(1795-1881)은 유명한 불란서 혁명사를 쓴 사람이다. 처음 혁명사를 썼을 때, 친구인 제이 에스 밀 교수에게 원고를 보라고 빌려줬었다. 그러나 제이에스 밀의 가정부로 인한 실수로 불타서 없어지게 됐다(휴지조각으로 오인함). 칼 라일은 기가 막혔다. 그는 다시는 그와 같은 명작을 쓸 수 없다는 실의에 빠져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집을 짓는 벽돌공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벽돌공에게 물었다. “그것으로 무얼하고 있는 거요?” “보시다시피 집을 짓고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는 언제 다 그 큰 집을 짓게 되겠소?” “바닥서부터 한장 한장 쌓다보면 언젠가는 다 쌓아올려서 집을 완성 하게 되겠지요.” 이 말에 칼 라일은 위기에서 벗어나는 게기가 되었다. 처음부터 다시 할 수 있다는 신념이 불꽃처럼 살아난 것이다. 마침내 처음보다 몇 배나 훨씬 더 잘 쓰여진 그 유명한 불란서 혁명사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같이 좌절의 늪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기회로 삼아 더욱 성공할 수 있던 사람은 어느 특정인에 국한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선수행을 통하여 선정의 힘을 얻게 되면 누구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량을 얻게 된다. 행복의 문과 불행의 문, 열린 문과 닫힌 문이 있다. 주역에서 보면, 좋은 쾌와 나쁜 쾌가 서로가 등을 맞대고 있다. 문이 닫혀 있다하여 좌절할 필요는 없다 곧 문이 열릴 것이다.

불행의 문 안에 서있다 하여 낙심할 필요는 없다 바로 한발 앞에서 행복의 문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실예(1) 필자가 알고 있는 미국 하와이 교포 중에 이름이 Y씨라고 하는 여인이 있다. 그녀의 가정은 이민생활에 퍽이나 성공한 사람으로 교포사회에 잘 알려진 사람이다. 남편과 같이 운영하고 있는 기계제작 공장은 큰 배들까지 수리하는 공장으로 칠백만 불이 호가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집은 하와이에서 경관이 좋기로 이름난 하와이까이의 바다가 잘 내려다보이는 언덕위에 위치해 있었다. 싯가 삼백만 불의 그림같은 집에, 남의 부러움을 사며 행복하게 살았다. 시내 다운타운에도 백만불이 넘는 아파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위기가 닥쳐오고 말았다. 이민을 같이 와서 숱한 역경을 딛고 살아오며 이제껏 의지하고 믿었던 남편이, 다른 여자와 정분이 난 것이다. 앞이 캄캄하였다. 급기야 그녀는 이혼을 준비하게 되었고 더욱 충격적인 일은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이 두 부모들 틈에서 어느 쪽을 편들까 괴로워하다가 15층의 아파트에서 떨어져 자살을 했다. 결국 부부는 이혼을 하게 되여 소송하다보니 공장도, 집도 은행 빚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이 모두가 1년 남짓한 1999년에서 2000년 말 사이에 벌어진 일들이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보통사람 같으면 정신질환에 걸렸을 만도 한 사건이지만, 그 보살은 지금껏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그 보살의 말로는 평소에 참선을 하면서 마음 비우는 법을 쌓아 익힌 덕으로 심리적으로 큰 탈이 없었다고 한다. 한마음을 비우면 지옥에서 천국을 만들고 비우지 못하면 천국도 지옥을 만들게 된다.

실예(2) 경기도 수원시에 연만한 보살이 한사람이 있다. 그는 이곳 무진선원을 창건한 이 금순 할머니의 친정조카가 되는 사람으로 얼마 전 그의 막내아들이 충남의 아산호에 몸을 던져 자살을 했다고 했다. 필자가 이 말을 듣는 순간 걱정했던 우려가 현실이 되고 말았구나 하는 생각이 뇌리에 스쳤다. 문제가 된 아들이란 삼십을 갓 넘은 청년으로 삼형제 중에 막내로 태어났다. 그 청년의 아버지는 서울에 있는 고대를 나와서 S.직장에 다니다가 정년퇴직을 했다. 문제는 결혼하여 육십이 넘은 그의 아버지는 어머니가 배우지 못하여 무식하고 인물이 남만 못하다고 하여 마구잡이로 구박하였다고 한다. 심지어 밥상머리에서 마저도 멸시하는 언사를 서슴치 않고 해댔다. 시도 때도 없이 멸시를 당하고 당하는 어머니를 볼 때마다 어린 막내의 가슴은 메어지고 답답했다.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평생을 통하여 하대만 당하고 사는 엄마가 더욱 불쌍해졌고 반대로 아버지에게는 반감이 더해갔다. 아버지와 같이 한 밥상에서 식사하기조차도 싫어졌다. 그의 어머니의 말로는 아버지만 아니라면 죽여 버리고 싶은 충동까지 일어났었다고 하는 말을 죽은 아들에게서 들었다고 했다. 아버지처럼 똑똑한 사람만보면 양가감정으로, 저주스럽기도 하고 주눅이 들기도 했다. 수원근교의 S 대학에 다녔으나 어릴 적부터의 똑똑한 아버지에 대한 오디푸스 컴풀렉스 때문에 억압된 심정에 의하여 공부를 잘 하는 사람만 보면 주눅이 들어 우울하게 되었다. 대학 생활도 적응을 못했고 결국은 졸업을 못하고 말았다. 사회생활 역시 적응을 못하여 수원에서 정신과 치료도 여러 번 받았다고 했다. 이처럼 사회에 적응을 못하다가 결국 목숨을 버리게 되는 것이 큰 문제로 남아있다. 좀 더 일찍이 필자와 인연이 닿았더라면 선수행을 통하여 이 같은 불행을 미연에 방지했을 것이다.

위기의 예를 들면: 배우자의 죽음, 이혼, 임신, 부부간의 불화(특히 청소년이 큰 문제가 됨) 전쟁의 발생, 사업의 실패, 암등 건강에 이상, 유명세의 하락, 직장승진 또는 좌천, 성적인 어려움, 해외유학 또는 이민, 입산출가, 절친한 친구의 죽음, 고부간의 갈등, 재판, 투옥, 교통사고, 지진, 불합격 통지. 복권당첨, 상사로부터의 불신임 등이 위기에 속한다.

노자가 이르되 “내가 큰 근심이 있는 것은 내가 있기 때문이니 만약 몸이 없으면 다시 어찌 근심이 있으리요”하니 고로 알라, 이 몸은 어리석은 자의 믿을 바요, 지혜 있는 자의 믿을 바가 되지 못한다고 했다. 유마경에 이르데 “비록 사대(地 水 火 風)와 오음(色 受 想 行 識)이 모여 이룬바 되나, 사대가 본래 공함을 알지 못하고, 오음이 실이 아님을 알지 못 한다. 사대가 각각 떠나면 허망한 몸은 곳이 없음이라 어찌 참으로 있겠는가!"했다.


8. 위기의 단계

정신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는 위기의 발생을 네 단계로 나누어 생각하면 도움이 된다.

첫째 단계는 자극 또는 촉발적 사건이다. 이것은 죽음이나 실직 또는 암 같은 외적인 상황을 말하며, 전문가들은 이것을 정서적인 위험사건이라고 한다.

둘째 단계는 그 상황에 대한 개인의 독특한 평가이다. 이것은 촉발적 사건에 대한 개인의 생각이다. 이 단계는 그 개인의 지식과 신념, 생각과 기대뿐 아니라, 그 특수상황을 이루고 있는 요소들에 대한 독특한 지각작용도 개입된다.

셋째 단계는 나름대로의 대처 방안이다. 예를 들면 친구들 친척들, 스님, 신부, 목사, 의사와 같은 눈에 보이는 방책과 새로운 상황과 여러 가지 문제들과 감정에 직면하는 내면적인 방책이 있다. 이 대응책의 적절성에 따라 한 사건의 위기로 경험되는 정도가 달라진다.

넷째 단계는, 위기를 당한 개인이 외적 위협에 대해 내면적으로 반응을 보이면서 위기자체의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인간이 위기를 느끼는 과정을 점진적으로 네 가지로 설명 한다.

첫 단계로 위기에 처한 사람은 불안을 느끼기 시작한다. 불안이 심해지면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살아오면서 이와 유사한 위기상황에 직면했을 때 사용했던 문제해결 방법을 사용하여,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애쓴다. 그가 사용하는 모든 해결 방법에는 균형 상태를 다시 회복하려는 경향과, 현재 그가 느끼고 있는 두려움을 감소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둘째 단계는 일상적인 문제해결 방법으로서는 해결되지 않고 위협을 느끼게 하는 상황이 지속되면 긴장감도 지속적으로 증가한다. 따라서 무력감이 느껴지고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시도하다가,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동안 상황은 악화되어 간다. 즉 긴장을 일으키는 자극이 계속되면, 문제해결 능력이 점점 감퇴되는 단계다.

셋째 단계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가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하면 두려움과 긴장감이 더욱 증가한다. 상승된 긴장감은 위기 당사자로 하여금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위기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게 만든다.

넷째 단계는 모든 수단을 적용해도 실패로 끝나 무력감에 빠지게 될 경우 당사자는 자기의 위기대처 한계를 넘어서는 긴장감에 빠질 우려가 있다. 이때의 위기감은 너무 강력해서 위기당사자의 심리에 큰 타격을 주어 우울증에 빠지게 할 수 있다. 이 단계는 고도의 기술적인 도움을 필요로 한다. 스트레스는 복잡한 현대생활에 의한 신체와 정신적 쇠약과 관련된 용어다.

스트레스의 제 반응은 다음과 같다.

(1) 정서적 혼란, 불안, 우울, 압박감, 좌절감, 결핍감,
(2) 인지적 기능의 혼란, 사고기능의 합리성, 논리성, 융통성의 결여 등 주위 집중력의 저하, 기억력의 감소,
(3) 생리적 기능의 장애, 근육 계통의 긴장 떨림, 심장 박동수의 증가, 혈압 상승 증가, 특히 정신 분열증은 가장 심한 정신장애다. 이것은 인간을 인간답게 살아갈 수 없도록 황폐화 시키는 정신질환이다. 현실 판단의 혼란 성격장애 일상생활의 손상 통찰력 결여 등이다.

위에서 말한바 세 가지의 마음 중에서 현실적인 자아가 제일 중요하다. 지나치게 원초아적인 본능적인 삶은 너무 비양심적인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반대로 초자아적인 이상과 도덕적인 면으로만 흐르면 생활에 활기가 없고 지나치게 소심한 사람이 되어져서 오늘날과 같은 험난한 세상을 헤쳐 나가는 데는 적합하지 못하다. 따라서 대들보인 현실적 자아의 기량이 항상 증강 되어져 있어 견실하고 굳건해야만, 올바른 지혜로써 본능적 자아와 도덕적인 초자아를 조종해 갈 수 있게 된다. 실로 참선수행법이야말로 순수 의식인 선정을 통하여 자아의 기량을 회복시켜 소생케 함으로써 정신적 조정능력의 힘을 굳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맺는 글

이상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인간의 정신적 갈등 불안, 초조, 좌절, 우울 등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심층에, 선수행에 의한 선정의 힘으로 깊숙이 들어가서 심원을 맑게 함으로 인하여 이 같은 정신적인 문제의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게 된다. 과거의 어떤 충격적인 기억들은 마음에 무거운 짐을 지운다. 그래서 미래로 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부당한 이 움직임이 마음속에 또 다른 긴장을 만들고 여기에서 신경을 너무 쓰게 되면 문제가 발생하고 만다. 여기에서 가능한 한 빨리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인생의 행로에서 어떻게도 할 수 없는 험로에 들기도 한다. “그것은 어떻게도 할 수가 없다.” 스위스의 정신분석학자 융(Carl Jung 1875-1961)교수는 선은 무의식으로의 여행이라고도 했고 중국의 불교학자 첸 교수는 선을 통해서 점차적으로 의식의 투명성을 높여 제 팔식인 아뢰야식(深層識)의 깊이에까지 직접 다가 갈 수 있다고 했다.

실로 선 수련의 길을 통해서 인간정신의 근원으로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다. 마침내 인간 정신의 깊은 비밀을 꿰뚫어 볼 수 있으며, 그래서 전에 볼 수 없었든 것 즉 무의식을 볼 수 있게 된다. 무의식 여기에서 문제해결의 열쇠가 있다. 정신적인 모든 문제가 무의식에 잠재되어져 있기 때문이다. 무의식을 정화하는 최상의 방법으로 참선수행의 길이 있는 것이다. 본론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미국에서는 동양의 선사상에 대하여 많은 연구와 과학적인 검증을 거쳤다. 선정에 들었을 때의 뇌파 검사와 선수행이 정신건강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를 많은 사람들이 꼼꼼하고 세밀하게 연구하였다. 많은 회사에서는 구룹별로 나누어서 참선을 매일 한 시간씩 하는 구룹과 하지 않는 구룹을 비교하여 보았다. 결과는 참선을 한 구룹이 스트레스를 덜 받아서 정신이 안정되어져 있고 작업현실에 있어서도 훨씬 능률이 올라 있었다. 스트레스는 마음을 들뜨게 하고 불안과 초조 근심을 안겨준다. 반대로 심신을 이완시켜 편안하고 안정된 상태에 놓이게 할 때, 온몸의 세포가 활성화 되고 뇌의 휴식상태에 놓이게 하여 정신이 건강해지며 집중력이 증강된다. 세계적인 골프 황제 타이거우즈는 하루 중의 많은 시간을 참선에 할애한다고 한다. 골프에서의 가장 중요한 마음의 안정과 집중력을 기르기 위해서다. 또한 영국의 록 구릅(1960년대) 비틀즈는 참선을 통해서 심신에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 잡념을 맑게 했다. 그리고 미국과 영국에서는 고등학교 학생들의 정서순환 프로그램으로 실행하고 있으며 교도소 수감자들의 정서안정 프로그램으로 인용되고 있다.

필자가 돌아본 미국의 서부지역, 남쪽의 산디에고에서 북쪽의 시애틀까지 장장 오천리가 넘는 해변가 근처의 곳곳에서는 대형 선센터들이 많이 들어서 있었다. (타사하라 선센터, 소나마 마운틴 선센터, 샌프란시스코 선센터가 기억에 남는 곳이다) 이곳에서 열심히 선수수련을 하고 있는 미국인들의 진지한 모습에서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었다. 자성을 밝혀 견성성불 하고자하는 염원은 물론이요, 오늘날 스트레스와 노이로제에 찌든 심신의 안정과 평화를 선수행을 통하여 얻고자 함이 아니겠는가? 특히 세계5대 미항인 샌프란시스코(산수가 수려한 곳으로 세계적인 금문교와, 북미 제일의 차이나타운이 있다)는 지구촌에 알려진 페지 스트리트(page street) 선센터가 있는 곳이다. 일본의 조동종스님인 스즈끼 순유선사가 1970년대 처음 세워졌고, 현재는 그의 법맥을 계승한 베이커 로시가 방장으로 있다. 이 센터 모두가 선수행처로써 활용되어진 곳으로 항시 문이 열려져 있으며 대형 선실은 언제나 200여명이 앉아 조석으로 열심히 정진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좌선시간, 오전: 5-8시 오후:5-8시) (소형 선실도 다섯 개가 있다) 실로 30년 넘게 명실 공히 시민들의 수행처로써 활성화 되여져 있다. 현대의 정신질환 해결책 가운데는 종교적인 방법으로 안수기도, 염불, 구병시식, 또는 굿 등의 방법이 활용되고 있다. 또 정신병원에서는 약물복용 등의 치료법이 있으나 모두 한계가 있다고 본다. 특히 약물복용 요법 등은 부작용과 습관성을 가져오는 경우가 많으며 강제입원과 자유제한이라는 문제점이 따른다.

가까운 친척임을 내세워 정신적으로 좀 허약하게 보인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시켜 격리시키고 그 안에서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행위가 자행되는 경우가 종종 벌어지는 것은 인간성 자체를 망가트리는 것이 될 뿐이다.
실로 2500년의 장구한 역사를 지닌 불법(佛法)의 참선수행법이야말로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가져다줌은 물론이요, 나아가서 제반의 정신적인 문제들을 해결 할 수 있는 가장 수승한 자연요법임에 틀림없다. 현대인에게는 내적인 휴식이 절실한 때인 만큼 선 수련을 성실하게만 실행한다면 그야말로 하늘이 내려주는 큰 선물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자기를 반조하여 자기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어느덧 세상이 변해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중국의 현 주석인 후진타호는 말하기를 “한국은 비록 경제주의는 성공했으나 문화주의는 실패한 나라다. 중국은 중국으로써 남겠다. 다가오는 세계는 지금의 경제교류의 시대에서 문화교류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라고 했다. 사실 중국은 유네스코에 정식 등록된 세계문화재만도 일백 곳(2005년 집계)이 넘고 그밖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문화재들을 소유하고 있는 나라다(한국은 해인사 팔만대장경, 불국사 석굴암, 종묘제악, 직지심경금속활자, 등이 유네스코 문화재다).

한나라의 고유한 전통문화는 그 나라의 근본이다. 사상과, 철학 등 삶의 모든 것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창구일 것이다. 인류학자들은 말하기를 문화가 없는 나라는 결코 지구상에 오래지속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박두하고 있는 문화교류의 새 시대를 예감할 때 1300년의 역사와 고유한 전통을 지닌 한국의 전통선법(看話禪法을 말한다)이야말로 이 땅의 얼이며 혼이 됨은 물론이요
독특한 정신문화의 한 축으로써 세계 속에 우뚝 서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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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일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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